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매는 비즈니스로 일합니다 (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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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걔 동생이랑 좀 다투면서 눈도 맞고 뭐, 그랬죠.”」
은지의 학교 폭력 관련 이야기는 자신이 은지에게 당했었다는 사실을 감추기 위해 조광수가 교묘하게 내용을 바꾸면서 시작된 이야기였다.
호랑은 들은 대로 ‘조광수가 이은지랑 눈 맞고 같이 다녔다더라’라고 화랑에게 전달했고, 화랑은 그 이야기를 은호와 은지에게 전달했다.
확실하지 않은 이야기는 함부로 해서는 안 된다.
조광수는 제 몸을 바쳐 그 이유를 보여 줬다.
그다지 머리가 좋은 놈들이 아닌 덕일까.
조광수와 그 들러리들은 나란히 허위 사실 유포, 명예 훼손, 모욕죄까지 더해져 재판이 진행됐다.
“술 때문이었습니다!”
조광수는 술을 핑계로 ‘원고를 해하려던 생각은 없었다’라고 주장했으나, 큰 의미는 없었다.
이후 은호 측에서 추가로 제출한 무수한 자료들이 굳이 말을 하지 않아도 조광수의 의견을 반박하고 있었다.
창석의 이야기를 들었을 때부터 은호는 레스토랑 앞에서 조광수를 다시 만난 그날을 곰곰이 되짚었다.
그러다 한 사람을 떠올렸다.
[나 ― 태현 형]
[태현 ― 어]
[나 ― 예전에 저희 펜션 가던 날 저한테 욕했던 그 직원 기억하시나요]
태현은 잠시 고민했는지 몇 분이 지나고 나서야 답을 했다.
[태현 ― 어]
[나 ― 형 그때 영상 찍었다고 하셨었는데, 아직 있어요?]
[태현 ― 아마 있을걸]
[나 ― 저 그 영상 좀 보내 주실 수 있어요?]
[태현 ― ㅇ 기다려]
태현에게 동영상 파일을 받은 은호는 생생하게 녹음된 조광수의 “이 X발 새끼가!!!” 부분을 들으며 웃음을 터뜨렸다.
‘입과 손은 항상 조심하라잖아.’
뱉은 말이 칼이 되어 목을 노리니까.
조광수가 은호를 향해 화를 참지 못하고 “이 X발 새끼가!”라고 소리친 그 순간을 촬영한 영상이었다.
“그럼, 이다음은 이은지랑 같은 반이었던 사람을 찾아야 할 텐데…….”
싱글 앨범 발표 준비 때문에 연습에 한창 신경을 쏟아야 하는 바쁜 시기 인지라, 사람을 찾는 일은 E-FAN 어플을 이용하기로 했다.
* * *
「XX군 XX 중학교 08년도 입학생을 찾습니다.」
E-FAN에 한 공지글이 올라왔다.
20대 팬이 많은 덕분일까.
‘찾기 힘들면 어쩌나’라고 생각했던 은호의 걱정과는 다르게 동창 중 은지의 팬이 있었던 덕분에 일은 매우 손쉽게 진행됐다.
은지의 반에 들이닥친 조광수를 기억하던 동창들은 그때 그 조광수가 지금 은지를 ‘학교 폭력’, ‘일진’ 문제로 몰아가고 있다는 소식을 듣자, 제 일처럼 화를 내며 모여들었다.
은지의 동창들은 ‘곤란한 현 상황에 도움이 되길 바랍니다’라며 당시 사건에 관한 이야기들을 담은 성명문을 NRY 엔터테인먼트 측으로 보내왔다.
성명문 외에도 B4 크기의 돌돌 말린 종이 한 장과 ‘은지에게 전달해 주세요’라는 짧은 부탁도 함께였다.
“이게 뭔데요?”
“하나는 이번 소송에 도움이 되길 바란다고 보내 주신 성명문이고, 하나는 나도 모르겠구나.”
창석은 궁금함을 참으며 은지에게 말려 있는 낡은 종이를 건넸다.
갸웃거리며 집으로 돌아온 은지는 방 안에 대충 앉으며 무심하게 낡은 종이를 펼쳤다.
종이의 정체는 단순한 도화지였다.
수많은 그림과 글귀로 빼곡히 메워진 도화지.
「네가 돌아오면 꼭 이 편지들을 읽어 줬으면 좋겠다.」
「은지야, 비록 우리가 알고 지낸 시간은 짧았지만 (OTL)…….」
「은지야 그때 3학년 선배가 우리 반에 들이닥쳤을 때 무서웠는데 ㅠ 지켜 줘서 고마워」
「은지야 넌 우리 1학년 2반의 영웅이었어! 너랑 친해지고 싶었는데 갑자기 사라져서 아쉽다….」
「2학년 때는 다른 반이라도 좋으니까 은지야 꼭 건강한 모습으로 다시 돌아와 ㅠ^ㅠ」
찬찬히 글을 읽어 가던 은지는 차츰 두 눈이 커지더니 물이 차오르듯 눈망울이 일렁였다.
