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매는 비즈니스로 일합니다 (210)
“은호야.”
“네. 형.”
주문하는 통화를 마친 이후 태현은 도착한 문자를 확인하고 있었다.
“이거, 저녁이 아니라 야식으로 먹어야 할 것 같은데.”
“왜요?”
“가게에 손님이 많은가 봐.”
저녁 시간이라 그런가.
주문한 식사 배달이 오기까지 약 두 시간에 가까운 긴 시간이 걸린다는 답이 왔다.
“야식…….”
늦은 저녁은, 사실 당장 배가 엄청 고픈 것은 아니라서 괜찮았다.
“전 괜찮아요.”
“그래. 그럼 그냥 배달해 달라고 할게.”
“네.”
“잠깐 통화 좀 하고.”
“다녀오십쇼~.”
태현은 통화 중인 듯 간단히 손만 들어 보이며 곧방 방을 나갔다.
자, 그럼 두 시간 동안 뭘 해야 할까.
* * *
게임
은호가 둘러보고 있는 톡신 멤버들만의 PC방은 모서리 곳곳에 녹색의 레이저 조명이 화려하게 지나다녔다.
양쪽 벽에 나란히 배치된 모던한 검은 책상들에는 모두 커다란 모니터가 두 대씩 놓여 있었고.
SF 영화에나 나올 것 같은 하얀색의 화려한 본체 위 투명한 아크릴판에는 톡신 멤버들의 이름이 하얗게 새겨져 있었다.
“은호야, 내 컴퓨터 좀 켜 놔.”
“네, 형.”
통화 중에 멀리서 말을 하는 건지, 태현이 평소보다 크게 소리쳤다.
은호는 왼편 중앙의 ‘최태현’ 이름표가 달린 본체를 켰다.
‘와.’
이 형들, 게임에 진심이구나.
PC방에 들어선 순간에도 ‘와, 화려하다.’라고 생각했건만 컴퓨터를 켜자, 이게 진짜였다.
본체는 모양을 따라 화려한 무지개 색상의 조명이 지나다녔다.
조명은 자연스레 마우스와 키보드까지 연결되더니 바로 그때 모니터가 켜졌다.
이후로도 조명은 화려하게 색을 바꿔 가며 컴퓨터의 전신을 바쁘게 돌아다녔다.
누가 봐도 게이머의 컴퓨터라는 것이 느껴질 정도로 화려함을 자랑하는 컴퓨터다.
은호는 이런 컴퓨터가 톡신 멤버의 수만큼 있다는 것에 설렘과 동시에 고민했다.
‘나는 누구 자리에서 해야 하나.’
은호는 고민하다 깨톡으로 눈을 돌렸다.
잠깐 집 구경을 하는 동안에도 톡신과 E-UNG의 단톡은 시끌시끌했다.
[서 ― 주송민 X새끼야]
― 양심 출타했냐?]
[주 ― (‘인정이오~’라는 약 오르는 얼굴의 사관 캐릭터 이모티콘)]
― ㅇㅇ 이제 알았음?]
여긴 왜 또 싸우고 있는 걸까.
은호는 한숨을 내쉬며 읽다가 메신저 창을 위로 올렸다.
앞서 상황을 알기 위해서였다.
[예찬 ― ㅋㅋㅋㅋ 예전 생각난다]
[주 ― 뭐 말하려는지 몰라도]
― 형 조용해요]
― 제발]
[예찬 ― ㅋㅋㅋㅋ 시렁]
[주 ― 아 형 ㅈㅐㅔ발]
[예찬 ― 예전에 지금 이응이들 숙소에서 우리 같이 지냈을 때 있잖아]
[주 ― 아 형 제발]
― 제발ㅇ랴ㅓᅟᅣᆯ어ᅟᅣᆫㅇ]
[예찬 ― 승연이가 바지 새로 산 거 사라졌다고 했을 때 있었잖아]
― 난리 났던 거]
[서 ― 네 난리였었죠]
― 아직도 빡침 그거]
[주 ― ;;;;;;]
[예찬 ― 그거 범인 송민이야]
― 승연이 옷 훔쳐 입은 거 내가 나갈 때 봤어]
[서 ― ? ㄹㅇ?]
