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매는 비즈니스로 일합니다 (232)
“저, 선배님.”
“응?”
“에이슬, 걔, 어떻게 생각하세요?”
“……갑자기?”
무슨 질문을 하나 했더니…….
너무 황당하게 바라본 탓일까.
“아, 죄,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너무 뜬금없었죠.”
“응.”
똑 부러질 것 같은 은호의 냉장한 대답에 시우의 얼굴이 희게 질렸다.
하지만 냉랭했던 대답치곤, 은호는 시우의 질문에 태연하게 대답했다.
“딱히 별생각 없어.”
“아.”
대답해 줄 줄은 몰랐는지 시우는 놀란 눈으로 은호를 돌아봤다.
‘기차에서는 괜찮았는데…….’
회귀 전 이은지랑 관계있는 사이라기에 호기심에 뭐라도 알아보려고 앉았더니, 앉자마자 에이슬 이야기부터 들어서 그런가.
호기심도 뒤로할 정도로 기운 빠져서 모든 게 피곤해졌다.
‘아니면, 그냥 차멀미인가.’
은호는 고개를 빼며 뒷좌석들을 돌아봤다.
기차에서 열띤 토론을 한 탓일까.
“그때도 그랬었잖아. 걔가 그러니까…….”
은호의 바로 뒷자리인 태현은 조잘거리는 승연이 귀찮은 듯 눈을 감고 잠이 안 와도 자고 말겠다는 의지를 드러내고 있다.
은지 역시 에이슬하고 잠시 이야기를 하는가 싶더니, 지금은 평소 현우가 운전하던 차에서처럼, 그보다는 조금 얌전하게 퍼진 느낌으로 창문에 기대어 잠들어 있었다.
에이슬은 허리를 꼿꼿하게 세운 채 눈만 감았고, 석현은 대본인 듯 스태프에게 전달받은 종이를 살피는 중인 것 같았다.
시끌벅적하던 기차 안에서와는 대비될 정도로 고요했다.
‘다들 자니까.’
은호도 따라서 눈을 붙였다.
그렇게 얼마나 지났을까.
‘눈을 감기만 한 기분이었는데…….’
도착지까지 한 시간이 넘게 가야 한다고 들었는데, 잠깐 잔다는 게 버스가 멈춰 선 뒤에야 눈을 떴다.
“도착했습니다!”
그때, 유 PD가 멈춰선 버스에 올라타며 외쳤다.
다들 비몽사몽인 상태로 깨어나더니 하나둘씩 버스에서 내렸다.
제일 앞쪽에 앉아 있던 은호부터 자연히 가장 먼저 내리게 됐다.
이후 에이슬이 내리고, 그때였다.
“시우 오빠!”
에이슬이 들뜬 표정으로 은호 옆에 있던 최시우에게 다가왔다.
에이슬은 은호에게 꾸벅 고개를 숙이더니 조금 멀리 시우를 끌고 갔다.
“물어봤어?”
“어.”
“어떻게?”
“‘에이슬, 어떻게 생각하세요?’라고.”
시우의 대답에 에이슬은 뒤통수를 얻어맞은 얼얼한 표정이 되었다.
“넌. 그렇게 말하면. 내가 이상해지잖아!”
“왜, 니가 그렇게 물어봐 달라며.”
“아니, 내가 언제 그랬어! 내가 팬미팅에 갔을 때 떨기만 하고 온 게 혹시 이상하게 보이진 않았느냐고, 내가 그거 알아봐 달라고 했지!”
“그거나 그거나.”
“달라!”
귀가 밝은 편이었던 은호는 거리가 조금 떨어져 있어도 두 사람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어쩐지 굉장히 뜬금없이 묻더라니, 그런 이유였나 보다.
“하, 그래서 선배님은 뭐라고 말씀하셨는데?”
“‘딱히 별생각 없어.’라고 하셨어.”
시우가 은호의 성대모사인지, 무뚝뚝한 말투를 그대로 따라 했다.
“오빠, 어디 가서 선배님 따라 하지 마.”
“왜, 나름대로 비슷하다고 생각했는데.”
“아니거든! 전혀 안 비슷하거든!”
“얘들아.”
에이슬은 시우와 투덕거리다 류석현의 부름에 동시에 고개를 돌렸다.
두 사람은 석현이 오라는 신호를 보내자 서로 눈치를 보며 석현에게 다가갔다.
그동안 은호는 비틀거리며 버스에서 내리는 은지를 보고 있었다.
“하이구, 그러다 흙바닥에서 디비 자겠다.”
여전히 잠이 덜 깬 은지를 보며 은호가 혀를 차며 웃었다.
“정신 못 차린다.”
“…….”
은지는 카메라에 잡힐까 봐 한 손으로 카메라 방향을 가린 채 은호에게 꼿꼿하게 세운 중지를 들어 보였다.
카메라는 신경 쓰고 있으니까 은호는 ‘쫌’이라는 수신호 대신 웃음으로 상황을 넘겼다.
