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매는 비즈니스로 일합니다 (215)
「“조광수라고…….”」
조광수인지, 조광부인지.
내 은인들의 뭘 안다고!
TaKa 엔터테인먼트에서 뛰쳐나오던 그날 이후로 이렇게까지 열 받은 건 처음이었다.
하지만 고민은 됐다.
혹시라도 그 사람의 말이 사실이라면?
“아니야, 사실인지도 모르는 거고…….”
최근 은호는 ‘연결’ 프로젝트로 바쁘고, 은지는 은지대로 작곡에 힘을 쓰는 중이다.
“심지어 은지는 내 곡이랑 톡신 곡이랑 이응 곡까지 세 팀 곡을 작업하는데……!”
내가 방해되면 안 되는데, 괜히 두 사람에게 신경 쓰이는 이야기를 던지는 건 아닐까.
‘하지만 학교 폭력과 관련된 문제는 자칫 늦었다간 크게 번질 거고…….’
화랑은 긴 고민 끝에 일단 던져 보기라도 해 보자는 심정으로 깨톡을 썼다.
[나 ― 은지야]
― 혹시 잠깐 시간 돼?]
― 물어볼 게 있어서]
그로부터 10분 뒤.
은지에게 답이 왔다.
[은지느님 ― 온나 잔시먼 닛ㅎㄴ애뮬뮫오잌ㅅ어]
화랑은 제3의 눈을 개방하며 은지가 낸 오타의 속뜻을 알아차리기 위해 은지의 휴대폰 키보드 설정이 ‘쿼티’라는 것을 떠올렸다.
이어서 ‘뮬묻’이라는 글자에서 ‘물이 묻어서’라는 것을 추측했다.
여기까지 왔을 때 은지가 답을 알려 줬다.
[은지느님 ― 온냐 미안!]
― 머리 감아섴ㅋㅋㅋㅋ]
― 손에 물 묻어서 잘 안 쳐지더라고ㅋㅋ]
[나 ― ㅋㅋ 아 물 묻었다는 것까지는 해석했는데!]
[은지느님 ― 쩐당!]
― 머 물어보려공?]
은지는 은호를 제외한 다른 사람들에게는 상당히 애교가 많은 편이었다.
화랑은 은지의 애교에 입꼬리를 귀에 걸며 대화를 이어 갔다.
[나 ― 혹시 조광수라는 사람 알아?]
[은지느님 ― 조광수?
― 조광수? 어디서 들어 본 거 같은데….]
[나 ― 그래?]
[은지느님 ― 근데 그 사람은 왱?]
[나 ― 그 우리 오빠가 다니는 회사에 신입으로 들어온 사람이…….]
화랑은 호랑이 이야기한 신입이 ‘조광수’라는 사람이며, 이 사람이 ‘은지를 학교 폭력과 연관이 있다는 식으로 말했다’라며 들은 이야기를 모두 전했다.
[은지느님 ― 움 때린 사람이 많긴 한데]
[나 ― 헉…?]
화랑은 놀란 나머지 입을 틀어막았다.
[나 ― 어떡해? 너 큰일나는 거 아니야?]
[은지느님 ― 에이 갠차나 근데 내가 때린 놈들은 대부분 그놈들도 잘못한 거 있어서]
[나 ― 옹….]
화랑은 잠시 고민하다 이 상황을 타파할 사람을 불렀다.
[은호느님 ― ?]
단톡방이 만들어지고, 은호의 첫마디였다.
[은지느님 ― 야]
[은호느님 ― 뭐]
화랑은 은호와 은지랑 자주 만나면서 깨달은 점이 하나 있었다.
사람이 세 명이 모이고, 둘 사이에 대화가 두 마디 이상 나오면 그땐 이미 싸움이 시작된 이후라는 것.
고로.
[나 ― 조광수!]
화랑은 다급하게 일단 앞뒤 설명 없이 들었던 이름부터 던졌다.
[은호느님 ― ?]
― 화랑씨가 그 이름]
― 어떻게 알아요?]
이후에 상황을 설명할 생각이었는데, 은호에게서 유의미한 반응이 먼저 나왔다.
게다가 어쩐지 싸늘한 느낌을 풍기는 존댓말이 절대 좋은 사이는 아닌 것 같았다.
“……설마.”
화랑은 불안했다.
[은호느님 ― 무슨 일 있어요?]
은호의 질문에 화랑은 잠시 고민하다 호랑에게 들었던 이야기를 그대로 전했다.
[은호느님 ― ㅋㅋㅋㅋ]
은호는 웃었다.
[은호느님 ― 고마워요.]
― 알아서 해결할게요.]
― 신경 쓰였을 텐데, 미안해요.]
화랑이 아니라며 답할 시간도 없었다.
[은호느님 님이 나가셨습니다.]
은호가 곧장 단톡을 나갔다.
[은지느님 ― 아!]
그때였다.
[은지느님 ― 조광수가 누군가 했더니!]
