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매는 비즈니스로 일합니다 (211)
다른 사람도 아니고 ‘닮았다’는 지예찬이 어이없다는 듯 말을 하면서 더 웃음 소리가 커졌다.
“가끔 보면 은호도 말할 때 은근히 지찬(지예찬) 형처럼 팩트 치더라.”
“숨겨진 배다른 동생이라 그래. 하하.”
“하하.”
서승연이 지예찬을 따라 웃다 조심스레 물었다.
“……진짜?”
“멍청아, 진짜겠냐.”
“은호는 다 샀어?”
톡신 멤버들의 이야기에 따라 웃으면서도 은호는 주송민이 구매하라던 것들을 착실하게 결제하고 있었다.
당연히 게임머니로 즐기는 쇼핑이었다.
“네. 사라고 알려주신 건 다 샀어요.”
마침 결제 완료 버튼을 누르며 은호가 대답한 그 순간.
은호의 화면에 차마 아이디를 읽을 수도 없는 닉네임을 한 유저가 파티에 초대했다는 알림이 떴다.
「[lIIllIIIll]님이 [whsajt0830]님을 [ㅎㅎㅎㅎ] 파티에 초대합니다.」
“와, 송민 선배 닉네임 되게 신기하네요.”
“은호는 뭔데?”
톡신 멤버들은 뒤늦게 은호의 닉네임을 확인하며 일제히 웃음을 터뜨렸다.
‘존멋’을 한영 키만 바꿔 그대로 친 닉네임과 함께 은호의 생일, 8월 30일을 덧붙인 닉네임이었다.
“아, 잠시만요. 헐. 이거 아이디가 아니라 닉네임이었어요?”
뒤늦게 깨달은 은호는 당황하며 태현을 돌아봤다.
태현은 얼굴을 구긴 채 소리 없이 웃고 있었다.
“아, 형! 아까 만들 때 알려 주시지!”
“아니, 난 니가 그런 스타일의 닉네임을 쓰는 줄 알고 그랬지.”
“웃지 말고 말해요!”
“하하하하!”
은호가 장난 섞인 화를 내자, 태현은 결국 소리 내 크게 웃어 버렸다.
“태현 형 저렇게 시원하게 웃는 거 오래간만에 본다.”
“그러니까, 아, 오늘 은호 때문에 여러 번 배 째네.”
“하하하하. 오! 저기 ‘존멋’ 들어왔다!”
“아, 그렇게 부르지 마요!!!”
“그럼 어떻게 불러. 하하하하.”
포르미카는 대기실에서 서로의 캐릭터가 보이는 동시에 게임에서 등장하는 대부분의 무기를 무작위로 미리 사용해 볼 수 있다.
[whsajt0830](은호)는 많은 무기 중 나이프를 들어 [lIIllIIIll](주송민)에게 놀림에 대한 소심한 복수의 칼질을 했다.
“다 왔네. 그럼 매칭 돌린다?”
“어? 잠시만요.”
은호의 닉네임 때문에 벌어진 해프닝 하나가 지나고, 이제 슬슬 게임을 시작해 보려던 그때였다.
“근데 오현 선배는요?”
그때, 은호는 소외된 한 명을 찾으며 물었다.
“은호야.”
“네?”
“그분께서는 신이셔서 우리 같은 인간들하고 놀 수 없는 분이시다.”
“……?”
은호의 질문에 주송민이 경외에 차 답했다.
처음엔 무슨 소리인가 했다.
이후 서승연이 포르미카 안에는 계급과는 별도로 등급이 있다며 설명을 덧붙였다.
매칭에 가장 영향을 미치는 것 역시 등급이라고.
한국 병사로 시작했기 때문인지 계급은 대한민국 군대와 같았다.
[lIIllIIIll]이라는 바코드 닉네임을 사용하는 주송민은 실버 등급으로 계급은 갈매기 3개 위에 별을 단 원사.
[닉네임뭐할지모르겠]의 서승연은 갈매기 2개의 실버 중사.
[MNMNN]
의미 없이 N과 M의 향연의 닉네임을 사용하는 최태현은 작대기 4개의 실버 병장.
[SEDATIVE]
톡신의 과거 팀명 ‘세더티브’는 지예찬으로.
현재 모인 멤버들 중 유일하게 골드 등급의 갈매기 2개 중사였다.
[whsajt0830]
이제 시작한 은호의 닉네임 옆에는 아무 색도 없는 검은색의 마크가 달려 있었다.
“이 골드나 실버가 어느 정도 위치인데요?”
은호가 묻자, 누구 하나 대답하지 못하고 머뭇거릴 때 유일한 골드 등급인 예찬이 웃음기 섞인 목소리로 답했다.
“그냥 나쁘지 않은 실력인 거야. 나머지 셋은 내 아래라는 거고.”
“아하. 그럼 오현 선배는요?”
“……마카.”
“마카?”
“‘마스터 포르미카’라고, 국내 랭킹 10위 안에 들면 주는 등급이야.”
