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매는 비즈니스로 일합니다 (222)
“이러한 부분의 ‘케어’는 필수인 부분이며―.”
창석은 TaKa 엔터테인먼트에서 내 가수들이 고생하는 일은 지긋지긋하게 지켜봐 왔었다.
‘공인’이 견뎌야 하는 부분은 어디까지인가.
그들 역시도 사람이기에 상처를 받는다.
알아채지도 못한 새에 곪아 제 목숨을 내버리는 사람도 있었다.
회사는 연예인들의 이미지 및 회사의 ‘가치’를 위해 시끄러운 일이 생기면 들키지 않도록 쉬쉬하는 분위기가 강하지만, 자신은 지금 자유로우니까.
거리낌 없이 외칠 수 있는 내가 가장 먼저 소리치고 긍정적인 결과를 만들어야 한다.
그래야 힘이 부족한 작은 회사도, 반대로 TaKa 엔터테인먼트처럼 여럿이 모여 여러모로 의견이 갈리는 큰 회사도 앞으로는 나서는 분위기가 만들어질 테니까.
창석은 그렇게 생각했다.
그래서 입을 열었다.
입을 다물어야 했던 시간은 이미 충분히 겪었으니까.
자신이 세운, 비록 시작은 톡신을 데려오기 위해서였다고는 하나 지금은 정말 ‘가족’으로 가득 채운 NRY.
이 회사에 나를 믿고 따라오는 직원들과 연예인들을 지키기 위해.
“NRY 엔터테인먼트의 존재 이유는 그들이 편안하게 빛날 수 있도록 돕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분들을 이런 ‘사소한’ 문제로부터 제대로 방어하는 것 역시 제 역할이라고 생각하고요.”
사소한 문제다.
‘일 처리는 확실해야지.’
이런 것들을 크게 생각했다간 정작 중요한 ‘작품’에는 눈길을 줄이게 되니까.
일은 확실히 하되, 이걸 큰 문제로 여겨선 안 됐다.
대표인 자신은 그렇게 해야 했다.
“보시기에 과한 처사라 할 수 있겠지만. 저희 NRY는 상처받은 ‘가족’을 위해서라도 악질적인 허위 기사를 퍼뜨린 가해자에게 단순 연민의 이유로 소송을 물리진 않을 것입니다.”
발표를 마무리 짓자, 눈이 시릴 정도로 셔터가 터졌다.
버럭버럭 소리치는 기자들의 질문이 뒤섞이니 악을 지르는 것밖에 못됐다.
“시간 관계상 이외의 질문은 NRY 엔터테인먼트로 연락을 주시면 성심성의껏 답변을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이상입니다.”
기자회견 이후 NRY 엔터테인먼트로 쏟아지는 연락이 무수했다.
이후 ‘깎아 먹은 이미지’를 회복하자던 은호의 말대로 창석은 그간 숨겨 뒀던 기부 소식을 의도적으로 드러냈다.
이 정도인 줄은 몰랐는데, 막상 열고 보니 기부 액수가 생각보다 큰 덕분일까.
「이은지, 이은호 학교 폭력 피해자 지원 센터와 지역 보육원에 남몰래 이어 온 기부금만 ‘억’ 소리가 절로!」
악의적인 기사들이 제힘을 못 낼 정도로 기부 소식이 릴레이처럼 쏟아지며 대중의 눈길을 사로잡았다.
여기엔 DI 뮤직이 협업을 위해 은근히 지원해 준 점이 크게 도움 되기도 했다.
한편, E-UNG 및 NRY 엔터테인먼트에 관한 긍정적인 기사가 쌓여 갈수록 한 무리에게는 가시밭길이 따로 없는 상황이 되었다.
E-UNG와 NRY 엔터테인먼트를 싫어하는 사람들.
특히, 가짜 기사 사건으로 E-UNG 남매들의 과거 일부가 공개되면서 조광수와 그 무리가 학창 시절 당시에 벌였던 일도 함께 물 위로 올라왔다.
조광수는 항상 그래 왔듯 은호에게 원망을 떠넘기려고 했었다.
법정에서조차도.
하지만 광수의 예상보다 법은 까다로웠고, 증거가 있다 한들.
미리 준비할 기회가 없었던 광수는 당연하게도 은호가 촘촘히 준비한 증거 자료에 파훼 당해 약세에 몰려갔다.
앞은 바위가.
뒤는 가시덤불이.
진퇴양난의 상황에서 결국 광수는 재판을 더 끌고 갈 방도조차 잃은 듯, 첫 재판 당시 당당하게 소리쳤던 ‘실수’라던 증언을 끝내 철회했다.
처음부터 모든 것들이 고의였음을 인정한다는 말이었다.
그 결과.
조광수 본인에게는 벌금 2,000만 원 또는 2년의 징역형이 구형됐고, 조광수의 의견에 입을 맞추던 그 들러리들 또한 각각 300~500만 원의 벌금형이 구형됐다.
