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매는 비즈니스로 일합니다 (217)
이번에 이름이 붙은 <저주(Curse)>는 클라우드 속 이은지가 만든 트랙 중 66번이라는 번호를 달고 있었다.
그리고 그땐 아직 정리되기 전이라 곡 길이가 정확히 4분 6초.
평소 3분 30초대에서 끝내는 이은지가 만든 곡치고는 긴 편에 속하는 곡이었다.
난 이 우연한 숫자들이 눈에 걸렸다.
♩♬♬―.
곡을 재생하자, 시작은 서커스단이 떠오르는 묵직한 현악기의 연주로 도입부가 채워졌다.
이후에는 장난스러운 트럼펫 연주와 함께 전혀 어울리지 않을 것 같지만 의외로 잘 어울리는 베이스 연주가 잘 섞였다.
하지만 살짝 뒤틀린 엇박자가 만든 낯선 박자 때문일까.
‘4, 6, 66.’
재수 없는 숫자들까지 더해지니 왠지 기괴한 것을 마주한 기분이었다.
하지만 어려운 만큼 도전해 보고 싶은 욕심이 나는 곡이었다.
「“좋긴 한데, 은호 네가 고생일 것 같은 곡인데 괜찮겠냐.”」
「“도전이라고 생각해야죠.”」
나는 이 곡을 ‘킵’했고, 대표님의 대답은 대찬성이었다.
그렇게 시작한 작사.
이 66번 곡은 매력은 있지만, 도저히 어떻게 시작해야 할지.
키워드 하나를 찾는 것조차 힘든 시간이었다.
그러던 중, 나는 첫 악몽을 꿨다.
느티나무.
교통사고.
이은지를 찾는 나.
사고가 나던 그 순간을 되감으니 동시에 작업 중이던 좋은 느낌의 곡을 들어도 자꾸만 어딘가 뒤틀려 버린 기분이었다.
도저히 밝은 곡은 작사를 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난 계속 이 답이 보이지 않는 66번 곡을 붙잡았다.
하지만 66번 곡이라고 다를 건 없었다.
이쪽도 키워드부터 막막하기는 매한가지였으니까.
그러던 중, 첫 번째 악몽은 천만다행히도 현우 형의 도움으로 벗어났다.
그렇다고 그게 끝은 아니었다.
그날 두 번째 악몽을 곧장 이어서 꿨었으니까.
마치 ‘감히 이걸 피해?’라는 경고가 섞인 듯한 그런 꿈이기도 했다.
이어진 두 번째 악몽은 제삼자의 시선으로 평범하게 집에 돌아온 이은지랑 나를 비췄다.
퇴근한 차림을 보아하니 차를 타고 있는 지금과 똑같은 옷.
자연히 이 꿈은 퇴근 이후 우리의 모습을 비추고 있다는 걸 알았다.
「“우리 왔어! 연탄앙!”」
세상에서 제일 듣기 싫은 이은지의 혀 짧은 소리로 시작된 꿈은 평범한 일상을 보여 줬다.
집에 돌아온 우리는 대충 시답지 않은 문제로 투덕거리다가 밥을 먹고 각자의 방으로 흩어졌다.
평소와 다른 건 꿈속에서의 그날 저녁이었다.
이은지가 잠들고 난 뒤 연탄이 조용히 이은지 방을 나와, 내 방으로 찾아왔다.
「“왜 왔어.”」
『할 말이 있어서.』
「“뭐.”」
나는 심드렁하게 매트에 뻗은 채 휴대폰을 보며 연탄에게 물었다.
그때.
연탄은 나를 굉장히 애잔한 눈빛으로 바라보며 말했다.
『‘시간’이 내려와 버렸어.』
그게 무슨 소리냐고 물으려고 했는데, 제삼자의 시선인 나는 입이 떨어지질 않았다.
