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매는 비즈니스로 일합니다 (231)
20살?
학생이라고 해도 믿을 정도의 앳된 외모.
공을 많이 들인 것 같은 쉐도우펌 머리.
뭘 그렇게 산 건지 양손 한가득 바리바리 챙겨 든 한 남자가 촬영지 쪽으로 달려왔다.
먼저 도착했던 사람들은 낯선 그를 보며 얼굴에 제각각 감정들을 드러냈다.
태현은 ‘누구지?’라는 무뚝뚝한 호기심이 드러나 보였고, 승연은 그가 들고 오는 종이 가방에 눈이 가 있었다.
류석현은 어서 오라는 듯 평온했고, 에이슬은 그를 본 순간 인상을 구겼다.
은호는 태현보다 무관심한 표정으로 덤덤했다.
한편, 은지는 마치 몇 년 만에 반가운 인연이라도 만난 듯 환하게 웃고 있었다.
“죄송합니다! 처음 뵙는 거니까, 그게, 이것저것 사다가 늦어서…….”
양손 한가득 들려 있는 건 본인 것이 아니라 같이 촬영하기로 한 멤버들에게 선물하기 위한 것이었는지, 가까이 다가온 그는 덜덜 떨리는 손으로 은호, 은지, 태현, 승연, 석현에게 각각 종이 가방을 하나씩 건네며 허리를 숙였다.
종이 가방 속을 확인하자, 안에는 상당히 값이 나가 보이는 수제 비누와 이런저런 용품들이 들어 있었다.
촬영 전 음식들은 가져오지 말라던 경고 때문에 대신 세면 용품으로 준비한 모양이었다.
“안녕하십니까! 저는 이번에 ‘뜰래’라는 곡으로 데뷔한 최시우라고 합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오, 직설적인 제목이다.”
“아, 그게, 제가 욕심이 조금 많아서…….”
“욕심 좋지. 하하. 잘 부탁해요.”
“저, 저야말로 잘 부탁드립니다! 조, 존경하는 톡신 선배님들과 함께할 기회를 얻어, 여, 영광입니다!”
첫인사에 시우의 성격을 파악한 듯 승연이 장난스럽게 물었다.
“어? 우리만 영광인 거야?”
톡신 멤버 중 가장 외향적이자, 장난기 많은 서승연답달까.
승연의 농담에 시우는 어지간히 당황한 듯 동공이 갈피를 잃고 바르르 떨렸다.
“무, 물론, 이, 이, 이응 선배님과 서, 석, 석현 선배님도요! 여, 여, 여, 여, 영광입니다!”
시우가 말을 더듬을 정도로 당황하자 승연이 낄낄거리며 웃어 댔다.
“후배 그만 놀려라. 애 숨넘어가겠다.”
태현은 그런 승연의 머리를 쥐어박으며 차분히 말했다.
“하하하, 아, 귀여워서 그랬지.”
승연은 태현에게 쥐어박힌 정수리를 양손으로 감싸 쥐며 아파했지만, 장난기는 여전히 지우지 못한 얼굴이었다.
한편, 그런 모습을 한 걸음 멀리에서 가만히 바라보던 은지가 작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여전하네.”
바로 곁에 있는 은호에게도 아주 희미하게 들릴 정도로 작은 소리였다.
“뭐라고 했어?”
“뭐가.”
“아는 사람이야?”
은호가 속삭이며 묻자, 은지는 마이크에 목소리가 들어갈 걸 염려한 듯 깨톡을 이용하여 은호에게 답했다.
[나 ─ 내 인생에 처음으로 고백받은 남자였음]
[우럭새끼 ─ ? 니가 했다고?]
[나 ─ 개소리야 나 방금 뭐 외국어로 쳤냐? 한국말 몰라?]
은지가 깨톡을 보낸 뒤 신경질적으로 은호를 쏘아 봤다.
[우럭새끼 ─ 말이 안 되잖아. 너한테?]
─ 고백을?]
─ 헸다고?]
[나 ─ 뭐 ㅅㅂ 갑자기 빡치게 만드네]
[우럭새끼 ─ 쫌]
[나 ─ (머리를 이리저리 흔들며 광란의 발작쇼를 하는 개구리 이모티콘) 아아악]
[우럭새끼 ─ ㅋㅋㅋㅋ 쟤가 눈이 뼜네]
[나 ─ (웃으면서 양손으로 ‘凸’을 날리는 하얀 찹쌀떡 이모티콘) 응 누구보단 나은 거 같은데]
[우럭새끼 ─ 내가 너보단 낫지 ㅋㅋ]
[나 ─ 이우럭 인중 때려 버린다]
[우럭새끼 ─ ㅋㅋㅋㅋㅋㅋ]
은호와 은지가 깨톡으로 열나게 싸우는 그동안 밖에서도 다른 두 사람의 싸움이 펼쳐지고 있었다.
“왜 나는 없어.”
“넌 삼촌이 돈 많잖아.”
“나도 줘.”
“니가 사든가.”
