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매는 비즈니스로 일합니다 (240)
파동
은호와 은지가 스케줄을 위해 떠나기 하루 전.
유 PD는 은호를 포함한 깨어 있는 멤버들을 중앙에 모아 오프닝을 진행했다.
“일찍 깨어 계신 여러분께, 특별한 선물을 드릴 겁니다.”
“오오.”
깨어 있는 멤버들은 당연히 조금 전 은호가 제시했던 대로 ‘포인트’를 나눠 주리라고 예상했다.
“자, 앞에서 한 장씩 가지고 가시면 됩니다.”
하얀색 테이블 하나가 놓이고, 위에는 접혀 있는 종이가 깨어 있는 사람 수만큼 놓여 있었다.
“다 같은 겁니다.”
유 PD의 말이 끝나자마자 은호와 은지의 몸이 가장 먼저 앞으로 나갔다.
이후 승연과 태현이 종이를 챙기고, 마지막으로 지키가 조심스럽게 하나 남은 종이를 챙겼다.
은지는 아무에게도 보여 주지 않겠다는 듯 두꺼비처럼 ‘투턱’까지 만들며 힐끔 확인했다.
“다 똑같다, 바보야.”
“……혹시 모르잖아!”
은호가 한심한 시선으로 바라보며 말하자, 은지가 한 발짝 늦게 발끈하며 대꾸했다.
종이를 펼치자 안에는 다섯 글자가 쓰여 있었다.
소원 수리권
당연히 포인트라고 생각했기에 일동 ‘이게 뭐지?’라는 생각이 얼굴에 드러났다.
유 PD는 멤버들의 반응에 흐뭇하게 웃으며 설명을 이어 갔다.
“앞으로 이곳엔 구멍가게가 설치될 겁니다.”
“구멍가게요?”
“이건 거기서 쓰는 거예요?”
“정확히는 등록할 때 쓰는 거죠.”
“등록?”
“여러분이 받으신 종이에는 모두 똑같이 소원 수리권이라고 쓰여 있을 겁니다.”
“네.”
“저희 ‘구멍가게’에는 아직 많은 물건을 들이진 못했습니다.”
은호와 은지는 소원 수리권의 의미를 눈치챈 듯 오묘한 표정을 띠었다.
“부지런한 새가 가게의 물건을 정한다!”
유 PD가 의욕적으로 외쳤다.
“즉, 나눠 드린 ‘소원 수리권’은 여러분들이 필요하다고 여기는 물건을 구멍가게에 들여올 수 있는 권한입니다.”
소원 수리권을 가만히 살피던 태현이 물었다.
“주는 건 아니고 팔 거를 고른다는 말인 거죠?”
“맞습니다.”
“음.”
태현의 질문이 끝나고, 유 PD는 설명을 마저 이었다.
“앞으로 여러분들은 다양한 미션을 통해 포인트를 얻으실 텐데…….”
은호의 질문에 유 PD가 스태프를 불러 플라스틱으로 만들어진 투명한 둥근 그릇을 테이블에 놓았다.
이어서 스태프는 둥근 그릇 안에 추억의 유리구슬들을 한가득 쏟아부었다.
PD는 쏟아지는 유리구슬을 확인하며 은호의 질문에 답했다.
“포인트는 앞으로 이 유리구슬로 하나씩 지급될 겁니다.”
“그 유리구슬로 저희는 구멍가게에서 거래를 할 수 있는 거고요?”
“네. 맞습니다. 현재 가게에 올릴 매물을 조금 이따 정리된 포스터로 한 번에 보실 수 있지만…….”
유 PD는 은호가 바로 전날, 가장 부러워했던 스태프용 대신 새로운 버너를 꺼내 앞에 놓았다.
“예시로 말씀드리자면. 이 버너 같은 경우 유리구슬 6개에 구매하실 수 있고, 대여는 절반 값인 3개를 받고 제공해 드릴 겁니다.”
