소설리스트

남매는 비즈니스로 일합니다-242화 (242/309)

남매는 비즈니스로 일합니다 (242)

다음 날.

이른 아침.

NRY 엔터테인먼트 사옥 안.

“하하하, 어제 그런 일이 있었습니까?”

“두 사람이 내일 참여를 못 하니까…….”

“마침 은호랑 은지가 포인트도 가지고 있겠다. PD님은 애들이 뒤떨어지지 않게 잘 이용해 보라고 제안한 거겠군요.”

“맞아요. 그걸 그렇게……. 4개 받으면 저희 측에서 쳐 내려고 했는데, 애매하게 3개로…….”

유 PD는 쉬는 시간을 틈타 박창석 대표와 짧은 통화를 하며 어제 촬영 내용을 이야기하고 있었다.

“둘이 미리 맞춘 줄 알았어요.”

“하하, 하나씩 있을 땐 문제가 없는데 둘이 같이 있으면 잔머리 하나는 기막히게 돌아가니까, 안 당하게 조심하세요.”

“그래야겠습니다. 어린 꼬맹이들이라고 방심했다가 지금 뒤통수가 얼얼합니다. 하하. 아, 잠시.”

그때, 유 PD는 다른 스태프가 자신을 찾는 소리를 듣더니 쉬는 시간이 끝난 듯 다시 촬영에 들어가야겠다며 급하게 창석과 통화를 종료했다.

전화가 끊어지고, 창석은 애들이 잘하고 있다는 보고를 들은 아버지처럼 흐뭇한 웃음을 머금었다.

이후 앞에 앉아 있던 도진에게 말했다.

“우리도 이제 출발하자, 도진아.”

“네!”

“가서 애들한테 눌리지 말고.”

“노력, 해 보겠습니다.”

“거기 조영희라고 예찬이 개인 매니저도 있으니까, 걔한테 이것저것 물어보면 편하게 배울 수 있을 거야.”

“네!”

‘같이 쫌 살자’에 출연한 태현과 승연을 제외한 다른 톡신 멤버들은 오늘 뮤직비디오 개인 컷 촬영이 있는 날이었다.

그리고 도진은 오늘부터 톡신의 매니저로 임명됐다.

약 한 시간 가까이 먼 길을 달려 도착한 촬영장.

‘조영희 매니저님…….’

톡신 멤버의 뮤직비디오 촬영장에 도착한 도진은 창석이 지예찬과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 영희를 만났다.

교과서에서 본 듯한 흔한 이름 때문인지, 도진의 머릿속에는 자연스레 지적인 이미지의 여자 매니저를 상상하고 있었다.

“영희…… 씨?”

상상은 무참하게 짓밟혔다.

여자 매니저는 물론, 지적인 이미지와도 거리가 먼…….

콕 집어 말하자면 웬 조직에 몸을 담갔다고 해도 믿을 법한 우람한 덩치.

“반갑심다. 도진 씨 맞지예?”

“아, 네. 전도진이라고 합니다.”

거기에 찰진 사투리까지.

영희가 친절하게 웃으며 내민 손에는 큰 덩치만큼이나 손 사이사이에 단단하게 낀 근육들이 보였다.

같은 남자가 봐도 듬직한 손이었다.

도진은 애써 당황한 티를 내지 않으려고 더 밝게 입꼬리를 끌어 올리며 영희의 손을 붙잡았다.

“거, 도진 씨는 나이가 어케 되십니까?”

“저, 20대 후반인…….”

“아하! 내가 행님이네?”

영희가 활짝 웃으며 눈썹을 들썩였다.

“편하게 행님이라 부르이소.”

“네, 혀, 형님.”

“정 없게 ‘형님’이라 카지 말고, 행님!”

“예. 행님…….”

“씩씩하게!”

“예! 행님!”

“잘하네! 가자! 소개해 줄꾸마.”

영희는 굉장한 친화력(?)을 드러내며 도진에게 톡신 멤버들의 유의 사항 및 필수로 알아 둬야 할 부분에 대해 전달했다.

도진이 상상과는 다른 영희에게 이런저런 부분에 대해 배워 가고 있는 그 시각.

은호와 은지는 먼 길을 떠나온 끝에 이제 막 대기실에 들어섰을 때였다.

* * *

“자, 자! 퍼져 있을 시간 없어! 금방 리허설도 하고 와야 해.”

“네…….”

“…….”

좀비처럼 흐느적거리며 차에서 내린 은호와 은지는 슬기에게 던져지다시피 대기실에 널브러졌다.

은호는 속이 안 좋은 듯 얼굴이 창백했다.

“은호 씨, 속 안 좋아요?”

“네, 좀…….”

“그러게, 차에서 노트 그만 보시라니까…….”

“그럴 걸 그랬네요.”

멀미할지 모른다며 차에서 현우 형도, 슬기 씨도 몇 번이나 경고했음에도 불구하고 쓸 가사가 많아서 계속 붙들었더니…….

‘자업자득’이라는 말이 딱 맞았다.