시우와 에이슬은 같은 소속사라 그런지 데뷔 기간은 조금 차이가 나는데도두 사람은 서로 상당히 가까운 사이인 듯했다.
하지만 사이가 좋진 않은지 둘 사이에 보이지 않는 스파크가 튀고 있었다.
“너희 싸우지 마라. 카메라 앞이다.”
에이슬과 류석현은 서로 아는 사이였는지, 석현은 에이슬을 자연스럽게 달래며 말했다.
그 모습을 바라보던 태현과 승연은 조용히 은호와 은지에게 눈길을 옮겼다.
태현과 승연은 류석현이 둘을 말리는 동안 어쩐지 창석이 떠올랐다.
‘저기도 같은 부류가 있나 보네. 재밌겠다.’
승연이 활짝 웃으며 앞으로의 촬영을 기대하는 한편.
‘……정신없겠다.’
태현은 벌써 피곤하다는 듯 한숨을 내쉬었다.
“자, 자!”
짝짝!
MC인 류석현은 꼬여 가는 분위기를 환기하기 위해 크게 손뼉을 치며 외쳤다.
이런 난장판이 벌어지는 동안에도 의외로 유 PD는 별 제재 없이 촬영을 이어 갔다.
류석현의 손뼉에 상황이 나름대로 정리되고, 오늘부터 ‘같이 쫌 살자’의 일곱 명의 멤버들이 나란히 자리에 섰다.
끝자리에 최태현을 시작으로 이은지, 서승연, 이은호.
중앙에 선 류석현 다음으로는 에이슬 최시우가 나란히 섰다.
마음 가는 대로 섰더니 자연스레 NRY는 NRY끼리, DI 뮤직은 DI끼리 서게 됐다.
이후로도 PD와 작가의 개입이 일절 없자, 서승연과 류석현의 주도하에 서로에 대해 알아 가는 시간을 가졌다.
“그런데, 석현 씨랑 이슬 씨는 아시는 사이인 거예요?”
“그럼요, 한 식구인데.”
서승연이 묻자, 류석현이 웃으며 말했다.
전혀 몰랐던 소식이라, 여럿이 놀랐다.
이후에는 서로 나이를 물으며 호칭을 정리했다.
40대 라인의 류석현 아래로 30대 최태현과 서승연.
20대에는 22살인 은호와 갓 20살에 접어든 은지와 최시우가.
마지막으로 아직 10대인 에이슬까지.
서로의 나이가 모두 파악됐을 무렵, 유 PD는 서로 도란도란 수다를 떨 정도로 분위기가 풀어진 뒤에서야 입을 열었다.
“서로의 첫인상을 파악한 시간은 충분하셨나요?”
“첫인상을 파악하는 것치고는 시간이 길지 않아요?”
류석현이 갸웃거리며 유 PD에게 대꾸했다.
“앞으로 같이 살아야 하는데, 잘 알아 둬서 나쁠 건 없으니까요.”
유 PD는 이제 슬슬 제대로 촬영을 진행하려는 듯 멤버들의 뒤편에 놓인 구멍 뚫린 하얀 상자를 가리켰다.
은호가 대표로 상자를 챙겨 와 다시 류석현 옆에 섰다.
“여러분은 지금 멤버가 다 모인 것 같으신가요?”
“아니에요?”
승연이 되묻자 유 PD는 다시 하얀색 통을 가리켰다.
통을 확인하면 알 거라는 신호로 알아들은 듯 류석현은 조심스럽게 은호가 들고 있는 하얀 통의 구멍 안에 손을 밀어 넣었다.
“아우, 나 이런 거 무서운데.”
몇 차례 손을 넣었다 빼는 호들갑 이후 꺼내 든 종이에는 ‘여자’라는 단어가 쓰여 있었다.
“여러분의 인원수만큼 통 안에서 종이를 뽑아 주세요.”
PD의 부탁에 하나씩 모여 은호가 든 하얀 통에서 종이를 뽑았다.
은호가 마지막으로 종이를 뽑기 위해 손을 넣었을 때, 통 안에는 여전히 무수한 종이들이 있었다.
모든 멤버가 종이를 뽑고 나서야 PD가 웃으며 말을 이었다.
“조금 전 뽑으신 그 종이들은 모두 마지막 여덟 번째 멤버의 힌트가 쓰여 있습니다. 이제 여러분들은 기차를 타고 앞으로 지낼 집으로 이동할 동안 마지막 멤버의 정체를 밝혀 주시면 됩니다.”
“여덟 번째 멤버……?”
“밝히면 뭐가 있나요?”
다들 여덟 번째 멤버가 있다는 말에 갸웃거리고 있을 때 은호가 유 PD에게 날카롭게 물었다.
“여러분들은 촬영 전, 앞으로 생활하시는 동안 모든 식사의 재료를 주변에서 구해 먹기로 약속하셨습니다. 그렇죠?”
멤버들은 일제히 “네.”라며 대답했다.
모두 미리 전달받았던 내용이었다.
그게 이번 ‘같이 쫌 살자’의 콘셉트 중 하나이다 보니 회의 당시 몇 번이나 강조했던 이야기였다.
