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매는 비즈니스로 일합니다 (236)
한 방에서 지내기 때문일까.
휴식 시간답게 여유롭게 수다를 떨며 옷을 갈아입고 있는 여자방.
하지만 그쪽과 달리 남자방은 방이 두 개로 나뉜 탓일까.
“큰 방에서 넷도 널찍할 거 같은데, 사랑채는 한 명이 쓰는 걸로 할래요?”
싸움의 시작은 은호가 별생각 없이 툭 던진 말이 원인이었다.
큰 방 옆에 마루로 이어진 사랑채 방은 비록 그 크기는 작으나 욕실이 가까웠다.
큰 방은 크기는 크지만 그만큼 더 많은 인원이 함께해야 한다.
사실 남자 멤버들이 총 다섯이라 셋과 둘로 나뉘면 넉넉하리만큼 충분하다.
하지만 혼자만의 구역을 원하는 건 본능인지 남자방에서는 사랑채 쟁탈전이 펼쳐졌다.
“가위, 바위, 보!”
“가위, 가위, 보!”
“가가보!”
“가─보!”
막내인 최시우는 형님들에게 벗어날 유일한 탈출구를 놓치고 싶지 않았고, 유일한 40대인 석현은 동생들에게서 벗어난 편안한 숙면을 원했다.
편안한 숙면은 30대 후반인 최태현 역시 진심이었다.
그렇게 예상치 못한 태현까지 진심으로 참여하면서 제대로 불이 붙었다.
정신없는 와중에 서승연은 혼자 방을 쓰는 건 관심 없지만, 그저 이 쟁탈전이 재미있어 보여서 참여하기로 했다.
방을 혼자 쓰는 것도, 쟁탈전도 관심이 없는 은호만이 이 모습을 황당하게 바라보고 있을 뿐이었다.
처음엔 가위바위보로 승자를 나눌 생각이었는지, 다들 열심히 했다.
‘이걸, ‘잘 맞다’라고 해야 하나…….’
열 번 이상 ‘가위, 바위, 보’가 모두 나와 무승부가 되면서 결정이 나질 않았다.
“둘, 둘 나눠서 정하죠. 끝이 안 나는데.”
태현이 제안했지만, 왠지 불만이 있어 보이는 시우.
하지만 선배인지라 차마 쉽게 입을 못 여는 것 같은데, 그때였다.
“에이, 형. 그러면 재미가 없지.”
눈치 보는 시우를 대신하듯 승연이 태현의 의견을 막아섰다.
“왜, 괜찮은 것 같은데.”
“저는 스, 승연 선배님 말씀이 맞는 것 같아요.”
류석현은 태현의 손을 들었지만, 시우가 그런 류석현을 막아섰다.
‘오. 뭐야, 팝콘 각?’
본래 촬영은 편안하게 옷을 갈아입고 난 뒤, 토크 형식의 뒤풀이를 진행할 예정이었다.
하지만 이런 열띤 상황에서 단순 토크가 과연 가능할까.
‘가능하겠지.’
눈앞의 사람 중 시우를 제외한 다른 사람들은 프로였다.
그것도 탑급의.
은호는 잠시 고민했다.
은호가 팔짱을 낀 채 고민하는 그동안 뒤는 다른 의미로 난리가 따로 없었다.
“아니, 팔씨름으로 대결하자니까요?”
“삼촌, 자신 없어요?”
“아니! 너희는 노인 공경도 모르냐!”
“언제는 나이로 차별하지 말라면서요!”
“어, 어쨌든, 팔씨름은 안 해. 너희도 어차피 질걸.”
“안 지거든요.”
자존심에 그냥 하겠다고도 할 수 있었지만, 류석현은 힐끔 최태현을 보며 고개를 저었다.
솔직히, 함께 솥을 씻지 않았더라면 ‘그래! 하자!’ 곧바로 외쳤을 것이다.
하지만 솥을 씻기 전부터 이미 알아 버렸다.
류석현은 설거지를 위해 솥을 들고 나올 때, 예상치 못한 묵직한 솥의 무게에 허리에 빨간불이 켜졌었다.
석현은 다급하게 태현을 불렀다.
「“태현 씨!”」
「“아.”」
태현은 석현의 위급함을 눈치챈 듯 곧장 달려와 무거운 솥을 받아 들었다.
「“괜찮으십니까?”」
「“……예. 안 무거워요?”」
「“괜찮습니다.”」
석현이 양손으로 들던 솥을 태현은 한 손으로 번쩍 들어 보이며 괜찮음을 증명했다.
“안 지기는, 무슨. 시우, 넌 그걸 못 봐서 그래.”
자존심에 OK를 할 수도 있었지만, 그때를 떠올리니 차마 ‘그래!’라는 말이 쉬이 나오질 않았다.
승자가 눈에 뻔히 보이는 승부였으니까.
달칵.
그때였다.
