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매는 비즈니스로 일합니다 (241)
“은지야, 어디 가?”
승연이 큰 방으로 향하던 은지를 멈춰 세우며 물었다.
“엄, 화장실 가려고 했는데 같이 갈래요?”
“하하. 됐거든?”
은지의 당돌한 장난에 승연은 순간 당황한 기색을 비치다 이내 웃으며 손을 흔들었다.
이후 은지는 신발을 벗고 마루에 오르며 큰 방으로 향했다.
“끅…….”
방문 앞에 섰을 때 희미하게 들리는 흐느끼는 소리.
덜컹.
나무 문이 도중에 걸린 건지 큰 소리를 내며 뻑뻑하게 열렸다.
머뭇거릴 만도 했지만, 오히려 은지는 더 빠르게 문을 열며 방 안으로 들어섰다.
그때, 문소리가 들린 듯 방 안의 흐느낌 소리는 언제 났냐는 듯 잦아들어 있었다.
“이슬아?”
“네?”
“화장실에 있어?”
“네. 쓰, 쓰시는 거면 금방 나갈게요.”
“아니야. 오래 걸리는 거면 이따 다시 올게.”
말이랑은 다르게 은지의 걸음은 욕실에 가까워졌다.
에이슬은 다급하게 변기에서 일어났다.
“아니에요. 아니에요. 다, 다했어요.”
그냥 나가려던 에이슬은 괜스레 변기 물을 내리며 밖으로 나왔다.
문을 열고 나오자 언제 다가온 건지 은지는 이미 욕실 문 바로 앞에 서 있었다.
은지가 고개를 들이밀며 걱정스럽게 물었다.
“안에서 울었어?”
“…….”
에이슬은 시선을 마주치기는커녕 고개 한 번 못 든 채 고개를 저었다.
“어젯밤에는 그렇게 눈 마주치고 조잘거리던 애가 갑자기 나하고 눈도 잘 안 마주치고…….”
은지의 말에 무슨 말이라도 하려고 에이슬은 입을 뗐다.
하지만 에이슬이 목소리를 내기 전.
“……꼭 나한테 무슨 죄라도 지은 사람처럼.”
은지가 문득 무언가를 깨달은 듯 눈을 크게 뜬 채 중얼거렸다.
에이슬은 숨통이 턱 틀어막히는 기분이었다.
고개를 들 수 없었다.
은지는 매서웠다.
노려보는 것 같은 강한 눈매가 무서워서는 아니었다.
그것보단 에이슬은 오히려 은지가 무언가를 깨달은 그 순간부터 목소리에 웃음기가 사라져서였다.
웃지 않는 은지는 지나온 험난한 인생이 분위기에 배어들어, 싸늘한 은호와는 반대로 다 꿰뚫어 태워 버릴 것 같은 살벌한 분위기를 풍겼다.
그래서 두려웠다.
“…….”
에이슬이 앞에서 뻣뻣하게 굳어 있자, 힘을 풀라는 듯 에이슬 등을 약하게 두드렸다.
“왜 그렇게 긴장했어. 긴장 풀고, 얼른 나가 봐. 곧 다시 촬영 들어간다고 하니까.”
“네.”
에이슬은 기다렸다는 듯 밖으로 빠져나갔다.
은지는 화장실에 들어가는 척 하다가 걸음을 멈췄다.
그리고 방에서 나가는 에이슬을 가만히 바라봤다.
이 시간에서 만난 에이슬은 은호에게 들은 ‘그런’ 일을 벌이던 애랑은 거리가 멀어 보였다.
심지어는 당시 직접 겪었던 그 싸가지와도 같은 사람이 맞는 건지 혼란스러울 정도로 다른 사람이었다.
그래서 조금이나마 가깝게 대할 수 있었다.
버스에서 같이 앉는다거나, 방을 같이 쓰면서 밤새 조잘거린다거나 그런 일들.
하지만 오늘 아침.
‘에이슬이 날 봤을 때…….’
