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남매는 비즈니스로 일합니다-225화 (225/309)

남매는 비즈니스로 일합니다 (225)

수상

“늦었나?”

일찍 쫓아왔다고 생각했는데, 복도로 달려 나오니 수상한 사람은 이미 보이지 않았다.

그래도 바깥까지 나가 보면 보이지 않을까.

은호는 멈칫했던 다리를 다시 움직였다.

“워워워워!!!”

그때였다.

“형?”

“뭘 그렇게 급하게 가. 괜찮냐?”

“아, 네.”

은호는 정신없이 달리다 인혁과 부딪칠 뻔했다.

클라우드 멤버들은 이제 막 준비를 마치고 촬영지에 도착한 모양이었다.

“무슨 일 있어?”

뒤이어 로아 누님과 오별님, 아니.

에나 누님이 뒤따라 복도로 들어왔다.

“혹시 여기서 뛰어나간 수상한 사람 못 보셨어요?”

“수상한 사람?”

“봤어?”

은호의 질문에 로아가 갸웃거리며 대꾸했고, 인혁이 로아를 뒤따라온 다른 멤버들에게 물었다.

하지만 다들 고개를 저어 대며 모르겠다는 반응만 보였다.

그때, 무언가 떠올린 듯 현지가 놀라며 입을 열었다.

“아.”

“봤어?”

“사람은 모르겠고, 엄청 커다란 고양이…… 같은 건 본 거 같아.”

“…….”

은호는 기대했던 만큼 실망도 큰 듯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것도 잠시.

고양이라는 단어에 순간 은지의 방에서 봤던 사람의 실루엣과 아이스크림 봉지를 깔고 앉아 있던 고양이 한 마리가 떠올랐다.

“그 고양이.”

“응?”

“무슨 색이었어?”

은호가 날카롭게 묻자, 현지는 조금 놀란 듯 어깨를 들썩이다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그, 글쎄…….”

현지는 어쩐지 눈을 꼭 감은 채 그때를 떠올리려고 애를 쓰는 듯 보였다.

어쩐지 그 모습이 찝찝해서 물었다.

“왜?”

“그게, 되게 이상한 거 아는데……. 기억이 잘 안 나네. 언니는 기억나?”

현지가 에나 누님을 보며 물었다.

“우리가 고양이를 봤어?”

“아닌가?”

단체로 단기 기억상실이라도 걸린 것처럼 갸웃거리기 바빴다.

그때였다.

인기척이 느껴져 뒤를 보자, 쫓아온 건지.

현우와 도진이 뒤에 있었다.

“놓치셨어요?”

“아, 응.”

은호는 지금 쫓기엔 늦어 버린 복도 끝 밖으로 나가는 문을 노려보며 혀를 찼다.

‘아.’

순간 회귀 전 도진이 형이 익숙한 나머지 말이 짧아졌다.

도진도 짧은 대답에 놀란 듯 눈을 끔뻑거리며 은호를 보고 있었다.

“아, 생각하느라 죄송해요. 네. 놓쳤어요.”

“아.”

어떻게 상황은 넘긴 것 같아서 다행이었다.

은호는 도진과 현우를 돌아보며 물었다.

“그러고 보니, 어떻게 알았어요?”

“뭘요?”

“제가 누구 쫓아가고 있던 거.”

“아까 은지 씨한테 접근했던 스태프 쫓아가는 거 아니었어요?”

“맞긴 한데.”

도진 형은 이은지를 닮았다.

묘하게 눈치가 없는 듯하면서도 회귀를 눈치챘던 은지처럼 미묘한 구석에서 눈치가 빠른 것까지.

내가 멀쩡한 척 웃고 있을 때도.

다들 ‘은호가 이젠 다 회복한 것 같아서 다행이다’라며 떠들 때도.

도진 형만이 유일하게 내가 거짓으로 꾸며 내며 살고 있다는 걸 눈치챘었다.