“그럼 여러분들은 재료의 중요성도 잘 아실 겁니다.”
재료의 중요성?
그 이야기가 갑자기 왜 나오는 건가 싶던 그때.
“와……!”
PD는 한 스태프에게 신호하더니 카메라 앞으로 햄 통조림으로 만들어진 족히 160cm는 될 법한 한 탑을 끌고 나왔다.
재료는 근처에 밭들이나 동네 사람들에게 도움을 얻는다고는 하나 아무래도 닭이나 소, 돼지 등 가축을 직접 잡기는 쉬운 일이 아니었기에 고기는 앞으로 생활에서 정말 귀한 음식이었다.
가공된 햄은 더더욱 말이다.
‘풀떼기만 먹을 각오하고 왔는데…….’
‘X친, 이건 무조건이다.’
갑자기 등장한 햄 통조림 탑은 특히 고기에 환장하는 은호와 은지의 승부욕에 불을 붙이기엔 과할 정도로 충분했다.
은호와 은지뿐만 아니라, 다른 멤버들 역시 햄 통조림으로 할 수 있는 요리와 단순히 구워서 흰 쌀밥에 올려 먹는 상상을 하면서 의지를 불태웠다.
“지금까지 ‘여자’만 뽑았죠?”
“응.”
은호가 묻자, 승연이 답했다.
이어서 석현이 태현을 바라보며 말했다.
“종이에 뭐라고 쓰여 있었는지, 태현 씨부터 확인해 봅시다.”
태현은 그제야 작게 접혀 있던 종이를 펼쳤다.
“파워?”
태현이 종이에 쓰인 글씨를 읽자 승연이 고개를 빼꼼 내밀며 같이 확인했다.
이어서 승연이 종이를 펼쳤다.
“랩?”
승연이 갸웃거리며 종이에 쓰인 글씨를 읽자, 이어서 류석현이 물었다.
“이게, 주방에서 쓰는 그 랩은 아니겠지?”
“그렇지 않을까요?”
“개그맨일 수도 있죠. 예전에 얼굴 랩 뚫기로 유명했다던가.”
은호의 되묻는 대답 이후 은지가 의외로 예리하게 말하자, 다른 멤버들은 짧은 감탄을 흘렸다.
이어서 은지와 은호가 동시에 종이를 펼쳤다.
“교포?”
“화제.”
“퐈이어!!! 하는 화재? 아니면 뭐 눈길을 끌었다는 화제?”
“후자.”
은지가 우렁차게 ‘퐈이어’거리며 양팔을 번쩍 든 그때였다.
상상했던 은지의 이미지와 상당히 차이가 있었는지 최시우는 충격이라도 받은 것처럼 우스꽝스러운 놀란 표정을 짓고 있었다.
한편, 에이슬은 어지간히 은호와 은지의 팬인지 두 사람에게서 꿀 떨어지는 시선을 뗄 생각조차 없는 듯 보였다.
이어서 에이슬과 최시우가 뽑은 힌트에는 ‘털털’, ‘구릿빛’이라는 단어가 이어졌다.
모인 단어들로 토론을 시작한 일곱 명은 기차에 오를 때까지도 이야기를 계속했다.
한두 개도 아닌 엄청난 햄 통조림의 탑을 봤기 때문일까.
하나 정도는 긴 여행에 지쳐 잠들 만도 할 텐데, 기차가 동대구역에 멈추어 설 때까지도 활발한 토론이 이어졌다.
기차역에서 우르르 나온 뒤엔, 아직 도착한 건 아닌 듯 스태프들과 스태프 일부‧출연자로 나뉘어 준비된 관광버스에 올랐다.
“이슬 씨, 나랑 앉자.”
“네? 헉, 네!”
은지는 에이슬을 이끌고 가장 먼저 자리를 잡았다.
“은호야.”
“응? 아, 형. 잠시만요.”
이후 낯가림이 심한 최태현은 은호에게 같이 앉자며 이야기를 하려고 했었다.
은호는 그때 마침 한 스태프의 부름에 잠시 자리를 떠나 버렸다.
“형!”
“……어.”
태현이 은호와 앉으려던 이유는 하나였다.
“그래서 아까 주송민한테 내가─.”
서승연이 시끄러워서.
이후 은호가 돌아왔을 땐, 빈자리가 류석현과 최시우 옆자리뿐이었다.
류석현은 이동하는 동안에서 MC를 봐야 하기 때문인지 정확히 멤버들의 중심에 있었다.
은호는 자연히 최시우의 옆자리에 앉았다.
은지에게 고백했다던 이야기를 들었기 때문인지, 회귀 전에 은호는 마주친 적이 없던 인연인 만큼 개인적으로 호기심이 있기도 했다.
하지만 은호가 입을 떼기 전.
자리에 앉고 버스가 출발한 그 순간.
“저, 선배님. 만나 뵈면 꼭 여쭤보고 싶은 게 있었는데요…….”
“……?”
시우가 질문을 선수 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