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매는 비즈니스로 일합니다 (208)
“아, 미, 미안.”
연탄이 울 줄은 몰랐는지, 은지는 멈칫하며 마음이 약해진 모습을 보였다.
『미안하면…….』
목소리는 비록 웬 사내놈이긴 하지만, 까만 고양이가 울먹이니까 귀여워서 마음이 약해질 것 같다.
……라고 생각한 그때였다.
『나, 나 안아 줘…….』
“뭐?”
은지는 순간 뒤통수부터 목을 타고 뻐근함이 몰려왔다.
『워, 원래는 집에 오면 나 꼭 안아 줬잖아…….』
연탄은 덜덜 말을 더듬으면서도 할 말은 다 하고 있었다.
은지는 그 찰나 동안 기억 속 시간을 되돌려 봤다.
연탄이 앞에서 했던 모든 행동을 말이다.
보통 그러잖아…….
귀여워서 배 방귀도 하고.
분홍 젤리로 뺨도 맞아 보고.
잘 때도 꼭 붙어서 자고.
딱히 고양이가 있나 없나 딱히 신경 안 쓰고 대충 옷도 갈아입고.
퇴근하면 문 앞에 기다리든지, 들어가 있든지 그냥 이뻐서 숨 막히게 껴안고 우쭈…….
“X발.”
아찔하다.
은지의 눈이 돌아갔다.
다른 것보다 이 배신감과 수치심은 어떤 것으로도 보상이 되지 않았다.
저 굵직한 목소리가 조금이라도 미성이었다면 조금은 나았을까.
“너…….”
조용히 연탄을 부르는 은지의 낮은 목소리가 오늘따라 호랑이의 으르렁거리는 소리와 비슷했다.
♬―.
그때였다.
연탄에게는 구세주와 같았다.
귀신 같은 타이밍에 전화가 왔다.
“어.”
은지는 은호임을 확인하자 한결 차분해진 목소리로 전화를 받았다.
이때다 싶어, 연탄은 온 힘을 다해 소리쳤다.
『살려 줘! 너 왜 나갔어!』
“좋은 말로 할 때 닥쳐, 이 변태 새끼야.”
은지의 살벌한 눈빛이 닿자, 연탄은 움찔거리며 천천히 뒷걸음질을 쳤다.
그때, 은지는 이어진 은호의 외박 소식을 듣고 조금 생각이 많은 얼굴로 멈칫했다.
은지는 버릇처럼 몸을 돌려 거실로 향했다.
그때였다.
“이은지……?”
은호가 은지를 부른 그 순간이었다.
딸깍.
‘설마.’
은지는 놀라 커진 눈으로 뒤를 돌아봤다.
‘이, 이 자식이……!’
은호의 외박은 평소라면 흠칫했을 텐데, 지금은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은지가 거실로 나온 틈을 타 연탄이 소리가 나지 않게 조용히 은지의 방문을 닫더니 어떻게 방법을 알았는지 잠가 버렸다.
“야!!! 내 방에서 당장 나와!!!”
『이, 이제 여긴 내 구역이라고!』
“이 새끼가 감히 누구 방을 자기 멋대로 구역이라고!!!”
『니가 그랬잖아!』
뻔뻔한 연탄의 대답에 은지는 뒷목을 붙들며 한숨을 흘렸다.
「“하핰, 우리 연탄이 이번에 산 건 마음에 들오용?”」
「“여긴 앞으로 연탄이 방이기도 해. 아우, 이뻐 죽겠쪙!”」
혀가 잘린 말투로 그런 말을 하긴 했었다.
하지만 당연히!
“그건 니가 평범한 고양인 줄 알았을 때고!!!”
이후에 이은호가 뭐라고 하는 소리는 흘려듣고, 대충 대답한 후 전화를 끊었다.
일단 빼앗긴 방을 돌려받기 위해 방 열쇠를 찾아 대충 열쇠를 처박아 뒀던 서랍들을 뒤적였다.
한참을 뒤적이던 은지는 열쇠 꾸러미 하나를 찾아냈다.
비슷한 열쇠 중 첫 번째 거는 은호의 방문 열쇠인지 중간부터 들어가지를 않았다.
이후 남은 하나를 열쇠 구멍에 넣는 순간 처음부터 하나였던 듯이 부드럽게 쏙 들어갔다.
달칵.
방문의 잠금이 풀리고, 은지가 방 안으로 들어오자 연탄은 캣타워 위에서 바들바들 떨고 있었다.
‘이게, 하.’
이제 보니까, 이건 다 저 요망한 고양이 모습이 문제다.
생긴 건 더럽게 귀여워서 저러고 있으니 화를 내려다가도 마음이 약해지기를 반복한다.
“연탄아.”
『…….』
“앞으로 구역이고 자시고 내 방에는 이제 들어오지 마.”