“뭐야…….”
태연하게 내려던 목소리는 뜻과 달리 다 갈라진 소리만 나왔다.
빼곡한 글귀는 은지가 사라지고 난 뒤 같은 반이었던 동창들이 2학년이 되던 해 1학년 교실을 떠나기 전에 남긴 롤링 페이퍼였다.
롤링 페이퍼에는 그 당시 무서운 일진 선배를 당당하게 물리쳐 줬던 은지에게 ‘고마웠다’라는 인사와 함께 이후에 사라져서 걱정하는 내용으로 빼곡하게 쓰여 있었다.
거기다 마지막에 쓰인 글귀는 비교적 최근에 쓰인 듯, 빛바랜 다른 글씨들보다 또렷하게 쓰여 있었다.
「안녕. 은지야, 내 이름은 김 나은이야. 날 기억할지 모르겠지만…….」
과거 1학년 당시 반장이었던 나은이 남긴 편지였다.
반장을 맡았던 그때 은지가 없었음에도 다시 은지가 돌아오면 건네주려, 반 친구들과 함께 이 롤링 페이퍼를 작성했었다며 이야기를 시작했다.
「언제가 되든 꼭 전해 주고 싶었는데, 이제라도 긴 시간 끝에 제 주인을 찾아갈 것 같아서 다행이야. ^-^」
7년이 흐른 지금까지 이 롤링 페이퍼를 보관하고 있었다는 이야기에, 은지는 나은이 쓴 이모티콘이 혹여라도 지워질까.
현실인지를 확인하듯 조심스럽게 엄지로 문질러 봤다.
은호가 말한 동창인 E%는 그때 당시 반장이었던 나은이었는지.
나은의 이어지는 편지 내용에는 톡신과 함께 출연한 뮤직비디오를 통해 은호와 은지를 다시 알게 되었고.
지난번에 발매한 ‘TIME’ 앨범도 구매했다며.
나은은 두 사람을, ‘어린 시절 우리 반의 영웅이었던 은지’를 진심으로 응원하고 있다는 이야기를 하며 편지를 마쳤다.
“……아.”
기뻤다.
너무 기뻤다.
은지의 평범한 또래의 삶은 중학교 시절부터 싹둑 잘려져 있었다.
자신보다 오빠에 대한 걱정으로 나날을 보냈던 그 시기.
교복을 입고 싶었지만, 입자마자 벗었던 그 시기.
그래도 후회는 없었다.
그때의 결심으로 인해 지금의 좋은 대표님을 만났고, 하고 싶은 음악을 하며 활동하고 있으니까.
하지만 회귀 전.
정확히는 은호의 회귀 이전에도 은지는 남몰래 학창 시절의 빈 부분에 아쉬웠던 감정은 있었다.
한창 작업실에 박혀 있다가 나온 아침.
근처 중학교 학생들이 등교를 위해 바쁘게 뛰어가는 모습들을 봤을 때.
하교 중인 듯, 오후에 교복을 입고 친구들끼리 나란히 포장마차 앞에서 컵볶이를 사 먹는 학생들을 봤을 때.
보고 싶지 않아도 한 번은 결국 눈에 담게 되는 일상이었다.
그런 때마다 저도 모르게 생각하고 싶지 않아도 그 시절의 ‘If(만약)’을 떠올리곤 했다.
아쉬움 때문이었다.
‘나랑 이은호가 검정고시가 아니라, 그대로 학교에 다녔다면 어땠을까.’
애써 모른 척하던 그 아쉬운 마음이 낡은 롤링 페이퍼 한 장에 결국 터져 버린 것 같았다.
눈물에 앞이 흐려져서 잘 보이지 않는 와중에, 은지는 미간에 힘을 주며 낡은 도화지에 쓰인 친구들이 당시에 남겼던 롤링 페이퍼를 하나하나 곱씹듯 읽어 갔다.
끅, 흑…….
그동안 같은 방에 있던 연탄은 은지가 롤링 페이퍼를 읽는 모습을 흐뭇하게 바라보며, 위로 대신 숨죽인 채 혼자만의 시간을 즐기도록 두고 있었다.
연탄의 배려로 은지는 평온하게 롤링 페이퍼의 정독을 끝내 가던 그때였다.
벌컥.
은지의 방문이 열렸다.
범인은 은호였다.
은호는 노트를 읽으며 은지의 방문을 열었는지, 뒤늦게 울먹이는 은지를 바라봤다.
“야, 이은지 오늘 작업한 곡 브리지 부분 있―.”
은호는 마치 메두사라도 마주한 듯 잠시 돌이 됐다.
