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매는 비즈니스로 일합니다 (221)
“김 기자, 오늘 가는 거야?”
“네. 다녀올게요. 뭐 아이돌들 과거가 대부분 거기서 거기라 별거 있겠냐마는…….”
“혹시 모르잖아, 특종일지. 걔네 인생사가 기구하다고도 하니까, 잘하고 오셔.”
“시시하지만 않았으면 좋겠네요. 다녀올게요!”
김 기자는 요즘 뜨거운 감자인 이은호와 이은지 ‘이응 남매’의 과거 이야기 인터뷰를 맡았다.
특종이면 좋고, 아니어도 단독 취재니까 이러나저러나 좋은 일이었다.
시작은 그런 건조한 마음으로 시작한 인터뷰였다.
“안녕하세요, 기자님!”
“오늘 잘 부탁드립니다.”
“저야말로 잘 부탁드릴게요. 그럼, 나중에 정확한 기사 작성을 위해서 녹음기를 켜 두려고 하는데, 괜찮으실까요?”
“네.”
“네. 괜찮습니다.”
김 기자는 은호와 은지를 처음 마주했을 때 두 사람의 이미지를 보며 짧은 감탄을 흘렸다.
‘뭐랄까. 마치…….’
이 둘은 단순한 아이돌이라기보다 특유의 은근한 벽을 둔 분위기가 있어, 가까운 듯 절대 좁혀질 수 없는 벽이 있는 것 같았다.
그리고 이런 점이 예상치 못하게 강력한 끌림으로 다가왔다.
손을 뻗으면 가까워질 수 있을 것 같은데, 닿을 듯 닿지 않는 그런 면이 사람을 더 간절하게 만든달까.
두 사람이 가진 분위기가 딱 그런 느낌이었다.
이 두 사람의 세계에 섞여 들고 싶다는 욕심 아닌 욕심을 불러일으키는…….
“기자님! 괘, 괜찮으세요?”
“네. 괜찮아요…….”
패행!
김 기자는 은지가 건넨 휴지에 시원하게 코를 풀며 질문을 이어 갔다.
“그렇게 몇 년을 어릴 때, 노숙자분들하고 같이……. 이, 이후에는 어떻게 지내셨어요……?”
“동네에 폐가가 조금 있어서, 그쪽에서 지냈어요.”
코끝이 매워진 건 어린 꼬맹이 둘이서 어딘지도 모르는 건물을 빠져나와 살아가기 시작한 부분부터였다.
그래.
그냥 이야기 시작부터 울었다는 말이다.
이야기를 들을수록 이 남매…….
‘뭐 이렇게 불쌍하게 자랐어!’
‘기구하다.’라던 팀원의 말이 빈말이 아니었다.
그런 와중에 어릴 때 납치 사건이 액땜이라도 된 듯, 아이들의 주변에 좋은 사람들이 많이 나타난 게 천만다행이었다.
특히, 이름 없는 아이들한테 이름을 준 ‘빵집 아저씨’.
이 사람 정말.
천사도 아니고, 이후 현재까지 행방이 묘연하다는 점이 더 가슴을 뭉클하게 만들었다.
그의 이야기도 놀랐지만, 저기 머리가 반쯤 벗겨진 NRY 엔터테인먼트 대표의 이야기도 충격이긴 마찬가지였다.
NRY 엔터테인먼트 대표를 처음 마주했을 땐 헬스를 많이 하시는 건지, 예상치 못한 큰 덩치 때문에 ‘무섭다’는 이미지가 강했다.
하지만 알고 봤더니, 괜히 팬들한테 ‘빛’이라는 별명을 받은 게 아닌 듯, 이은호와 이은지 남매의 은인이자, 부모이자, 포근함은 덩치 큰 곰 인형이 따로 없다.
과거 이야기를 들으며 김 기자는 남매들의 세계에 더 깊이 빠져 갔다.
‘감춰진 히든 사연이 더 있을 것 같은데…….’
김 기자는 두 사람의 이야기를 들으면서도 묘하게 두 사람이 과거의 일부분을 감추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이게 나쁜 느낌이라기보다는, 두 사람만의 ‘사적인’ 이야기기에 감추는 듯한 느낌이랄까…….
‘알고 싶다, 격하게!’
‘E―UNG’라는 그룹을 처음 자세히 알게 됐지만, 김 기자는 오늘을 기점으로 이 두 사람에 대해 더 많은 것을 알고 싶어졌다.
‘재미있는 남매야. 정말로.’
처음 이야기를 시작했을 땐 거짓말이라는 생각이 절로 들 만큼.
‘쌍팔년도의 경험담’이라고 할 정도로 ‘이게 진정 한국에서 겪은 일이 맞는 건가?’ 싶었다.
하지만 때 묻지 않은 밝은 갈색의 눈동자 두 쌍이 이 모든 이야기가 진실임을 증명했다.
“잘 부탁드립니다, 기자님.”
“그럼요. 앞으로 자주 봬요, 우리.”
