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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매는 비즈니스로 일합니다-229화 (229/309)

남매는 비즈니스로 일합니다 (229)

“아, 미안해.”

“…….”

“아, 이은호오.”

“…….”

대기실로 돌아가는 그동안 은지는 가시밭길이 따로 없었다.

차라리 화를 내길 바랄 정도로 은호는 무대를 내려온 뒤 아무 말이 없었다.

복도에서는 적어도 선배들과 후배들, 스태프들이 있는 만큼 가식적인 미소라도 짓고 있었는데…….

대기실 문을 넘자마자 그 가식적인 미소조차 모습을 감췄다.

“미안. 진짜, 미안.”

은호의 표정은 그야말로 극지방의 한파를 떠올릴 정도로 싸늘했다.

무표정인 은호의 시선이 이제야 은지에게 향했다.

흠칫.

시선을 마주치자 은지는 사태의 심각성을 깨달은 듯 심각해졌다.

‘와, 진짜 개삐졌네.’

일단 포인트는 두 곳 정도로 예상된다.

은호가 노래 부르고 있던 그때.

사실 애드리브로 끼어드는 것쯤이야, 은호는 평소에 굉장히 그런 것에 너그러운 편이다.

끝나고 나서 끼어들지 좀 말라며 한소리를 하긴 하지만, 무대만 잘 나오면 OK였다.

하지만 오늘은…….

“미안.”

“하아…….”

은호는 창가로 눈을 돌리며 땅이 꺼질 듯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야.”

“넵.”

부름에 곧장 나온 대답 때문이었을까.

피식.

은호는 본의 아니게 웃음이 터진 듯 아랫입술까지 물며 터진 웃음을 삼키려 했다.

“웃었어, 웃었지!”

“아니거든.”

“웃었잖아!”

때를 놓치지 않고 은지가 눈을 빛내며 소리쳤다.

“안 웃었어.”

“개소리하지 마. 웃은 거 봤거든.”

“아, 쫌, 니가 지금 내가 웃고 말고를 따질 때냐.”

“못 따질 건 없지?”

“…….”

은호는 말 한마디를 안 지려는 은지를 가만히 바라봤다.

“그 눈 뭐야.”

“뭐.”

“내가 이런 애랑 싸워서 뭐 하냐 하는 현타 온 그 눈 뭐냐고!”

“오. 이런 건 정확한데?”

은지가 으르렁거리기 시작했고, 동시에 은호도 성깔을 드러내며 싸울 기세였다.

슬기와 현우는 기 싸움 중인 남매를 ‘올 게 왔구나’라는 듯 바라보며 서로의 파트를 정했다.

“막아야겠죠?”

“제가 은호 맡겠습니다.”

“전 은지로.”

결정이 난 뒤에는 현우가 둘 시야를 가로막았다.

“아오! 저렇게 쳐다볼 때마다 콱 그냥.”

은지는 손을 ‘V’자로 만들며 은호의 눈을 가리켰다.

“그만하고 가요. 그러다 대표님 아시면 또 혼나요.”

슬기의 경고 같지 않은 강력한 경고에 은지 또한 언제 그랬냐는 듯 얌전해졌다.

“그만하고 PD님한테 인사하러 가셔야죠.”

“…….”

은호 또한 잠시 발끈한 그때, 현우의 이야기 덕분에 빠르게 침착을 되찾았다.

이후 두 사람은 얌전히 대기실을 나와, PD에게 인사를 위해 긴 줄에 섞여 들었다.

‘시작은 PD님에게 눈도장 한 번 찍어 두려고 시작된 일이었을까.’

이해되지 않지만, ‘해야만 하는 일과’에 있어서 해야 하는 일이 있다.

늦게 나온 탓인지 인사하는 줄이 오늘따라 더 밀린 느낌이었다.

힘 있는 기획사라면 종종 중간에 끼어들기도 하던데, 우리는 그 정도까진 안 될뿐더러 굳이 그러고 싶지도 않았다.