몰래 술을 홀짝이던 그때도.

형은 조용히 내 집에서 숨겨 놓은 술을 몽땅 꺼내다가 버려 버리기까지 했으니까.

팬의 선물에 술이 있었다는 것까지는 생각하지 못한 모양이지만.

그랬던 사람이라 그런가.

놀랄 건 없었다.

“자자, 놓쳤으면 별수 없지. 쓸데없는 잡상인 때문에 촬영 늦어질라.”

“아…….”

“얼른 촬영이나 하러 가자.”

그때, 인혁이 은호의 목에 팔을 걸었다.

은호는 깃을 건드는 인혁의 팔을 치워 내며 말했다.

“형, 깃털 수제로 붙인 거라 떨어지면 슬기 씨가 형 원망할지도 몰라요.”

“아.”

클라우드 남자 멤버들에게 슬기 씨는 무서운 누님.

클라우드 여자 멤버들에게는 반대로 귀엽다는 분위기였던가.

극과 극인 느낌만큼이나 멤버들의 표정도 확연하게 갈라졌다.

여자 멤버들은 ‘맞아’라며 맞장구를 치며 웃었고, 남자 멤버들은 일제히 ‘윽’ 질겁하는 표정을 지었다.

당연한 말이지만.

슬기 씨는 평소 안무를 하면서 의상이 망가지는 건 오히려 자신의 잘못이라고 하시는 편이다.

하지만 클라우드 형들은 장난기가 많은 편이라, 조금 자주.

은지나 나나 본인들의 의상을 장난치다가 망가뜨린 적이 있다.

슬기 씨는 대표님과 의상 문제로 자주 이야기를 나누는 사람 중 하나이기 때문일까.

그날 클라우드 팀원들은 약 한 시간 동안 슬기 씨의 잔소리를 들었다.

멈추지 않고 이어지는 잔소리에 클라우드 남자 멤버들은 단체로 슬기 씨 앞에 무릎을 꿇은 채 ‘잘못했습니다’를 합창했다.

그런 전적이 있는 만큼, 인혁은 언제 그랬냐는 듯 은호의 목에 걸었던 팔을 공중에 번쩍 들었다.

‘안 건드렸어!’를 강력하게 어필하는 것 같았다.

“하하.”

수상한 사람으로 예민해진 신경이 잠시나마 가라앉은 기분이 들었다.

은호는 촬영장이 있는 방향으로 몸을 돌리며 문 쪽으로 눈길을 보냈다.

연탄이었을까.

‘집에 가면 물어봐야겠다.’

* * *

“뜨, 흐, 허, 흐.”

길었던 뮤직비디오 촬영이 마무리를 향해 가고 있을 때.

대망의 ‘그’ 장면을 촬영할 시간이 찾아왔다.

크로마키 중앙에 설치된 하얀 타일로 만들어진 정사각형 모양의 욕조.

준비된 욕조 안에 한가득 채워지는 물.

이어서 빨간 염료가 풀리고 물은 순식간에 피처럼 붉은색을 띠었다.

“검은색을 조금 더 풀어 주는 게 좋을 것 같다.”

“네.”

하지만 색깔이 아직 철수의 마음엔 들지 않는 듯, PD의 명령에 스태프들이 분주하게 움직이며 추가로 검은색의 염료를 더 풀어 넣었다.

철수의 판단대로 확실히 살짝 탁해진 붉은빛은 이전보다 조금 더 핏빛에 가까운 색깔이 되었다.

물에 색을 타는 그 시간 동안 은지는 촬영장 한구석.

영혼이 빠져나간 듯 의상과 전혀 어울리지 않는 모습으로 의자 세 개를 침대 삼아 퍼져 있었다.

“옷은 날개라던데, 넌 날개를 아예 찢어 버리는구나.”

“이은호라는 X새끼를 먼저 찢어 버릴 수는 없으니까.”

“찢…… 하여간, 오빠한테 못 하는 소리가 없어.”