― 기억났다 광어구나!]
[나 ― 아는 사람이야?]
[은지느님 ― 움 안다기보단…]
[나 ― 웅?]
은지가 갑자기 말이 없었다.
한참이 지난 뒤에서야 은지에게서 답이 돌아왔다.
[은지느님 ― ㅋㅋㅋㅋ이은호가 갑자기 내 방에 와서]
― 내가 나중에 이야기해 줄겡!]
[나 ― 웅웅]
괜찮을까.
화랑은 호기심이나 서운한 기분보다도 걱정이 앞섰다.
* * *
“그래. 어쩐지 조용히 꺼졌다 싶었어.”
“그래서 이렇게 보내 볼까 하는데 어때.”
“그래. 니 맘대로 하셔.”
“……이은지 너 원래 내가 이렇게 처리하려고 하면 맨날 ‘너무한 거 아니야?’ 하더니, 웬일이래.”
“해 줘?”
“아니. 제발 항상 이래 주라.”
“하핰핰.”
“심하다느니 그런 소리 안 하길래 무슨 심경의 변화라도 있으셔서 그러시나 했지.”
“딱히. 그냥. 예전이야, 마냥 대가리에 꽃 피어 있던 시절이었고 이은호식 계획이 생각보다 좋은 것도 있고…….”
은지는 눈을 흘기며 말을 이었다.
“광어 새끼는 그래도 언제 한 번은 조졌으면 좋겠다고 생각했기도 하고.”
은지가 은호처럼 웃었다.
순수한 듯 보이지만 무슨 꿍꿍이가 있어 보이는 그런 미소였다.
은호는 참아 줬다고는 하지만, 은호가 그 광어 놈에게 당하고 산 기간이 족히 1년, 아니. 2년이던가.
원래 오빠는 패도 내가 팬다고, 멍청이가 어디 가서 맞고 오면 빡치는 법.
은지는 회귀 이후 이야기를 들은 에이슬보다, 직접 겪었던 조광어에게 오히려 개인적인 원한이 더 깊었다.
적어도 그 X년은 이 시간에서 무슨 차이가 있었는지 몰라도 갑자기 순해지기라도 했다지만…….
‘그 X새끼는 여전히 해산물 새끼라는 거니까.’
그냥 이은호대로.
이은호답게.
“알아서 잘 해 봐.”
“어.”
은호와 은지는 똑 닮은 얼굴로 오늘따라 유독 사악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뼛속에 새겨 줘야지.’
얌전하던 남매를 건드리면 X 되는 거라고.
* * *
“고생하셨습니다!”
“고생하셨습니다!”
은호와 은지가 우렁차게 인사하자 스튜디오의 주인인 배진수가 활짝 웃으며 인사했다.
“수고했어요. 잘 뽑혔어. 이번엔 진짜 둘이 대박 날 거야.”
“우리 스승님 귀인데, 당연하지!”
“그렇게 말하면서 은근슬쩍 어딜 도망가려고?”
“악, 튀어!”
“은지야, 넌 아직 할 일이 남았으니 남아야지요?”
“켁!”
은지가 은호와 함께 스튜디오를 나가려고 하자, 배진수는 재빠르게 도망치려던 은지의 후드 모자를 붙들며 말했다.
은지는 당겨진 모자에 콜록거리면서도 도망칠 생각인지 눈치를 보고 있었다.
“눈알 굴러가는 소리가 여기까지 들린다, 은지야.”
아무나 그 ‘이은지’의 스승이 되는 건 아닌 듯, 배진수는 사람 좋은 인상을 하면서도 은지를 확실하게 휘어잡고 있었다.
그 모습을 한 걸음 뒤에서 신기하게 구경하던 은호는 급한 약속이라도 있는지, 다급하게 준비하며 배진수에게 인사를 건넸다.
“늦기 전에 먼저 들어가 보겠습니다.”
“그래. 은호는 고생많았어.”
배진수는 은호에겐 인자하게 배웅하며 말했다.
“아! 이은호! 나도! 나도 데려가아!!!”
“넌 같이 건들다 가셔야지. 어딜 나한테 다 맡기려고.”
“아아아악. 선생니이이임.”
“안 돼. 앉아.”
은호가 스튜디오를 떠나고, 느리게 닫히던 스튜디오 문틈으로 간절한 은지의 목소리가 새어 나왔다.
은호는 웃으며 시끄러운 스튜디오를 빠져나왔다.
어둑해진 하늘을 올려다보던 은호는 휴대폰을 확인했다.
어느새 시간은 오후 8시가 넘어가고 있었다.
“안 늦으려나.”
은호는 하얀 마스크를 고쳐 쓰며, 날씨가 쌀쌀한지 은지가 매일 ‘교복’이라 놀리는 상아색 카디건을 똑바로 걸친 뒤 큰길로 나왔다.
옷을 입으면서도 은호의 남은 한 손은 바쁘게 어딘가에 전화를 걸고 있었다.