― 이 X새끼가?]
[주 ― 그때는 아 승연아]
― 이유 있어 들어 봐 ㅅㅂ]
[서 ― 이유가 있든 말든 쳐 입었다는 거잖아]
― ㅅㅂ로마]
[주 ― 아니 ㅅㅂ 나도 억울해]
[서 ― 도둑 쉐끼가 뭐가 억울해]
― 내가 억울해야지 ㅅㅂ로마!]
― (버럭 소리치는 콧구멍이 얼굴 사이즈인 이모티콘)]
[주 ― 아니]
― 니가 ㅅㅂ 빨래할 때 내 바지랑 니 쇠 장식 달린 거 뭐냐 그거]
[서 ― 징?]
[주 ― ㅇㅇ 그거 ㅅㅂ 그거 니가 같이 돌려서 빨랫감 다 찢었던 거 기억 안 나냐?]
[서 ― 그래서 내 새 바지를 훔쳤다?]
[주 ― ㅇㅇ]
[서 ― 뭐야]
― 결국은 도둑 쉐끼인 건 그대로잖아]
[주 ― ㅇㅇ 누가 아니라 함?]
[서 ― (‘유 헤드 빙빙?’을 시전 하는 하찮게 생긴 강아지 이모티콘)]
― 쟤 진심 개또라이 새낀가?]
[예찬 ― (3D 안경 끼고 팝콘 와구와구 먹는 ‘지냥’ 이모티콘)]
― ㅋㅋㅋㅋㅋㅋㅋ]
범인은 지예찬이었다.
예찬이 은근슬쩍 과거 썰을 풀며 주송민과 서승연의 싸움을 부추기면서 일어난 싸움이었다.
최근 이야기까지 내려왔을 땐 서서히 ‘진짜’ 싸움이 되어 가는 두 사람이 보였다.
‘진짜, 이 형들이 어딜 봐서 30대 인지…….’
은호는 한숨을 흘리며 단톡방에서 톡신 맴버들을 불렀다.
은호는 현재 NRY 엔터테인먼트 기획팀으로 꾸려진 팀 내에서 ‘연결’ 프로젝트의 책임자 중 하나로, 곧 있을 단체 촬영이 힘들어지지 않기 위해서라도 주제를 돌려야 했다.
팝콘 각은 재미있지만, 진짜 싸우면 촬영 때 스태프들이 곤란해지니까.
[은호 ― 선배님들]
[주 ― 저 ㅅ]
― ㅇㅇ?]
주송민은 서승연에게 반박하려다 은호가 부르자 곧바로 방향을 틀어 대답했다.
[은호 ― 저 지금 태현 선배 집인데 여기 PC방 화려하네요]
태현의 집에 차려진 PC방 이야기가 나오자, 물 만난 물고기처럼 주송민, 서승연, 오현, 지예찬은 신나서 떠들기 시작했다.
[주 ― ㅋㅋㅋㅋㅋ 봤냐?]
[서 ― 우리 PC방 쩔지]
[예찬 ― 공사비 좀 들었어 거기]
[주 ― 맞아]
― 다 합치면 본체 값만 천만 원 넘어ㅋㅋㅋㅋ]
[서 ― ㅋㅋ 맞아]
[오 ― 게임할 거면 송민이 자리에서 해]
[서 ― ㅇㅇ 주송민이 우리 몰래 지 혼자 더 좋게 맞췄어]
[주 ― 뭐 ㅅㅂ 내가 내 돈 들여서 형 집에 PC방 차린다는뎈ㅋㅋ]
[서 ― 태현이 형이 보면 뒷목 잡을 소리 한다ㅋㅋㅋㅋ]
[주 ― 내가 다른 애들이면 허락 안 하는데 우리 막내니까 허락ㅋㅋ]
딱히 허락받을 생각은 없는데, 그렇다고 거절할 생각도 없긴 했다.
[주 ― 대신 조건]
[은호 ― 조건은 어떤 거요?]
[주 ― 포르미카 하자]
[서 ― ㅋㅋㅋㅋ]
― 저 포르미카무새자식 안 질리냐?]
