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매는 비즈니스로 일합니다 (237)
「“방송하는 거 귀찮아요?”」
도진의 목소리가 머릿속에서 메아리친다.
귀찮…….
하, 아니야.
참자.
그때의 도진이 형이 아니니까.
반박하지 말자.
침착해, 이은호.
침착해.
가슴 속으로 참을 인(忍)을 몇 번이나 새긴 건지 모르겠다.
심호흡을 하며 평정을 되찾은 뒤.
나는 조심스럽게 입을 뗐다.
“……그런가요.”
“아, 그게, 아 막 그, 정말 ‘귀찮다’는 그런 의미가 아니라, 저기…….”
도진 형은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그래.
이런 점이 이은지랑 비슷하다는 말이었다.
“단어 선택을 잘못했다는 말이죠?”
“그, 그게…… 네……. 제가 좋게 돌려 말하는 걸 잘 못 해서.”
도진 형을 몰랐다면 이야기를 들었을 때 누가 봐도 시비를 거는 것처럼 보일 법한 이야기다.
실제로도 저 말투 때문에 형이랑 데뷔 초창기 내내, 함께 다닐 때마다 하루가 멀다 하고 싸웠었다.
일할 땐 형이랑 싸우고, 집에 돌아가고 나서는 이은지랑 또 싸우고…….
그런 와중에 일은 잘 안 풀리는 데다, 지금이랑 다르게 대표님은 나한테 ‘시간이 필요한 것 같다’라며 은지한테만 집중하고 있고.
이제는 그때 이야기한 ‘시간’이 어떤 의미인지 알지만, 그땐 그게 서운해서 더 온 시간을 갈아 넣으며 연습에 매진했다.
그래서일까.
그때를 떠올리기만 해도 피곤이 몰려온다.
은호가 한숨을 내쉬자, 도진은 힐끔 눈치를 보다가 조심스럽게 숙이며 말했다.
“미안합니다.”
“미안할 거 없어요. 그래서 형을 부른, 아니. 형님을 부른 거니까.”
은호가 과거 생각에 지끈거리는 머리를 한 손으로 짚으며 말하던 그때.
도진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눈, 입을 동그랗게 만들었다.
그 모습이 꼭 은지가 갸웃거릴 때―얼굴은 다르지만―와 묘하게 겹쳐 보이는 느낌이었다.
덕분에 은호는 또 한 번 꼴 받는 느낌을 쳐 내기 위해 마음을 다스려야 했다.
“형님, 제가 귀찮아 보인다고 생각한 부분이 어디인지 알려 주실 수 있나요.”
“아니, 그, 귀찮다는 게 아니라, 그…….”
“괜찮으니까, 알려만 주세요.”
“아, 네. 그럼 가장 먼저…….”
그렇게 매일 싸웠음에도 불구하고 형을 교체하지 않은 이유는 하나였다.
형은 문제점을 잘 본다.
남들이 콕 집어 ‘이 부분이 문제인 것 같아.’라고 말하기 조심스러운 부분을 조심성 없이 그냥 집어 낸다.
직설적이고, 비유가 없다.
그 점이 마음에 들었다.
기분이 나쁘지 않은 건 아니었다.
문제점을 꼬집히는 걸 누가 좋아할까.
하지만 그럼에도 알아야만 하는 문제점들이 있다.
그것 하나만 잡으면 나머지는 도미노가 쓰러지듯 줄줄이 해결되는 시작점이 될 ‘문제점’.
도미노가 모두 쓰러지면 얇은 선들이 면이 되어 색을 채운다.
그리고 마지막에는 하나의 작품이 완성된다.
나는 마치 그 시작점을 몰라서 애매하게 중간에서부터 쓰러뜨린 모습이었다.
「“은호 씨가 보컬도 그렇고 춤도 나쁘지는 않은데…….”」
「“가수도 나쁘진 않은데, 음, 혹시 배우 쪽은 어때요? 관심 없어요?”」
나쁘지는 않은데.
나쁘지는 않은데.
그걸 해결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면 그건 그냥 나쁜 거 아닌가?
당시의 나는 ‘나쁘지는 않다’라는 이야기를 들을 때면 그렇게 생각했다.
그렇게밖에 생각할 수 없는 상황이기도 했었다.
그래서 난 그 말이 정말 듣기가 싫었다.
「“야, 은호야. 너 혹시 어디 아프냐?”」
「“왜 또 시비야.”」
「“아니, 시비가 아니라, 녹음실만 들어가면 애가 연습실에서랑 다르게 이상한 삑사리? 이걸 뭐라고 부르지. 아무튼 그런 게 들려서.”」
처음엔 기분이 나빴다.
당신이 뭘 안다고.
그렇게 생각했다.
하지만 비전문가임에도 형의 귀와 눈은 정확했다.
아니, 오히려 듣기만 하는 사람이기에 더 멀리서 보고 정확하게 알아챌 수 있었다.
형이 찾아낸 문제들을 고쳤더니, 많은 것들이 달라졌다.
“체파(체인지 파트너)에서는 진심으로 열심히 한 것 같은데, 그건 재밌거든요?”