“오늘 감사했습니다.”

“감사합니다.”

한참을 기다려, 은호와 은지는 PD가 있는 방에 들어왔다.

은호와 은지는 동시에 허리를 숙이며 인사했다.

“아, 잠시만.”

인사만 하고 나가려고 했는데, 무슨 할 말이라도 있는지 PD가 은호와 은지를 멈춰 세웠다.

“너희 NRY 소속이지?”

“네. 맞습니다.”

“DI 최근에 같이 준비하는 거 있다던가?”

PD는 은호와 은지가 들으라는 듯 다른 스태프에게 묻는 것처럼 고개를 돌린 채 말을 던졌다.

하지만 정작 질문을 받은 스태프는 다시 은호와 은지에게로 시선을 보냈다.

‘뭐 해. 대답 안 해?’라는 시선이었다.

“자세히는 아직 저희도 들은 바가 없습니다.”

“그래?”

은호가 대답하자, PD가 피식 웃으며 말했다.

“딱히 너희한테 물은 건 아닌데.”

“죄송합니다.”

어쩐지 비꼬는 듯한 어투에 불쾌한 감정이 스멀스멀 올라왔지만, 은호는 놀라우리만큼 태연하게 인사했다.

은지도 나름대로 평온을 유지하려고 노력했지만 미세하게 입꼬리가 부들거리는 것은 막을 수 없었다.

“모르면 어쩔 수 없지. 이만 나가 봐.”

“네.”

뭐라도 정보를 얻어 볼 심산이었던 걸까, 모른다고 하니 더 할 말이 없었는지 PD는 손짓으로 나가 보라 신호했다.

은호와 은지는 고개를 숙였다.

“들어가 보겠습니다.”

PD는 두 사람이 방을 나가는 동안에도 대답이 없었다.

“안녕하십니까! 저희는―!”

이어서 은호와 은지 뒤에 서 있던 다른 여러 팀이 PD의 방에 들어가며 씩씩하게 인사했다.

이래저래 찝찝함만 남은 대화였지만 의외로 나온 이후에는 은호와 은지 둘 다 PD의 말은 전혀 신경 쓰지 않는 듯 보였다.

평온할 수 있는 이유는 하나였다.

어차피 갈아 치워질 사람이니까.

“저 PD 있잖아.”

“어.”

“나중에 성 관련 문제로 걸리지 않나?”

“어. 걸렸지. 더럽게 크게.”

회귀 전 기억이 있던 은호와 은지에게 그 PD는 굉장히 익숙한 사람이었다.

성 관련 추문으로 큰 사건이 터진 사람이기 때문이었다.

“언제쯤이었지?”

“얼마 안 남았어. 2016년 초에 터졌으니까.”

빌런 하나 덕분인지 은호와 은지는 싸웠던 것도 잊은 채, 둘만 기억하는 그 시간을 조잘거리며 차에 올랐다.

그렇게 차에 오른 뒤.

집으로 돌아가는 길.

은호는 1위 수상만 기억한 채, 앞서 은지와 다퉜던 이유는 까맣게 잊고 버릇처럼 E-FAN 어플을 켰다.

오늘 무대에 대한 반응을 살피기 위해서였다.

└ 오늘 방송 역대급 무대였다ㅋㅋ

└ ㅋㅋㅋㅋㅋ 지랑이 대기실에서 머리채 잡고 싸울 거 같아서 빵 터졌엌ㅋㅋㅋㅋㅋ

└ 근데 은지 손등에 핏줄 선 거 보니까 살벌하던데

└ 진짴ㅋㅋㅋㅋㅋㅋ

└ 은호 무대에서 망가진 모습 처음 보는 거 같은데ㅋㅋㅋㅋㅋㅋ

└ 그랬나?

└ 응 매번 망가지는 쪽은 지지였잖아 ㅋㅋㅋㅋㅋㅋ

E-FAN 반응을 살피던 은호는 잊고 있던 엔딩 무대가 떠오른 듯 태연한 얼굴과 달리 귀가 벌겋게 달궈지고 있었다.

