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매는 비즈니스로 일합니다 (235)
집은 깨끗했지만 앞으로 지내며 촬영할 공간인 만큼 짐 정리를 하며 잠시 청소하는 시간을 가졌다.
서로에게 질문해야만 저녁 재료를 받을 수 있는 미션을 받았기 때문인지 다들 최대한 많은 질문을 하기 위해 노력했다.
그 덕분일까.
저녁 시간이 다 되었을 땐 어색함이라는 벽은 어느 정도 허물어진 상태였다.
“첫날이니까. 오늘은 이런 미션을 통해 저희 측에서 재료를 준비해 드렸습니다만, 내일은 여러분들이 직접 준비해서 드셔야 합니다?”
이어서 멤버들의 앞에는 재료 바구니가 놓였다.
안에는 밀가루 반죽과 애호박, 멸치 액젓, 다진 마늘, 당근, 감자가 들어 있었다.
“자, 이제 식사를 만들어 드시면 됩니다.”
‘이게 무슨 소리야?’라는 멤버들의 마음의 소리가 표정으로 드러났다.
‘이걸로 뭘 해 먹어!’라는 생각이 절로 들 정도로 기본적인 재료들이었다.
‘흠.’
은호는 재료를 보며 잠시 고민했다.
“이래서 편한 옷으로 입고 오라고 했네.”
“정말로…….”
류석현이 투덜거리자 서승연도 한마디를 더했다.
“일단 뭐든 해 보죠.”
그렇게 시작됐다.
그로부터 10분 뒤.
은호는 웃으며 풍경을 바라봤다.
‘다들 투덜거리시더니…….’
하기 전에 투덜거린 것치고는 할 일을 정해 주자 다들 불만 하나 없이 일하기 시작했다.
은호는 서승연과 함께 불 팀으로 배치됐다.
서승연은 마당에 놓인 아궁이를 난감하다는 듯 바라봤다.
“은호야.”
“네.”
“불 피워 본 적 있어?”
“네. 어릴 때 제가 자주 땠어요.”
불을 직접 피워야 한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부터였다.
은호는 본능에 새겨진 행동으로 이곳저곳에서 종이와 같이 잘 탈 법한 마른 지푸라기를 모아 왔다.
“형, 불은 제가 피울 테니까. 장작으로 쓸 나뭇가지랑 저기 뒤편에 장작 쌓아 둔 거 있던데 적당히 가지고 와 주세요.”
“오, 믿음직하네. 금방 가져올게!”
은호의 부탁에 서승연은 장작을 가지러 뒤뜰로 향했다.
그 외 최태현과 류석현은 솥을 닦는 일에 열을 쏟는 중이었고, 은지, 지키는 부족한 재료를 보강하기 위해 소쿠리를 들고 밭으로 나갔다.
최시우와 에이슬은 김치나 다른 반찬 얻어 보기 위해 근처―근처라고는 하나 걸어서 20분 이상 떨어진 거리― 집들로 향했다.
은호는 여유롭게 불을 땠다.
승연이 은호가 불 피우는 모습을 신기하게 바라보던 그때였다.
“오, 왔다.”
솥을 닦고 돌아온 최태현과 류석현이 돌아왔다.
“형, 이리 와 봐! 은호 불 엄청 잘 피워!”
“은호가?”
“……?”
류석현과 최태현이 도착했을 때.
은호는 때마침 불을 강하지도, 약하지도 않은 적당한 정도로 피워 올린 상태였다.
“뭐야. 은호 아궁이나 화로 써 본 적 있었어?”
“네. 어릴 때요…….”
보는 눈이 많아서 그런가.
조금 민망했다.
솥의 물기를 다 닦고 올린 덕분인지 다행히 고생해서 피운 불이 꺼지거나 하는 일은 없었다.
물을 올린 후, 물이 끓는 그동안에는 재료를 준비하기로 했다.
“형, 이거 당근이랑 감자 좀 씻어와 주세요.”
“응.”
“형님은 석현 선배랑 태현 형 오면 같이 껍질 좀 까 주세요.”
“응.”
최태현과 류석현이 씻어 온 당근과 감자를 서승연에게 까 달라며 부탁했다.
그나저나 언제부터였을까.
‘나 왜…….’
은호는 조금 당혹스러웠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형들에게 명령하는 역할을 맡고 있었으니까.
“다 깠어!”
“잘 깠지.”
“예, 말끔하네요.”
류석현과 최태현, 서승연이 자랑스럽게 자신들의 작품을 내어 보이며 말했다.
멤버들을 지켜보던 유 PD는 띠동갑도 넘을 정도로 어린 은호에게 칭찬을 원하는 중년들이 재미있는지 웃으며 상황을 주시 중이었다.
“오…….”
그때였다.
솔직히 은호가 재료를 썰 때만 해도 어설픈 칼질로 인해 실력에 대한 믿음은 제로에 가까웠다.
하지만 물이 끓기 시작하면서부터 은호의 진가가 발휘됐다.