단순히 자다가 일어나서 놀랐다기보단, 꼭 죽은 사람이 살아난 걸 본 것 같은 놀란 얼굴을 했다.
‘기분 탓일까?’
하지만 아무리 봐도…….
“쎄― 한데.”
딱히 콕 집에 제시할 만한 이유가 없어서 더 불쾌한 동물적인 직감이 신호를 보낸다.
이은호가 갑자기 달라졌던 그날처럼 무언가를 놓친 것 같은, 거지 같은 느낌.
하지만 지금은 증거도, 물증도 없으니까.
일단은 지켜보자고.
은지는 에이슬이 방을 빠져나간 뒤, 그제야 욕실 문을 닫았다.
* * *
저녁 식사를 마친 이후.
미리 이야기했던 대로 첫날과 다르게 멤버들은 포인트를 사용하여 잘 곳을 정하기로 했다.
누가 어디 방에 묵게 될지는 아무것도 모른 채 말이다.
현재 아침 미션으로 포인트를 얻은 사람은 이은호, 류석현, 이은지, 에이슬.
그 외에도 저녁 식사 시간에 ‘5분 설거지’ 미션을 통해 1포인트를 얻은 지키까지 총 다섯 명.
남자 스태프가 온갖 핀을 꼽은 파마머리 가발을 쓰고 이상한 말투를 하며 통을 하나 내밀었다.
“방은 왼쪽부터 순서대로 1번, 2번, 3번이에용.”
“선택해서 구매하는 게 아니에요?”
“넹. 랜덤이랍니다. 호홍홍.”
스태프의 오그라드는 연기에 멤버들이 질겁하는 것도 잠시.
포인트가 있는 다섯은 우드록으로 만들어진 비루한 구멍가게에서 방을 구매했다.
그때, 가장 먼저 구매했던 류석현이 종이를 펼쳐 보더니 억울하다는 듯 소리쳤다.
“뭐야! 이거, 포인트로 방을 산다는 게……!”
“하하하.”
“감독님, 이거 맞아요? 방이 1일짜리인데?”
류석현이 펼친 종이에는 ‘방 이용권’ 뒤에 ‘(1일)’이라고 쓰여 있었다.
“당했다!”
류석현은 황당한 표정을 지으며 외쳤다.
그때, 서승연은 살짝 희게 질린 얼굴이 되더니 유 PD에게 조심스럽게 질문을 던졌다.
“잠시만요, PD님.”
“네.”
“포인트가 없는 사람은, 어디서 자요?”
“어디긴요? 아침에도 말씀드렸는데.”
유 PD는 이어서 승연에게도 생글생글 미소를 지으며 양손을 펼쳐 보였다.
“여기죠.”
의미를 알아채지 못한, 아니.
차라리 모른 척하고 싶었던 서승연은 다시 한 번 되물었다.
“야외, 라는 말씀은 아니시죠?”
“맞는데요?”
“아.”
뻔뻔한 유 PD의 대답에 서승연은 많은 감정이 담긴 한숨을 흘리며 목덜미를 붙잡았다.
현재 포인트가 없는 멤버는 최태현, 최시우, 서승연, 이렇게 세 사람.
이대로라면 셋이 나란히 야외 텐트행이 확정이었다.
하지만 그때, 유 PD가 의미심장한 이야기를 꺼내며 수상쩍은 미소를 띠었다.
“하지만 아무래도 세 분이 모두 텐트에서 주무시는 건 조금 그렇죠?”
“네!”
시우와 승연이 희망을 본 듯 활기차게 대답했다.
“그런 분들을 위해, ‘포인트 대출’을 받으실 수 있는데, 생각 있으신가요?”
오늘은 추운 날이었다.
이런 날에 야외 취침을 했다간 입 돌아가기 딱 좋다는 생각에 서승연도, 최시우도, 관심 없는 척하던 최태현까지도 PD의 제안에 동하는 모습을 보였다.
“저희가 오늘 여러분께 나눠 드린 포인트는 총 10포인트였습니다.”
저녁을 먹기 전.