한편, 은호와 달리 은지는 평소와 같이 아직 잠에 취해서 피곤한 모습이었다.

“은지야, 이거 입고 자.”

“웅…….”

슬기가 와이셔츠와 흰 정장 바지를 내밀자, 은지는 눈도 못 뜬 채 옷을 받아 들었다.

주변의 눈은 전혀 개의치 않은 듯 은지가 훌러덩 옷을 벗자, 슬기가 더 다급하게 임시로 담요를 들어 탈의실을 만들었다.

“언니, 이거 벨트도 해야 해?”

“응.”

슬기가 담요를 든 채 대답하자, 은지는 벨트가 마음에 들지 않는 듯 뾰로통한 표정을 하며 벨트를 채웠다.

은지가 옷을 다 갈아입었다는 걸 확인한 후에서야 슬기는 담요를 내리고 은지의 목에 협찬받은 목걸이를 걸었다.

“오늘 기타 쳐야 하니까, 네일은 짧은 걸로 준비했어.”

“웅.”

“은지야, 잠깐 눈 뜨자.”

“…….”

슬기의 부탁에 은지는 흰자를 드러내며 정말 잠시 눈만 떴다.

슬기는 익숙한 일상이라는 듯 잠든 은지의 얼굴에 메이크업을 진행했다.

“너 근데 렌즈 넣고 자도 돼?”

“눈만, 감은…….”

“어련히 그러시겠지.”

슬기가 웃으며 마저 메이크업을 끝마치고 이젠 일어날 시간임을 알리듯 은지의 어깨를 힘껏 주물렀다.

“아악!”

말이 주물렀다지 당하는 은지의 입장에서는 꼬집힌 수준이었다.

은지는 번쩍 눈을 뜨며 슬기를 돌아봤다.

“깼어?”

“아니, 아윽. 언니, 아프잖아─아!”

은지의 앙탈에 갑자기 귀 테러를 당한 은호는 징그럽다는 듯 미간을 구겼다.

한편, 슬기는 웃으며 한 번 더 은지의 어깨를 주무르고 말했다.

“얼른, 일어나세요. 오늘 무대 올라가서 기타 연주도 해야 한다며, 연습 안 해도 돼?”

“아아악!!! 다 외웠는데…….”

은지가 투덜거린 그 순간.

이번엔 슬기가 아닌 은호가 발끈하며 꿀밤을 먹였다.

“악!!!”

“넌 외웠다는 애가 무대만 올라가면 변주를 해서 사람 미치게 만드냐.”

“아니, 그건 분위기가……. 알았어. 알았다고.”

더 핑계를 대려던 은지는 싸늘한 은호의 표정에 못 이긴 척 잠을 이겨 내며 기타를 꺼내 들었다.

“순서가 뭐였지.”

“…….”

잠결에 웅얼거린 한마디에 은호의 눈빛이 금방이라도 물어뜯을 듯이 사나워졌다.

“노, 농담, 농담! 그, 그그, ‘듀오’ 어쿠스틱 버전부터잖아! 봐, 나 알고 있어!”

은지가 다급하게 기억해 내며 양손을 바쁘게 저어 댔다.

“…….”

기억력은 믿을 수 없지만, 은지의 손가락은 믿는 듯 은호는 은지가 연주를 시작하고 나서야 사나웠던 눈매를 풀었다.

당황했던 모습과는 반대로 막상 연주를 시작하자 외웠다는 말이 빈말은 아닌지 은지는 여유롭게 ‘듀오’를 연주했다.

“이거 다음은…….”

“셈데셈타(Same day, Same time).”

“그다음엔 촬영 끝나고 나서 ‘저주’. 맞지?”

“어. 맞아.”

연주하면서 잠은 다 달아난 듯 은지가 말똥거리는 눈을 하며 물었다.

은호는 그제야 마음을 놓은 듯 피식 웃으며 답했다.

* * *

찬 바람 부는 옥탑방

여기 홀로 달을 바라봐

네가 오기를 바라서

꿈을 꾸기를 바라며

간단히 연습을 마치고, 짧은 리허설 이후 올라간 무대 위 은지는 대기실에서 잠에 취했던 그 애가 맞나 싶을 정도로 여유롭게 연주를 이어 갔다.

‘듀오’가 끝나자, 밴드의 피아노 연주자는 건반을 자유롭게 타고 놀며 ‘Same day, Same time.’의 2절 멜로디로 넘어갔다.

은지도 바뀐 멜로디를 따라 자연스럽게 코드를 바꾸며 연주했다.

Same day, Same time.

Same day, other Crime

나서야 했던 새벽길에

걸어야 했던 새벽길을

은지가 먼저 노래를 시작하고, 그에 맞춰 은호도 내렸던 마이크를 다시 들며 노래를 이어 갔다.

Good Night.

다음 날 우리가

다시 웃으며 만날 수 있게

Good Night

노래가 끝난 뒤.

MC와 방청객들은 박수를 아끼지 않았다.

방청객들 틈에는 E%들도 적지 않게 많이 온 듯했다.