『……나, 나 그러면 이제 여기서 쫓아낼 거야?』
저렇게 애잔하게 말하면 누가 냉정하게 ‘그래’라고 말할 수 있을까.
그리고 애초에 쫓아낼 생각까지는 하지도 않았다.
저 별종이 여기 아니면 어디서 지내겠어.
“안 쫓아내. 책임지겠다고 약속했으니까.”
은지가 씁쓸하게 대답하며 불 꺼진 방을 밝혔다.
연탄은 그제야 틀어박혀 있던 캣타워에서 빼꼼히 머리를 내밀었다.
“대신, 너. 앞으로는 거실에서 지내. 캣타워도 화장실도 다 거실로 뺄 거야.”
『…….』
“숨긴 거 더 있으면 지금 다 말하고, 나중에 들키면 그땐 버리진 않아도 비 오는 날 먼지 날리게 패 버릴 거니까.”
패겠다고 말은 했지만 실제로 저 작은 몸에 때릴 때가 어디 있다고, 손 한 번 올리지 못할 게 뻔했다.
해 봐야 엉덩이 한 번 툭 치는 게 끝이겠지.
연탄이 대답이 없는 동안, 은지는 아까 못다 했던 이야기를 마저 이었다.
“그리고 아까는 내가 좀 말이 심했어. 이제 집중해서 들을게.”
『…….』
갑자기 울어 버려서 당황한 나머지 지나친 이야기들.
“네가 감추고 있는 것들 다 말해 줘. 다 믿을게.”
연탄은 조심스럽게 은지와 샛노란 눈을 맞췄다.
『진짜……?』
당혹스러운 나머지 몰아붙이긴 했지만, 저 노란 눈을 마주친 순간 모든 화가 사르르 녹아 버렸다.
그래.
말을 하면 더 좋지.
아플 때 아프다고 할 수 있고, 대화가 되니까.
갑자기 사람이 되지 않는 이상 연탄이는 고양이 연탄이니까…….
비록 조금 많이 배신감이 들긴 했지만, 무서웠던 밤에 옆에 꼭 붙어 날 지켜 주던 사랑하는 새 가족인 건 여전하니까.
“그래서 네가 신이라는 거, 그다음에 말하려던 건 뭐였어.”
* * *
흔히 신이라는 존재들에게는 층이 있다.
가진 힘도 권한도 다른데, 같은 곳에 있을 리 없다.
모두가 평등하다는 건 누군가 위에서 분배하는 존재가 있기 때문이니, 위치는 개중 뛰어나진 않았지만 아무런 능력이 없는 것도 아니었다.
‘신’이라 칭하기엔 가진 힘이 미약하여 이름조차 잊힌 나였다.
인연과 운명을 엮을 힘.
보기엔 퍽 대단한 힘이지만 그게 수천, 수백 년 중 정말 딱 한 번.
심지어 액을 내가 직접 짊어야 한다면 말이 달라진다.
엮인 이의 명에 따라 제 운명도 좌우되는 힘인지라 모든 것을 놓아야 위로 오르든 말든 할 터인데, 운명을 맡길 만큼 믿을 만한 사람이 없으니…….
다른 신령은 왕이라 추대받는 존재에게 힘을 보태어 제사장의 제라도 받았으나 나는 영 심혼에 드는 사람이 없더라.
하지만 잡으라 할 때 인연을 잡아야 했던 것인지, 수백이라는 시간이 떠나가니 이젠 나를 보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운명을 엮을 이가 남지 않았다.
한때 위인으로 칭송받던 이의 사손들조차 시간이 흐르며 살을 잃어 흐트러지더이다.
어찌 이젠 삭막함에 내 것마저 줄어 이승을 뜰 날이 얼마 남지 않은 무렵이었다.
집채만 한 이승의 껍데기는 줄고 줄어.
때가 되었다는 듯 사람의 형태에서 이내 자유로이 떠도는 미물의 형태가 될 정도로 인연이라는 것의 실 가닥이 얇아졌다.
그러면서 미물의 골칫거리가 내 골칫거리가 되었다.
호의로 놓아 둔 줄 알았던 귀한 음식에도 약을 친 것이 많아, 무엇 하나 입에 대기가 조심스러웠다.
그렇게 떠도니 이젠 마실 물조차 귀했다.
끝내 주어진 힘을 베풀지 못하고 이승을 떠나야만 할 시기가 다가왔을 때였다.
이 아이의 작은 선의에 나는 귀하디귀한 시간을 벌 수 있었다.
하지만 나에게는 찰나 같은 시간을 사는 이 아이는 그날이 떠날 때였더라.
끼이이익―.
살아오며 흘려들은 위험한 그 소리가 나와 인연이 닿은 아이에게서 들으려니 심장이 찢어지는 기분이었다.
아픔에 못 이겨서, 그래서 부렸던 변덕이었다.
처음엔 아이와 함께 오르려 했다.
좋은 곳이라며 아이를 몇 번이고 달랬다.