“뭐 봐?”

은지는 은호의 귀를 보더니 ‘왜 저래?’라는 표정으로 은호의 휴대폰을 힐끔거렸다.

은호는 은지를 한 대 쥐어박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았지만, 애써 참으며 휴대폰 화면을 신경질적으로 꺼 버렸다.

‘이은지 바보짓처럼 금방 묻히겠지…….’

그러길 바랐다.

은지는 종종 무대에서 애드리브로 노래를 가지고 노는 경우가 있었다.

눈치 좋은 E%들은 그런 무대를 보면서 점점 알게 된 사실이 있었다.

은지가 그럴 땐 대부분 분위기에 너무 취한 나머지 안무 타이밍을 놓친다는 것.

그런 장면만 골라 모아 둔 영상을 보면 눈에 띄게 티가 났다.

다만, 이건 크게 퍼지지는 않았다.

은지는 그래도 노래를 잘했고, 대부분 그런 상황에선 은호가 케어를 했기 때문에 무대는 항상 성공적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은호가 공격받은 이번 엔딩 장면은 달랐다.

은지의 헤드록과 은호의 “어억”은 그 ‘이은호’가 무너진, 귀하디 귀한 흑역사 장면.

첫 1위까지 겹친 탓일까.

그날의 일은 금세 움짤로 제작됐고 E%들 사이에선 ‘호냥’과 ‘지냥’의 캐릭터로 그 장면을 그대로 재현한 팬아트까지 있을 정도로 밈처럼 이용되곤 했다.

짧은 뒷이야기로는, 이후 족히 1년.

은호는 그날의 움짤이나 사진이 보일 때마다 토라져서 은지와 대화 한마디 하지 않았다.

은지는 그때마다 은호에게 ‘아, 쫌! 풀어! 볼 때마다 X랄 할 거야?’라며 투덜거렸고, 그런 은지의 말은 도발이 되어 금세 항상 하던 싸움으로 번졌다.

* * *

음악방송을 나간 며칠 뒤.

은호와 은지는 곧 나갈 예능과 관련된 회의를 위해 창석의 대표실을 찾았다.

“그래서 이번 ‘동두깨비놀음’은…….”

한창 회의를 이어 가던 중, 은호는 현재 예능 제목으로 결정 난 ‘동두깨비놀음’이 들릴 때마다 미간이 좁혀졌다.

참다 참다 안 되겠는지, 은호는 소신대로 입을 열었다.

“대표님.”

“은호, 왜?”

“저 꺼비인지 깨비인지, 저 제목 꼭 그대로 가야 합니까?”

“왜? 괜찮지 않아?”

“네. 괜찮지 않은데요.”

은호의 신랄한 평가에 창석은 입을 삐죽이며 말했다.

“어 대표는 좋다던데.”

“그분은 대표님이 뭘 말하든 좋다고 하시잖아요.”

“그랬나……?”

창석이 생각에 잠긴 그동안.

은호도 함께 생각에 잠겼다.

저것보다 분명히 훨씬 괜찮은 제목이 있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은지는 은호가 무슨 고민을 하는지 알고 있는 듯, 넌지시 아이디어를 던졌다.

“다 같이 산다는 어때?”

“그거 이미 비슷한 프로그램이 있잖아.”

“흐음.”

은호의 태클에 은지는 다시 생각에 잠겼다.

그때, 은호가 입을 열었다.

“별이 빛나는 밤?”

“그거 어디서 들었던 술집 이름 같은데.”

“아…….”

이번엔 은지의 태클에 은호가 다시 생각에 잠겼다.

이어서 은지가 말했다.

“이딴 게 시골?”

“제목으로 ‘이딴’이라고 쓰기는 쫌, 그렇지 않냐.”

“아, 어? 아!”