『말을 해야 하나 고민했는데 은지를 살리려면 방법이 없어서…….』
연탄은 한참을 어물쩍거리다 말을 잇지 못했다.
답답함을 못 견딘 내가 물었다.
「“살린다니 무슨 말이야, 이은지가 다시 죽…….”」
꿈속의 나도 여전히 죽음과 관련된 단어를 쉽게 입에 올리지 못하는 건 마찬가지인 것 같았다.
「“……어떻게 될 수도 있다는 말이야?”」
한참 우물거리던 난 다른 단어를 찾아 겨우 질문했다.
그때, 연탄이 고개를 저으며 답했다.
『누군가가 비어 버린 곳을 메워야 해.』
그 순간, 꿈속의 풍경이 바뀌었다.
마치 TV에서 화면만 떼 온 것처럼 수십 가지의 장면이 보였다.
모든 장면이 나를 비췄다.
차에 치이거나, 조명이 떨어지거나, 처음 보는 누군가의 홧김에 휘두른 칼에 맞거나, 전기가 통하는 등…….
여러 장면이 보였지만, 그 끝은 하나 같이 똑같았다.
전부 내가 죽는 모습들이었다.
처음엔 수십 가지였던 그 장면들은 곧 수백 가지로 불어났다.
이은지랑 장난을 치다 누군가가 나를 치고 지나갔고 넘어진 나는 뇌진탕으로 죽었다.
어이가 없을 정도로 황당하게 죽는 모습도 적지 않았다.
마치 이번 꿈은 ‘넌 반드시 죽을 거야’라며 협박이라도 하는 것 같았다.
모든 장면들이 그런 식이니 무섭기 보다는 황당하기만 했다.
‘내가 뭘 했다고.’
그 장면들을 가만히 바라보고 있자, 문득 난 꿈속의 연탄이 말한 ‘비어 버린 곳’이라던 그 말을 이해할 수 있었다.
이은지가 죽었던 그 빈자리를 메꿀, 희생할 사람이 필요하다는 의미였다.
그리고 먼저 노려지는 건 이은지랑 가장 가까운 나라는 것일까.
눈을 뜨고, 퇴근 후 이은지보다 먼저 현관을 넘은 나는, 꿈에서 나눴던 대화에 대해 물을 생각으로 연탄을 찾았다.
「“너, 나랑 이야기 좀 하자.”」
하지만 그것만으로도 꿈과는 전혀 다른 흐름으로 이야기가 흘러갔다.
꿈에서와 달리 이은지가 ‘연탄이 말을 할 수 있다’라는 걸 알게 되었으니까.
그리고 꿈과 다르게 그날 난 집에 없었고 말이다.
‘…….’
태현 형님네에서 외박하며 야경을 구경했던 그날 저녁.
난 돌아가면 가장 먼저 그 꿈에서 들었던 이야기에 관해 물어보려고 했었다.
하지만 그날.
‘같은 날짜가 다시 돌아왔을 땐 어떻게 되는 걸까?’
나눴던 대화로 머릿속이 뒤죽박죽 했던 그날을 겪고 나자, 생각의 폭이 넓어지기라도 한 걸까.
내가 꾼 꿈이 단순한 ‘예지몽’이 아닐지도 모른다는 의심이 들었다.
‘넌 죽게 될 거다’라며 협박이라도 하던 것 같은 그 수백 가지의 내가 죽는 장면들.
문득, ‘그게 오히려 연탄이 말한 그 ‘시간’의 발악이라면 어떨까?’라는 생각을 하게 됐다.
그때였다.
내내 막히던 66번 곡의 키워드가 나왔다.
‘저주받은 우리 남매.’
그리고 작사를 완성하기 까진 이틀이라는 시간이 걸렸다.
66번 곡의 가사를 완성한 날.
경고라도 하듯 나는 세 번째 악몽을 꿨다.
사실, 이번 꿈은 처음엔 악몽인 줄도 몰랐다.