은호는 자주 해 본 일인 듯 준비된 재료를 투하했다.
‘색이 좀, 허전한데.’
그때였다.
“우리 왔어!”
“왔어요!”
은호는 은지보다 은지의 손에 들린 재료를 보며 눈을 빛냈다.
“야, 이은지.”
“엉?”
“니 손에 그거 퍼뜩 씻어서 가져 와.”
“나한테만 시키는 쫌생이 우럭 닮은…….”
은지는 투덜거리면서도 얌전히 대파와 정구지(부추)를 씻어서 은호에게 진상했다.
국물에 진한 초록색이 더해지자 솥 안의 육수는 상당히 괜찮은 빛깔을 띠었다.
“마늘은 적당히…….”
은호가 중얼거리며 시판 다진 마늘 통 안에 숟가락을 넣었다.
‘적당히’라는 말과 달리, 은호가 숟가락을 꺼냈을 때였다.
“핰핰핰핰핰!!!”
은호는 단 한 숟가락 만에 통 안의 다진 마늘을 거의 다 퍼내 버렸다.
은호의 그런 모습을 보며 은지가 자지러지게 웃었다.
은호도 일부러 웃으라며 한 말이었는지 장난기 가득한 얼굴로 물었다.
“뭐, 틀려? 맞잖아. 적당히.”
“아, 맞지. 엌, ‘적당’하지. 핰핰핰핰.”
말은 장난이긴 했지만, 마늘 한 통을 다 때려 넣는 건 장난이 아니었다.
가마솥 한가득인지라 이만큼을 넣어도 향만 조금 날 정도일 테니까.
은호는 마늘 한 통을 다 털어 넣은 후 손을 씻고 돌아와선 밀가루 반죽을 능숙하게 뜯어 냈다.
다들 은호를 구경하는 한편.
은지는 매일 보는 풍경인지라 낯선 하늘을 메울 것 같은 별 구경에 푹 빠졌다.
그때, 서승연이 은지에게 물었다.
“은지야.”
“넹.”
“집에서 은호가 요리 자주 하나 봐?”
“넹.”
“은호가 동생한테 되게 자상한 오빠네.”
은지는 그제야 하늘을 보던 눈을 승연에게 옮겼다.
“……?”
“하하하하하. 은지 표정 봐.”
은지는 경악하고 있었다.
질겁하는 은지의 표정을 마주한 승연은 자지러지게 웃음을 터뜨렸다.
한쪽에서 깔깔거리는 동안, 석현은 걱정스럽게 문 쪽을 바라봤다.
“이슬이랑 시우는 왜 이렇게 안 오지.”
석현이 걱정 섞인 한숨을 흘리던 그때였다.
“왔어요, 왔어요! 반찬이 왔어요!”
“김치랑 반찬도 이것저것 받아 왔어요!”
시우가 자랑스럽게 김치 통을 들어 보였다.
에이슬은 앞서 말했던 그 다른 반찬들인지, 작은 통 두 개를 들어 보이며 웃었다.
“둘 다 고생했어.”
같은 회사 가족인 류석현이 두 사람을 토닥이며 말했다.
그때, 에이슬은 류석현은 보이지도 않는 듯 입을 틀어막으며 한 곳만 주시했다.
“와! 와!!! 헉.”
팬심이 섞여 진심으로 터져 나온 탄성이었다.
에이슬의 시선이 향한 곳은 은호였다.
“설마, 오늘 선배님이 요리하시는 거예요? 저 오늘 은호 선배님이 해 주신 밥 먹는 거예요? 어떡해, 나 심장 떨려!”
뒤에서 소곤거리던 에이슬의 호들갑이 들린 듯, 은호는 액젓으로 간을 맞추다 흠칫 어깨를 떨었다.
“완성! 퍼내게 그릇 좀 주세요!”
스태프들도 같이 먹을 수 있을 만큼 넉넉하게 하느라 수제비가 솥 한가득 푸짐하게 들어찼다.
“잘 먹겠습니다!”
“고생했다, 은호야.”
“고마워, 은호 씨.”
멤버들의 인사에 은호는 웃으며 화답했다.
“맛있게 드세요.”
“잘 먹을게.”
“오냐.”
은지의 인사엔 은호는 마치 언제 웃었냐는 듯 무뚝뚝하게 답했다.
“맛은 어때요?”
혼자 간을 봤을 땐 딱이었다.
하지만 혹여나 자신한테만 간이 맞았을까 봐 걱정됐는지, 은호는 다들 한 번씩 한 숟가락씩 뜨고 나서야 조심스럽게 물었다.
먼저 입을 연 건 은호의 요리가 가장 익숙했던 은지였다.
“괜찮네.”
은지의 한마디에 여럿의 눈동자가 커졌다.
“은지야, 무슨 말이야, ‘괜찮다’라니!”
“예?”
“괜찮은 수준이 아니지!”
“맞아.”
“엥?”
쏟아지는 질책에 대역 죄인이 된 은지는 당황스럽게 주변을 돌아봤다.