“음, 혹시 미션이 많아요?”
그때, 은지가 번쩍 손을 들며 유 PD에게 물었다.
“네. 사소하게 많을 겁니다.”
“오!”
갑자기 유 PD의 눈빛이 수상해진 그때였다.
“바로 지금.”
이때를 노렸다는 듯, 김 작가가 스케치북을 들어 보였다.
방 안의 잠든 멤버를 깨워 함께 마당에서 손을 잡은 채 ‘잘 잤다!’를 외치시오.
선착순 두 팀에게 1포인트 지급
갑작스럽게 시작된 미션.
현재 잠들어 있는 인원은 류석현, 최시우, 에이슬로, 총 세 사람.
“참, 포인트는 ‘같이 쫌 살자’, 이번 촬영 이후로도 계속 적립됩니다. 적립된 포인트는 다음 촬영 때도 사용할 수 있고 무엇보다…….”
“……?”
“오늘 포인트가 없는 분들은 ‘방’ 값을 지급할 수 없으므로 야외 취침입니다.”
첫 미션이라 다들 출발해도 되는지 눈치를 보고 있던 그때.
‘야외 취침’이라는 한마디에 모두가 본능적으로 움직였다.
그중 가장 선두는 거의 동시에 출발한 은호와 은지였다.
은지는 에이슬이 잠든 왼쪽 방으로.
은호는 시우와 석현이 잠든 오른쪽 방으로 향했다.
자연스레 뒤따랐던 지키, 태현, 승연 역시도 각자 하룻밤을 보냈던 남자팀 방의 방향으로 몸을 꺾었다.
가장 먼저 방에 도착한 은지가 버럭 소리치며 에이슬을 깨웠다.
“에이슬! 일어나!”
문제가 있었다.
잠귀가 굉장히 어두운 듯 에이슬은 은지의 기차 화통 삶아 먹은 것처럼 큰 목소리에도 꿈쩍조차 하지 않았다.
오히려 악몽이라도 꾸는 듯 에이슬은 미간을 찡그린 채 이불 속으로 더 파고들어 갔다.
“아직이네?”
그때, 지키가 방 안에 들어섰다.
은지와 눈이 마주친 지키는 에이슬에게 다가가더니 머리끝까지 덮인 이불을 조금 들춰냈다.
“언니? 무, 뭐 하려고요?”
은지가 갸웃거리며 물은 그때였다.
후―!
“히익!”
지키는 에이슬 귀에 바람을 불었고 에이슬은 화들짝 놀라며 번쩍 눈을 떴다.
어젯밤 함께 지내면서 우연히 알게 된 약점이었던 모양.
‘아니, 뭐, 이런…….’
은지는 고작 ‘후’, 한 번에 깨어난 에이슬을 황당하게 바라보며 ‘해님과 바람’이라는 동화를 문득 떠올렸다.
하지만 아직 기회는 남아 있다.
“같이 나가자.”
지키가 다정하게 웃으며 손을 내밀었다.
하지만 예상치 못한 방법으로 잠에서 깬 탓일까.
에이슬은 온기 어린 바람이 들어온 한쪽 귀를 꼭 부여잡은 채 동그랗게 뜬 눈으로 물었다.
“뭐, 뭐예요? 언니들, 왜?”
정신없이 일어난 나머지 아직 잠이 덜 깬 듯 혼란스러워 보이던 그때였다.
“잘 잤다!”
“잘 잤다!”
마당에서 미션을 진행한 은호와 석현의 목소리가 들렸다.
“이은호! 류석현! 통과!”
“이게 무슨…….”
에이슬도 밖에서 난 소리를 듣긴 했지만, 혼란만 더 가중된 듯 보였다.
그동안 지키와 은지 사이에는 무거운 침묵이 맴돌며 소리 없는 스파크가 튀었다.
조금 전 그 외침은 한 팀이 나왔다는 소리.
그리고 우승자는 단 두 팀.
“이슬리!”
“넹?”
