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매는 비즈니스로 일합니다 (212)
개인적으로 술을 별로 안 좋아한다.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모르겠는데…….
먹어야 맛을 알 텐데, 향만 맡아도 훅 가니까.
맛을 느끼기도 전에 정신이 나가니, 가까워지려야 가까워질 수 없는 관계다.
회귀 전에 마셨던 술들 때문에 싫은 이유도 있긴 하지만, 그땐 대부분 위스키나 보드카 같은 도수가 강한 종류나 저렴한 소주가 대부분이었다.
하지만 아무리 술 쓰레기인 나라도, 그중에서 은근히 관심이 있는 분야는 있다.
은호는 앞에 놓인 짙은 보라색 음료를 가만히 바라봤다.
와인이 딱 그 자리였다.
특히 선배가 손에 든 와인은 정말.
아무리 술을 못 마시는 나라도 욕심이 날 정도로 코르크를 뽑자마자 진한 포도와 화한 향기가 풍겼다.
향기부터 자신이 비싼 몸이라는 걸 자랑하는데, 어떻게 욕심이 안 날까.
하지만 태현은 은호에게 한 모금도 내어 줄 생각이 없는지, 정말 포도 주스만 내줬다.
‘과즙 100%…….’
은호는 크게 쓰인 퍼센트에 나름의 위로를 얻었다.
게다가 태현이 포도 주스를 나름 와인 잔에 따라 주며 한 한 마디 때문에, 은호는 아무리 먹고 싶어도 ‘저도 한 모금만…….’이라는 말이 쉽게 나오지 않았다.
「“내일 점심 전에는 적어도 집에 가야 할 거 아니야. 은지가 걱정할라.”」
고개를 드니, 테이블 위에는 태현이 따르고 있는 와인 병까지 벌써 세 병째 비어 있다.
‘자존심은 상하는데…….’
은호는 자신을 알았다.
저 와인들을 마시고 선배 말마따나, 내일 점심 전까지 일어날 자신이 없다.
그래서였다.
은호는 얌전히 와인 잔에 따라진 포도 주스를 홀짝이며 스테이크 샐러드를 쿡 찍어 입으로 가져갔다.
불만이던 마음은 샐러드 안에 들어 있는 촙스테이크 한 조각의 풍미에 사르르 녹아내렸다.
그렇게 식사를 이어 가던 중.
은호는 시선에 닿은 무언가를 보며 문득 포크질을 멈췄다.
넓은 아일랜드 식탁 끝자락.
둥글게 말린 부분 중앙에 놓인 한 약봉지.
반투명한 하얀 약봉지에는 분홍색의 ‘밤’이라는 글자 뒤로 동그란 모양의 작고 하얀 알약 하나.
옆에는 나란히 분홍색 알약과 조금 더 큰 크기의 살구색 알약도 있었다.
익숙한 약이었다.
회귀 전, 은지를 잃고 한창 아무렇지 않은 척 연기하며 활동하던 그때 근 1년을 자신도 매일매일 달고 살았던 약이었으니까.
몸의 병만 병이 아니니까.
때로는 마음의 병이 몸의 병보다 더 사람을 깊고 독하게 갉아먹으니까.
아프면 병원에 가듯, 정신과 역시도 마음이 아플 때 가는 병원이다.
항우울제.
항불안제.
이것들 역시도 그렇다.
일반 병원에서 탄 약처럼, 그냥 감기약처럼, 진통제처럼.
내 마음의 병이 조금이나마 나을 수 있게, 나를 침대에서 일으키고, 술에 미쳐 있지만 않게, 삶을 다시 느낄 수 있게 도와준다.
하지만 약을 먹고 증상이 호전돼도 춥게 지내면 다시 감기가 찾아오듯, 마음의 병 역시도 그랬다.
그래서 꾸준히 먹었다.
내가 다니던 정신과는 은지가 입원했던 큰 병원보다는 대표님의 사무실과 비슷한 느낌으로 꾸며져 있던 곳이었다.