재료를 준비하는 동안 포인트가 없는 멤버 지키, 최태현, 서승연, 최시우에게는 추가 미션이 주어졌다.
지키의 미션은 ‘5분 안에 설거지 끝내기.’
최태현은 ‘5분 안에 밭에서 대파 뽑아 오기.’
최시우는 ‘5분 안에 고추 따 오기.’
서승연은 ‘30분 안에 요리할 수 있는 불 피우기.’
“하지만 미션 한 가지에 실패하시면서 9포인트가 여러분께 갔죠.”
최태현이 대파가 아닌 쪽파를 뽑아 오면서 미션을 하나 실패하긴 했지만, 미션은 모두 성공했다.
다만, 혼자 설거지를 했던 지키를 제외한 최시우와 서승연은 다른 사람의 도움을 받아서 해냈다.
최시우를 도운 건 은지였다.
정확히는 은지가 미션을 했다.
밭을 몇 번 다녀온 덕분인지 은지는 밭 곳곳에 무엇이 어디에 있는지 잘 알고 있었고, 마침 가는 길이라며 고추를 따왔다.
그리고 시우는 유 PD에게 제출만 했다.
서승연의 불 피우기 미션 역시 마찬가지였다.
실패까지 3분을 남긴 상황.
「“포기할래…….”」
「“하하, 그럼 저녁은 먹어야 하니까, 제가 할게요.”」
포기한 서승연을 밀어내고, 은호는 저녁 준비를 해야 했기에 어쩔 수 없이 직접 나섰다.
그 결과, 은호는 서승연이 27분 동안 끙끙거렸던 불길을 단 2분 만에 적당하게 피워 냈고, 보란 듯 미션을 성공시켰다.
「“이거, 미션 성공이죠!?”」
「“성공은…… 성공이죠. 직접 밭에 가신 은지 씨랑 불을 피운 은호 씨가요.”」
「“그런 게 어디 있어요!”」
「“여기요.”」
유 PD는 시우와 승연의 포인트를 도와준 은호와 은지에게 전달했다.
그렇게 시우와 승연이 받아야 했을 포인트는 현재 은호와 은지가 가지고 있다.
“빌리는 건 잔여 포인트가 있는 분들께 빌리시면 됩니다.”
PD의 말은 즉, 은호랑 은지에게 직접 빌리라는 말이었다.
“참고로 말씀드리자면 앞으로 여러분이 밤을 지새울 방값은 랜덤으로 오르며, 내일 미션의 개수는 오늘과 같은 10개입니다.”
유 PD는 중요한 설명을 은근슬쩍 흘러가듯 덧붙였다.
“저, 그럼 포인트를 빌리면 그것만 돌려주면 되는 건가요? 이자 같은 거 없이?”
야외 취침이 어지간히 싫었는지, 서승연이 눈을 빛내며 PD에게 물었다.
PD는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다.
“아니요. 그러면 굳이 ‘대출’이라고도 안 했겠죠.”
“그러면요?”
시우가 묻자, 이어지는 PD의 설명은 간단했다.
‘빌려주는 사람이 이자를 배수로 지정하고, 포인트를 빌린 사람은 다음 회차에 그 이자를 모두 깎을 때까지 포인트를 얻지 못한다.’
“오…….”
은호가 감탄을 터뜨렸다.
너무하다고 할 수도 있겠지만, 내일은 E-UNG는 중간에 스케줄이 있어 빠져야 한다.
오후에는 다시 돌아올 예정인지라, 돌아왔을 때 잠을 야외에서 잘 생각이 아니라면 다음 회차까지 연계도 가능한 귀하디귀한 포인트를 빌려주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이자를 지정하는 것도 빌려주는 사람 마음대로.
심지어 이자 지급 또한 제작진 측에서 직접 관리를 해 주겠다?
이 경우에는 말이 달라졌다.
이해를 끝마친 은호와 은지는 사악하게 웃으며 시선을 맞췄다.
‘…….’
한 걸음 떨어져서 이야기를 듣기만 하던 태현은 히죽거리며 웃는 은호와 은지를 발견했다.