“넌 무슨 이야기 했냐?”
은호가 물었다.
버스를 타던 당시 앉자마자 에이슬과 은지가 조잘거리는 모습을 봤기 때문이었다.
“무슨 이야기?”
“아까 떠들던 거 같길래.”
“아, 근데 그건 너도 그랬잖아.”
“방송에서는 쫌 똑디 호칭 붙여서 불러라. 좀.”
은호의 타박에 은지는 유 PD와 카메라 감독을 힐끔힐끔 돌아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알았어. 아무튼 오빠도 시우랑 뭐 이야기한 거 아니었어?”
“아, 어. 갑자기 에이슬 어떻냐고 묻길래 아무 생각 없다고 했는데.”
“거기도 그 이야기였구나.”
은지가 은연중 흘린 대답으로 에이슬 또한 은지에게 본인의 이미지를 물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자기가 팬 사인회 왔을 때 너무 바보같이 행동한 거 같다고, 안 이상했냐고 묻더라고.”
“그래서 뭐라고 했는데?”
“안 이상했다고 했지. 오히려 귀여웠다고.”
“…….”
귀엽다는 말이 이해가 가지 않는지 은호가 질겁하는 표정으로 보자, 은지는 웃으며 말을 이었다.
“그 시간 때 했던 짓을 생각하면 끔찍하게 밉지만, 지금 모습만 보면 귀엽긴 하잖아.”
“글쎄.”
귀엽건 자시건, 관심 없다.
은호는 딱 그런 정도였다.
더 얽히고 싶지도 않고, 약속이기에 참여한 방송이니까.
‘같이 쫌 살자’에 참여한 멤버들과는 어느 정도 거리감을 유지한 채 방송만 제대로 해내고 돌아가고 싶었다.
마지막 여덟 번째 멤버를 만나기 전까지는 그랬다.
“여자, 파워, 랩, 교포, 화제, 털털, 구릿빛.”
촬영을 위해 나란히 서서 두 번째 오프닝 촬영을 하는 동안, 서승연이 지금까지 받은 힌트를 다시 읊으며 말했다.
“지금까지 후보로는 구수원 씨랑 애플링 씨 정도로 좁혀졌나?”
“이제 개그우먼이냐, 래퍼냐가 문제네요.”
미국 태생의 터프한 캐릭터로 분위기를 잡은 개그우먼 구수원, 그리고 교포인지는 모르겠지만 키워드에는 대부분 들어맞는 래퍼 애플링.
그 외에는 스쳐 가며 이런저런 사람들이 나오기도 했지만, 대부분 조건에 부합하지 않는 경우가 많아서 이 두 사람만 남았다.
“두 사람 다 고르면 안 되죠?”
“…….”
은지의 뻔뻔한 질문에 유 PD는 ‘되겠어요?’라는 표정을 지으며 난감하게 웃어 보였다.
“일단 투표해 보죠. 개그우먼 구수원 씨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오른쪽으로, 래퍼 애플링 씨라고 생각하면 왼쪽으로 이동합시다.”
은지와 에이슬, 서승연이 오른쪽으로 향했다.
왼쪽에는 은호와 태현, 석현, 시우가 섰다.
둘 다 정답은 아닌 것 같은데, 은호는 워낙 같이 일했던 가수가 아니라면 대부분 잘 모르는 탓에 그 외에는 뽑을 수가 없었다.
‘내가 아는 교포에 랩이 되는 아티스트는…….’
잠깐 굉장히 말이 안 되는 생각을 했다.
‘설마.’
회귀 전과 지금, 달라진 것을 꼽으라면 정말 많았다.
하지만 그게 다른 사람에게도 과연 영향을 끼칠까?
그것도 심지어 해외에서 활동하던 가수한테?
그녀는 은지가 세상은 떠난 이후.
한창 일에 미쳐 있던 1년이라는 시간 동안 스쳐 가듯 함께 곡 작업을 했던 짧은 인연이었다.
「“여자, 파워, 랩, 교포, 화제, 털털, 구릿빛.”」
은호는 조용히 승연이 읊었던 키워드를 머릿속에 떠오른 누군가와 맞춰 봤다.
‘여자는 맞고, 파워는…….’
굉장히 마른 몸임에도 불구하고 잔근육이 많아 그녀가 복부에서 끌어 올린 소리는 속이 시원할 정도로 강력한 보컬을 자랑했다.
그럼 파워도 어쨌든 맞는 것 같은데.
다음은 ‘랩’.
싱잉랩으로 뒤늦게 눈길을 받아 인기가 터지긴 했지만, 그녀는 본래 오래전부터 래퍼로 활동하던 뮤지션이자 아티스트였다.
‘교포…….’
어머니였던가.
한국인이라고 스쳐 가며 이야기를 했던 것 같은데, ‘구릿빛’ 키워드도 태닝을 꼬박꼬박한다고 했었으니까.
‘심지어 나한테 추천하기까지 했었지. 마지막은…….’
털털.
