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매는 비즈니스로 일합니다 (216)
저주
“은호는 애가 되게 참한데, 넌 얼굴은 찍어 낸 것처럼 똑같은 애가…….”
“아, 쌤! 밥맛 떨어지게!”
은지는 그러면서도 한 젓가락 푸짐하게 짜장면을 집어 들었다.
“넌 밥맛 떨어진다는 애가 한 젓가락에 짜장면 반을 먹어?”
은지는 해바라기 씨를 저장한 햄스터처럼 양 뺨을 부풀린 채 한참을 우물거렸다.
배진수는 짬뽕이 부는 것도 잊은 채 그런 은지의 모습을 신기하게 가만히 바라보고 있었다.
은지는 바쁘게 입을 오물거렸다.
그러자 은지의 부푼 양 뺨이 서서히 줄어들었다.
입 안에 있는 게 완전히 비게 되자 은지는 티슈로 고상한 척 입가를 닦으며 말했다.
“밥맛 떨어진다고 했지, 면맛 떨어진다고는 안 했잖아요.”
은지의 대답에 배진수는 황당한 숨을 터뜨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니 똥 굵다.”
“헐, 제 똥 굵은 거 어떻게 알았어요?”
“……말을 말자. 말을 말어.”
“아이, 장난인 거 아시면서!”
배진수가 졌다며 한숨을 내쉬자, 은지는 그제야 질려 버린 배진수를 달래며 말했다.
“오늘은 쌤이 먼저 이상한 말 해서 그래요!”
“내가 무슨 말을 했다고.”
“이은호가 얼마나 가식덩어린데! 그냥 착한 것도 아니고 참하다니, 으!”
“은호가 가식덩어리야?”
“네!”
“가식 없던데?”
은지는 윗입술을 코끝에 붙이며 심술궂은 기분을 여지없이 드러냈다.
“하하하하. 넌 어디 가서 그 얼굴 그렇게 쓸 거면 달라는 소리 질리게 듣겠다.”
“……흥.”
“하하. 알았어. 들어나 보자, 은호의 어떤 점이 그렇게 가식적인 건지.”
“어떤 점이랄게 있어요? 오빠의 모든 게 가식이죠.”
“그래? 음, 은지야. 내 생각엔 말이다.”
“……?”
“은지 넌 그런 가식이라도 있어야 할 것 같은데—.”
배진수가 또 한 번 진심 섞인 농을 던지자, 은지는 조금 전과 똑같이 심술궂은 얼굴을 만들었다.
그래도 이번엔 할 말이 있던 모양인지 은지는 금세 못난 표정을 풀었다.
“저는 그래도 가식이 없는 만큼 똑같잖아요.”
“은호는 안 똑같아?”
“당연하죠. 오빠가 가식떨 땐 괜찮은 놈인 것 같아도 뭐 하나 밟아 버릴 땐 진짜 장난 없어요.”
“그래?”
“네. 그럴 땐 저도 쫄려서…….”
은지는 잠시 젓가락질을 멈추며 머뭇거렸다.
예전 일이 떠올라서.
* * *
데뷔 이후 처음 악플을 마주했을 때였다.
대표님은 견디라 했고, 이은호는 법대로 하라며 나를 볶아 댔다.
처음엔 ‘괜찮아.’라고 스스로를 다독이며 대표님의 의견을 따랐다.
하지만 ‘괜찮아, 난 괜찮아’ 하던 그 말들이 쌓여 가면서 나는 어느새 스스로에게 돌을 던지고 있었다.
그 돌은 억지로 미소 짓는 내 모습을 비추던 거울을 깨트렸다.
잔잔한 피아노 연주가 순식간에 일렉트릭 기타의 귀를 찢을 것 같은 굉음으로 바뀌었다.
장르가 바뀐 연주처럼 내가 마주한 거울 너머의 ‘나’는 곳곳이 썩어 있었다.
받은 상처들이 쌓이며 염증이 번졌고, 결국 속에서 곪아 버렸다는 것을 눈치챘을 땐 이미 손을 쓰기 힘든 지경이었다.
그럼에도 나는 희망을 놓기 싫었다.
그래서 나는 나대로 해결 방법을 찾았다.
악플러들을 고소하는 대신 함께 봉사 활동을 하기로 했다.
만나서 이야기한다면 서로가 서로에게 가진 잘못된 이미지나 생각을 바꿀 수 있을 거라고 믿었다.
「“그게 뭐 하는 짓이야. 그런 놈들은 똑같아. 헛짓거리밖에 안 될 텐데―.”」
이은호는 나더러 왜 그런 바보 같은 짓을 하느냐며 화를 냈다.
하지만 나는 사람의 선함을 믿었다.