네 사람이 승자를 나누기 위해 투덕거리고 있을 때, 은호가 갑자기 방을 나갔다.
“……?”
“은호, 갑자기 왜 나갔지?”
“혹시 따돌림 당하고 있다고 느끼신 건…….”
네 사람은 서로 당황한 눈빛을 오가며 은호가 나간 이유를 고민했다.
* * *
“PD님!”
방을 나온 은호는 곧장 유 PD를 찾았다.
“……은호 씨?”
뒤늦은 식사 중이었는지, 유 PD는 입에 넣은 수제비를 급하게 삼킨 후 답했다.
“식사 중이신데 죄송합니다.”
“아니에요. 아니에요. 그런데 왜, 무슨 일 있었어요?”
“아, 그게 아니라 저희 다음 일정이 토크쇼죠”
“그렇죠.”
“그거 관련해서 의견을 여쭤보려고…….”
유 PD는 말해 보라는 듯 자리를 고쳐 앉았다.
은호는 유 PD에게 현재 남자 방에서 일어난 방 쟁탈전에 관한 이야기를 전했다.
“오호…….”
유 PD 역시 이후 토크쇼에 불만이 있었던 모양인지, 유 PD는 지금 일어난 일을 굉장히 반겼다.
초기라 그냥 편하게 주무시라고 일단 뒀던 것뿐이었는데, 도리어 출연진 측에서 콘텐츠를 원하니 반가울 수밖에…….
하지만 이후 토크쇼를 방 쟁탈전으로 진행해 버린다면 단점이 하나 있었다.
“지금 자리를 잡은 여자 방 쪽에서는 흥미가 떨어지니까…….”
때마침 은호가 그 문제점에 관한 이야기를 꺼냈다.
“그래서 그런데, 이건 어떨까요?”
“…….”
유 PD는 은호의 의견에 큰 관심을 보였다.
* * *
거래
현재 ‘같이 쫌 살자’ 멤버들이 가지고 있는 것은 햄 통조림뿐,
그게 있다고는 하나, 오늘처럼 수제비에다가 햄 통조림을 넣어 버릴 수는 없는 일.
하나뿐인 화로는 수제비를 끓이느라 다른 요리를 할 수 없는 상황.
솔직한 마음은 햄 통조림도 같이 까서 구워 먹고 싶었지만, 구울 자리가 없었다.
국물이 있는 류는 물을 끓이는 시간이 필요한 만큼 시간도 오래 걸리고, 끝나고 난 다음 무거운 솥을 옮기는 것도 일이었다.
그래서 스태프분들은 따로 챙겨 온 다른 냄비에 수제비를 퍼내, 버너를 이용해서 다시 데우고 식사를 했다.
그게 부러웠고, 그래서 제안했다.
“아무래도 시골이다 보니 저희가 얻기 힘든 것들이 있잖아요. 그리고 스태프분들께서는 현재 가지고 계시고요.”
스태프들에게는 굳이 불을 피우지 않아도 요리를 할 수 있는 버너가 있다.
가스도 있고, 라면도 있다.
“하지만 그렇게 되면 프로그램의 취지가 조금 흐려지지 않을까요?”
“뭐 시골에서 비싼 TV를 보고 장독대 대신 김치 냉장고를 쓴다고 갑자기 도시 생활이 되는 건 아니잖아요.”
“그건, 그렇죠.”
“조금 더 편해지는 것이고, 그 과정에서 또 새로운 이야기도 나올 거고요.”
“흠…….”
은호는 생각에 잠긴 유 PD에게 웃으며 거래를 제안했다.
“포인트를 만드는 건 어떨까요.”
“포인트라…….”
“일단 원하는 사람이 많은 방부터 시작하는 거죠.”
“매물?”
“네. 각 방에 가격을 정하고, PD님이 판매를 하시면 저희는 미션을 통해 얻은 포인트로 구매하는 식?”
“그렇게 되면 지금 여자팀은 사용하기로 예정된 지금 방을 구매하게 하고, 남자팀은 방이 두 개니까. 각 방에 비용을 매겨서…….”
유 PD가 곰곰이 고민하는 그때, 은호가 고개를 저었다.
감독의 말을 따를 경우, 여자팀에서는 고를 수 있는 방이 한정된다는 점이 어떻게 보자면 불편할 수 있는 부분이었다.
여자팀 중에서도 혼자서 방을 사용하고 싶은 사람이 있을 수 있을 테니까.
현재 큰 방을 기준으로 남자팀, 여자팀 방으로 나눈 이유는 단순했다.
화장실.
남자들은 공간을 얻은 대신 작은 화장실을, 여자들은 공간이 부족한 대신 큰 화장실을 얻었다.
“기왕이면 평등하게 시작하는 게 좋지 않을까요? 못 사면 야외 취침이라던가.”
“야외 취침, 하하.”
“어차피 일상을 놓고 불편함을 감수하면서 시골 생활을 촬영하는 만큼, 불편함을 콘텐츠로 이용하면 좋을 것 같아서요.”
