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매는 비즈니스로 일합니다 (207)
외박
“방금, 그 아재 목소리, 누구야.”
언제 쫓아 들어온 걸까.
은지가 헉헉거리며 방문 앞에 서 있었다.
은호는 이미 얼음처럼 굳었다.
연탄은 굳다 못해 검은 털이 흰색을 띠는 듯한 착각이 일 정도로 멘탈이 가 버린 듯 넋이 나갔다.
“정말로 연탄이 말한…….”
“…….”
“X친…….”
연탄이 못지않게 은지도 패닉이 온 건 마찬가지인 듯했다.
『……냐, 냐옹.』
연탄이 어설프게 거짓말을 하려 해 봤지만, 은지는 이미 눈치챈 듯 살벌한 분위기를 풀풀 풍기며 입을 열었다.
“어쩐지 이상하더라. 이은호가 거짓말을 할 인간이 아닌데, 아무리 또라이라도 저 인간이 그럴 인간이 아닌데…….”
『냐―.』
“연탄아, 나는 매일 저녁 말했듯이 너를 진심으로 사랑하지만, 거짓말은 아주, 아주 싫어해.”
“…….”
은호는 연탄과 은지를 번갈아 바라보며 눈치를 보다, 꼴깍 마른침을 삼켰다.
연탄한테 두 번째 악몽에 대해 꼭 물어볼 이야기가 있었다.
‘하지만 아무리 봐도 지금은 이 이야기를 할 때는 아닌 것 같지…….’
은호는 슬쩍 붙잡고 있던 연탄의 뺨을 놓고 도망치듯 자리에서 일어났다.
“나, 바, 밖, 바람 좀 쐬고 올게.”
“오빠.”
“어, 어?”
이런 분위기에서 은지가 오빠라고 똑바로 부르니까 간이 다 떨렸다.
“좀 오래 다녀와. 할 이야기가 길 것 같으니까.”
“어, 어어…….”
은지는 여전히 연탄을 무섭게 노려보고 있는 채로 말하고 있었다.
‘내 동생이지만…….’
저러면 진심으로 X나 무섭다.
어지간했으면 신발을 신고 옥탑방을 나온 그 순간 시끄럽게 닫힌 알루미늄 문이 낸 큰 소리에 심장이 발발 떨릴 지경이었다.
밖으로 나온 뒤, 둘이 무슨 이야기를 하나 궁금해서 잠깐 밖에 서 있어 봤지만 집 안은 섬뜩하리만큼 고요했다.
‘…….’
일단 눈치가 보여서 나오긴 했는데 …….
‘큰일이네.’
갈 곳이 없다.
‘연락할만한 사람이 있을까.’
휴대폰을 만지작거리던 그때.
눈에 걸리는 단톡방이 있었다.
* * *
[은호 ― 형님들]
톡신 멤버들이 모인 단톡방.
은호가 짤막하게 톡신 멤버들을 부르자 가장 먼저 등장한 건 동갑내기 세 사람이었다.
[오(오현) ― (고개를 갸웃거리는 ‘호냥’ 이모티콘) ?]
[서(서승연) ― ㅇㅇ?]
[주(주송민) ― (미러볼 아래에서 헤드뱅잉하는 그림판으로 대충 그린 것 같은 하얀 캐릭터 이모티콘)]
― 드디어 우리 은호가 포르미카(게임 이름)를 같이할 마음이 들었구나~~~]
맞춘 것처럼 한 글자 닉네임이 주르륵 이어졌다.
순간 누구인가 했는데 성으로 이름을 해둔 모양이다.
[은호 ― 게임 안 해요.]
[주 ― 구라 치지 마~~~]
― 너도 모바일 게임 하나는 할 거 아니야~~~~]
[나 ― 진짠데 ㅠ]
― 저 게임 안 한다니까요…]
최근 주송민은 은호에게 열정적으로 ‘포르미카’라는 다양한 능력을 갖춘 군인이 5:5로 나뉘어 팀 대전을 하는 FPS 게임을 추천 중이다.