위에서라면 귀한 시간을 만들어 준 만큼 아이가 준 친절의 가치에 마땅히 보상할 수 있을 테니까.
비록 이름을 잃은 신이라 가진 권위는 없지만 어린 혼 하나 달랠 힘까지 없을까.
하지만 아이가 가지 않겠다 버텼다.
시간이 흐르고 혼이 혼탁해지면 더 오를 수 없게 된다.
몇 번이고 달래고 또 달래 봤지만, 아이가 향한 시선은 결국에는 제 오라비였다.
비단 꽃길을 깔아도 아이는 뒤를 돌아 가시밭길에 남기를 바라니, 가슴이 아파 차마 두고 갈 수가 없었다.
그래서 나는 아이와 함께 남았다.
그러면서도 혹여나 마음이 바뀔까.
아이를 달래는 것을 멈추지 않았다.
거북이보다 짧은 시간을 사는 인간이라는 것은 그만큼 강한 망각의 힘을 가졌으니, 네 오라비 역시 그럴 것이라며.
그러니 괜찮을 거라고 아이를 다독이며 올라가자 설복하도록 독려했다.
허나 아이는 고집스럽더라.
아이도 아이건만…….
혈맥은 못 속이는지, 거 못난 놈 오라비 또한 고집이 황소 못지않았다.
뭐 그리 한이 남았는지.
이 오누이들은 세상이 갈라져도, 어찌 죽어서도 서로를 놓지를 않으니 말리지를 못했다.
차라리 죽으면 오라비도 함께 데려가면 되건만.
가약이 귀한 줄은 알아 누이동생의 일기장을 소만치 되새김질을 해 대니…….
망각이 오라비에게 찾아 가려 해도 그 틈이 없더라.
그렇게 미물의 몸으로 버텨 오며 마음도 그에 가까워진 건지, 이젠 내가 이 오누이에게 정이라는 것이 생겨버렸다.
다만, 이미 껍데기를 잃은 아이는 환생의 길에 올라야 했다.
하지만 아이는 갈 생각이 없고, 그렇다고 정착할 곳이 있는 것도 아니니 방도는 하나.
시간이라는 것은 여럿이 있는데, 개중 조금이나마 나태한 시간을 찾아 그에게 빌었다.
다른 놈들은 너무 빡빡해서 영 말이 통하질 않으니, 별수가 없었다.
하지만 이놈도 결국엔 ‘시간’이라, 인과를 들먹이며 하나뿐인 친우의 바람을 들은 척도 않았다.
방법이 없는데 어쩌겠나.
몰래 해야지.
나는 멋대로 시간 녀석의 실을 되감고 도망쳤다.
벼락같은 호통은 마른하늘의 천둥이 되어 이승에 닿았다.
하지만 너무 다급하게 왔는가.
아이가 아직 제 몸을 찾아가지 못했더라.
게다가 시간이 직접 하지 않아서인지 인과의 빈틈을 메울 능력은 없어, 아이의 껍데기와 시간과 아이의 혼을 엮는 일은 일일이 이 작은 미물의 몸을 이용해 손수 하나하나 묶어 가야 했다.
인연을 다시 엮는 것은 고생이었다.
하지만 의외로 그 오라비가 큰 도움이 되었다.
그리고 이제 아이는 정착했다.
이것으로 결미를 내면 좋으련만, 아직 해결하지 못한 문제가 남았다.
얼마 전, 아이가 제 몸을 찾으니 시간이 비어 버린 인과를 메꾸려 이승에 내려왔다.
마음이 달아, 나도 직접 이 오누이들에게 다가갈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이리 자리했다.
시간은 위에서 안배되어 온 신이고, 나는 영물이 성장하여 오른 존재이므로 그와 나는 태생부터 가진 힘이 다르다.
맞설 자신은 없지만 적어도 아이는 나와 연결되어 지킬 수 있을 것이라 믿으며 나는 여기 남았다.
* * *
“와…….”
은지는 홀린 듯 연탄의 이야기를 들었다.
『됐어……?』
연탄이 조심스레 묻자, 은지는 여전히 어안이 벙벙한 얼굴로 입을 뗐다.
“연탄아, 내가 진짜.”
『……응?』
“정말 미안한데…….”
『아, 아직도 못 믿겠어……?』
“아니, 그건 아니야. 그거보다…….”
조심스러운 은지의 행동에 연탄은 고개를 갸웃거리며 은지가 이어 할 말을 기다렸다.
“진짜 미안한데, 나 중간부터 뭔 말인지 하나도 못 알아들었어.”
은지는 이번엔 연탄의 기분이 삐딱해진 게 느껴졌다.
그동안 은지는 아직 눈치채지 못했지만, 버릇이 무섭다고.
은지는 연탄의 이야기를 들으며 언제부턴가 연탄을 다시 이부자리에 끌어와, 평소와 다름없이 품 안에 껴안은 채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