조광수는 특히나 공연성 및 온라인에서 허위 사실을 유포한 부분으로 더 크게 때려 맞았다.
* * *
“학창 시절 이후 부모님마저 손을 뗀 상황이라, 스스로 해결해야 하는 상황이라더라.”
소식을 전해 들은 은호는 짧은 생각에 잠겼다.
악몽으로 시작된 낚시에 조광수가 걸린 이후 ‘조광수’ 하나로 터져 나간 수많은 기사들.
이번 노이즈 마케팅의 효과는 실보다 득이 월등했다.
‘E-UNG’, ‘이응’이라는 이름을 들었을 때, 지금껏 많이 알렸다고는 하나, 대부분은 우리의 이름보다는 노래를 듣고 나서야 ‘아, 얘들이었어?’라는 반응이 많았다.
하지만 이번 일이 있고 난 뒤, 비록 ‘팬들을 고소한다.’라는 오명이 생기긴 했으나, ‘이응’, ‘E-UNG’라는 이름 자체가 알려졌다.
게다가 이 정도 오명쯤이야.
‘이은지의 돈을 노리고 친동생을 죽였다’라는 회귀 전에 받았던 오명보다야 농담처럼 웃어 넘길 수 있는 수준이었다.
벌금을 낼 사정이 안 되는지, 조광수는 징역을 사는 쪽으로 결정을 내렸다.
한편, 그러면서도 의외로 조광수는 마지막 남은 자존심 때문인지 사과하는 척조차 하지 않았다.
많은 이득 덕분에 피어난 작은 연민으로 합의를 생각하기도 했건만.
본인이 제 업보를 스스로 치르겠다는데.
은호는 그편이 말뿐인 사과보다야 더 마음에 들었다.
‘이걸로 악몽은 끝이길.’
* * *
잊지 못한
재판이 마무리된 이후 NRY 엔터테인먼트 의상 제작실.
말이 제작실이지, 실상은 단순히 사무실 한구석에 위치한 재봉틀과 여러 의상 및 원단들이 즐비한 자리를 칭하는 단어였다.
슬기는 그곳에 혼자 앉아, 긴 검은 원피스의 어깨 부분과 검은 정장 재킷의 깃 부분에 팔랑거리는 붉은 타조 깃털을 수작업으로 붙이는 중이었다.
하지만 영 마음에 들지 않는 듯, 슬기는 붙였던 붉은 깃털을 다시 떼어 내더니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더 이번 노래랑 확! 어울릴 만한 게 없으려나…….”
이것도 저것도 마음에 들지 않는다.
“머리 색이라도 바꾸면 좋은데…….”
일반적인 아이돌들이 매 앨범 새로운 매력과 이미지를 보여 주기 위해 머리 색을 바꾸거나 디자인을 바꾸는 한편.
은호와 은지는 무슨 이유에서인지, 항상 비슷한 머리를 유지하려 하곤 했다.
「“염색 해 보고 싶지 않아? 느낌 확 달라질 거 같은데.”」
이유가 궁금했던 슬기의 질문에 패션을 좋아하는 은지마저도 예상과 달리 의외로 “딱히…….”라는 오묘한 반응을 보였다.
거기다 은호가 농담처럼 말을 더했다.
「“대표님처럼 머리 벗겨질까 봐. 무서워서 그래요.”」
하지만 그게 진짜 이유는 아닌 듯, 그렇게 대답한 은호는 어딘가 씁쓸한 분위기를 띠고 있었다.
슬기는 더 묻고 싶었지만, 이후 은지가 다급하게 주제를 돌리는 탓에 말을 잇지 못했다.
* * *
슬기는 이후 박 대표에게 향했다.
어차피 이번 앨범 착장 관련해서 보고를 올릴 것도 있었고, 겸사겸사 이 일에 대해 물어볼 생각이었다.
“두 분이 염색이나 머리 디자인이 크게 바뀌는 걸 싫어하는 것 같더라구요.”
“아직도? 어허, 그 녀석들 처음 미용실 갔을 때도 난리였는데……”
처음 미용실 갔을 때…….
조광수 소송 건 이후 세간에 알려져 여러모로 큰 화제를 몰았던 은호와 은지의 과거 이야기.
대표님의 이야기가 그 무렵의 일이라는 건 딱히 더 긴 말이 없어도 알 수 있었다.
“그건, 음. 애들한테 직접 듣는 게 좋을 거야.”
“혹시 안 좋은 이유라도 있는 거예요?”
슬기가 걱정스럽게 묻자, 박 대표는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그건 아니고, 그냥 아직 놓아 줄 마음의 준비가 안 된 거지.”
놓아 준다니?
슬기는 어쩐지 답을 하는 박 대표의 표정이 농담으로 질문을 무마시키려던 은호와 닮아 보였다.
“슬기 씨가 두 사람한테 직접 대놓고 물어봐 봐. 왜 그러냐고.”
“아…….”
“앞으로 그 부분을 신경 쓰면서 코디해 주면 애들이 아주 좋아할 거야.”
