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남매는 비즈니스로 일합니다-233화 (233/309)

남매는 비즈니스로 일합니다 (233)

은호의 회귀 전.

지키는 당시 미국에서도 여러 레이블에서 제안이 들어올 정도로 인지도가 괜찮은 가수였다.

함께 작업한 유명 가수는 물론.

본래 살던 곳이 미국이기에 당연히 그곳에서 활동을 이어 가는 편이 좋았다.

하지만 지키는 어떤 이유에서인지 미국에서의 활동을 원하지 않았다.

그녀의 한국인 어머니조차 왜 굳이 이곳에서 좋은 기회를 얻었음에도 데뷔하지 않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그녀가 동생에 대한 이야기를 하기 전까지는 그랬다.

* * *

지키의 본명은 지나 앨런.

지나에게는 제키라는 3살 어린 남동생이 하나 있었다.

제키 앨런.

우애 좋은 남매는 사랑하는 어머니의 나라인 한국에 관심이 많았다.

그 관심은 자연히 K-POP으로도 옮겨 갔고, 당시 남매는 가장 화제를 모으던 톡신의 팬이었다.

남매는 이후 어머니와 함께할 한국 여행의 꿈을 키워 갔다.

하지만 꿈이 이뤄지는 일은 안타깝게도 없었다.

지나의 동생, 제키.

그는 태어날 때부터 희귀한 병을 가지고 태어났다.

처음엔 누구도 몰랐다.

갑작스럽게 손가락부터 시작해서 손목, 팔, 몸의 기능이 순서대로 삐걱거리면서 알게 된 병이었다.

앨런 집안 사정은 그리 나쁜 편은 아니라는 게 불행 중 다행이었다.

그러던 2010년 10월.

낮에는 따뜻하지만, 아침저녁으로는 약간 쌀쌀한 정도의 그런 날이었다.

제키는 이름도 모르는 온갖 기계들을 몸에 단 채 누워 있었다.

씁쓸하지만, 그게 평소와 다름없는 모습이었다.

다만, 이날은 제키는 컨디션이 좋은지 조잘거리며 많은 이야기를 나눴다.

“지나, 이 라디오 있잖아.”

“응?”

제키가 손바닥만 한 작은 라디오를 들어 보이며 말했다.

TV를 보는 게 눈과 뇌에 무리를 줄 수 있다는 의사의 조언으로 인해 라디오는 당시 제키에게 세상과 소통할 수 있는 유일한 창구였다.

그래도 제키는 괜찮았다.

라디오는 MP3 기능도 있어서 언제든 톡신의 노래도 들을 수 있었고, 지나도 자주 찾아오곤 했었으니까.

하지만 그런 제키에게도 한국 여행이 아닌 다른, ‘작은’ 바람은 있었다.

“지나, 난 네가 만든 곡이 여기서 들렸으면 좋겠어.”

제키가 작은 라디오를 들어 보이며 장난스럽게 웃었다.

지나는 픽 한숨 섞인 웃음을 흘리며 말했다.

“하하, 제키, 그렇지만, 난 가수가 아닌걸.”

“아니야. 지나, 넌 할 수 있잖아. 그것도…….”

“그것도?”

“한국에서!”

“한국에서?”

“응!”

제키의 확신하는 듯한 어투에, 지나는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지나는 가수가 되기 전, 무명의 작곡가로 활동 중이었다.

종종 가이드가 듣기 좋다며 작업자들에게 가수로서의 제안을 받기도 했지만, 지나는 애초에 가수에 그다지 관심이 없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말했다.

“맞아. 할 수 있지.”

“응. 넌 할 수 있어.”

“내가 가수가 되면 톡신이, 그래! G-Chan(지예찬)이 내 노래에 피쳐링하는 거야.”

“TAE(최태현)가 랩도 하고.”

“맞아. 그리고 우리는 한국에 있는 방송에 출연하는 거지.”

“지나, 넌 상도 받고.”

“상도 받아? 하하. 그럼 내가 너한테 고맙다고, 네가 있어서 이 자리에 있을 수 있었다고 수상 소감 말해 줄게.”

“‘꼭’이야. 하하.”

밖을 나가지 못하는 제키에게 상상으로 세상을 보여 주기 위한, 이건 일종의 엘런 남매의 놀이 같은 것이었다.

하지만 놀이는 그날이 끝이었다.

‘가수’라는 키워드 하나로 조잘거리던 그날.

그 시간.

헤어짐은 예고 없이 다가왔고, 그게 마지막이었다.

하루도 채 넘기지 못했다.

약도, 치료법도 없는, 나빠질 뿐이기만 한 병과의 싸움.

아무리 돈을 쏟아부어도 그를 빼앗기는 것은 차마 막을 수 없었다.

제키가 떠나고 3년이라는 시간이 흐른 뒤.

어느 정도 상처를 이겨 냈을 때, 지나는 유명 가수의 피쳐링에 참여했다.

계기는 오롯이 제키 때문이었다.

제키가 라디오에서 나왔으면 좋겠다고 했으니까.