“하. 하. 그 오빠 새끼가 동생한테, 아유 X발, 말을 말지.”

은지는 가식적으로 웃다가 감았던 눈을 뜨며 사납게 은호를 노려봤다.

“가라, 이은호. 나 예민하다.”

“싫어. 의자 여기밖에 없어.”

은호는 은지의 다리가 올려진 의자를 쑥 빼내며 말했다.

예상한 일이었는지, 은지의 다리는 툭 떨어지지 않고 공중에서 천천히 내리며 자세를 고쳐 누웠다.

그 모습이 못내 못마땅했던 은호가 의자를 하나 더 빼내려고 접근하던 그때였다.

“X랄 하지 마라. 진짜 때린다.”

움찔.

은호는 의자로 뻗어 가던 손을 거두고 조금 전 빼낸 의자에 얌전히 앉았다.

평소라면 더 장난을 치려고 했을 텐데, 은지의 상태는 평소보다 눈에 띄게 험악했다.

“어지간히 물에 들어가기 싫은가 보네.”

“당연한 거 아니야?”

은지는 밝은 조명이 눈이 부신 듯 손등으로 눈가를 가리며 말했다.

“내가 들어갈 때는 신나게 놀리더니.”

“아니, 그땐 그때고.”

그 순간, 은지는 억울했는지 누워 있던 의자에서 벌떡 일어나며 말했다.

“그리고 그땐 니가 회귀했다던가 그거 말하기 전이었잖아. 기억 없었잖아. 이, 이 개자식아!”

“넌 옷이 아니라 주둥이를 갈아 끼워야겠다.”

은호의 태연한 대꾸에 은지는 웃으며 중지를 곱게 세웠다.

“응. 지 주둥이는.”

온갖 보석을 때려 박은 화려한 네일 아트를 한 손톱이 새어 나오는 조명 빛을 받아 화려하게 반짝였다.

“보석 엿이나 드세요.”

“하하.”

은호는 같이 중지를 세우려다, 재미있는 생각이 났는지 은지의 중지를 붙잡으며 벌떡 일어났다.

“뭐―!”

은지는 예상치 못한 은호의 행동에 놀란 것도 잠시.

“컥! 헉.”

은지는 본능에 가까운 움직임으로 은호의 복부에 주먹을 꽂아 넣었다.

먹는 척 깨물던가 은지의 중지를 꺾는 것으로 복수하려던 은호의 계획은 날아든 은지의 주먹에 보기 좋게 파훼 당해 버렸다.

“아, 윽.”

은호가 배를 움켜쥐며 주르륵 흘러내렸다.

“그, 그러게 왜 덤벼서.”

은지는 뻔뻔하게 말은 했지만, 한숨을 흘리는 은호를 걱정스럽게 바라봤다.

“야, 이은호. 괜찮아?”

“아…….”

놀라서 힘 조절을 잘못했나?

“이은호?”

“아, 아파.”

“잘못 맞았어?”

은호는 슬쩍 얼굴을 가리며 움츠렸던 상체를 들었다.

그리고 얼굴을 가렸던 손이 중지만 남기고 모두 접혔을 때.

은지는 은호에게 걱정하던 눈빛을 지우고 싸늘한 시선을 보냈다.

“아…….”

“아픈 줄 알았냐?”

퍽.

은지는 이어서 은호의 정강이를 걷어차며 이를 갈았다.

“안 아프면 더 아파야지.”

“아, 이번엔 진짜 맞았어.”

“흥.”

은지는 콧김을 내뿜으며 철수 PD에게로 떠났다.

슬슬 촬영 준비가 끝났기 때문이었다.

한편, 은호는 웃으며 그런 은지를 바라봤다.

사실 처음 맞았던 배는 정말로 아팠다.

힘이 얼마나 강한지, 순간 속이 울렁거릴 정도였으니까.