박 대표는 그렇게 답하며 슬기가 건넸던 보고서를 도로 내밀었다.
슬기는 다시 받은 보고서를 바라보다 박 대표를 올려다봤다.
“이건 왜 다시…….”
“왜긴.”
슬기의 얼떨떨한 물음에 박 대표는 세상 인자한 미소를 지으며 답했다.
“다시 해 와.”
“…….”
뮤직비디오 촬영에 화보 촬영까지 곧 잡혀 있는데, 지금까지 나온 의상은 하나뿐, 슬기는 은호와 은지의 과거에 매달릴 때가 아니었다.
슬기가 표정으로 우중충한 비구름을 드러내던 한편.
박 대표는 잠시 고민하더니 슬기가 들고 있는 보고서 속 의상 하나를 콕 집어 가리키며 말했다.
“이 깃털 의상. 실물로 가져와 보자. 일단 여기 있는 보라색은 촌스러운 느낌 날 것 같으니까 기각이고, 펄럭이는 재질 봐선 타조 깃털 같은데, 아는 업자한테 오늘 안에 색깔별로 주문 넣어 주마. 내일 안에는 보내 줄 거야.”
“……제가 만들어 오라는 말씀이신 거죠?”
박 대표는 뭘 그런 당연한 것을 묻냐는 듯 뻔뻔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E-UNG 첫 활동 당시 대표님이 괜히 코디를 맡으셨던 게 아니었다.
슬기는 속마음은 에드바르트 뭉크의 작품 ‘절규’ 그 자체였다.
하지만 차마 대표님 앞에서 그런 표정을 보일 수는 없었기에, 슬기는 대신 사회생활용 미소를 장착하며 답했다.
“네.”
뒤늦게라도 깃털 의상에 관한 제안을 취소해 주길 바랐지만.
그런 일은 없었다.
* * *
다시 지금.
슬기는 그때 박 대표에게 보고 올렸던 디자인을 직접 제작하는 중이었다.
문득 시계를 보자, 아침 11시.
‘곧 오겠네.’
은호와 은지가 밤샘 작업을 마치고 대표님과 함께 점심을 먹기 위해 돌아올 시간이었다.
“오늘은 어떻게 또 싸웠으려나…….”
슬기와 현우는 은호와 은지가 일과나 다름없이 워낙 많이 싸우는 탓에, 상황 파악을 위하여 싸움 시발점에 따라 각각 이름을 붙였다.
서로 장난을 치거나 시비가 붙어서 시작하는 의미 없는 싸움은 ‘남매적 다툼’.
작업 중 방향성의 문제로 싸우면 ‘음악적 다툼’.
그리고 최근 들어 생긴 새로운 싸움 하나는.
요즘 은호는 은지에게 작곡을, 은지는 은호에게 작사를 배우고 있다.
그때부터 이렇게 서로 가르치다 종종 싸우는 경우가 있는데.
은지가 그때마다 불쾌감을 드러내며 “꼴 받는다.”라는 말을 자주 한다.
그래서 두 사람은 새로 생긴 싸움을 ‘꼴 받는 다툼’이라고 통하고 있었다.
이 세 가지 중 현우와 슬기가 가장 난감해하는 다툼은 ‘음악적 다툼’과 ‘꼴 받는 다툼’이었다.
이유는…….
“아니, ‘딴 따단 딴! 딴딴!’이라고!”
“뭔 개소리야. ‘딴 따단 딴딴딴’ 말하는 거잖아, 난.”
“아니, 이은호 X나 답답하네. 앞에서 따단 딴 딴으로 가면 딴 따단 딴! 딴딴 하는 게 낫잖아. 이후에 따딴 딴 따딴으로 가고!”
이게 다 뭔 소리다냐.
슬기는 염색된 검은색 타조 깃털을 든 채 멍한 얼굴로 흐린 창문 너머 익숙한 실루엣을 바라봤다.
아무래도 오늘은 ‘꼴 받는 다툼’이나 ‘음악적 다툼’ 둘 중 하나인 것 같은데.
이 두 다툼이 까다로운 이유는 보다시피 전문적인 영역을 넘어, 둘만의 언어로 대화하는 터라 말리기도, 끼기도 애매하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슬기는 빌었다.
‘제발 이번 문제는 나한테 묻지 말아요. 제발…….’
그렇게 바랐건만.
문이 거칠게 열리고 은지가 들어오자마자 외친 인사는 “슬기 언니!”였다.
“언니! 언니는 ‘따단 딴 딴 딴 따단 딴! 딴 딴 따딴 딴 따딴!’이 나아요? ‘따단 딴 딴 딴 따단 딴딴딴 딴 따딴 딴 따딴’이 나아요?”
슬기는 해탈한 스님처럼 인자한 웃음을 지으며 답했다.
“둘 다 모르겠고 일단 전 ‘딴’이라는 글자가 오늘부터 싫어진 것 같아요.”
넋이 나간 슬기의 대답에 은지는 무슨 소리인지 모르겠다는 듯 고개를 갸웃거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