이번 악몽에선 기사가 하나 났다.
10월 31일.
「신곡을 발표한 E-UNG, 온라인 게시된 ‘유명 남매 아이돌, 고아 출신에 학창 시절 일진 논란’, 소속사 측 “사실 여부 확인 중”」
「[최신 연예 핫 뉴스] 이은지, 학교 폭력 의혹? 피해자의 증언 나와……」
꿈속의 나는 내가 안고 가겠다며 뜬금없이 목숨을 끊었다.
제삼자의 눈으로 그 장면을 바라보던 난 어이가 없었다.
‘내가? 저런다고?’
너무 어이가 없어서 처음엔 ‘악몽’이라고 인식조차 못 했었다.
하지만 다음 날 아침이 밝고, 새벽 일찍부터 도착한 화랑 씨의 연락.
[화랑 씨 ― 좋은 아침입니다! 은호 씨 식사 꼭 챙겨 드세요!]
처음엔 평소와 같은 인사였다.
갑자기 이은지가 있는 단톡방에 내가 초대되기 전까지는 그랬다.
무슨 일인가 싶어서 물음표 하나만 쳤더니, 아침부터 이은지가 시비를 걸었다.
그때였다.
[화랑 씨 ― 조광수!]
뜬금없이 나온 익숙한 이름.
화랑 씨의 형님께서 말씀해 주셨다는 이야기를 들은 이후에는 그때서야 난 내가 꾼 꿈이 세 번째 악몽이라는 걸 알았다.
처음엔 어이가 없어서 웃음이 먼저 터졌다.
그리고 임의로 세웠던 가설에 확신을 가졌다.
재수 없는 그 악몽들은 ‘넌 죽게 될 거야!’라며 그 ‘시간’이라는 놈의 발악인 것 같다던 그 가설 말이다.
내가 이딴 걸로 죽을 것이라 생각하는 것도 우습지만, 오히려 그래서 상대하기는 훨씬 수월해졌다.
“기사가 터진다고…….”
연탄이 말한 그 ‘시간’이라는 놈이 무슨 놈인지는 몰라도 상대를 잘못 골랐다.
‘내가 먼저 터뜨리면 이 X신 같은 악몽이 또 깨진다는 거네.’
난 누가 내 인생 건드는 거 별로 안 좋아하거든.
마침 얽힌 놈이 조광수라고도 하니, 함부로 주둥이 놀리고 다니는 광어도 회 한 번 뜰 겸 겸사겸사 재미있는 작전을 하나 세웠다.
문제는 이게, 나랑 이은지만 재미있다는 게 문제였다.
이 작전을 위해선 대표님의 도움이 절실했다.
‘방법이…… 아.’
난 박창석 대표님 분야의 달인들이 가득한 한 단톡방에서 조언을 구했다.
[나 ― 형님들]
[서 ― 오~ 막내 막내]
[주 ― ㅇ?]
[나 ― 저 해 보고 싶은 게 있는데 대표님이 반대할 것 같아서요.]
형들은 뭐냐며 물었지만 적을 속이기 위해선 아군부터 조심해야 하기에 말을 아꼈다.
다들 그럼 안 알려 줄 거라며 토라져 있던 그때였다.
[서 ― ㅋㅋㅋㅋ 대표님 공략법]
― 내 방법 알려 줄까?]
유일하게 서승연 선배가 웃으며 물었다.
잔소리를 피하는 방법을 알려 줬던 서승연 선배의 대표님 공략법?
이건 귀하지!
[나 ― 네]
― 무조건이요!]
* * *
CK 본사 사옥에서 은호를 만난 창석은 함께 가는 길에 보이는 한 막창집으로 향했다.
운전 때문에라도 술도 못 하는 데다, 어차피 상대 역시 술 한 잔 못 하는 은호니까.
들어설 때만 해도 같이 사이다나 홀짝이며 먹을 생각으로 간 가게였다.
