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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매는 비즈니스로 일합니다-228화 (228/309)

남매는 비즈니스로 일합니다 (228)

“NRY랑 협업이요?”

“그래.”

“진짜요?”

“그래.”

DI 뮤직.

어석배는 에이슬이 기뻐할 모습을 그리며 대표실에서 에이슬을 기다렸다.

그리고 그 소식을 전한 그 순간.

“그, 그럼 저…….”

“……울어?”

어석배의 창백한 얼굴이 더 하얗게 질려 갔다.

‘어떡하지?’

이슬이를 정말 아끼고 소중하게 여기지만, 어석배는 그 애정을 표현함에 있어선 굉장히 미숙했다.

그 때문일까.

“아, 죄, 죄송해요.”

죄송할 건 없는데…….

어석배는 속으로 그렇게 생각했지만 딱히 오해를 정정할 생각 따위는 없었다.

하지만 그때였다.

그저께 어석배는 식사 중 창석에게 들은 말이 생각났다.

「“애정이라는 게 당신이 ‘있다’고 이 대가리로만 생각하면 뭐 해. 정작 애들은 말하지 않으면 모르는데.”」

최근 NRY 박창석을 집착에 가까울 정도로 따라 다니다 보니 저녁 식사도 자주 함께하고는 했었다.

그 과정에서 어석배는 자연히 창석의 잔소리에 가까운 수다에 자주 노출됐다.

어석배는 창석도 놀랄 정도로, 창석이 ‘항상’ 몇 시간을 내내 혼자 떠들어도 그걸 집중해 가며 듣는 유일한 인물이었다.

그 때문일까.

창석은 최근 어석배는 물론 DI 뮤직에도 큰 영향을 끼치고 있었다.

어석배는 직원들에게 관심이 없었다.

하지만 직원들에게 나가는 ‘돈’에는 관심이 많았다.

서류로 접하는 액수들.

그 금액만 봐 온 탓에, 어석배의 눈에 직원들은 그저 소모품에 불과했었다.

그래서일까.

어석배는 직원들이 쉬는 모습을 볼 때면 ‘숨만 쉬어도 돈이 새어 나가고 있다’라고 생각했고, 은근히 아래에 경고를 내린 그 결과.

DI 뮤직 본사 전 직원 휴게실에는 앉아서 쉴 수 있는 티 테이블이 사라졌다.

그랬던 어석배 대표였다.

NRY 박창석 대표와 친하게 지내기 전까지는 말이다.

NRY 박창석 대표와 어울리기 시작한 이후, 어석배 대표는 아주 천천히 하나씩 달라지기 시작했다.

일단 사라졌던 티 테이블이 다시 돌아오는 것을 넘어, 휴게실의 소파가 편안한 소파로 바뀌었다.

직원들의 퇴근 시간이 항상 오후 8~9시였건만, 이젠 6시 정각으로 변경.

심지어 늦어도 7시에는 퇴근하라고 윗선에서 말이 떨어졌다.

만일 늦은 야근이 있을 때면 지친 직원들에게 법인 카드를 내어 주며 요깃거리를 하라 전달하기까지.

그 변화가 너무 당황스러웠던 나머지 직원들은 처음엔 혼란스러운 듯 보였다.

일각에선 달라진 어석배 대표의 모습에 ‘곧 가실 때가 된 건 아닐까.’라는 말이 나올 지경이었다.

“……이슬아.”

“네?”

“나는…….”

“나는……?”

“네가…….”

“네……?”

에이슬은 평소와 다르게 느린 어석배의 말이 답답하면서도, 빨리 말해 달라며 독촉하기엔 심장이 너무 조여서 차마 그럴 수가 없었다.

어석배는 양손을 책상 위에서 깍지 끼더니, 마른 입술을 열어 조심스럽게 한 자씩 천천히 읊듯 말을 이었다.

“이, 삼촌은, 네가…….”

“네……?”

“행복해하는 그, 모습이 보고 싶어서.”

“…….”

“우리 이슬이는, 웃을 때가 제일…….”

“…….”

“사랑스러우니까.”

소름 돋았다.

에이슬은 순간 온몸에 털들이 바짝 서며 못 볼 것을 본 듯 얼어 버렸다.

‘싫어서’는 아니었다.

오히려 심각할 정도로 당황스럽고, 예상치 못한 그런…….

‘삼촌, 어디 아프신가……?’

에이슬은 작업실이 위치한 층 바로 옆에 사무실이 있어서 최근 돌던 소문을 자연스레 듣게 됐었다.

그때 들었던 이야기 중 하나가 ‘대표님이 이상하다.’였다.

어지간했으면 농담을 잘 안 하는 부장님까지 “젊은 나이에 요절하시려고 하나.”라는 말을 할 정도였으니까.

하지만 그렇게 심각한 문제는 아니리라 생각했다.

자신이 지켜본 삼촌은 최근 조금 유한 분위기가 맴돌긴 했지만, 항상 찬 바람 쌩쌩 부는 분위기는 여전하던 분이셨으니까.