“……네.”
김 기자의 인사에 은호는 조금 놀란 듯하더니 이내 예의 바른 미소를 보이며 답했다.
은지는 그런 은호를 힐끔 돌아보며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
‘이은호, 기자님이 어지간히 부담스러웠구나.’
은호가 아무리 가면을 뒤집어써도 함께 몇 년을 붙어 자란 가족의 눈은 속일 수 없었다.
* * *
[기사 읽고 오열한 E%들 여기 모여 ㅠㅠㅠ 나만 울었어? 나만 울었냐고!!! 우리 지랑이 ㅠㅠㅠ 생긴 건 도련님 같아서 세상 귀하게 자란 줄 알았더니!!!! 헝허헣엉ㅇ허엉헝]
└ 폭풍오열 1人
└2
└3이뉴ㅠㅠㅠㅠㅠㅠㅠ
[인소 주인공도 이것보단 찌통 아니라고ㅠ 대체 무슨 시절을 살아온 거야 랑이는 자기도 어린 꼬맹인데 더 어린 꼬맹이 지킨다고오오ㅠㅠㅠ]
└ 학교 담임쌤 인터뷰 보면 그 와중에 조용하고 착했대...
└ 우리 랑이 지구 뿌셔ㅠㅠㅠㅠ
[다들 우는 중에 미안한데 지지가 랑이 지키겠다고 일진쉑 때려눕힌 것도 멋있지 않아?]
└ 환불 못 하고 돌아오면 가게 뒤집어 줄 것 같은 걸크러쉬!
└ 쩔어 은지 언니 사랑해 ㅠㅠㅠ
└ 랑이랑 지지 인터뷰에서 어릴 때 둘이 위험한 순간에 스스로 지키려고 둘이 찐으로 싸우면서 연습했댘ㅋㅋㅋㅋ
└ 이거 ㄹㅇ ㅋㅋㅋㅋ 기사 보고 빵터졌엌ㅋㅋㅋㅋ
└ 지지 필살기: 모래 뿌리기 ㅋㅋㅋㅋㅋㅋ
└ 치사한데 확실한 공격이라 웃겨 ㅋㅋㅋㅋ
[요즘 우리 언니 오빠 기사 여러 개 떠서 좋은데 이응이 신곡은 언제 나올까 ㅠㅠ]
└ ㅠㅠ 지랑이 안 그래도 밥 굶으면서 곡 만든다는데 조모 씨 때문에 이게 무슨 고생이야 ㅠ
└ 그래도 이번 일로 주변에 이응에 대해서 알게 된 애들 많더라!
└ 이상하게 알고 있는 놈들도 있었어 ㅠ 팬들 고소한다고 ㅡㅡ
[이번에 뜬 빛빛빛창석 대표님 기사 본 사람?]
└ 왜 우리 대표님 또 무슨 ‘빛’하고 오셨어
└ㅋㅋㅋ표현 앀ㅋㅋㅋㅋㅋ
└ (기사 링크)
└ 와.... 갬동... (입틀막)
└ 나 포션+E%인데 ㄹㅇ 우리 오빠들 이런 아버지 품으로 돌아와서 다행이다 ㅠㅠㅠㅠㅠ
* * *
E―UNG의 이야기로 한창 시끄러운 와중, 좋은 면이 있다면 그 이면에는 그림자가 있다.
공식과 같은 것인지, 은호와 은지를 향한 기사에서 역시 마찬가지였다.
이미지로 먹고사는 ‘아이돌’의 문제로 이런 강력한 제재를 진행했다는 부분에서 ‘굳이 그렇게까지 갈 필요가 있는 건지.’, ‘아니 땐 굴뚝에 연기가 날 리 없다.’는 등 부정적인 의견 또한 적잖게 존재했다.
NRY 엔터테인먼트에게 호의적이지 못한 언론사가 그 방향으로 초점을 맞추는 건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이번 소식을 전해 듣고 회의차 모인 대표실 안.
은지는 이런 쪽으로는 딱히 머리를 쓰고 싶지 않다며, 아무 생각 없이 오독거리며 아몬드 과자만 먹었다.
얼굴은 닮았으나, 은지와 반대로 진지하게 깊이 고민하던 은호는 조심스럽게 입을 뗐다.
“깎아 먹은 이미지는 대표님이 전에 말씀하셨던 쪽으로 진행하는 게 좋을 것 같지 않아요? 어때요?”
박 대표가 갸웃거리며 물었다.
“내가 전에 말했던 거? 어떤 거?”
이야기한 지 며칠이 지난 터라, 창석은 곧장 떠올리지 못한 듯 은호에게 되물었다.
“좋은 이미지의 기사 띄우는 거요.”
“좋은 이미지?”
“전에 말씀하셨던 기부라던가. 참, 대표님 저희한테 말없이 저희 이름으로 기부하는 곳 많으시잖아요.”
“……뭐야. 나 지금 소름 돋았다. 은호 너 어떻게 알았냐.”