지키는 ‘이슬이!’라고 하려다 발음을 실수했다.
자신의 발음에 예민한 지키는 잠시 멈칫해 버렸고, 때를 놓치지 않고 은지가 이슬이를 불렀다.
“이슬아!”
“네? 네!”
“밖에서 소리 들었지?”
“네? 아, 네.”
“똑같이 하면 일단 좋아! 너도, 나도! 오케이?”
“네?”
은지는 그렇게 간단 설명을 끝냈다.
“꺄악!”
이후 은지는 벌떡 일어나, 에이슬을 번쩍 둘러업고 밖으로 뛰쳐나갔다.
지키는 너무 놀란 나머지 할 말도 잊은 채 은지를 황당하게 바라봤다.
한편, 반대편 방에서도 비슷한 일이 있었는지 승연이 절규했다.
“아, 형! 반칙이야!!! 내가 시우 깨웠잖아!!!”
“……!”
마침 은지 앞에 비슷한 자세로 시우를 둘러업은 태현.
“실례.”
태현은 여유롭게 은지를 지나치며 마당으로 나갔다.
은지는 다급하게 태현을 뒤쫓으며 에이슬에게 소리쳤다.
“이슬아! 다 필요 없고 내가 뭘 하든, 나랑 똑같이만 따라 해!”
그동안 태현은 시우를 평상에 내려 뒀다.
시우는 정신없는 상황에 다리에 힘이라도 풀린 듯 인어공주 포즈로 털썩 주저앉았다.
‘여긴 어디? 난 누구?’
시우의 얼굴에 수많은 물음표가 보였다.
기회는 지금이었다.
은지는 다급한 마음에 둘러업은 에이슬을 데리고 맨발 상태로 마당에 뛰어나왔다.
하지만 에이슬의 맨발까지 더럽히긴 미안했는지 평상 위에 올려 주며 손을 잡고 번쩍 팔을 들었다.
은지가 만세를 하자, 에이슬은 멀뚱한 얼굴로 가만히 바라보더니 곧 따라만 하라던 은지의 말을 떠올린 듯 똑같이 양 팔을 들었다.
“잘 잤다!”
“자, 잘 잤다!”
“이은지, 에이슬! 통과!”
“와아아아!”
유 PD가 승자의 이름을 외치자, 은지가 진심으로 펄쩍 뛰며 기뻐했다.
“와아…….”
에이슬도 뒤따라 놀라며 기뻐하던 그때.
무언가 걸리는 부분이라도 있는지, 놀람과 슬픔, 그 외에도 여러 감정이 뒤섞인 눈길로 은지를 바라봤다.
“……!”
“잘했어!”
은지가 에이슬을 돌아보며 활짝 웃자, 에이슬은 어떤 이유에선지 더 울 것 같은 표정이 됐다.
“어? 이슬이 울어? 왜 울어?”
“그, 그게 우는 게 아니라…….”
에이슬은 안 운다고 핑계를 댈 시간도 없었다.
은지는 저보다 작은 에이슬을 꽉 끌어안으며 소곤거렸다.
“카메라 앞이니까, 뚝!”
은지의 포옹 덕분에 카메라에는 에이슬이 울 뻔한 표정은 잡히지 않고, 오히려 은지와 함께 기뻐하는 것처럼 찍혔다.
미션이 끝나고 찾아온 짧은 쉬는 시간.
다들 평상에 돌아앉은 채 휴식을 즐기던 그때.
은지가 슬쩍 에이슬 옆자리에 앉으며 걱정스럽게 물었다.
“아깐 갑자기 왜 울었어? 무슨 일 있어?”
“아, 그, 그, 그게 바, 방금 일어나서 아직 꿈이 덜 깼었나 봐요.”
“꿈? 흐음?”
크게 당황하며 말까지 더듬는 에이슬을 의심스러운 눈초리로 바라보며 은지가 콧소리를 흘렸다.