열정적으로 게임을 홍보하는 주송민을 볼 때면, 은호는 ‘광고주님은 뭐 하시나.’라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저 형한테 광고 주면 영혼까지 끌어다 줄 것 같은데…….’
오늘도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던 그때였다.
주송민이 물었다.
[주 ― 은호야 게임 안 하면 넌 인생 무슨 재미로 살아]
무슨 재미냐니…….
[은호 ― 음]
― 작…사?]
[서 ― 야 넌 일 중독자한테 뭘 그런 걸 물어봐]
― 너 때매 노는데 죄책감 생겼잖아ㅋㅋㅋㅋ]
[주 ― 그러게]
― 괜히 물었네]
― 그러면 왜 불렀어]
― 형들 설레게]
[은호 ― ㅋㅋㅋㅋㅋ]
집 안은 여전히 살벌한 분위기였지만, 은호는 단톡방 덕분에 웃을 수 있었다.
[은호 ― 저]
― 집에서 쫓겨났어요]
너무 앞뒤를 자르고 말한 걸까.
그렇게 생각하던 그때였다.
예상과 다르게 선배들은 그럴 줄 알았다는 반응이 대부분이었다.
[주 ― 와 매일 쉬지 않고 싸우더니 드디어]
[서 ― ㅋㅋㅋㅋ 언젠간 그럴 줄 알았다]
[오 ― ㅋㅋㄱㅋㅋ?]
― 은호가 이길 줄 알았는데]
― 의외다]
[주 ― 쟤 아닌 척하면서 은지 말이면 끔찍하게 들어주잖아]
선배들의 대화를 가만히 지켜보던 은호는 미간을 구기며 발끈했다.
[은호 ― 아니거든요?]
[주 ― (입술 비틀면서 약 올리는 그림판으로 대충 그린 하얀색 캐릭터 이모티콘)]
― 아니거든요~]
[은호 ― 형님 나잇값 ㅎㅎ]
[주 ― 아 와 이놈 봐라?]
― 좀 놀렸다고 또또]
― 나이로 공격하네!!!]
[서 ― 송민아 싸우지 마ㅋㅋㅋㅋ]
― 너 어차피]
― 은호한테 말로 안 되잖아]
[주 ― 야!!!!!]
― 내가 봐준 거야 샛기야]
[서 ― 아 그랬냐? ㅋㅋㅋㅋㅋㅋ]
[오 ― ㅋㅋㅋㅋㅋㅋㄱ]
― 봐주기는ㅋㅋㅋㅋㅋㅋ]
[주 ― 야 멤버가 당하고 있으면 웃지 말고 도와줘 이것들아!!!!]
[서 ― 왜 도와줘]
― 당하는 주송민이]
― 멍청한 건데]
[주 ― 멍청?]
― 아 나 빡쳤다]
― 서승연 전여친한테]
― 자니?]
― 시전하고 온다]
[서 ― 야이 미친 새끼야]
[주 ― ^^7]
[서 ― 전화 받아라]
[주 ― ㅗㅗㅗ]
단톡방은 갑자기 ‘은호 vs 주송민’에서 자연스럽게 ‘주송민 vs 서승연’으로 넘어갔다.
고래 두 마리의 싸움에 등 터지는 새우 꼴이 된 오현은 겨우 비집고 나오며 은호에게 물었다.
[오 ― 은호는 은지랑 구역 싸움에서 밀린 거야?]
[은호 ― 저희가 무슨 영역 동물도 아닌데 무슨 구역 싸움이에요 ㅋㅋㅋㅋㅋ]
우르르 올라가는 투덕거리는 싸움 속에서 주송민은 자연스럽게 은호의 대답에 답을 달았다.
[주 ― 아]
― 아니었어?]
[은호 ― 형님…]
[최태현 ― 잠깐 저녁 먹고 왔더니 그사이에 또 싸우냐 쟤들은]
그때였다.
지금껏 조용하던 큰형님이 나타났다.