“흠, 나쁘지 않네요. 김 작가님!”
은호의 제안에 생각이 많아진 듯, 감독은 곰곰이 고민하다 메인 작가를 불러왔다.
이후에는 PD의 결정에 맡기려는 듯, 은호는 다시 방으로 돌아가려고 했다.
그때, 유 PD가 은호를 멈춰 세웠다.
“은호 씨.”
“네?”
“좋은 아이디어, 고마워요.”
은호는 유 PD에게 인사 대신 미소로 답을 대신했다.
이런 제안을 한 이유는 방 쟁탈전이 재미있어 보인 것도 있었지만, 은호 개인적으로는 다른 이유도 컸다.
마냥 평온하게 밥만 해 먹는 시골 생활도 좋긴 하지만…….
‘아무래도 좀…….’
이은지는 식탐을 터뜨리고 그만큼 운동한다.
반면, 자신은 그만큼 운동하고 싶지 않아서 식탐을 버렸다.
그런 이은지와 나는 다르다.
이은지는 흔히 이걸 ‘귀차니즘’이라고 부른다.
늘 그래 왔듯 반박하고 싶었지만, 얼마 전에 있었던 일 때문에 이젠 그러지도 못하게 됐다.
이번 예능 출연 며칠 전.
팬분들이 흔히 말씀하시는 ‘은호는 예능파가 아니다’라는 그 의견을 어떻게 뒤집어 볼 심산으로, 난 내가 출연했던 예능들을 시청해 봤다.
그 자리엔 회귀 전 내 단점을 기가 막히게 잘 꼽아 내던 도진 형도 함께였다.
* * *
도진 형의 단점은 지루한 것을 견디기 힘들어 한다.
하지만 이게 일이 되었을 땐, 아무리 지루한 것이라도 집중한다.
그리고 거기서 장단점을 귀신같이 뽑아 낸다.
「“야, 은호야. 넌 다 좋은데 왜 자꾸 노래할 때만 이상한 버릇 같은 게 나오냐?”」
「“버릇?”」
「“어. 뭔가 애가 뻣뻣해. 여기가.”」
당시 나는 뻗대는 성향이 있었다.
전문가가 문제점을 지적해도 괜한 아집을 부리는, 그래.
인정한다.
성격이 나쁘다.
나쁜 걸 넘어서 최악이었다.
그 아집 때문에 이하늘 선생님의 보컬 수업 당시에도 잡히지 않았던 버릇이다.
그걸 잡을 수 있게 도와줬던 게 도진 형이었다.
「“그게 뭐.”」
「“너 그 버릇만 나오면 듣기에 X나 구려진다고, 노래가.”」
전문가는 고급스러운 단어로 문제점을 표현한다면, 형은 그냥 들은 대로 말했다.
형은 언어는 이은지와 비슷했다.
그래서.
더 나를 열 받게 만들었다.
「“그래? 그럼 그 구리다는 버릇이 정확히 어디서 나왔는지 꼽아 봐.”」
당시 난 신경질적으로 형에게 가사지를 던졌다.
형은 가뿐히 가사지를 받아 들더니 정말 술술 체크를 해 나가기 시작했다.
형이 표시한 부분을 그대로 불러 보면서 나 역시 그제야 ‘어라?’ 하는 느낌을 받았다.
그때서야 나는 하늘 선생님이 꼽았던 문제점들을 인정했다.
못난 아집을 그제야 버렸다는 소리다.
그렇게 인정하고, 신경 쓰고, 결과적으로 문제점을 고쳐 내자, 날 단 한 번도 봐 주지 않던 대표님이 ‘은호야, 너 보컬이 갑자기 깔끔해졌다?’라며 차이를 알아챘다.
이 자리에 형을 부른 건 그래서였다.
나는 달라졌지만, 도진 형은 그대로일 것 같아서.
형은 내 부탁에 흔쾌히 내가 출연한 예능들을 함께 시청했다.
예능 한 편이 족히 한 시간에 가까운 만큼, 그 시간 또한 상당했다.
“있잖아요.”
“…….”
체인지 파트너가 끝나고 다른 예능을 시청한 그때 도진 형이 드디어 입을 열었다.
난 조금 긴장한 마음으로 도진 형을 바라봤다.
“그, 이런 말 하기 조금 그렇긴 한데…….”
“괜찮아요. 뭐든, 형님이 생각하신 모든 점을 말씀해 주세요.”
“음…….”
도진 형은 영상을 멈춘 뒤, 미안한 감정을 얼굴에 드러내며 말을 이었다.
“은호 씨, 그, 있잖아요. 혹시…….”
“…….”
“방송하는 거 귀찮아요?”
“컥…….”
예상은 했는데, 이렇게 직구일 줄이야.
순간 가슴 깊은 곳에서 울컥하는 본능적인 감정이 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