“퇴근하셨어요? 어디세요?”
통화가 연결되고 인사보다 빠른 본론이었다.
은호는 전화 너머 상대의 대답이 원하는 답이었는지 입꼬리가 보기 좋게 말려 올라갔다.
“괜찮아요. 제가 그쪽으로 갈게요.”
은호는 큰길을 향해 팔을 뻗었다.
지나가는 사람이 많지는 않았지만, 그런 와중에도 은호를 힐끔거리며 바라보는 사람은 있었다.
하지만 말을 걸기엔, 은호는 택시가 멈춰 선 즉시 재빠르게 올라타 버려서 타이밍이 맞지 않았다.
그동안 통화는 끊어진 듯 보였다.
“강남 CK 사옥으로 가 주세요.”
“예에.”
택시에 오르자마자 목적지를 알렸다.
기사님들 중에서 긴 시간의 심심함을 달래기 위해 대화를 거시는 분들도 종종 있다.
하지만 오늘만큼은 계획을 다시 한 번 정리할 시간이 필요하기에, 은호는 어느 때보다 침묵이 필요했다.
내릴 때가 됐을 때 은호는 복잡하던 생각을 마무리한 듯 한결 가벼워 보이는 얼굴이었다.
“잔돈은 됐습니다.”
마침 은호가 탄 기사님은 은호가 원하던 대로 달리는 내내 말씀 한마디 없는 분이었다.
은호가 기사님에게 감사한 마음을 담아 현금을 내밀자, 기사님의 표정이 밝았다.
“좋은 하루 되세요.”
은호의 인사에 기사님에게서도 밝은 인사가 돌아왔다.
도착한 CK 사옥을 올려다보니, 야근하는 직원들이 많은 듯.
9시가 넘어가는 시간에도 빌딩의 불은 여전히 밝았다.
“넌 뭘 번거롭게 여기까지 와.”
그때였다.
익숙한 목소리가 들렸다.
“회사에서 하기엔 대표님이 집에 돌아가시는 게 번거로우시잖아요. 회의는 잘 마치셨어요?”
“잘 마쳤지. 너희 출연 일정도 다 잡았고, 그나저나 넌 나한테까지 능글맞게 굴지 말고 얼른 본론이나 말해 봐.”
창석의 꿰뚫은 질문에 은호가 웃으며 입을 열었다.
“저, 사고 하나 쳐도 돼요?”
“……허허.”
창석은 잠시 뒤통수라도 얻어맞은 얼굴이었다.
“우리 은호가, 갑자기 돌아 버렸을 리는 없을 테고, 그렇지? 그렇다고 해.”
“…….”
은호가 싱긋 웃자, 창석은 올라오는 스팀에 살짝 아찔하진 듯 눈을 감았다가 뜨며 콧김을 내뿜었다.
입을 열었다간 잔소리가 터질 것 같아서 대신 코로 한숨을 흘린 거였다.
“이유나 들어 보자.”
“조광어. 아니, 조광수 아시죠.”
“너희 학교 다닐 때 얽혔다던, 그 펜션 촬영 갔을 때 마주쳤다는 그놈 아니냐?”
“네. 정확히 기억하시네요.”
창석은 한참이 지난 뒤에서야 가게 앞에서 은호와 은지가 겪었던 일을 전해 들어서 어느 정도 조광수에 관한 이야기는 알고 있던 차였다.
“걔가 왜?”
“입을 싸게 놀리고 다니는 것 같더라고요.”
“너…….”
은호의 사나운 대답에 박 대표가 도리어 놀라며 말문이 틀어막혔다.
“왜 그렇게 화가 났어?”
“에이, 그냥 흥분한 거예요.”
“그러니까 되게 변태 같구나.”
“하하핰.”
박 대표의 어투는 웬 영감님이 튀어나온 것 같았다.
덕분에 은호는 한결 풀어진 분위기에서 말을 이었다.
“그 녀석이 새로운 직장에서 은지가 학교 폭력을 했니 뭐니 멋대로 떠들고 다닌답니다.”
“뭐?”
박 대표의 표정이 사납게 굳어졌다.
은호는 열 받은 박 대표를 달래며 말을 이었다.
“기왕이면 이용하자고 말씀드리려고 왔어요. 그편이 이득일 것 같아서.”
“무슨 짓을 하려고?”
“노이즈 마케팅?”
“어허, 얘가 또 위험한 소리 하네. 너희 이미지는 어쩌려고.”
“이번 앨범 콘셉트도 그렇게 잡았겠다, 악당 한번 해 보죠. 뭐.”
은호의 태연한 대답에도 불구하고 박 대표의 얼굴엔 여전히 걱정이 가득했다.
박 대표는 푹 한숨을 내쉬며 차 키를 눌렀다.
커다란 ‘삑―’ 소리와 동시에 익숙한 세단이 라이트를 켜며 ‘나 여기 있소’라고 알려 왔다.
“일단 차나 타라. 가면서 이야기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