‘이 길 위’ 가사 중, ‘오늘 밤도 너의 길 위 밝은 별이 뜨길’ 부분을 따서 만든 듯.

‘이응이들 너희 길 위 밝은 별이 뜨길’ 같은 감성적인 플래카드 외에도 ‘지지를 지지해’ 같은 장난기 가득한 플래카드를 흔들고 있는 팬들도 있었다.

“오늘 게스트는 남매 아이돌! 이응입니다!”

MC가 짧은 소개를 하는 동안 무대가 정리되고, 은호와 은지는 MC의 옆에 놓인 의자에 앉았다.

“안녕하십니까. E-UNG의 이은호.”

“이은지입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짝짝짝짝.

MC와 동시에 방청객에게서도 은호와 은지를 반기는 박수 소리가 이어졌다.

“내가 오늘을 얼마나 기다렸는지 몰라요.”

MC가 웃으며 말하자, 은지가 눈을 빛내며 물었다.

“정말요?”

“네. 개인적으로 드라마 OST, ‘Last Day’ 때부터 많이 들었는데, 드디어 우리 이응을 만나 뵙게 됐네요.”

“감사합니다.”

“와! 감사합니다.”

은호가 인사하자, 은지도 기뻐하며 인사를 따라 했다.

“근데, 와, 방송으로 볼 때도 둘이 닮았다고는 생각했는데, 이렇게 보니까 정말 쌍둥이라고 해도 될 정도로 똑같이 생겼어요.”

“아니에요.”

“안 닮았어요.”

MC가 감탄하며 말한 그 순간.

은호와 은지가 이번만큼은 동시에 부정하며 말했다.

“아닌데?”

MC는 냉정한 둘의 대답에 억울하다는 듯 방청객들을 돌아보며 물었다.

“닮았죠?”

“네!!!”

“아니, 하하……!”

은호와 은지는 억울하게 방청객을 돌아본 순간, 못 살겠다는 듯 고개를 저었다.

“하하하핰.”

E%들이 많았다.

그 말은 곧, 정직한 ‘이응(ㅇ)’ 모양의 EG봉을 든 팬들도 많다는 말이었다.

은호와 은지가 방청객을 돌아봤을 때 조명 탓에 팬들의 얼굴은 잘 보이지 않았지만, 환하게 LED가 켜진 ‘이응(ㅇ)’들은 굉장히 잘 보였다.

“쓰흡, 큽.”

은호는 애써 입술을 물어 가며 웃음을 참은 뒤 입을 열었다.

“EG봉 디자인을 다른 걸로 고를 걸 그랬나 봐요.”

“하하, 아, 저 이응 모양 봉이 두 분이 직접 고른 거였어요?”

“디자인을 직접 했어요!”

MC의 질문에 은지가 활기차게 자랑하듯 답했다.

“아하?”

그때였다.

관련해서 미리 준비된 게 있는지 한 스태프가 사진이 붙어 있는 큰 우드록을 가지고 오며 MC에게 건넸다.

“하하하하!”

먼저 우드록에 붙은 사진을 본 MC는 웃으며 방청객 방향으로 우드록을 돌렸다.

은호와 은지가 직접 그렸던 굉장히 허접하기 그지없던 너덜너덜한 팬 봉 예시 그림이었다.

“아, 아니, 저걸 굳이 이렇게 크게…….”

그림이 부끄러운 듯 은호는 달아오른 얼굴을 마이크를 든 손으로 반쯤 가리며 중얼거렸다.

“뭔데?”

은지는 뒤늦게 우드록에 붙은 그림을 확인했다.

“아핰핰핰! 와, 대박. 저거 어떻게 가지고 왔어요?”

“저희 제작진이 준비성이 꽤 철저해요. 이거, 여기 계속 두고 이야기할까요?”

“아뇨!”

MC가 웃으며 중간에 놓인 이젤 위에 우드록을 올리자, 은호는 단호하게 거절하며 우드록을 엎었다.

그림을 부끄러워하는 은호의 행동에 방청객에서는 웃음소리와 아쉬운 소리가 동시에 터져 나왔다.

‘안 돼, 여러분까지 그러지 마요.’

은호는 방청객에 섞여 있는 팬들을 돌아보더니 그러지 말라는 듯 아랫입술을 깨물고 고개를 저었다.

그때였다.

“하하하하.”

은호 경고에 대답이라도 하듯 이어진 E%의 반응에 MC가 소탈한 웃음을 터뜨렸다.

E%들은 그러지 말라는 은호의 경고에 꼭 ‘싫어!’라는 말을 전하듯 EG봉의 ‘이응(ㅇ)’ LED를 꺼 버렸다.

“이야, 저거 괜찮네. 하하. 이렇게 말없이 직접적으로 소통하는 가수는 처음이네요. 하하하.”

MC는 EG봉의 디자인을 칭찬했다.

팬들의 센스 있는 반응이 더해진 덕분인지, 그날 방송은 은호의 ‘노잼’ 타이틀을 떼어 낼 수 있을 정도로 재미있게 진행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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