곧 은호의 입꼬리가 장난스럽게 말려들었다.
‘이놈들 또 시작이네.’
연탄은 은호의 등장에 이어질 상황을 직감한 듯 조용히 캣타워 구석에 머리를 숨겼다.
아니나 다를까.
“와― 이은지, 너.”
“나가! 이 새끼야!”
은호가 입을 연 순간, 은지는 거칠게 방문에 발차기를 날리며 소리쳤다.
“아, 왜! 뭐 보는데 그렇게 질질 짜!”
“질질 안 짰거든, X새끼야!!! 신경 끄고 당장 나가라고!”
쾅!
거칠게 닫힌 방문에도 불구하고, 은호는 굴하지 않고 다시 문을 열었다.
“뭔ㄷ―.”
“나가!!!”
은지는 기차 화통은 거뜬히 씹어 먹을 듯한 목소리로 버럭 소리쳤다.
“야, 야! 이은지! 잠깐만!”
“나가! 나가라고!”
울다가 들킨 것도 민망했지만 증거라도 되듯 벌겋게 달아오른 얼굴은 감추기조차 쉽지 않았다.
“아, 잠깐만! 할 말 있어!”
“이따 말해!”
“중요한 거야!”
“뭐!”
은호가 진지한 얼굴로 말하자, 은지가 멈칫하며 물었다.
“……뭔데.”
“……너.”
“시간 끌지 말고 명치 박살 나고 싶지 않으면 빨리 말하고 내 방에서 꺼져.”
은호는 당장이라도 도망칠 것 같은 미묘한 자세를 취하더니 잠시 후.
“이은지 우는 거 X나 못생겼다고.”
랩이라도 하듯 빠르게 말을 읊은 뒤, 자신의 방으로 날아오르듯 뛰었다.
은지는 도망치는 은호의 뒷덜미를 붙들려는 듯 팔을 뻗었지만, 손은 아슬하게 은호의 후드를 붙잡지 못했다.
“야 이 X새끼야!!!”
쾅, 쾅!
은지가 은호의 방문을 부술 듯 주먹과 발로 내려찍어 댔다.
……평소와 다를 것 없는 시끄러운 일상이었다.
* * *
조광수의 ‘고의성은 없었다’라는 의견엔 최태현이 촬영한 그때의 영상 외에도 수사 중에 발견된 조 가짜 기사 사이트가 발견되면서 ‘거짓’으로 밝혀져, 처벌이 더더욱 가중되었다.
그리고 은지의 동창생들이 보낸 성명문 덕분에 흐름은 보기 좋게 은호가 원하던 방향으로 흘러갔다.
「“내부에서 문제를 모두 마무리하고 난 뒤에 비슷한 상처가 있는 사람들을 후원하면서, 오히려 진범의 얼굴을 앞세우는 것도 나쁘지 않을 거다.”」
일이 잘 해결된 무렵.
“이제 슬슬 밝혀도 될 것 같죠?”
“그러게, 괜찮은 타이밍이구나. 은호 네가 고생이 많았다.”
은호의 제안에 박 대표는 어석배에게 약속대로 협업 이야기를 꺼내며 ‘시작’을 알렸다.
E-FAN 내부에서 떠들썩한 이야기가 드디어 때에 맞춰, 박 대표가 친한 기자에게 풀어 주며 슬슬 운을 띄웠다.
「E-UNG, ‘학교 폭력’ 폭로 허위 기사 유출범 “강력 대응”」
「남매 아이돌 ‘이응’의 ‘학교 폭력’? NO! 동창생들의 가슴 따뜻한 낡은 롤링 페이퍼 공개」
「이은지의 ‘일진 루머’? 중학교 시절 동창생들의 성명문! “사실과 달라”」
막고 있던 부분을 터뜨리자 기다렸다는 듯 와르르 쏟아지는 기사들.
특종을 원하는 창석의 지인 기자는 창석의 도움으로 은호의 당시 담임 선생님을 찾아 인터뷰를 진행했다.
「은호의 학창 시절 담임 선생님의 인터뷰 “조용히 반 친구들을 돕던 선한 아이”」
「2인조 남매 아이돌 그룹의 ‘일진 루머’설. 알고 보니 그들은 피해 학생이었다?」
「허위 사실로 현재 조사 중인 조 모군의 담임 선생님의 증언, “학창 시절 조 모군은 두 파례 ‘학폭위’가 열렸음에도 피해자인 남매 아이돌의 이 모군과 같은 반으로 몇 년 동안 지속적인 폭행을 이어 가……」
「남매 그룹 ‘E-UNG’의 충격적인 과거 공개! “이게 정말 2000년대 대한민국에서 일어난 이야기?”」
그 과정에서 과거 이야기가 상당한 양이 유출되긴 했으나, 시기가 나쁘지 않았기에 은호와 은지는 덤덤하게 상황을 받아들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