은지가 빤히 바라보자 민망해진 에이슬은 시선을 피해 마당의 흙바닥을 돌아봤다.
잠시 후, 은지가 입을 달싹이던 그때였다.
“야, 이은지!”
“…….”
“잠깐 이리 와 봐.”
휴대폰을 확인하던 은호는 때마침 할 말이 있는지 은지를 불렀다.
은지는 에이슬에게서 눈을 돌리며 반대편에 있는 은호를 쏘아봤다.
“니가 와! 아니, 오빠가 와!”
“저건 꼭 말할 거 다 해 놓고 고치더라, 밥탱아.”
“밥―!”
“장난치지 말고 빨리 와. 내일 무대 때문에 대표님한테 연락 왔어.”
“아……. 대표님이면 가야지.”
‘밥탱이’라는 말에 발끈하려던 은지는 박 대표의 이야기가 나오자 재빠르게 태세를 전환했다.
“다녀올게.”
은지가 에이슬에게 짧게 인사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 쫌 빨리!”
“아! 방금 일어났어! 재촉하지 마! 신발은 찾아야 할 거 아니야! 이 신발아!”
“쫌―!”
욕은 분명 아닌데 왠지 욕 같은 은지의 찰진 발음 때문일까.
은호는 예상치 못한 공격에 발끈했고, 은지는 뻔뻔하게 웃으며 양손에 슬리퍼를 들어 보였다.
“욕 아니었다? 신발. 이거 말이야. 이 신발.”
“…….”
“신, 발.”
다시 한 번 도장 찍듯 은지가 은호를 강렬하게 쏘아보며 말한 그 순간.
“형, 형, 쟤들 둘이 또 싸운다.”
승연은 금방이라도 한판 붙을 것 같은 남매의 불길을 흥미롭게 구경하며 태현을 불렀다.
아침에 이어서 2차전이 발발했다.
“현우 씨 어디 갔냐.”
태현은 푹 한숨을 내쉬며 두 사람을 말려 줄 E-UNG 매니저를 찾았다.
현우는 이미 부르지 않아도 은호와 은지 옆에 다가가 있었다.
현우가 두 사람에게 무어라 속삭이자, 은호와 은지는 갑자기 희게 질리며 고개를 저었다.
“싸우지 마세요.”
“네…….”
“네.”
오오…….
순식간에 제압된 남매를 보며 승연과 태현은 현우에게 진심 어린 감탄을 흘렸다.
* * *
에이슬은 복잡한 감정이 담긴 눈길로 현우에게 혼나고 있는 은호와 은지를 바라봤다.
팬심에 설레며 은호를 바라봤던 그때와는 전혀 다른, 차분하게 가라앉은 눈.
“…….”
에이슬이 짧은 한숨을 내쉬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멀지 않은 곳에서 스태프들과 이야기 중이었던 석현은 인기척을 눈치챈 듯 에이슬을 돌아보며 물었다.
“이슬이, 어디 가?”
“잠깐 볼일 보러요.”
“아아.”
에이슬의 대답에 석현은 알았다는 뜻인지 다시 스태프들과 대화에 집중했다.
에이슬은 시끄러운 마당을 뒤로하고 큰 방에 딸린 화장실로 향했다.
하지만 막상 화장실에 온 에이슬은 변기에 볼일이 있는 건 아니었는지, 변기 뚜껑을 닫은 채 의자처럼 앉았다.
이후 에이슬은 찬 손바닥으로 뜨거운 머리를 식혔다.
“난 그러지 않았어. 그런 적 없어…….”
눈을 뜨자 은지 언니가 바로 앞에 있어서 심장이 터지는 줄 알았다.
팬심이 아닌, 수치스럽고 미쳐 버릴 것만 같은 죄책감 때문에.
“이게 다 그 이상한 꿈 때문이야…….”
에이슬은 손바닥에 얼굴을 파묻은 채 의미 모를 혼잣말을 흘렸다.
“내가 언니를 죽이다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