하지만 은호가 이야기를 시작한 그 순간.
창석은 그 어느 때보다 술 한 잔이 생각났다.
“기사를 내고 싶어요.”
“무슨 기사?”
“은지가 학교 다닐 때 일진이었다는 찌라시요.”
창석은 고기를 불판에 올리려던 자세 그대로 얼어붙었다.
‘이게 대체 무슨 개소리야.’
창석은 한숨과 함께 그러데이션 식으로 버럭 소리쳤다.
“안 돼.”
“에이, 대표님. 더 들어 봐 줘요.”
“안 돼. 더 듣긴 뭘 들어. 절대 안 돼. 대체 무슨 생각을 하면 그런 말이 어디 집 개 이름처럼 툭 튀어나와!”
“저 지금 연결 프로젝트 맡은 거 잘 짜 놨잖아요.”
“그게 지금 미친 기사를 내겠다는 거랑 무슨 상관이야.”
“저 나름 지금까지 잘 해 왔다고 생각하는데, 아니었어요?”
“……얘가 왜 이래? 잘했지. 잘하기야 잘했지.”
평소에는 이렇게 뜬금없이 자랑하는 애가 아닌데 창석은 혼란스러웠다.
은호는 E-UNG로 데뷔한 이래 대부분의 뮤직비디오 및 앨범 콘셉트를 직접 짜고 있다.
물론 그 아래에는 창석의 지원이 있었지만…….
단순히 돈의 힘이라기엔, 돈을 퍼부어도 끝끝내 성공은커녕 세상에 이름조차 못 알려진 그룹도 무수하다.
그러니까 은호와 은지의 성적은 두 사람이 만들어 낸 힘이라는 말이었다.
“제가 썼던 가사나 스토리들 중에 대표님 마음에 안 들던 거라도 있었어요?”
“없…… 없었지.”
그래, 없었지.
어디서 그런 감성적인 가사가 툭툭 튀어나오는 건지, 오히려 매번 볼 때마다 놀랐으니까.
‘하지만!’
지금껏 잘해 왔다고는 하나…….
학교 폭력 기사?
이건 아니지.
지금까지 잘 올라가던 계단을 스스로 무너뜨리는 거랑 뭐가 다르냐고.
창석은 갑갑한 마음에 땅이 꺼질 듯 한숨을 흘리며 입을 열었다.
“이유라도 들어 보자. 갑자기 왜 그러는 거야?”
“‘갑자기’는 아니에요. 저희 지금까지 은근히 악(惡)한 분위기긴 했었잖아요.”
……그랬나?
창석은 은호와 은지의 뮤직비디오들을 떠올렸다.
처음 발표했던 ‘DUO’는 차원을 넘나드는 듯한 연출로 진행했었다.
이후에는 악마인지 뱀파이어인지 모를 묘한 분위기의 콘셉트도 있었고.
그리고 현재 만들어 가고 있는 ‘연결’ 프로젝트 속에서 역시 은호와 은지는 ‘차원을 연결하는 역할’을 맡은 몽마 느낌으로 끌고 가고 있다.
“네 말대로 뭐, 전혀 없다고는 못하겠다만, 그 ‘은근히’ 그래 왔던 거랑 그걸 현실로 끌어오는 거랑은 다르지.”
악(惡)을 연출로 이용할 땐 매력 있다.
하지만 이게 현실이 된다면 그땐 적지 않은 잡음이 생긴다.
“은호야, 노이즈 마케팅이라는 게 득이 있을 때도 있지만 적어도 E-UNG에는 득보다 실이 더 커.”
“음~, 득이 있긴 있다는 거네요?”
은호의 뻔뻔한 대답에 창석은 황당해하며 헛숨을 터뜨렸다.
그때, 은호는 서승연이 알려 준 비장의 카드를 뽑아 들었다.
“대표님, 그럼 어떻게 해야 ‘실’보다 ‘득’이 더 커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