유언이라고 생각했고, 그래서 이뤄 주고 싶었다.

그 말도 안 되는 말들을.

지나는 어릴 적 같은 동네에서 지냈던 가수이자 프로듀서인 지인을 찾았다.

지인과 만났던 당시엔 그는 그녀와 같은 무명이었다.

하지만 현재 그는 빌보드 차트 10위권에 드는 유명 가수였다.

거절할 생각이었다면 언제든 지나를 쳐 낼 힘이 있는 사람이었다.

하지만 그는 지나의 노래하고 싶다는 제안을 굉장히 반기며, 도리어 자신이 현재 작업 중인 곡에 피쳐링을 제안했다.

그렇게 녹음을 성공적으로 마쳤을 때.

그는 지나와 함께 완성한 곡이 마음에 들었는지, 뛸 듯이 기뻐하며 외쳤다.

“드디어 내가 그토록 바랐던 지나 앨런의 데뷔야!”

지인의 외침에 지나는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아니, 가수일 땐 ‘지키’라고 불러 줘.”

“지키?”

“응. 제키가 아니었다면, 내가 가수가 될 일은 없었을 테니까.”

그렇게 비록 피쳐링이었지만 가수로서의 ‘지키’가 세상에 나왔다.

몇 개월 뒤, 지인의 곡이 발표된 이후.

라디오 방송이 결정된 날.

지나는 제키가 생전 항상 가지고 있던 라디오를 방송 중인 주파수에 맞췄다.

「“지나, 난 네가 만든 곡이 여기서 들렸으면 좋겠어.”」

제키가 처음으로 했던 말을 지켰다.

“들리니, 제키. 너랑 함께 시작한 노래야.”

꼭 제키가 빌어 주는 것처럼 세상의 반응은 굉장히 좋았다.

이후로도 그랬다.

많은 레이블에서 제안이 들어왔었다.

하지만 지키는 몇 년 동안 제안을 거절하며 우연히 인터뷰가 들어왔을 때, 자신은 한국에서의 활동을 원한다는 이야기를 꺼냈다.

그런 그녀에게 ‘별종’이라는 말이 붙기도 했지만, 지키는 상관하지 않았다.

자신은 성공보다 동생과의 약속을 지키는 것이 우선이었으니까.

그리고 마침 그런 지키에게 DI 뮤직이 연락을 보냈다.

지키는 미국에서도 눈독을 크게 들이는 만큼, DI 뮤직은 극‘을’의 위치에서 넙죽 몸을 숙였다.

숙이는 DI 뮤직에게 지키는 단 한 가지 계약 조건만 제시했다.

톡신과 곡 작업을 원한다고.

DI 뮤직은 일단 승낙했다.

지키는 줄곧 디지털 싱글로 활동을 계속 이어 나가면서 몸값이 꾸준히 상승 중이었기에 더 늦기 전에 어떻게든 그녀를 붙잡기 위해 DI 뮤직이 던진 수였다.

하지만 예상치 못한 문제가 있었다.

그때 당시 톡신은 ‘G-MISIC’이라는 지예찬이 대표로 있던 회사에 소속되어 있었다.

그리고 예찬은 당시 멤버들의 휴식기라며 DI 뮤직의 제안을 걷어찼다.

온갖 이유를 대며 몇 년을 거절, 거절, 또 거절을 이어 갔다.

돈으로도 넘어오지 않는 상대였기에 DI 뮤직의 입장에서는 여긴 귀찮고 까다로운 상대가 따로 없었다.

하지만 계약은 했고, 지키는 홀로 활동을 해내고 있었기에…….

DI 뮤직은 다른 방법을 찾았다.

그러다 떠올린 카드는 톡신의 영웅이라던 박창석이었다.

그가 대표로 있는 NRY 엔터테인먼트 기획사.

마침 과거에 연관도 있었던 만큼, DI 뮤직은 은근하게 지예찬과의 다리를 놓아 달라 창석에게 부탁했다.

창석은 이 기회를 놓치지 않고, 오히려 지키와 NRY 가수와의 협업을 되레 제안했다.

자신들과 작업한 결과물이 있는 데다, 심지어 성적까지 좋으면 예찬을 설득하기에 더 편할 거라는 창석의 이야기는 상당히 일리가 있었다.

DI 뮤직 측에서는 조심스럽게 홀로 활동 중이던 지키를 설득했다.

‘한 번은 다른 가수와 작업하지만, 이후에는 톡신과 작업할 수 있도록 하겠다.’

‘미팅 이후에 혹여나 함께 작업할 가수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면 NRY와의 거래도 없었던 일로 하고 다시 한 번 톡신 쪽으로 시도해 보겠다’라고.

‘어떻게든 해내겠다’라는 DI 뮤직의 당당함이 마음에 들었던 지키는 DI 뮤직을 신뢰하기에 제안을 받아들였다.

그리고 몇 주 뒤.

지키는 DI 뮤직 담당자와 함께 NRY과의 미팅 자리에 나갔다.