은호의 질문에 대답한 건 주송민.
자세한 설명을 한 건 서승연이었다.
‘마스터 포르미카’ 등급.
오현은 빈말이 아니라 정말로 멤버들과 함께 게임을 돌릴 수 없는 천상계 등급이라는 말이었다.
외모로 봤을 때 오현은 굉장히 순한 이미지였던 터라 게임을 잘할 거라고는…….
애초에 예상조차 못 하긴 했지만, 은호는 알고서도 ‘진짜요?’라는 말이 먼저 튀어나왔다.
그렇게 신의 영역인 오현의 참여는 뒤로하고 포르미카 매칭이 시작됐다.
3분쯤 지났을 때.
조금 전 상점에서 구매한 군인들의 이미지가 활성화된 창이 나타났다.
“은호, 넌 ‘닥터’ 골라.”
“닥터가 뭔데요?”
“와, 주송민 쓰레기. 너 은호 힐러로 써먹으려고 포르미카 하자고 했냐?”
“당연한 거 아니냐?”
서승연이 주송민을 타박하자, 오히려 송민은 뻔뻔하게 웃으며 대답했다.
“쓰레기.”
“그러면서 너도 은호한테 다른 거 추천 안 하잖아.”
“그건, 당연하지. 초보는 힐러 해야지.”
“하하하, 서승연 지도 똑같은 쓰레기면서.”
두 사람이 투덕거리는 동안 은호는 대화를 가만히 들으며 마우스를 조용히 ‘닥터’에서 거대한 망치를 들고 있는 ‘해머’ 캐릭터로 옮겨갔다.
“저 얘 할래요.”
은호가 해머를 고르자 그 순간.
“헐. 은호야, 멈춰!”
“은호야, 그건 쓰레기야.”
“맞아. 그건 아니야.”
“은호야, 다시 생각해 봐.”
“맞아. 다시 생각해.”
주송민과 서승연은 언제 싸웠었냐는 듯 한마음처럼 답을 주고받았다.
그런 두 사람의 기막힌 호흡에 지예찬과 최태현은 조용히 웃으며 은호의 선택을 기다렸다.
한편, 지예찬은 남은 캐릭터 중 무작위로 선택이 되는 물음표와 최태현은 든든한 방패를 든 워로드를 골랐다.
“그럼…… 스나이퍼?”
“은호야, 내가 잘못했어. 차라리 해머를 해.”
“스나이퍼 할게요.”
“아, 이은호 트롤이야!”
“하하.”
은호는 두 사람의 격한 반대에도 불구하고 결국 스나이퍼를 택했다.
자동으로 랜덤을 택한 지예찬에게는 남은 닥터 캐릭터가 넘어갔다.
“형, 내가 사랑하는 거 알지.”
“그럼, 알지. 우리 사랑하는 송민이를 위험하게 만들 수는 없지.”
“그렇지? 오케이, 증폭제 하나 내 거 킵!”
“에이. 송민아, 그건 아니지.”
“어?”
“증폭제를 쓰면 네가 더 부주의하게 다닐 테니까 너한테만 증폭제를 안 쏴야지.”
“아, 형!!! 그건 아니지!”
진심으로 억울해하는 주송민 반응에 은호가 갸웃거리며 태현을 돌아봤다.
눈길이 느껴졌는지 태현은 은호를 돌아보며 차분하게 포르미카의 ‘닥터’라는 직업에 대해 설명했다.
“닥터는 시작할 때 HP양을 조금 더 늘려 주는 ‘증폭제’를 팀원에게 쏴 줄 수 있어.”
“아하. 한 명만요?”
“아니. 딱 세 명한테 쏴 줄 수 있는데, 하나는 워로드한테 쏴 줘야 한다는 게임 내에 음, 유저들끼리 만든 룰이 있거든.”
“그럼 두 개 남네요.”
“그렇지.”
즉, 남은 증폭제는 둘뿐으로, 주송민은 증폭제를 받기 위해 예찬에게 나름 예쁜 짓을 해 보던 중이었다.
하지만 정작 게임이 시작된 후.
‘증폭제는 무슨…….’
게임이 시작되고 10분 뒤.
“언제는 저보고 트롤이라더니.”
“…….”
“할 말이 없다.”
상황이 역전됐다.
“은호가 재능 있는 거지…….”
“맞아…….”
주송민과 서승연이 자위하는 동안, 생존자 중 하나인 지예찬은 보란 듯 티가 나게 킥킥거리며 두 사람을 비웃었다.
“하하, 실버 자식들. 어떻게 처음이라는 은호보다 일찍 죽냐?”
“초심자의 행운이에요, 저거.”
“그리고 형, 골드도 실버랑 별 차이 없거든요?”
“있는데? 안 보이냐? 수준이 다른 생존력.”
“……서승연이면 지랄한다고 할 텐데, 형이라 욕도 못 하겠고…….”
“어쭈? 그러면서 은근히 욕한다?”
