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매는 비즈니스로 일합니다 (223)
골목 구석 한 상가 빌라 앞.
“여기 맞나?”
평범한 인상의 남자가 흘러내린 각진 안경을 고쳐 쓰며 말했다.
남자가 바라보는 간판에는 깔끔한 직선으로만 이뤄진 NRY 엔터테인먼트의 마크가 새겨져 있었다.
이런 평범한 건물에 달기엔 마크가 아까울 정도로 멋들어진 디자인인 것 같아, 남자는 피식 샌 웃음을 흘렸다.
“건물이 생각보다는, 허름한 느낌이네.”
실망감이 섞인 목소리였다.
건물 자체는 평범했지만 최근 기사에서 NRY 엔터테인먼트에 대해 이렇다 저렇다 떠들어 대던 것에 비하면 ‘허름하다’라는 말이 틀린 말은 아니었다.
남자가 NRY 엔터테인먼트 사옥 안으로 들어서려는 듯 문손잡이를 붙잡은 그때였다.
“……따 따단 딴딴……!”
남자가 건물 안으로 들어가려던 그 순간 안에서 노래라도 부르는 건지, 목청 큰 여자가 ‘딴딴’거리는 소리가 새어 나왔다.
놀란 남자는 잠시 멈칫하더니 이내 다시 문을 열기 위해 손잡이를 당기려던 그 순간,
하하하하하하.
이번엔 이어서 여럿이 다 같이 웃는 소리가 밖까지 터져 나왔다.
두 차례나 문을 열려던 행동이 저지당해서인지, 남자는 처음보다 훨씬 긴장한 모습으로 ‘후―!’ 하고 힘 있는 숨을 한 번 뱉었다.
이후 눈에 힘을 주며 벌컥 NRY 엔터테인먼트 사옥의 문을 여는 동시에 남자는 단전에서 온 힘을 끌어 올리며 외쳤다.
“안녕하십니까!”
“……!”
“오늘 NRY에서 면접을 보기로 한 전도진이라고 합니다!”
갑자기 들이닥친 도진의 힘찬 인사에 회사 내부는 얼어붙은 듯 고요해졌다.
* * *
“……!”
슬기의 대답에 전 직원들이 빵 터진 그때였다.
“안녕하십니까!”
회사 문이 벌컥 열리더니 굉장히 익숙한 얼굴이 우렁찬 인사를 했다.
은호는 늘 그랬듯 다른 사람들보다는 비교적 차분하게 문을 돌아봤다.
익숙한 이름이 들리기 전까지는.
“오늘 NRY에 면접 보기로 한 전도진이라고 합니다!”
은호의 눈이 곧 튀어나올 듯 크게 뜨였다.
회귀 전 은지와 똑 닮은 성격이었던 매니저, 도진이 형.
“매니저…….”
“아, 네. 맞습니다. 오늘 매니저 면접 보기로 했던 전도진이라고 합니다.”
혀, 형이 여기 왜 있어?
은호가 당황하고 있던 한편.
나지막이 흘렸던 ‘매니저’라는 말을 오늘 면접 보러 왔냐는 질문으로 알아들은 듯, 도진은 은호의 기억 속 항상 늘어지던 모습과 달리 굉장히 씩씩하게 대답했다.
낯선 연예인들을 마주해서인지 도진의 눈빛이 반짝거렸다.
“은호야?”
인맥 폭이 극도로 작았던 은호가 놀란 탓일까.
웃음소리에 이끌려 막 대표실에서 나온 창석이 은호보다 더 놀란 표정을 하며 물었다.
“아는 분이냐?”
창석의 질문에 이번엔 도진이 당황하며 은호를 다시 돌아봤다.
‘나 알아?’
도진이 입 밖으로 소리를 낸 건 아니었다.
하지만 은호는 회귀 전 도진과 긴 시간을 같이 지냈던 탓인지 도진의 목소리가 환청으로 들릴 지경이었다.
거기다 회귀 전에는 항상 뻔뻔한 얼굴만 봐온 지가 몇 년.
저런 풋풋한 도진 형을 가만히 보고 있자니, 이은지가 안 하던 짓을 할 때를 보는 기분과 굉장히 흡사했다.
소름 돋는다는 말이다.
한편, 그런 심정은 은호뿐만이 아닌 듯, 은호가 옆을 돌아보자 은지의 표정이 썩어 있었다.
시선에서부터 진심 어린 불쾌감이 어려 있었다.
‘동족 혐오……?’
또는 거울이랄까.
은호의 시선에선 남매인 자신보다도 도진이 은지와 더 닮은 성격과 성향을 가지고 있었다.
은지 다음으로 누구보다 가까웠던 형이었지만, ‘안다’라고 대답하기엔 ‘이 시간’에서의 형과 난 마주친 적조차 없는 사이.
“아뇨. 그냥, 뵌 적 있는 분인 줄 알고 착각했습니다.”
“아, 제가 좀 평범하긴 하죠. 하하.”
은호가 고개를 숙이며 간단히 사과하자, 도진이 능청스럽게 대답하며 상황을 풀어냈다.