어릴 적부터 지긋지긋하게 사람한테 여러 번 데어 봤지만 그런 사람들만큼이나 빵 아저씨나 대표님같이 좋은 사람도 있었으니까.
그래서 믿었다.
그렇게 대화로 바꿔 보고자 자리를 만들었다.
나를 위해서도 있었지만, 지금 생각하면 이은호의 인간 불신이 틀렸다는 걸 증명하고 싶은 오기 섞인 마음도 적지 않았던 것 같기도 하다.
그렇게 마주한 악플러들.
막상 실제로 마주한 악플러들은 나한테 온갖 저주들을 퍼부으며 성희롱을 해 댔던 사람들이 맞나 싶을 정도로, 평범했다.
특별한 것 하나 없이 내 팬들과도 비슷한 평범한 사람들이었다.
거기서 처음 균열이 일었다.
그 균열이 무엇을 뜻하는지는 그때의 나는 몰랐다.
그렇게 한 번 선처를 베풀었다.
하지만 악플러들은 여전히 있었다.
두 번째 고소장과 합의.
그리고 똑같은 봉사 활동 시간.
이은호 말이 옳았던 걸까.
적어도 다른 사람들일 줄 알았다.
하지만 두 번째 봉사 활동 시간에 그 자리에는 첫 번째 봉사 활동 때와 같은 사람들이 있었다.
「“이은지 저 X발 X, 착한 척 이미지 메이킹하는 데에 우리 써먹는 거 개 역겨워.”」
의심을 하자 그제야 듣게 됐다.
그 사람들은 대화할 생각이 없었다.
그저 내가 입은 피해를 호소하는 그 고소장을 피하고자 온 것뿐이었다.
균열이 커졌다.
세 번째에는 더는 어떻게 변화를 만들고 싶어도 만들어 갈 힘이 없었다.
「“도와줘, 오빠…….”」
그래서 세 번째는 이은호한테 전부 맡겼다.
「“알았다.”」
사람들한테 좋은 사람인 척 웃고 떠들고 시시덕거리는 것 같아도.
나는 그때의 이은호를 봤기에 이은호가 어떤 사람인지 알고 있다.
NRY 엔터테인먼트로 ‘아이의 실수’였다며 한 부모님이 찾아왔다.
그들은 죄송하다며 무릎까지 꿇고 빌었다.
마음이 약해지는 풍경이었다.
이은호는 다정한 척 그 가면 같은 미소를 뒤집어쓴 채 그들을 일으켰다.
「“댁의 자녀분께서는 같은 ‘실수’를 세 번이나 하나 봅니다.”」
처음엔 아니라고, 죄송하다고 반복하던 그들이었다.
「“한 번은 실수가 맞죠. 두 번까지는 그래요. 넓은 아량으로 본다면 그럴 수 있겠죠. 그런데 세 번은 글쎄요.”」
하지만 이은호의 반복적인 ‘맞는 말’ 잔치에 결국 돌변했다.
「“딴따라 새끼들 주제에! 내 새끼 인생 망치고 너희가 뻔뻔히 TV에 얼굴 비추면서 잘 살 수 있을 것 같아!!!”」
마음이 약해졌던 내가 바보가 됐다.
그때였다.
「“X 같은 년. 변기에 얼굴 처박고 뒤져 버렸으면 좋겠다, X발년.”」
이은호는 사람 좋은 얼굴을 하고 쌍욕을 입에 담았다.
살짝 소름이 돋을 정도였다.
「“너, 너 어린놈이 어른한테!”」
악플러의 부모님은 목에 핏대가 서선 소리쳤다.
당연한 반응이었다.
하지만 이은호는 그때도 태연하게 웃으며 말했다.
「“아, 오해하신 것 같은데, 이건 댁 자녀분께서 제 동생에게 남긴 댓글을 그대로 읽어 드린 것뿐이에요.”」
「“그런데, 당신들께선 그렇게 화를 내시면서, 왜 제 동생은 그런 말을 가만히 듣기만 해야 합니까?”」
악플러의 부모가 거짓말처럼 조용해졌다.
「“법대로 하시죠.”」
불청객들은 더 반박하려 애쓰는 모습이었지만, 이은호는 이후로도 조용히 조목조목 따져 가며 부모들의 입을 닫게 했다.
그리고 이은호는 정말 법대로 했다.
그 부모들이 회사에 찾아와 온갖 욕설을 하던 그날의 CCTV 영상 및 녹음 자료를 증거로 추가하면서 상대측이 빼도 박도 못하게, 숨도 못 쉴 정도로 몰아붙였다.
그 결과.
악플러가 치러야 할 단위가 처음엔 몇백만 원으로 끝날 문제였지만 이은호의 손을 거쳐 천만 단위를 넘어갔다.
「“그건 좀 너무하잖아!”」
그때의 이은호는 표현하자면 날카롭게 갈린 칼이었다.