물론 처음엔 들어서는 것조차 못 해서 의사 선생님이 카페까지 나와서 진료를 봐 주셨었다.
지금 생각하면 정말 코미디 같지만.
그땐, 내가 그만큼 많이 아팠던 거겠지.
원인은 알고 있었다.
누구겠어.
‘그 못생긴 애 하나뿐인데.’
말은 이렇게 하지만, 은지는 하나뿐인 가족이다.
인생의 동료였고, 친구였고, 이은지는 나였다.
나 자신보다도 더 아꼈던, 내가 되고 싶던 나였다.
그래서 이은지를 보내 줘야만 했지만, 보내고 싶지 않았다.
오기로라도 내가 썩어 곪아 가도, 은지를 쥐고 있으려고 했다.
약을 먹으면 내 감정이 억제당하면서 강제로 평온을 되찾아 주려는 느낌이 든다.
그게 고마우면서도 때로는 정말 싫었다.
의사 선생님은 그런 사람도 있다며 이해해 주셨지만, 사실 그땐 그 이해조차 정말 싫었다.
왜 그랬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냥 그랬다.
그래서 ‘병’이라고 부르는걸까.
“…….”
태현은 와인 잔을 내리며 뒤늦게 약봉지를 바라보고 있는 은호를 발견했다.
태현은 은호가 궁금해서 바라보고 있는 줄 알았는지, 약에 대해 간단하게 설명을 덧붙였다.
“그냥, 정신과 약이야.”
“알고 있어요.”
은호는 여전히 약봉지를 바라보며 씁쓸하게 웃었다.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된다는 의미였는데, 다행히 태현은 알아들은 듯 픽 웃으며 와인을 한 모금 더 들이켰다.
밑바닥이 보이자 태현은 깊은 와인 잔의 절반을 다시 채웠다.
태현은 모든 걸 견뎌 낼 것 같은 포르미카 게임 속의 든든하던 워로드 같은 사람이다.
하지만 그 역시도 결국엔 사람이었다.
톡신의 이름의 무게를 짊어지며, 동료인 멤버들에게도 말 못 하고 속으로 꾹꾹 눌러 담았던 감정들이 많겠지.
TaKa 엔터테인먼트에서 톡신을 붙잡기 위해 선배를 ‘대포차 사기’로 기사를 냈다고 했던가.
기사를 처음 접한 선배는 억장이 무너졌을 것이다.
TV에.
사람들에게.
우리는 비쳐야만 하기에 더 많은 사람들에게 몇 번이고 재단 당하면서도 고고하게 존재해야 했다.
이건 솔직히 연예인이 아니라도 똑같다.
애초에 사람인 이상 평가하고, 평가당하고의 반복이다.
그 평가의 기준치가 높으냐 낮으냐의 차이일 뿐.
우리는 항상 누군가를 평가했고, 하고 있으니까.
다만, 개인의 평가는 괜찮다.
내가 잘하면, 내가 잘 버티면, 나만 잘해도 해결할 수 있는 문제니까.
문제가 될 때는 나로 인해 소중한 사람들까지 피해를 입을 때였다.
돈으로든, 감정으로든, 뭐든 말이다.
그 ‘죄책감’이라는 게 생각보다 날카로운 놈이라 제삼자인 타인의 눈에는 아무것도 아닌 것도 스스로 ‘‘죄’인가?’ 하는 물음을 던진 그 순간.
포르미카에서 무너졌던 천장처럼 단단하던 마음에 예상치 못한 구멍을 만든다.
잠깐 흐려진 시야에 정신을 차리고 보면 나는 이미 치명상을 입은 후였다.
“형님도 사람이었네요.”
“……사람이지.”
태현은 나름 은호의 위로라는 걸 아는지 피식 웃으며 물었다.
“저게 무슨 약인지 알아?”
“……밤에 잠은 안 오고 자고 싶지도 않고, 그런데 동시에 잠들고 싶고. 당장이라도 죽어 버리고 싶은데 살아야만 하니까.”