지예찬이 사상자 둘을 약 올리는 동안 은호는 든든한 워로드인 태현의 뒤에서 상대 팀 진영을 확대한 상태로 화면에 집중했다.
빼꼼 거리는 상대의 상태를 보아하니 곧 튀어나올 것도 같은데…….
그때였다.
상대가 아주 잠깐 머리를 드러내며 은호가 있는 방향으로 방아쇠를 당겼다.
타, 탕―!
철컥.
상대와 동시에 가까운 속도로 한 발을 쏜 후 곧장 장전 자세를 취하는 [whsajr0830].
[HEAD SHOT!]
이어서 화면 중앙에는 깨진 해골 문양과 함께 알람이 떴다.
“와, 와아아아아!”
“미쳤다! 우리 막내!!!”
관전 중이던 서승연과 주송민이 우렁차게 소리를 지르며 기뻐했다.
하지만 그때였다.
털썩.
누군가 쓰러진 소리가 들렸다.
정작 가장 위험했던, 앞에서 방패를 들고 있던 최태현은 살았는데…….
「팀 사상자 [SEDATIVE]」
「죽음의 이유! 이건 행운? [SEDATIVE]는(은) “그것”이 깨졌다!」
벌이라도 받은 것처럼 두 사람을 약 올리던 지예찬의 캐릭터는 중요 부위를 공손하게 쥔 채 허무하게 앞으로 꼬꾸라졌다.
“생존력? 푸훕! 형 고자킬 받는 실력은 인정한다!”
“형 운이 진짜 좋긴 하넼. 하하하하하!”
지예찬 캐릭터의 사인(死因)에 진심으로 놀리며 ‘빵’ 터진 두 사람.
“……야, 리더 명령이다. 둘 다 닥쳐.”
동생들의 복수에 지예찬은 웃으며 시원하게 살벌한 협박을 날려 댔다.
하지만 협박은 개미 눈알만큼도 안 통한 듯, 두 사람은 오히려 더 자지러지게 웃어 댔다.
은호와 태현만 남은 게임은 상대는 셋이 남은 상태로 계속 진행됐다.
은호는 이후 한 명의 목숨을 더 앗았다.
하지만 그 순간.
쾅!
큰 소리가 나며 천장이 부서졌다.
“어? 이거 천장도 부서져요?”
“아, 응. 벽도 장비만 있으면 부술 수 있어.”
“와, 나 은호 이거 처음 보면 놀랄 줄 알았는데, 안 놀라네.”
“아. 저 이런 거엔 잘 안 놀라서…….”
은호가 주송민의 아쉬운 이야기에 대답하던 그때였다.
“아, 젠장.”
태현이 덤덤하게 짧은 한탄을 흘렸다.
잔해가 일으킨 흙먼지에 앞을 보지 못한 듯 태현은 언제 다가왔는지 모를 암살 캐릭터에게 허무하게 등을 내어 줘 버렸다.
「팀 사상자 [MNMNN]」
「죽음의 이유! 비어 버린 등! 이런, [MNMNN], 진정 당신의 뒤를 지켜 줄 팀원이 없었나?」
태현마저 죽어버리고 혼자가 된 은호는 상대 팀원 둘에게 동시에 노출됐다.
이후에는 얼마 지나지 않아 화면 가득 한 창이 떠올랐다.
[Mission Failed]
은호와 톡신 멤버들의 패배를 알리는 창이었다.
“아, 진짜 아깝다.”
“전기 충격기가 있는 줄은 몰랐네요.”
“그럴 수도 있지. 저 직업만 있는 거야. 근데 아깝긴 하다.”
은호의 반응 속도는 좋았다.
정말 좋았다.
문제는 상대 팀은 게임 캐릭터가 가진 스킬을 잘 알았고, 은호는 첫판이라는 점이 컸다.
“근데 은호, 너 잘한다.”
“빈말이죠?”
“아니, 진짜야.”
“……감사합니다.”
민망하긴 했지만, 게임을 잘한다는 칭찬은 상당히 기분이 으쓱했다.
이후에는 그사이 두 시간이 지난 듯 매칭 상태이던 그때 게임이 시작되기 전에 주문했던 음식 배달이 도착했다.
아쉽지만 내일 스케줄이 있는 멤버들도 있는 탓에 포르미카는 여기서 마무리하게 됐다.
배달 기사에게 음식이 들은 봉지를 건네받은 태현과 은호는 주방의 아일랜드 식탁에 포장을 풀었다.
“게임 재밌네요.”
“그거 다행이네. 와인은 어떤…….”
와인 보관함 앞으로 향하던 태현은 걸음을 멈추고 은호를 지긋이 바라봤다.
“와인요?”
은호가 뒤늦게 되묻자, 태현은 싱긋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아니야. 꼬맹이는 포도 주스나 마셔.”
“형님, 저 93년생 성인입니다.”
“그래. 난 77인데.”
“…….”
조용히 반박하는 태현의 생년에 은호는 입을 닫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