“네.”
“그런데 다른 예능은 솔직히 열심히 하기 위해 ‘노력’을 한 것 같은…….”
“당연히 노력했죠. 일인데.”
“네. 그런데 그게 화면에 티가 나요.”
“그게 나빠요?”
미간에 나도 모르게 힘이 들어가는 게 느껴졌다.
노력했는데, 그게 좋지 못하다는 이야기는 마냥 듣기 좋은 말이 아니었으니까.
하지만 그래도 들어야만 한다고 생각했다.
이번만큼은 제대로 해내고 싶었다.
E%분들께서 최근 장난처럼 나한테 붙인 금지령이 하나 있다.
‘1인 출연 금지’
이은지를 빼고 예능에 혼자 나간 날.
나는 패널들이 질문을 먼저 던져 주지 않고서야, 리액션이 은지처럼 크지도 않다 보니 카메라를 휘어잡지 못했다.
그때 붙은 별명이었다.
‘같이 쫌 살자’라는 프로그램은 아무래도 ‘고정’ 멤버인 만큼 제대로 해내고 싶었다.
‘노잼 은호’ 타이틀을 탈출하고 싶었다.
그때였다.
도진이 내내 골똘히 고민하더니 입을 열었다.
“나쁘다기보단 재미가 없죠.”
가슴에 비수가 날아와 박힌 기분이 딱 이럴까.
젠장.
이게 만화라면 입가에 핏물이 주륵 흐를 정도의 치명상이었다.
“같이 출연한 은지 씨는 항상 주변을 받아들이고 그걸 즐기는 것 같은데, 그, 은호 씨는…….”
도진은 말하기가 미안한 듯 입을 닫았다.
뒷부분은 듣지 않아도 알고 있었기에 내가 말했다.
“노력하는 게 티가 너무 나서, 눈에 훤히 보여서 재미가 없다는 말이죠?”
“네. 애잔하게 보일 정도로요.”
애잔……하다니.
‘회귀 전이나 이후나…….’
도진 형은 여전히 도진 형이다.
회귀 전 당시 보컬의 문제점을 꼽을 때와 같이 정확했다.
단어 하나하나가 원망스러울 정도로 가슴을 파고들었다.
‘하하, 망할.’
은지는 모든 방송을 마치 놀이터에 놀러 온 아이처럼 모두 건드려 본다.
그리고 익숙해졌다고 판단하면 때때로는 과감하게 나가며 방송을 즐겼다.
그런 이은지를 본받아, 나 또한 모든 방송에서 그렇게 보이려고 노력했다.
예능에서는 어떻게든 패널들 사이에서 말 한마디라도 얹어 보려고 애를 썼고, 참여해야 하는 부분에는 모두 참여했다.
하지만 그 결과는?
대부분 편집.
이유는?
‘재미없어서.’
이은지는 주기적으로 E-FAN에 소식을 업로드한다.
그러면서 우리 E%분들도 나랑 이은지의 출연을 기대하셨었다.
하지만 항상 화면에 잡히는 건 은지뿐, 나는 무뚝뚝하게 있는 장면이 상황과 잘 맞아떨어지면서 반짝 나간 것이 대부분이었다.
그 외에는 전부, 정말 전부 다 이은지랑 같이 투 샷으로 잡히거나 투덕거릴 때.
그 결과, E-UNG는 현재 여러 예능을 참여했음에도 불구하고, 이런 점들 때문인지 홍보 효과를 제대로 받은 건 ‘체인지 파트너’가 유일했다.
생각해 보면, 나도 유일하게 체인지 파트너만 진심으로 즐겼던 예능이기도 했던 것 같다.
‘그땐 어떻게 그렇게 했지?’
은호는 곰곰이 고민하던 그때.
번뜩.
버터가 녹아 자글거리는 프라이팬에 튀기듯 익혀지는 소고기 등심 스테이크가 스쳤다.
‘아, 이거구나.’
유레카다.
이거였다.
당시 온 힘을 다해 가며 프로그램에 뛰어들었던 이유.
우승 시 보상으로 주어지는 그 소고기.
체인지 파트너에서는 마음에 드는 목표물이 있었으나 그 외 예능에서는 있어도 관심이 없는 상품이거나 아무런 목적이 없을 때가 허다했다.
솔직하게 마음이 동하지 않으니 아무리 노력해도 진짜 온 힘을 다해 참여하는 사람들에 비해 의욕이 적을 수밖에…….
그러니 당연히 카메라에 잡힐 수 있을 만큼 리액션이 크게 나오지도 않고, 운이 좋아서 장면이 잡혔다고 해도…….
화면으로 바라봤을 때 도진 형처럼 캐치를 잘하는 시청자분들의 눈에는 훤히 보였을 것이다.
시청자 입장에서 재밌자고 본 프로그램에 기운 빠지게 하는 놈이 있다면 당연히 그리 보기 좋지만은 않겠지.
그리고 그놈이 ‘노력’이라는 걸 하고 있고, 그게 애잔하게 보일 정도라고…….
‘와.’
이건 내가 생각해도 최악이다.