“하하…….”
“모든 게 나를 죽일 것 같고 불안한데, 살아야만 하니까. 어떻게든 버텨 보려고 발악할 때 잡는 생명줄 같은 약이죠.”
“…….”
“불안하고 우울해서 몸에 힘조차 안 들어갈 땐, 링거나 웬만한 치료 약보다 여기에 더 잘 먹히죠.”
은호가 제 머리를 검지로 쿡 찍으며 웃었다.
“하하, 어. 잘 알고 있네.”
제 이야기였으니까요.
은호는 뒷말을 아꼈다.
하지만 그것만으로 태현은 ‘은호도 이 약을 먹어 봤구나’ 알 수밖에 없었다.
그런 약이었다.
죽고 싶은데.
살기 싫은데.
살고 싶어서.
이게 무슨 모순적인 말이냐고 해도 할 말이 없었다.
그런 마음이니까.
하루에 수십 번, 수백 번, 수천 번.
나 자신조차 예측할 수 없을 정도로 불안했다가, 죽고 싶을 정도로 힘들다.
하지만 막상 죽고자 마음먹으면 모든 게 억울해서 다시 살고자 마음을 먹는다.
게임은 캐릭터가 죽어도 언제든 다시 살릴 수 있다.
다시 살아나지 않는 게임이라도, 게임을 다시 사든지, 컴퓨터를 다시 사든지.
돈만 있으면 정말 언제든 다시 살아날 수 있다.
새로운 캐릭터로 새로운 이야기를 할 수 있다.
하지만 현실은 한 번뿐인걸.
주변에 휘둘려 이 한 번뿐인 기회를 잃기엔 내가, 이 몸뚱이가 너무 불쌍해서.
대포차 논란 같은 가짜 찌라시 때문이 아니었다.
그저 차곡차곡 쌓인 거다.
가짜 기사도, 진짜라도 잘한 것보다 나쁜 것을 부각시켜 쓴 악질적인 기사도.
거기에 달린 악플들.
곳곳에 퍼진 도를 넘어선 글도.
은근히 돌려 까는 글도.
‘아, 그것도 있었지.’
멤버들이 코피를 쏟아 가며, 쓰러졌던 몸을 갈아 가며.
온갖 고생 끝에 낸 앨범.
우리에게 남은 건 세더티브 이름 대신 라면 국물만 나눠 먹어야 했던 생활고.
분명 듣고 봤다는 사람은 많은데, 이상했다.
예찬이가 알아본 바로는 자식 같은 창작물이 우리와는 하등 관계없는 포인트로, 우리 이름이 아닌 다른 이름으로 거래가 되고 있었다.
「그 부분은 아쉽긴 했어ㅋㅋㅋ」
「이 곡은 쬐끔 아쉽네」
「이건 결제 안 하길 잘했다 포인트 날릴 뻔 ㅋㅋㅋㅋ」
「마지막 부분에 적어도 이런 식―」
우리가 모르는 곳에서 우리 것을 멋대로 평가하며 떠드는 것을 봤을 때.
뒤에 어떤 좋은 말이 붙어도 머릿속에는 ‘X같네’라는 말밖에 떠오르지 않았다.
우리 덕에 이름을 알린다느니, 홍보된다느니 자위하는 건 더더욱 역겹기만 했다.
누가 해 달라 했냐고 외치고 싶었다.
이후 우리 음악을 ‘많이 들었다’며 접근한 ‘팬’은 알고 보니 창작의 가치를 무시하는 불법 다운로더였다.
그게 우리 생활고의 원인이었다.
사장은 그 미약한 앨범 판매량을 ‘너들 중 하나라도 뒈져서 팔기라도 해 봐라’라며 조롱했다.
당당히 값을 치르고, 돈이 아니라도 정당히 가치를 치르며 즐길 방법은 다양하다.
그렇게 하지 않는 건.