[주 ― 응 안 질려]
[서 ― 폐인]
[주 ― 본인은 게임 드럽게 못하니까]
― 잘하는 사람 폐인으로 몰고 있네]
[서 ― ㅈㄹ 너보단 내가 나아]
[주 ― 개소리 ㅗ]
― 킬뎃 쓰레기 말은 안 들리는데~~~~]
[서 ― 와~ 주송민 본인 이야기 한다]
[주 ― ㅗㅗ]
이게 30대 중반의 대화 수준인가.
철이 덜 든 형들의 투덕거림을 구경하다 은호는 헛헛한 웃음을 터뜨리며 고개를 저어 댔다.
[서 ― 니 팬티짤 이팬에 올릴 거]
[주 ― ㅁㅊ 새끼야[email protected]@@@]
[서 ― ㅗㅗㅗㅗ]
[주 ― ㅅㅂ 서트롤 주제에]
[서 ― 응 닥쳐라 주트롤 ㅗ]
[은호 ― 그만 싸워요ㅋㅋ]
― 포르미카 할게요 ㅋㅋㅋㅋ]
[주 ― (주먹 물고 눈물 흘리는 하찮은 하얀 대가리 이모티콘)]
― 역시 우리 막내밖에 없어 ㅠㅠ]
기뻐하는 주송민을 보며 은호는 조용히 생각했다.
‘선배님들 자꾸 나를 막내라고 부르는데…….’
실제로는 막내라고 하기엔 애초에 톡신 멤버도 아닐뿐더러.
‘두 살 더 어린 이은지도 있어서 내가 막내는 아닌데…….’
하지만 지금은 일단 승연 선배와 송민 선배의 싸움을 멎은 것에 초점을 맞추며 은호는 하고픈 말을 아꼈다.
‘선배 자리가…….’
주송민 자리는 집주인 태현의 바로 옆자리였다.
집주인 컴퓨터보다도 화려한 본체를 보자마자 이름표를 보지 않아도 주인을 알 수 있었다.
은호는 게임을 하기 위해 컴퓨터를 켰다.
하지만 전 인생.
즉, 회귀 전후를 통틀어 게임은커녕 컴퓨터조차 잘 하지 않았던 은호로서는 ‘스카이코드’라는 음성 채팅 프로그램에 ID를 만드는 것부터 고생길이었다.
“오, 됐다. 들려요?”
“들려, 들려! 됐다!”
주송민은 은호가 ID를 만드는 걸 도우며 속이 불타는 고생을 겪은 시간 탓일까.
겨우 통화가 연결됐을 때 진심으로 오열할 것처럼 기뻐했다.
이후 주송민은 전자 게임 소프트웨어 유통망 중 하나인 ‘다운타임’에서 이제 막 아이디를 만든 은호에게 ‘포르미카’ 게임을 선물했다.
“막내가 포르미카를 같이 해 주신다는데 이 정도는 해 줘야지.”
“하하. 감사합니다. 그런데 선배님.”
“엉.”
문제는 아직 은호가 같이 게임을 하기 위해선 갈 길이 멀었다는 점이었다.
“그, 선물 주신 건 어떻게 봐요?”
“……그, 너, 하…….”
주송민은 많은 의미가 뒤섞인 한숨을 흘렸다.
“그 스카이코드 창에서 화면 공유 켤 수 있거든? 켜 봐.”
“이건―.”
그 순간.
은호의 목소리가 갑자기 사라졌다.
아무거나 누르다가 실수로 통화를 나가 버린 모양.
주송민은 마른세수를 하며 서승연에게 ‘헬프’를 쳤다.
이후 은호가 다시 겨우 통화방으로 돌아왔을 땐 방에는 소식을 전해 들은 서승연이 접속해 있었다.
“거기서 선물함! 그거!”
“그거야!”
“그래!”
“들어가면!”
“아니, 은호야! 그거 말고!”
“어어. 그거야.”
“거기 있지!”
겨우 화면 공유 창을 띄웠을 때부터 은호가 ‘포르미카’를 받는 것을 서승연과 주송민은 온 힘을 다해 도왔다.