“대뜸 감사장이 집으로 오는데, 모르는 게 더 이상하죠.”
그때, 은지가 갸웃거리며 물었다.
“우리 집에 감사장이 온 적 있어?”
“어.”
“난 못봤는데?”
“넌 우체통에 세금 종이가 터지려고 해도 관심이 눈곱만큼도 없는데 알 리가 있냐.”
“하하. 회사에선 싸우지 마. 이것들아.”
창석은 감사장은 예상하지 못했던 거였는지,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감사장은 예상 못 했네. 기부라…….”
창석은 컴퓨터 앞으로 향한 후, ‘지원’이라는 폴더를 검색하며 긴 목록을 뽑았다.
“학교 폭력 쪽도 있고, 너희가 자랐던 보육원도 있네. 이걸 발표하면 괜찮을 것 같은데. 이걸 어디 알릴 생각으로 기부를 했던 건 아니라서…….”
창석이 중얼거린 이야기를 들은 건지, 은호가 대꾸하듯 말했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착한 일 하는 건 좋은데요. 대표님, 끌어 올려야 할 때도 묻어 두기만 하면 그거 그냥 단순히 호구 아니에요?”
“이놈아, 호구라니.”
“아니, 저랑 이은지는 이런저런 도움을 많이 받으면서 자란 입장이잖아요.”
“……그렇지.”
“우리가 필요할 때 도와주셨던 분이 곤란한 상황에 우리를 도왔던 ‘그 이야기’로 그 사람의 곤란한 문제가 해결된다면, 당연히 그걸 이용해 줬으면 하지 않겠어요?”
창석은 은호 이야기를 듣고 보니 일리는 있었는지 괜한 입맛을 다셨다.
“……짜슥. 거, 참. 할 말 없게 만드네.”
“하하. 그럼 이건 이제 해결했으니까, 이제 본론으로 넘어가서 ‘가혹하다.’던가, 이런 기사에는 어떻게 반박하실 거예요?”
“오, 반박할 건 어떻게 알았대.”
“이런 거 입 닫고 당해 주는 거 대표님 취향은 아니니까요.”
“네가 내 취향을 어떻게 알아?”
창석이 놀라며 묻자, 은호는 뭐 그런 당연한 질문을 하느냐는 듯 황당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저, 대표님이 키워주셨잖아요.”
“하하하하.”
새삼스러운 생각이지만, 창석은 자신의 인간적인 면모는 은지가, 냉정한 면모는 은호가 꼭 친자식처럼 자신을 닮은 것 같아 웃음을 터뜨렸다.
“그래. 반박해야지. 이렇게 기사로 나올 정도라면 반대의 의견이 그만큼 긍정적이라는 소리일 테니까.”
“반대 의견을 뭉개 보려고 여론 몰이 하는 것 같다는 그 말이죠?”
“그래. 맞아.”
“왕년에 TaKa 엔터테인먼트의 살아 있는 인간 ‘불도저’ 직접 볼 수 있겠네요.”
“오글거린다. 이놈아.”
“하하하.”
은호가 장난스럽게 웃으며 말했다.
긴 회의 끝에 창석은 며칠 뒤, 짧게 시간을 내며 기자 회견을 열었다.
조용히 넘어가면 묻혀 버릴 이야기긴 했지만, 은호 말대로 얌전히 입 닫고 당해 주는 건 취향이 아니었다.
게다가 마침 한 번쯤 크게 소리쳐 두고 싶은 이야기기도 했고 말이다.
“이번 일의 계기인 팀 ‘E―UNG’의 이은호, 이은지 양은 우리 회사의 귀한 보물이자 저에게도 자식과 같은 존재들입니다.”
간단한 인사가 오간 뒤, 창석은 이번 기자 회견의 본론을 꺼내 들었다.
“이는 현재 NRY의 가족인, 앞으로 NRY의 가족이 될 연예인 및 뮤지션들에게도 마찬가지로…….”
그때였다.
어디선가 본 적 있는 기자가 번쩍 손을 들더니 창석의 말을 자르고 공격적인 질문을 던졌다.
“최근 네티즌들 사이에선 이번 고소 건이 ‘가혹하다.’라는 의견이 있습니다. 이 부분에 대해 대표님께서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이런 의견은 다 무시하실 생각인가요?”
창석은 기자의 얼굴을 눈여겨보며 웃었다.
곤란하게 만들기 위해 말을 꺼낸 것 같은데…….
“마침 잘됐네요. NRY 엔터테인먼트에서는 앞으로도 NRY에 소속된 ‘가족’들의 인격을 모욕하는 악성 댓글과 허위 기사 외에도…….”
공격적인 질문을 한 기자는 얼마 전 특종을 얻기 위해 은지의 뒤를 스토킹하다 현우에게 붙잡혔던 기자였다.
창석은 정확히 그 기자를 노려보며 말했다.
“‘범죄’에 가까운 과도한 ‘사적인’ 침범 또한 강력하게 대응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