이 키워드가 성격을 말하는 거라면, 맞을지도.
그녀는 이은지랑 굉장히 닮은 성향의 사람이었다.
바쁘게 살았던 1년 중, 그녀의 이름만큼은 확실하게 기억한 이유이기도 했다.
‘쟤는 ‘털털하다’보다 그냥 정신없는 쪽이긴 하지만.’
은호가 힐끔 은지를 바라본 그 순간.
은지도 시선을 느낀 듯 은호를 바라봤다.
본능적으로 은호가 좋은 의미로 바라보는 게 아니란 걸 알고 있는지, 은지는 눈썹을 들썩이며 턱을 내밀었다.
‘므요.’
그런 은지에게 은호는 가식 가득한 미소를 지어 주며 무시했다.
‘이제, 키워드가 뭐가 남았더라?’
다시 그녀에 관한 생각에 잠겼다.
‘화제…….’
마지막으로 남은 키워드는 ‘화제’였다.
은호가 가장 약한 부분.
‘원체 우리 곡 작업 외에는 주변에 관심이 없었으니까.’
최근 NRY 엔터테인먼트 내 대부분의 뮤직비디오 스토리를 맡은 만큼, 난 최근 다른 뮤지션들의 작품을 듣거나 보는 걸 자제하고 있었다.
‘영향을 받는 건 좋지만…….’
혹여나 길이 잘못 들었을 땐 표절 시비가 붙을 수도 있으니까.
괜한 민폐가 되고 싶진 않아서도 있었지만, 내 손에서 탄생한 스토리를 보고 싶은 마음도 컸다.
그래서 최대한 시청을 자제했다.
그러다 보니 신곡이나 신작에 관심이 적었고, 그 결과.
‘모르겠다. 전혀 모르겠다.’
난 지금 ‘화제’가 되는 사람이 누구인지도, 누가 있었는지도 전혀 모른다.
톡신이 한창 잘나가던 그 시간에 멈춰 버린 기분이다.
‘앞으로는 적어도 어느 정도는 알아 두든가 해야지.’
홀로 너무 고이기만 하는 것도 문제가 될 수 있다는 걸 처음 느낀 날이었다.
은호는 도움을 청하기 위해 주변을 돌아보다, 유일하게 이곳에서 의지할 수 있는 한 사람을 쳐다봤다.
“형.”
“응.”
멍하게 서 있던 태현이 흠칫 놀라며 은호를 돌아봤다.
“혹시 ‘지키’라는 가수 알아요?”
“어. 알지.”
“화제예요?”
“화제는, 화제지. 미국에서 제의 다 차고 최근에 한국에…….”
잠시 떠올리는 중인 듯, 태현은 곰곰이 고민하던 그때.
“아.”
무언가 떠오른 듯 짧은 탄성을 흘리며 입을 열었다.
“어?”
태현은 무언가 깨달은 듯 눈이 커졌다.
“잠시만.”
태현은 은호를 지나 석현에게 다가갔다.
다수결로 ‘애플링’이 여덟 번째 멤버라고 결론을 내려던 석현은 갑자기 어깨를 붙든 손에 놀라 돌아봤다.
“애플링, 아닌 것 같아요.”
“갑자기요? 그럼 태현 씨는 누구라고 생각해요?”
“‘지키’ 아닐까요.”
“어?”
태현의 입에서 ‘지키’라는 이름이 나오자 전체가 술렁였다.
‘이걸 왜 잊고 있었지?’
DI 대표와 꽤 오랜 기간 함께 해 온 류석현은 무언가 알고 있는 듯 치며 격한 반응을 보였다.
* * *
인식
DI 뮤직의 대표, 어석배.
그는 사업가였다.
창석을 존경하는 것과는 별개로, DI 뮤직의 기밀까지 유출할 생각은 없었다.
그 밝히지 않은 기밀에는 한 해외 뮤지션을 끌고 와 계약을 진행하는 일도 포함되어 있었다.
지키는 어린 인디 가수이기도 했지만, 같은 동네에서 자란, 한 유명 가수의 개인적인 요청에 피쳐링으로 참여하면서 본의 아니게 굉장히 이름을 알렸다.
회귀 전 시간에서도 그녀는 유명 가수의 곡으로 이름을 알리긴 했으나, 그만큼 묻히지 않고 눈에 띄는 재능이 대단한 가수였다.
하지만 그녀는 정작 본인이 유명해진 미국에서의 활동은 원치 않았다.
한국인 어머니가 계셨다는 이유도 있었으나 그것과는 별개로, ‘어떤’ 이유에서 ‘별종’이라 불리면서까지도 한국 활동에 큰 욕심을 보였다.
그 결과, 지키의 첫 한국 데뷔 당시.
그 첫 대상이 바로 은호가 됐다.
당시 은호는 본인의 노래나 팬들 그리고 은지의 일기장 외에는 세상 무엇 하나 관심이 없던 상황이었던 터라 이런 부분에 대해선 전혀 몰랐다.
회귀 이후인 지금까지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