“해냈다!!!”
“아자!!!”
그렇게 겨우 게임 선물을 받았을 때 서승연과 주송민은 월드컵에서 골이라도 넣은 것처럼 함께 기뻐했다.
“뭐 해?”
“아, 형. 통화 끝나셨어요?”
“어. 대표님한테 전화 와서.”
“뭐라셨어요?”
“퇴근할 때 내 차 봤다고, 여긴 왜 왔냐길래 너 집 나와서 납치하러 갔다고 했어.”
“하핰, 잘하셨어요.”
“스카이코드 중이네?”
“네. 포르미카 해 보려고 다른 형들이랑 통화―.”
“어, 오. 나도 할래.”
그렇게 파티원 한 명이 추가됐다.
뒤늦게 스카이코드 통화방에 태현이 들어오자, 주송민과 서승연은 ‘형 왜 이제야 왔냐’며, ‘은호 쟤 안 그렇게 생겨서 컴맹이야!’라며 억눌렀던 악을 터뜨려 댔다.
다행히 이후에는 바로 옆자리에 있는 태현의 도움으로 은호도, 다른 두 사람도 한결 편안하게 포르미카에 겨우 접속할 수 있었다.
“쟤가 컴맹일 줄은 상상도 못 했다.”
“은호가 컴맹이야?”
이후 게임을 시작하려 할 때였다.
어떻게 알았는지 뒤늦게 스카이코드에 지예찬도 들어왔다.
“형, 하이. 다섯 명 다 모였네, 매칭 안 돌려도 되겠다.”
“어, 그래서 은호가 컴맹이라고?”
주송민의 인사를 가볍게 대답하며 지예찬이 다시 물었다.
“의외지?”
“그러게.”
“죄송해요. 하하.”
“죄송할 건 없지.”
서승연이 답하고, 은호가 민망하게 웃으며 사과했다.
지예찬은 그런 은호를 달랬다.
다행히 농담처럼 나온 이야기인지라, 분위기가 그렇게 불편한 건 아니었다.
“은호야, 혹시 은지도 컴맹이야?”
“아뇨. 이은지는 잘할걸요.”
“하긴, 걔는 작곡 자체를 독학으로 배웠다고 했지.”
지예찬이 답하자, 서승연이 ‘헉’ 헛숨을 들이켰다.
“걔가 뭐 하나 꽂히면 그거에 미쳐서…….”
“꽂히면 미친대. 하하.”
서승연이 웃는 동안 지예찬이 물었다.
“근데 그건 은호도 비슷하잖아.”
“그러니까 남매겠지.”
지금껏 조용하던 태현이 지예찬의 의견에 조용히 말을 얹었다.
“태현 형, 접속은 했어?”
“어. 업데이트 끝났어.”
주송민이 은근하게 주제를 바꾸며 말을 이어갔다.
“오랜만이다. 우리 이렇게 게임 하는 거.”
“그러게.”
“최근엔 태현이네 형 집에 가도 게임보단 술만 퍼마셨잖아.”
“안 그래도 오늘 은호가 니들이 멋대로 술만 채워 놓은 냉장고 보더니 ‘형님, 인간 실격 아닙니까?’ 이러더라. PC방 보고는 나보고 작업장 돌리냐고 하고…….”
“작업장? 하하하하.”
차분하지만 소심해진 척 최태현이 일부러 말을 줄이자 톡신 멤버들이 자지러질 듯 웃음을 터뜨렸다.
“와, 저 억울해요!”
“하하, 뭐가 억울한데?”
지예찬이 웃음기 섞인 목소리로 물었다.
“냉장고에 술이랑 물만 채워 두는 건 좀 인간적으로 실격 아니냐고 했지, 인간 실격이라고는 안 했는데……!”
은호의 대꾸에 통화 방에는 잠시 짧은 정적이 맴돌았다.
정적을 깬 건 지예찬이었다.
“은호야.”
“네?”
“그거나 그거나 똑같잖아…….”
“아? 어? 그런가요?”
“참나, 하하, 어이가 없어서 웃기네.”
멤버들의 멈췄던 웃음소리가 마저 이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