그동안 은지는 은호를 쿡쿡 찌르며 신호를 보냈다.
‘맞지? 예전에 내가 싫어하던 그 매니저 오빠.’
‘어. 맞아. 도진이 형.’
‘모른 척하는 게 맞겠지?’
‘당연히.’
은호와 은지는 고개 까딱임과 눈알만 굴려 가며 열심히 소통하더니 곧 결론을 낸 듯 동시에 고개를 끄덕였다.
‘흐음.’
창석은 둘이 신호를 주고받는 모습을 보며 은호가 거짓말을 하고 있다는 걸 알았다.
하지만 그냥 이유가 있겠거니 넘겼다.
어차피 은호와 은지도 오늘 면접에 참여하기도 하니까.
문제가 있다면 알아서 떨어뜨리겠지.
「“11시쯤에 맞춰서 회사로 오세요.”」
창석은 그러려고 일부러 도진의 면접 시간을 은호와 은지가 회사에 오는 점심쯤으로 잡았다.
“잠깐 둘 다 들어와 봐.”
“왜요?”
“회의 좀 하게.”
“저, 저도 들어가나요?”
도진이 묻자, 창석은 주변을 둘러보며 누군가를 찾았다.
“저기 있네. 현우야.”
“네.”
“잠깐 도진 씨 하고 같이 있어 드려. 오래 걸리진 않을 테니까. 호출하면 모셔 와.”
“네.”
그림자처럼 은호와 은지를 뒤따라온 현우가 덤덤하게 답했다.
은호와 은지가 창석을 따라 들어가고, 그동안 현우는 도진을 자리로 안내했다.
“여기 앉아 계십시오.”
“아, 네!”
현우의 안내에 손님용 의자에 가만히 앉은 도진.
이후 현우도 한 자리 떨어진 곳에 뒤따라 앉았다.
묵묵히 박 대표의 호출을 기다리는 현우를 바라보며, 가만히 입 다물고 있는 건 1분까지가 한계인 도진으로선, 현우 같은 묵직한 분위기를 가진 사람을 보면 자신과 전혀 다른 종족처럼 느껴졌다.
‘와, 씨. X나 멋있다.’
박 대표님한테 신임받는 모습이 부럽기도 했다.
현우를 잘 모르는 도진은 마냥 그렇게만 생각했지만, NRY 내에서 가장 현우를 잘 알고 있는 슬기는 다른 생각을 하고 있었다.
‘왠지…….’
오늘따라 기분 좋아 보이시네.
평소와 크게 다를 건 없지만, 슬기의 시선에선 현우가 묘하게 어딘가 들떠 보이는 느낌이었다.
슬기의 직감 그대로 현우는 겉으로는 티를 내지 않았지만, 곧 후임이 생길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평소보다 아주 조금 들뜬 기분이긴 했다.
그렇게 약 10분쯤 지났을 때였다.
지루함이 한계에 다다른 도진이 손과 발을 꼼지락거리기 시작할 무렵.
회의를 끝마친 듯, 현우의 휴대폰이 진동했다.
“가시죠.”
“예?”
문자로 전달을 받은 듯 현우가 휴대폰 화면을 끄며 도진에게 말했다.
당황한 도진은 잠시 되묻긴 했으나, 일단 몸은 현우를 따라 벌떡 일어났다.
현우가 앞서 걸으며 박 대표가 들어갔던 회의실 문으로 향하자, 엄마 닭을 쫓아가는 병아리처럼 도진도 뒤따라 현우를 쫓았다.
그렇게 들어선 회의실 안.
처음 사옥에 들어섰을 때의 가벼운 분위기는 흔적조차 남지 않은 무거운 공기.
도진은 꼴깍 마른침을 삼키며 은호와 은지, 박 대표를 나란히 바라봤다.
“안, 안녕하십니까! 저는, 이번에 매니저 공고를 보고 연락드린 전도진이라고 합니다. 태어난 곳은―.”
은호는 살짝, 아니.
많이 당황했다.
회귀 전 도진의 면접은 본 적이 없었기도 했지만, 도진이 입버릇처럼 자랑해 댄 것 중 하나가 자신이 입사하던 당시 면접 이야기였다.
「“내가 자기소개 딱 하는데! 대표님 표정이 굉장했었다고!”」
은호는 창석을 돌아봤다.
‘굉장……?’
어떤 의미론, 틀린 말은 아니었다.
굉장하긴 하다.
창석의 시선은 싸늘하다 못해, 은호마저 흠칫할 정도로 살벌한 눈빛을 하고 있었으니까.
안 그래도 몸집도 크신 분이 저러시니, 마치 육식동물 앞 초식동물처럼 본능적으로 움츠러드는 기분이었다.
그건 도진 또한 마찬가진 듯, 도진은 주절거리던 자기소개가 패닉 상태가 되면서 점점 산으로 가고 있는 것이 느껴졌다.
“취미는 영화 보기이며―.”
구라 치고 있네.
애니 보기면서.
“평소 주말에는 독서를 자주 하고―.”
그래.
만화책도 독서는 독서지.