은호의 태클에 ‘아차’ 하던 은지는 좋은 주제를 잡은 듯 눈을 반짝이며 곧장 아이디어를 말했다.

“그럼 ‘쫌 살자’, 이건 어때?.”

“쫌?”

갑자기 등장한 ‘쫌’이라는 단어에 은호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 촬영한다는 대표님 고향 집, 대구 쪽이라며.”

“아. 어. 그랬지.”

“우리도 그쪽 출신이라 자주 ‘좀, 좀’ 거리기도 하고.”

“그랬나?”

뺨을 긁적이며 은호는 지금껏 해 온 일상 속 대화들을 떠올렸다.

생각해 보니 대표님도 자주 ‘좀’이라는 단어를 사용하는 것 같기도 하고…….

은호는 얼마 가지 않아 은지의 이야기를 인정한 듯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

“그랬던 것 같기도 하고, 근데 ‘쫌 살자’는 별로야.”

인정과는 별개로 별로인 건 별로니까.

은호의 인정에 밝아졌던 은지의 표정이 이어진 태클에 다시 불만 가득한 표정으로 바뀌었다.

둘은 다시 생각에 잠겼다.

“같이…….”

“쫌.”

“……살자.”

어?

주고받듯 오간 혼잣말.

얼떨결에 나온 이름이었지만, 은호와 은지는 동시에 ‘이거 괜찮은데?’라는 표정으로 서로를 돌아봤다.

두 사람의 대화를 가만히 듣기만 하던 창석 또한 나쁘지 않다고 느꼈다.

제목 아트에 ‘쫌’을 포인트로 강조를 하기도 좋을 것 같았다.

창석은 곧장 휴대폰을 집어 들며 어디론가 전화를 걸었다.

신호는 얼마 지나지 않아 바로 연결됐다.

“같이 쫌 살자!”

전화를 받은 사람은 DI 뮤직 대표인 어석배였다.

어석배는 갑작스러운 말에 당황한 듯 아무런 대답이 없었다.

창석은 작정하고 쳤던 장난이었는지 곧 호쾌하게 웃으며 물었다.

“시골 버라이어티 예능 제목 ‘동두깨비놀음’ 대신 이거 어떻습니까?”

“아. 그거였군요…….”

잠시 침묵이 이어졌다.

어석배가 고민하다 대답했다.

“저는 뭐든 좋습니다. 전보다 괜찮군요.”

정답인지, 창석이 웃었다.

그렇게 예능 제목은 모두가 꺼리던 ‘동두깨비놀음’에서 ‘같이 쫌 살자’로 바뀌게 됐다.

이후로는 바쁜 나날이 이어졌다.

은호와 은지는 활동과 동시에 ‘같이 쫌 살자’ 프로그램 회의에도 참여하기 위해 바쁘게 움직였다.

“그래서 ‘같이 쫌 살자’는 앞으로 유명인 PD가 함께하기로 했고…….”

“유명인 PD, 누구요?”

회의 중, 은지가 손을 번쩍 들며 물었다.

창석은 픽 웃으며 말을 이었다.

“‘유명인’이 이름이다, 은지야.”

“아? 와, 개쩐다.”

은지의 진심 어린 감탄에 은호가 한숨을 내쉬며 중얼거렸다.

“쫌, 이은지. 제발.”

“아, 와, 시, 신기하다!”

곧 있을 예능 참여를 앞두고 은지는 최근 총칭 ‘주둥이 교정’을 받고 있다.

본능적으로 툭툭 튀어나오는 욕설과 방송에 어울리지 않는 말투를 고치기 위함이었다.

하지만 봤듯이 그다지 큰 효과는 없었다.

소 잃고 외양간 고치듯 실수 후 교정의 반복이었으니까.

‘쟤를 누가 말려.’

창석은 웃다가 못 살겠다는 듯 고개를 저었다.

그러다 창석의 시야에 은호가 닿았다.

‘……말리는 애가 딱 하나 있긴 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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