‘그냥 귀찮을 뿐이잖아.’
학생이라서, 돈이 없어서.
이런 말들은 핑계지.
나누어 주는 것도.
참아 주는 것도.
넘어가 주는 것도.
가진 것이 있는 사람이나 할 수 있는 일이었다.
당시 상황이 좋지 못했던 우리는 그러지 못했다.
애초에 우리는 지금껏 그래왔다고 한들, 그러고 싶지 않았다.
이 수많은 것들이 모여 결국 그게 우리를 죽기 직전까지 몰아갔었다.
적어도 나는, 아직도 벗어나지 못했다.
아직도 우울해질 때면, 연습 중에도 ‘내가 이 짓을 왜 하는 걸까’ 하는 의문부터 먼저 든다.
‘예찬이가 톡신 리더라 다행이었지.’
나는 걔처럼 그렇게 팀을 이끌 힘은 없으니까.
묵묵히 받치는 것이 고작이니까.
예찬이는 대단하다.
우리가 생각만 하던 일을 현실로 만들어내는 독한 놈.
그게 지예찬이었다.
「“얘들아, 우리가 해야, 이 거지 같지만 거지 같다고 말 못 하는 이 시장이 바뀌어. 우리 후배들한테도 더 좋은 시장이어야, 우리도 더 오래 해 먹고!”」
긴 프로젝트의 시작은 정당하게 우리가 만든 걸 즐겨 주는 사람들을 찬양하는 메시지를 곡 곳곳에 숨겨 뒀다.
가치를 아는 Genuine
그게 나의 a lover
the love of my life
그렇게 시간이 흘러 톡신의 세 번째 앨범.
예찬은 끝내 그 미친 계획을 실행했다.
진짜 팬들이 도둑들에게 ‘멍청하다’라는 조롱을 받는 것이 못마땅했던 만큼.
퍼포먼스 겸 실제 저작권법 및 다양한 법안 위반으로 불법 다운로드 및 배포자를 본격적으로 소송한 고소장으로 앨범 표지를 장식했다.
TaKa 엔터테인먼트의 격한 반대와 방해에도 불구하고 톡신을 유일하게 믿고 응원하며 총대 메고 그 기획을 지켜 줬던 사람은 한 명뿐이었다.
당시 기획팀 총괄이던 박창석 팀장님.
「“할 수 있어. 너희는.”」
조롱도 많았지만…….
그 믿음의 결과는 ‘성공’이었다.
저작권의 가치를 논하며 바닥이었던 창작물의 가치에 대한 의식이 물 위로 떠오르면서 대한민국을 흔들었다.
정말 죽고 싶었을 때, 난 그때의 경험 때문에 버텼다.
게임도 처음 할 땐 오늘 은호처럼 무엇 하나 아는 게 없으니까 속수무책으로 당한다.
하지만 버티고 버티다 보면 그것 역시 아무것도 아니게 될 순간이 언젠가는 온다.
그때 이겨내고 바꿔내면 된다.
당시에는 힘들어도 당장 주변을 뜯어고칠 수는 없었다.
하지만 살다 보니 결국 빛은 봤다.
빛이 보이지 않아도.
살아남은 ‘경험’.
그 자체가 빛이 됐다.
비슷한 아픔을 견디지 못해 떠난 동료들이 많지만, 은호 말대로.
그들 역시 사람이었다.
그들이라고 살고 싶지 않았을까.
하지만 이미 몇 명이나 목숨을 앗아 간 놈들에게 지고 싶지 않았다.
동시에 모든 게 미워서 그냥 내가 눈을 감고 싶을 때도 있었지만.
그래도 그때의 경험이.
진심으로 온 힘을 다해 톡신을.
톡신의 메시지를 밀어주는 사랑하는 진짜 팬들의 응원들이 ‘나’와 ‘우리’를 버티게 했다.
지금도.
여전히.
버티고 있다.
‘살아야지.’
태현은 조용히 그사이 비어 버린 와인 잔을 다시 채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