“등산하러 다니며 체력을 길렀고―.”
등산은 개뿔.
산 쪽으로는 차 끌고도 가기 싫어하던 사람이.
은호는 속으로 도진의 거짓말에 하나하나 심드렁하게 반박했다.
은지는 꾸벅꾸벅 졸음이 몰려오는 게 눈이 보였다.
1분 동안 사람을 졸 수 있게 만드는 것도 재주는 재주였다.
“대학도 나오셨고, 기존에 다니던 곳인 턴업 엔터도 나쁜 기획사는 아니었을 텐데…….”
“아…….”
턴업 미디어 엔터테인먼트.
DI 뮤직급은 아니나, NRY 엔터테인먼트보다는 더 잘나가고 있는 기획사다.
NRY 엔터테인먼트가 이제 막 성장을 시작한 단계라면, 턴업은 이미 자리를 잡은 기획사니까.
하지만 그런 회사를 스스로 관두고 이곳으로 이직을 결정했다.
“사내에서 무슨 문제라도 있었습니까?”
“아니요. 아뇨! 문제 같은 건 없었습니다.”
“그럼 굳이 이쪽으로 옮기려는 이유가 뭡니까?”
창석이 이해할 수 없다는 듯 미리 받은 이력서를 훑으며 물었다.
“도진 군 정도의 경력이면 턴업 이상으로 충분히 더 좋은 기획사에도 지원할 수 있을 텐데?”
“그, 그렇습니다.”
다소 뻔뻔한 대답에 창석의 한쪽 눈썹이 들썩였다.
“그런데도 우리 회사에 당신이 들어올 이유가 있습니까?”
창석의 질문에 지금껏 패닉 상태였던 도진의 눈이 다시 똑바로 뜨였다.
“그, 그건, 박창석 대표님께서 차리신 회사이기 때문입니다.”
“나?”
여전히 긴장한 탓에 말을 조금 더듬거리긴 했지만 괜찮았다.
적어도 1분 내내 자신의 고향과 과거 및 소설 같은 취미를 늘어 두는 것보다는 아주 훨씬.
“저는, 대표님 같은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당시 제가 할 수 있는 일이 매니저 일이었기 때문에 그렇게 시작했고…….”
이후 도진의 입에선 창석의 연대기가 이어졌다.
톡신을 구했던 그 시절의 이야기였다.
“그러다 최근 NRY 엔터테인먼트의 행보를 보며 대표님께서 그때와 여전한 분이신 점에 이끌려 이곳으로 이직을 결심하게 됐습니다.”
피식.
은호는 실실 올라가는 입꼬리를 차마 막을 수 없었다.
지금껏 단순히 낯선 사람이었던 전도진이 갑자기 익숙한 사람으로 느껴진 탓이었다.
은호의 기억 속 회귀 전 도진은 이런 사람이었다.
대표님 덕후.
창석은 처음엔 당황한 듯했지만, 이후에는 집중하며 도진의 답을 듣다 물었다.
“도진 군은, 그럼 우리 회사에 들어오면 누구의 매니저로 활동하고 싶습니까?”
“저는…….”
도진은 힐끔 은호와 은지를 난감하게 바라보다 다시 창석에게 눈을 돌리며 답했다.
“아무래도 대표님을 알게 된 계기였던 톡신 분들의 매니저가 된다면 좋을 것 같습니다.”
“알겠습니다. 오늘은 이만 돌아가시고, 결과는 직원들과 회의 이후 오후 6시 안으로 연락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아, 끄, 끝인가요?”
“네. 나가시면 됩니다.”
“네…….”
도진은 혼란스러운 기색이었다.
뭔가 더 이야기하고 싶은 것들이 있어 보였지만, 박 대표의 축객령에 어쩔 수 없이 NRY 엔터테인먼트 사옥을 나왔다.
멍하니 골목을 벗어난 순간, 도진은 혼이라도 빠져나간 듯 허망한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개망했다.”
* * *
도진이 나가고, 은호와 은지는 동시에 피식 웃으며 입꼬리를 올렸다.
“끝까지 거짓말하면 떨어뜨리려고 했더니만.”
“하하핰.”
박 대표가 콕 집어 문제점을 말하자, 은호는 이마를 짚으며 웃음을 터뜨렸다.
창석은 원래 도진의 경력을 본 이후 바로 채용하려 했으나, 한 번 인상이나 살펴볼 겸 면접을 진행했었던 거였다.
하지만 오히려 면접에서 척 봐도 알 것 같은 거짓 섞인 자기소개에 도리어 마음이 바뀔 뻔했다.
“긴장해서 그런 것 같은데, 당장 있는 사람이 아니라 명확하게 목표도 있으시고 일은 잘할 거 같아요.”
은호는 회귀 전 도진에게 많은 도움을 받았던 은혜 겸 조용히 한마디를 덧붙였다.
창석은 은호의 판단에 의심 어린 눈초리를 던지다, 이내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
“그래. 안 그래도 턴업 쪽에 물어봤더니 정도 많고 일도 나쁘지 않게 잘하는 괜찮은 사람이라고는 하더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