하지만 오늘 에이슬은 그 기이한 소문을 직접 맞닥뜨리자 이 자리에서 당장 도망치고 싶을 정도로 당혹스러웠다.

“네가 이응 남매들과 같이 뭐든 해 보고 싶다고 했었으니까.”

“…….”

“많이 좋아하는 것 같더라고.”

스쳐 가며 이야기를 꺼냈던 바람이었다.

아마, 매니저 언니를 통해서 들어간 이야기도 있었을 것이고, ‘비하인드 북’에 눈이 멀어 앨범까지 정말, 정말, 정―말 많이 샀던 탓에 모르려야 모를 수가 없었을 것이다.

에이슬이 얼어 있는 그동안, 어석배 대표는 차분하게 빔 프로젝터를 흰 벽에 쏘며 PPT 화면을 띄웠다.

에이슬은 ‘갑자기 PPT는 왜……?’라는 눈으로 어석배 대표를 쫓았다.

PPT 화면을 본 순간, 에이슬의 눈이 크게 뜨였다.

에이슬은 기와집을 본따 만든 마크 아래 쓰인 글씨를 조심스럽게 읽었다.

“동두……깨비……놀음?”

어석배는 이어서 PPT의 다음 페이지로 넘기며 말을 이었다.

“지금 기획 중인 버라이어티 예능 프로그램 제목이다.”

“……!”

에이슬은 눈이 커지다 못해 곧 숨이 멎을 듯 폐를 부풀리며 감탄에 가까운 숨을 터뜨렸다.

‘합숙도 좋고 다 좋은데, 이름이…… 너무 구려요! 삼촌!’

에이슬은 입 밖으로 터질 것 같은 말을 입술만 움찔거리며 애써 견디고 있었다.

* * *

비슷한 시기.

은호와 은지는 음악방송 <저주>의 무대를 마친 뒤 대기실에서 무대 인사를 대기 중이었다.

“그럼, 그렇게 알고 있도록 하고, 자세한 이야기는 회사에서 더 해 주마.”

“네.”

“잘하고 와라.”

“네.”

창석에게 전화가 왔었다.

전화를 끊은 후, 은호의 표정은 눈에 띄게 어두워졌다.

“합숙…….”

은호가 담담하게 말하자 조용히 은지가 말을 덧붙였다.

“전 여친이랑 합숙이라니!”

“X쳐. 좀. 심란해 죽겠는데.”

은호는 발끈한 듯 은지의 입 안에 만두를 밀어 넣으며 말했다.

은지는 놀리는 게 재미있는지, 낄낄거리며 입안 한가득 들어찬 만두를 오물거리며 씹었다.

상당히 큰 크기의 만두였음에도 불구하고 순식간에 꿀꺽 삼켜 버렸다.

“괜찮겠어?”

“안 괜찮을 게 뭐 있어. 그때 걔가 아니었잖아.”

은호와 은지는 팬 사인회 당시 큰 충격을 줬던 에이슬을 떠올리며 말했다.

“전혀 다르긴 했지. 그럼 뭐가 심란한 건데?”

“예능을 할 거라고는 미리 들어서 알고는 있었는데, 그게 합숙 프로그램인 줄은 몰랐네.”

“재미있을 것 같은데.”

“넌 그렇겠지.”

은호는 마른세수를 하려다 순간 얼굴에 올린 메이크업을 떠올리며 소파에 등을 기댔다.

경상도에는, 정확히는 경상북도에는 박 대표가 가지고 있는 곳이 두 곳이 있다.

톡신과 함께 머물렀던 당시 펜션과 세월이 느껴지는 기와집인 고향 집이 있다.

이번 촬영지로 제안이 나온 건 현재 빈집으로 놀고 있는 고즈넉한 분위기의 창석의 고향 집.

“동두깨비놀음…….”

“그게 뭔데?”

“나도 몰라…….”

“아, 찾아보니까, 소꿉놀이의 경상도 방언이래.”

“아아.”

은호가 창석에게 들은 제목을 중얼거리자, 행동력 빠른 은지는 호기심을 못 이기고 바로 검색해 봤다.

은호는 은지의 설명에 이해했다는 듯 한탄을 흘렸다.

연예인들 여럿이 모여 시골 생활을 하는 그런 버라이어티 예능에, ‘소꿉놀이’를 콘셉트로 잡아 나온 이름이 바로 ‘동두깨비놀음’이라는 말인데…….

‘이름…… 너무 구려.’

가제라 언제든 변경할 수 있다는 것이 그나마 다행이었다.

문제는 대표님이 말하는 것으로 봐선 이번 프로그램의 가장 큰 후원자인 두 대표님께서 이 구린 이름이 상당히 마음에 든 듯한데…….

“하…….”

“……?”

은호의 한숨에 은지가 갸웃거리며 은호를 쳐다본 그때였다.

똑똑.

“네에!”

대기실 문을 노크하는 소리에 은지가 밝게 외쳤다.

문이 열리자, 현우와 함께 방송 스태프가 서 있었다.