조금 위협만 하려고 했건만 스친 순간 베여 버려서 서로가 피를 봤다.
후련한 마음 반 죄책감 반.
여론의 반응 또한 마찬가지였다.
세 번이나 반복했다면 갱생할 여지가 없다며 잘했다는 쪽과 그래도 저건 너무했다는 쪽.
나 역시 그랬다.
그래서 괜히 이은호한테 화를 냈었다.
소리치는 나한테 이은호는 굳은 얼굴로 말했다.
「“이건 좀 심하잖아! 내가 언제 그렇게까지 해 달라고 했어!”」
「“감당할 수 있는 건 솜방망이고, 이런게 진짜 ‘죗값’이지. 그리고 이은지. 그럼 니가 알아서 잘했어야지. 왜 나한테 부탁했는데?”」
「“그건…….”」
「“넌 네 방식이 틀렸다는 걸 알았고, 그래서 나한테 도와달라고 했던 거였어.”」
할 말이 없었다.
이은호 말대로, 이은호한테 부탁한 건 내 방식은 안 통해서였으니까.
그때 이은호는 웃으며 말을 이었다.
「“은지야, 모른 척하지 마.”」
「“넌 내가 손쓰면 어디까지 가는지 알고 부탁한 거잖아.”」
내내 균열이 가던 벽은 그때 완전히 무너졌다.
「“알았어! 앞으로 너한테 부탁 안 해.”」
화가 났다.
아직도 나는 재수 없게 혼자 어른인 척하는 이은호한테 ‘도와줘’라고 외치는 수준인 게.
「“너도! 너하고 연관 없으면, 내가 누구한테 어떤 취급을 받든지! 내 일에 나서지 마. 이, 이, 아아악! 재수 없어!”」
이어진 이은호의 대답은 한결같았다.
「“알았다. 멍청아.”」
증명하고 싶었는데.
시원하게 한마디 해 주고 싶었는데.
열이 뻗친 나머지 아무 단어도 떠오르지 않아서 내가 봐도 바보같이 소리치고 방으로 들어가 버렸다.
대신 일을 처리해줘서 고맙다고 인사할 기회도 놓친 채 말이다.
그 일이 있고 난 뒤.
짧은 대답으로 했던 약속을, 이은호는 평생 지켰다.
내가 죽고 난 뒤.
회귀한 이후에도 말이다.
내가 회귀 전 기억이 없을 때 페이옵에게 무시를 당하던 그때.
이은호는 그 잘 벼려 둔 칼을, 어떻게든 처리할 수 있었음에도 제대로 봉인해 뒀었다.
뭐, 아무튼.
화랑 언니한테 조광어 이야기를 들은 그날.
「“그래. 니 맘대로 하셔.”」
나는 이은호한테 칼을 뽑으라고 했다.
이은호가 나몰래 은근히 수를 쓰는 건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럴 때도 성격이 더럽긴 하지만, 칼을 뽑은 이은호보다야 선녀 수준이었다.
그런 이은호를 2년이나 건드렸던 조광어는 당해도 싸니까.
이은호가 세운 계획은 살짝 우리 이미지를 스스로 박살 내 버리는 무리수가 있긴 했다.
‘……대표님은 정말 싫어할 것 같지만.’
나는 마음에 들었다.
그편이 훗날 내가 방송에서 실수하거나, 예전처럼 일이 터져도 팬들이 그러려니 넘어가지 않을까 싶기도 하고.
그런 거 있잖아.
착한 애가 나쁜 일 하나 잘못하면 사기꾼 취급을 받는데.
정작 나쁜 애가 착한 일 하나 하면 ‘마음은 여리다’ 평가받는 것들.
‘게다가 우리 과거 이야기를 밝히는 시점도 지금이 아니면 언제 기회가 올까 싶기도 하고.’
최근 E%들은 방송에서 우리가 감성에 취해 예상치 못하게 흘린 옛날이야기를 파고들고 있다.
노래 가사들을 그날 했던 이야기에 맞춰 보는 내용의 한 오튜브 영상이 최근 엄청난 호응을 얻기도 하면서, 팬들이 최근 들어 우리 과거에 대해 깊게 파고 있다.
이런 거에 눈치 없는 내가 이 정도로 알아챌 정도라는 말은 E-FAN에서는 엄청나게 들끓고 있다고 봐도 무방하지 않을까.
마침 곧 나올 신곡의 의미도 연결되니까.
‘타이밍은 딱인데…….’
문제는 과연 이은호가 오늘 대표님한테 허락을 받아 낼 수가 있을지가 문제다.
‘대표님이 과연 허락하실까…….’
* * *
“안 돼.”
“에이, 대표님. 더 들어 봐 줘요.”
“안 돼. 더 듣긴 뭘 들어. 절대 안 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