‘같이 쫌 살자’는 예능이다.
가장 중요한 부분이 ‘재미’라는 말.
가장 보이면 안 될 단어가 ‘재미’가 없는 ‘애잔’이 아닐까.
그리고 나는 그 ‘애잔’에 속한다…….
‘웃프다’라는 단어가 있긴 하지만, 거기에도 ‘웃음’이 들어갈 만큼 ‘재미’는 있다.
“그래도, 은지 씨랑, 그, 이런 걸 티키타카라고 하죠? 두 분이 투덕거리는 장면은 재미있었어요.”
“하하…… 하…….”
형은 나름으로 위로라고 꺼낸 말일 텐데, 의도와는 다르게 형은 또 한 번 등 뒤에 비수를 내리꽂았다.
이은지가 없으면 ‘재미’라는 게 없는 사람이라는 소리처럼 들렸다.
이은지는 이런 생각을 하는 나를 볼 때면 ‘성깔머리가 비비 꼬였다’라고 표현했다.
‘하지만 어떡해. 그렇게 들리는걸.’
내가 머리를 쥐어 싸매며 한숨을 내쉬자, 도진 형이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게 눈에 보였다.
한편 거짓말은 안 하는 사람이라는 걸 증명이라도 하듯. 형은 ‘그렇게 심하진 않아요.’ 같은 빈말은 단 한마디조차 꺼내지 않았다.
회귀 전에도 그랬지만 이런 점이 참…….
여러 가지 다 정말 고마운데, 참, 이게…….
‘좀.’
나도 사람인지라…….
은지는 작곡 문제로 스튜디오로 가 있는 상황이라 보답 겸 관리 때문에 내가 먹을 오븐 치킨 한 마리와 형이 회귀 전에 좋아하던 프라이드 치킨 한 마리를 주문했다.
‘식성도 여전하네.’
오븐 치킨 닭가슴살 외에는 모두 형이 흡입하듯 발골을 해 댔다.
“고마워요. 형, 님.”
“그냥 형이라고 해요. 자주 실수하시는데. 하하.”
“네. 형.”
“듣기 훨씬 편하네!”
“하핰.”
“그럼 전 이만 들어가 볼게요.”
“네. 오늘 도와주셔서 감사했습니다.”
“별말씀을요. 치킨 잘 먹고 갑니다!”
배부르게 식사를 끝마친 뒤, 대문 앞에서 짧은 인사를 나눴다.
잘 가라며 보낸 뒤, 늦은 저녁.
난 매트 위에 대(大)자로 뻗어 누운 채 고민했다.
‘나는 노력을 해도 티가 난다…….’
오히려 노력해서 재미가 더 없다고…….
‘흠.’
같이 쫌 살자’에 진심으로 임할 수 있도록 할 수 있는 방법이 없을까.
흥미를 유발할 수 있는 목표를 만들어 보자고 제의라도 해 볼까.
출연 그날까지도 계속 고심하던 부분이었다.
그리고 이후, 남자팀에서 사랑방을 두고 투덕거리던 그때, 떠올랐다.
자본주의식 포인트 제도.
* * *
“포인트…….”
“준비한 부분을 대대적으로 수정해야 할 거예요. 감독님, 그런데 프로그램 콘셉트가 ‘힐링’이라면서요. 이렇게 가면 방향성이 벗어나지 않을까요?”
“딱히, 그래. 콘셉트는 ‘힐링’이지. 출연자들의 힐링이 아니라, 보시는 시청자분들의 ‘힐링’.”
유 PD가 웃으며 김 작가를 바라봤다.
회의는 길어졌다.
회의도 회의였지만, 일단 기존에 없었던 규칙을 정립하고 소품도 제작해야 했기 때문이었다.
날이 저물 때까지도 명확한 이야기가 없는 탓에 그날 촬영은 흐지부지 그렇게 끝이 났다.
그날 저녁.
사랑방 하나를 두고 투덕거리던 남자 멤버들은 그날 하루만 셋과 둘로 나뉘어 자기로 했다.
큰 방에는 서승연, 최시우, 류석현.
작은 사랑방에는 은호와 태현이 잠들었다.
* * *
다음 날 아침.
아직 날이 밝아지는 중인 새벽 6시.
은호는 버릇처럼 일찍이 눈을 뜬 듯 자는 태현을 깨우지 않기 위해 살금살금 옆에 딸린 작은 욕실로 향했다.
반대편 큰 방보다는 작은 곳이었지만, 적어도 쪼그려 앉아서 머리를 감는 정도는 아주 여유롭게 가능한 공간이었다.
‘스댕 다라이 오랜만에 보네.’
은호가 은색 대야를 반가워하며 조용히 먼저 씻기 위해 물을 튼 그때였다.
‘아, 조졌다.’
쏴퐈아아악!
조용히 욕실에 간 게 무색할 정도로 강력한 물줄기가 스댕 다라이(스테인리스 대야)를 시원하게 후려쳤다.
대야에 물이 차오르면서 소리는 자연히 줄어들긴 했지만, 이미 새벽에 큰 소리를 내 버린 건 돌이킬 수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