기대는 일절 없었다.

그저 톡신과 함께 작업하기 위해 향하는 길목 중 일부라는 생각뿐이었으니까.

“안녕하십니까.”

은호와 처음 마주친 그 순간.

그녀는 경험이 있었던 탓일까.

알 수 있었다.

“한국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저는 가수, 이은호라고 합니다.”//돋움체

은호는 어설픈 영어 발음이었지만 아직 한국어가 서툰 지키를 위해 나름대로 인사를 건네는 데 신경을 쓴 것 같았다.

은호의 배려에, 지키 또한 마음을 열며 은호가 내민 손을 붙잡았다.

“‘지키’라고 해요.”

“반갑습니다. 지키 씨. 오늘, 잘 부탁드립니다.”

“저야말로요.”

지키의 한국어가 유창하다는 걸 알아챈 순간.

은호는 억지로 영어를 쓰기보다 편한 대로 인사를 건넸다.

‘한국어를 잘하시네요.’

‘발음이 좋네요.’

‘눈 색이 아름다우시네요.’

‘머리 색이 신기하네요.’

한국에 오고 며칠 내내 흔하게 들었던 그 어떠한 말도 일절 하지 않는 점이 마음에 들었다.

의외라고 할지 모르겠지만, ‘별종’이라는 별명이 틀리지만은 않은 게.

내 어머니가 한국인인 만큼 그녀는 나 역시도 한국인이라는 생각이 있었다.

그래서 은연중 차별 없이, 다른 사람들과 같이 그렇게 대해 주길 바랐다.

물론 은호가 마음에 든 이유는 그것뿐만은 아니었다.

은호에게서 느껴진 익숙한 지친 듯한 분위기에 마음이 갔다.

‘내가 겪은 ‘그때’와 비슷한 아픔을 겪고 있는 사람인 것 같다.’

처음 인사를 나눴을 땐 확신은 아니고 ‘그런 것 같다’는 느낌 정도였다.

그때, DI 뮤직 측 담당자가 말했다.

“늦었지만, 동생분 소식을 들었습니다.”

“아, 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감사합니다.”

잠시 후.

지키는 함께 온 DI 뮤직 담당자의 인사를 통해 예상이 맞았음을 알았다.

‘제키가 세상을 떠났을 때…….’

그녀 또한 주변의 위로를 많이 받았다.

당연히 고마웠다.

제키의 명복을 빌어 주는 건 고마웠지만, 나는 아직 마음의 준비가 되지 않았던 걸까.

동시에 그런 그들이 미웠다.

시간이 멈춘 듯 제키가 지내던 방의 문을 열면 ‘지나, 어서 와.’//돋움체 라고 인사가 들릴 것 같았다.

비어 있는 침대에 항상 있던 제키가 있을 것 같았다.

차라리 있다고 착각이라도 하며 살고 싶었다.

하지만, 주변의 위로와 인사는 자꾸만 그 환상에 갇혀있으려는 자신을 암울한 현실로 끌어 내렸다.

그 시간을 겪었기 때문에.

그래서였다.

지키는 은호를 위해 모르는 동생의 명복을 빌어 주기보다 조용히 입을 닫는 쪽을 택했다.

지키의 조용한 배려를 알기라도 하는 듯, 은호가 옅은 미소를 띠며 웃어 보였다.

미팅은 좋은 분위기로 이어졌다.

미팅을 마친 뒤, 가게를 나왔을 때였다.

DI 뮤직 담당자가 지키에게 물었다.

“지키, 어떻습니까?”

“서로한테 위로가 되는 시간이었으면 좋겠네요.”

지키는 조금 전까지 마주하던 은호의 얼굴을 떠올리며 말했다.

나지막이 속삭인 발음 탓인지, DI 뮤직 담당자는 당황스러운 표정을 드러내며 물었다.

“죄송해요. 다시 한 번 말해 줄래요?”

“‘좋다’라는 말이었어요. 함께 작업해 보고 싶은 사람이었어요.”

“휴, 그거 다행입니다. NRY에서 말한 것도 있지만, 개인적으로도 이은호 씨는 실력이 좋은 뮤지션인만큼, 지키한테도 좋은 경험이 될 거예요.”

회귀 전.

그때의 이야기.

* * *

“지키!”

’같이 쫌 살자‘ 멤버들이 동시에 외쳤다.

“지키로 결정하시는 겁니까? 이거 마지막 기회입니다? 이후에 못 바꿉니다?”

유 PD가 경고와 함께 마지막 기회를 언급한 그때였다.

도발에도 불구하고 은지는 우스꽝스럽게 검지로 하늘을 찌르며 소리쳤다.

“응~ 절대 안 바꿔!”

“쫌.”

“―요!”

하하하하.

은호의 경고에 뒤늦게 들어간 ‘요’에 스태프와 멤버들까지 일제히 함께 웃음이 터져 나왔다.

유 PD는 애써 입술을 꽉 물며 덤덤함을 유지하더니, 스태프들이 타고 온 버스를 향해 외쳤다.

“나와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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