포인트를 가진 게 그 ‘은호’랑 ‘은지’다.
태현은 고개를 저으며 마음을 잡았다.
‘……난 그냥 야외에서 잘래.’
나름대로 현명한 판단이었다.
“은호야, 내가 내일 두 배로 줄 테니까―.”
“에이, 형님도 참…….”
“응?”
“섭섭하게 두 배라뇨?”
승연의 제안에 돌아온 은호의 미소는 표정만 보면 정말 친절한데, 그 속에 숨은 뜻은 그렇지 못했다.
은호는 손가락 4개를 펼쳐 보였다.
“야, 설마 네 개? 그건 아니지! 사채업자도 그렇게는 안 뜯어 가!”
승연이 경악하자, 은호는 여전히 싱긋 웃으며 말했다.
“싫으면 쟤한테 가시면 되죠.”
“은지는…….”
“근데 형님, 아시죠? 이은지가 저보다 더하면 더했지, 덜하진 않습니다?”
한편, 시우가 접근한 은지 쪽도 상황이 비슷하기는 마찬가지였다.
“네, 네 배요?”
“알다시피 우리가 내일 참여를 못 하니까.”
은지는 여유롭게 마루에 다리를 꼬고 앉더니 턱을 괴며 물었다.
“너무 비싼가?”
“당연하죠!”
“그럼, 저기 이은호랑 거래해요.”
“…….”
“근데 이은호는 다섯 개, 여섯 개 달라면서 이 기회에 더 뜯으려고 하지. 나보다 싸진 않을걸요? 가서 어디 한 번 물어봐요.”
시우는 의기양양한 은지의 태도에 기가 죽은 채 등을 돌렸다.
“너도 네 개 제안받았어?”
“네, 선배님도 그럼…….”
승연과 시우는 서로 은지와 은호에게 향하던 중 중간에서 마주치며 정보를 나눴다.
“물어보기라도 해 볼게요.”
“그래. 나도 그럼, 은지한테 물어보기만이라도…….”
이쪽도, 저쪽도 4개라는 말에 좌절했지만, 그럼에도 야외 취침을 하기엔 날이 너무 추웠다.
승연과 시우가 갈라지며 각각 은지와 은호 앞에 섰다.
“으음.”
은호는 시우를 앞두고 고민하는 척, 한숨을 흘리며 입을 열었다.
마치 큰 인심을 쓰는 듯한 말투였다.
“시우 씨는 내가 동생 같아서 차마 4개라고 못 하겠네, 3개에 거래할래요?”
은지도 패턴은 비슷했다.
“내가 시우 씨는 몰라도, 승연 오빠한테까지 네 배 받기는 조금 그러니까, 오늘 날도 춥고…… 음, 세 배 어때요?”
당연히 4개라고 예상한 것도 문제였지만, 서로가 ‘저기가 더 비쌀 것’이라며 경고를 했던 것이 단세포 둘의 머리를 깨트렸다.
둘은 처음 예상했던 2배보다 한 개가 더 추가된 3배로 빌렸음에도 잔뜩 신나 있었으니까.
거기다 분명 유 PD는 예고했다.
내일 미션의 개수가 오늘처럼 단 10개뿐이라고.
“저 바보들…….”
내일 어쩌려고 저러나…….
“형, 난 안에서 잔다!”
“그래.”
태현은 미래도 모른 채 제 앞에서 방 이용권을 자랑하는 승연을 애잔하게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다 문득 깨달았다.
태현은 은호를 돌아봤다.
‘쟤들…….’
순간 소름이 돋았다.
은호와 은지는 대출 이야기가 나온 이후.
겨우 눈 한 번 마주치며 사악하게 웃던 그 순간부터 지금까지.
두 사람은 대화는 물론이거니와 눈 한 번 마주치지 않았다.
그 말은 곧.
둘은 찰나에 오로지 시선만으로 이 계획을 짜 맞췄다는 말이었다.
‘박창석 팀장, 당신…….’
대체 뭘 키운 겁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