“곧 단체 인사 올라갈 텐데, 준비하고 나와 주세요.”

스태프는 짧은 알림만 하고서 곧장 대기실을 떠났다.

두 무대 전에 무대를 한 탓일까.

쉬는 시간도 적당했던 데다, 시간상 무대를 했을 때 비해 흐트러진 부분도 그리 많지 않았다.

“바로 가자.”

“어.”

은호와 은지는 단장을 마치고 곧장 복도로 나섰다.

“축하드려요! 선배님!”

“아, 감사합니다.”

DI 뮤직 소속이라는 것만 알고 있는 낯선 한 아이돌 그룹이 꾸벅 인사를 건네며 말했다.

“뭘 축하한다는 거야?”

“몰라?”

“근데 왜 감사하다고 해.”

“그럼 뭐라 그러냐.”

“물어봤어야지, 멍청아.”

“응. 그럴 시간에 올라가면 어차피 알 거 아니야.”

“…….”

은호와 은지는 평소와 다름없이 투덕거리며 무대로 향했다.

일찍 나왔다고 생각했는데, 무대에는 이미 먼저 도착한 가수들이 많았다.

“안녕하십니까.”

“안녕하세요.”

은호와 은지는 후배와 선배 관계없이 허리를 숙이며 인사를 건넸다.

“안녕.”

“무대 잘 봤어요.”

은호와 은지의 인사에 밝게 답을 주는 선배들 틈에서, 허리가 폴더처럼 접힐 듯 인사하는 후배들도 있었다.

한편, 그런 은호와 은지를 은근히 무시하는 눈길로 바라보는 한 그룹도 있었다.

은지는 일말의 관심조차 없었고, 은호 또한 딱히 쓰지 않으려 했다.

회귀 전에도 저런 부류는 있었고, 자신이 그 부류였던 적도 있었으니까.

무엇보다 그 예능의 구린 이름과 에이슬과 합숙 등.

대기실에서 들은 신경 쓰이는 이야기 때문에 주변을 신경 쓸 여유가 없던 탓도 컸다.

그렇게 카메라에 빨간 불이 들어오고, 은호와 은지는 본능에 가깝게 예의상 미소를 입가에 띄웠다.

“11월 첫째 주 1위 후보, 이응의 저주!”

“캐럿 스웨이의 살려~ 줘!”

“엘핀의 아네, 모네!”

큐 사인이 들어오고 MC를 맡은 배우와 아이돌이 1위 후배를 소개하고 있었다.

MC들은 이어서 각 부분 점수를 발표하며 숫자를 읽어 갔다.

태현의 집에서 머물던 그날.

은호는 1위에 대한 욕심을 완벽히 버린 이후이기 때문일까.

전에도 1위 후보에 오르긴 했지만, 매번 아니었으니까.

‘당연히 이번에도 아니겠지.’

은호는 그렇게 생각하면서 손뼉이나 잘 칠 생각으로 준비 자세를 하고 있던 그때였다.

“인기뮤직! 11월 첫째 주를 장식할 1위는!!!”

“팔천백팔 점! 이응의 저주입니다!!!”

“축하합니다!”

MC들의 격한 축하가 쏟아졌다.

한편, 정말 일말의 기대조차 하지 않은 탓인지 은호는 손뼉을 치기 직전인 듯한 자세에서 뻣뻣하게 굳어 있었다.

놀라 굳은 건 은지 또한 마찬가지인 것 같았다.

그때.

은호와 은지는 서로를 돌아보고, 그 순간.

둘은 닮은 얼굴만큼이나 똑 닮은 보기 좋은 미소를 꽃피우며 웃음을 터뜨렸다.

다른 그룹을 위한 박수를 준비하던 은호의 손에는 돌잡이를 하는 아이처럼 트로피와 함께 수상 소감 발표를 위한 마이크가 꼭 쥐어졌다.

“정말 예상을 못 해서 많이 당황하긴 했는데, 어……. 저희 박 대표님과 NRY 전 직원 형, 누님들 그리고 가장 중요한 우리 E%분들 항상 응원해 주셔서 감사하고, 사, 사람합니다.”

“똑바로 말해!”

“사랑합니다!”

훅 들어온 은지의 잔소리에 은호가 화들짝 놀라며 버럭 소리쳤다.

잠시 후.

그럴 때도 있지

눈을 뜨는 매일

들썩거리는 <저주>의 익숙한 박자가 이어지는 그동안, 은호는 침착함을 되찾으며 노래하던 그때였다.

은지는 있는 힘껏 은호의 목에 매달리며 들뜬 기분을 담아 장난을 쳤다.

“착한 놈은 상을 받고”

“꺄악, E%야! 우리 상 받았어!”

가사 속에 상과 트로피를 언급하는 부분이 있는 탓인지, 은호 파트에 은지가 장난스럽게 끼어들며 외쳤다.

“으, 커억!”

은호는 순간 은지의 무게를 못 견디고 휘청하더니 마이크로 힘들어하는 소리를 흘려보내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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