하지만 두 번째로 걷어차인 정강이는 강하게 차는 척만 했지, 실상은 툭 치는 정도에 그쳤다.

“본인이 쳐 놓고 걱정하기는.”

장난은 장난으로 끝났으면 하기에 일부러 아프지 않은 척 상황을 넘겼다.

은지가 저렇게 곧 울듯이 굴 때면 나도 오빠는 오빠인지…….

이은지의 꼬맹이 시절.

「“허어어엉. 오빠 듀거허어엉.”」

앞니를 잃어버려서 발음이 새던 와중에 엉엉 울던 은지의 모습이 떠올랐다.

그 무렵도 그랬다.

그땐 이은지 때문에 아팠던 건 아니고, 단순 감기에 걸려서 잠시 크게 앓았는데.

약 한 알이면 나을 일이었지만, 그 약 하나가 구하기 힘들어서 괜히 크게 앓은 적이 있었다.

그때 눈물 콧물 다 빠져 나와서 엉엉 울던 은지.

지금은 몸이 커지면서 징글징글해졌지만, 솔직히 그때의 은지는 좀 바보 같아서 귀여웠다.

사실 회귀 전에는 이번처럼 걱정하는 모습을 보여도 개의치 않고 다시 투덕거리며 싸우고는 했었다.

‘머리가 크면서 다 달라진 줄 알았는데.’

이은지가 세상을 떠났던 그때.

뒤늦게 보게 된 일기장 속 은지는 여전히 그때의 은지였다.

‘그래서 그런가.’

한쪽이 항상 존재할 땐 없어져도 딱히 큰 문제는 없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잃어 보니까 알겠더라.

그래서 생각했다.

쟤가 나 때문에 걱정하는 일은 없었으면 좋겠다고.

‘솔직히 입 밖으로 내기엔 오글거려서 절대 할 수 없는 말이지만.’

아주 잠시 감상에 잠겨 있던 그때였다.

은호는 곧 유레카를 외칠 듯 눈을 크게 떴다.

‘오. 다음 곡 가사, 이걸로 갈까?’

* * *

“정신일!”

“아, 기다려 봐!”

“곧 시작해! 빨리!”

이한대 앞 카페에 노트북 한 대를 중간에 두고, 신일과 은정은 경건한 마음으로 7시 정각을 기다렸다.

대학 행사가 열리던 당시, E-UNG의 파트너로서 무대에 올랐던 그날 이후.

무대에 올랐던 두 사람은 같은 대학이긴 하나 딱히 아는 사이는 아닌 채로 시간을 보냈었다.

‘TIME’ 앨범이 나오기 전까진.

팬 사인회가 있고 난 뒤, E-FAN을 보던 그때였다.

은호가 술병으로 어질러진 배경 중앙에 놓인 소파에 앉아 있는 사진을 본 순간.

은정은 포스터까지는 바라지도 않았다.

적어도 그 포토 카드만큼은 가지고 싶었다.

절실하게.

포토 카드 북을 뒤적이던 은정은 아깝지만, 은지의 사진 두 장을 골라 들었다.

어떡하겠어.

급한 사람이 더 내야지.

은정은 눈물을 머금으며 E-FAN에 글을 하나 올렸다.

[(Wise 촬영 당시 히피풍 의상을 입은 은지가 풍경을 구경하는 모습)

(더운 오후 뮤직비디오 촬영 당시 정면 컷)

이은호 이 길 위, 해가 뮤직비디오 소파 컷과 교환 원합니다.]

└ 혹시 직거래로 가능할까요

적어도 몇 시간은 걸릴 줄 알았는데, 약 10분 조금 지났을 때였다.

직거래 제안에 조금 긴장되긴 했지만, 별일은 없겠거니 생각하며 답을 했다.

└ 이한대 쪽인데 이쪽으로 오실 수 있으신가요?

└ 아? 저도 이한대 다니는데 아지트에서 만날까요?

그날.

은정은 완벽한 덕질 메이트를 얻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