그때, 승연이 감동한 듯 수제비 그릇을 바라보며 말했다.
“은호야, 나 진짜 웬만한 맛집 다 꿰고 있는데, 쩔어! 최고야! 완전 그 맛집들급이야.”
승연의 의견에 공감한 듯 태현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더했다.
“이런 실력이니까 우리 집 놀러 왔을 때 주방 쓰고 싶다던가 그런 말 했구나.”
“아.”
은호는 문득 태현의 집에 놀러 갔던 그때를 떠올리며 웃었다.
“형 집, 주방 멋있잖아요. 거기 있으면 쉐프 같고.”
“야, 이미 미각은 쉐프인 녀석이.”
서승연이 능청을 떨자, 은호는 과한 칭찬이 민망한지 못 들은 척 고개를 돌렸다.
그런 와중에 눈길이 닿은 조용히 그릇에 머리만 파묻고 있는 세 사람.
“괜찮아요?”
은호가 조심스럽게 묻자, 류석현은 순식간에 후루룩거리며 국물을 원샷하더니 힘을 실어 엄지를 추켜세웠다.
“은호야.”
“네.”
“너 나랑 장사 안 할래?”
“네?”
하하하핰.
처음에 무슨 말인지 못 알아들었다가 이해하면서 터졌다.
“선배님, 근데 정말로 삼촌 하는 말이 빈말이 아니라, 진짜! 최고예요!”
“맞아. 맞아.”
시우의 감탄에 에이슬 또한 감격에 겨운 듯 울컥거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엄청 맛있어. 최고야, 어떡해…….”
“정말로 재료도 부족했는데, 어떻게 이렇게…….”
“그건 수제비라…….”
시우의 감탄 섞인 말에 은호가 별거 아니라는 듯 웃으며 답했다.
은호는 마지막 남은 멤버를 돌아봤다.
지키는 내내 조용했다.
지키는 외국에서 온 탓에 다른 사람들과 다를 수도 있었다.
애초에 외국인이 아니라 같은 한국인이라도 김치만 놓고도 밥 먹는 사람과 김치를 싫어하는 사람도 있으니까, 수제비 역시 그럴 수 있다고 생각했다.
아니나 다를까.
지키는 조용히 한술씩 뜨긴 했지만, 다른 사람들보다 속도가 느렸다.
아쉬운 점이 있는 듯한 분위기인데.
‘아!’
그때, 은호는 잊었던 기억이 번쩍 떠올랐다.
지키가 식사를 할 때면 절대 빼놓지 않고 함께 먹을 정도로 좋아하는 것.
“지키, 아까 따 왔던 매운 고추 드릴까요?”
“……!”
지키는 어떻게 알았냐는 듯 동그랗게 뜬 눈으로 은호를 돌아봤다.
회귀 이후인 지금 시간에서는 첫 만남인데, 너무 태연하게 말해 버린 게 문제였다.
은호가 인식하고 당황하던 그때, 마침 타이밍 좋게 류석현이 일어나며 말했다.
“수제비에 고추 썰어 넣고 먹으면 칼칼하니 맛있지. 내가 가져올게.”
석현이 끼어들어 준 덕분에 은호는 가슴을 쓸어내리며 평정심을 되찾았다.
이후에는 괜히 입 한 번 더 열었다가 또다시 난감한 상황이 생길까.
은호는 도망치듯 제 앞에 놓인 수제비에 집중했다.
‘같이 쫌 살자’ 멤버들이 식사를 마친 뒤, 많이 한 만큼 남은 수제비는 스태프들이 스태프용 냄비에 덜어서 데워 먹었다.
이후 반응은 멤버들과 찍어낸 것처럼 같았고, 칭찬과 감탄이 이어졌다.
“여러분들은 편한 옷으로 갈아입고 쉬고 계세요.”
스태프들이 식사하는 그동안 멤버들은 PD의 부탁대로 집 안으로 들어갔다.
창석의 고향 집은 넓은 대청마루를 두고 양쪽으로 큰 방이 있다.
대청마루를 바라보는 방향으로 오른편 큰 방을 지나면 그 옆에는 좁은 마루가 있고, 좁은 마루를 넘으면 또 사랑채라 불리는 작은 방이 있다.
거기엔 고즈넉한 한옥과는 어쩐지 어울리지 않는 것 같은 매우 깔끔한 양변기가 설치된 고급스러운 작은 화장실이 있었다.
반대편 큰 방 역시도 너머로 가면 과거에 부엌으로 쓰였을 것 같은 상당한 공간이 나온다.
현재는 그 공간 또한 고급스러운 욕실이 되어 있었다.
대신 사랑채 쪽과 비교하자면 그 넓이가 대략 세 배 이상 차이가 날 정도로 넓었다.
좋은 욕실과 큰 방 방향은 은지를 포함한 여자 멤버들이, 큰 방에 사랑채와 작은 욕실이 있는 방향은 은호를 포함한 남자 멤버들이 사용하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