[최태현 ― 은호야]
[은호 ― 네]
[최태현 ― 너 지금 어딘데]
은호는 그사이 옥탑방을 나와 동네를 걷던 중이었다.
주변을 둘러보니 어느새 NRY 엔터테인먼트 사옥도 지나치고 큰 거리로 나와 있었다.
[은호 ― 여기 회사 근처에 그]
― 간판이 낡아서]
― 아 XX 치킨집이네요]
[최태현 ― ㅇㅇ]
이후 최태현은 고요해졌다.
[은호 ― ?????]
[오 ― 형 아마 너 데리러 갔을걸]
[은호 ― 갑자기요?]
[오 ― ㅋㅋㅋㅋ 원래 그런 형이야]
― 예전에 형이]
― 멤버들 중에 제일 일찍 독립했었거든]
― 그때부터 애들 싸워서 집 나가려고 하면 형이 주워 뒀어]
[은호 ― 주?]
― 주워요…?]
[주 ― 주웠대ㅋㅋㅋㅋ]
― 근데 생각해 보니까]
― 은호 넌 술 못 먹잖아]
― 괜찮겠냐]
[은호 ― 술은 갑자기 왜요?]
[주 ― ㅋㅋㅋㅋㅋ]
[오 ― ㅋㅋㅋㄱ]
[서 ― ㅋㅋㅋㅋㅋㅋㅋ]
― 가 보면 알아]
[주 ― 모르면 뒤져야지 ㅋㅋㅋㅋ]
[은호 ― ???]
나란히 웃는 동갑내기들의 말풍선을 보며 은호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러다 20분이 조금 안 지났을 때.
알고 있는 가게였는지 고요하던 거리에 치킨집의 오래된 간판만큼이나 오래된 ‘각그랜X’ 차 한 대가 나타났다.
각그랜X는 시간이 흐른 겉모습과는 다르게 최신식 스포츠카 엔진 소리를 내며 치킨집 앞에 멈춰 섰다.
창문이 내려가자 내부는 옛날과 현대식이 합쳐진, 척 봐도 고급스러운 내부가 드러났다.
차의 주인은 아니나 다를까.
최태현이었다.
“타.”
“……?”
은호는 잠시 당황하다 이 황당한 조합의 차량에 올랐다.
“밥은 먹었고?”
“아뇨. 아직…….”
연탄이 은지에게 드디어 들킨 건 속이 후련하긴 한데, 생각해 보니까 그 녀석 때문에 결국 아직 저녁을 못 먹었다.
‘아, 그러고 보니까, 이은지…….’
태현이 차를 출발하려던 그때.
은호는 은지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게 날 미치게 만들어
나 나나 나 red Light
나 나나 나 red……
“어, 왜.”
익숙한 통화 연결음이 흐르다, 곧장 은지의 목소리가 연결됐다.
“이야기는 잘 하고 있냐.”
“뭐…… 나름?”
은지가 어정쩡하게 대답한 그때였다.
『살려 줘! 너 왜 나갔어!』
“좋은 말로 할 때 닥쳐, 이 변태 새끼야.”
혼란스럽다.
“무슨 일이야?”
“아, 있어.”
은호가 물었지만, 은지는 짧게 답을 끝내버렸다.
왠지 내가 나간 이후로 둘 사이에 무슨 일이 더 있었는데 감추는 듯한 분위기.
“밖에 갈 데 없어서 전화했어?”
“아니. 아, 없긴 했었는데.”
“이제 집에 와도 돼.”
“안 그래도 그거 때문에 할 말 있어서, 나 지금 태현 선배 집에 가고 있거든.”
“갑자기? 지금 선배님 옆에 계셔?”
“어. 아, 잠시만 선배님, 저 오늘 하루만 자고 가도 되는―.”
은호의 말이 채 끝나기 전에 태현은 빨간 불 신호에 맞춰 질문에 답했다.
“그러라고 데리러 온 건데.”
“아, 어, 음. 들었지?”
전화 너머로 잠깐 아무런 대답이 없었다.
“이은지……?”
은호가 휴대폰에 더 귀를 기울이며 조심스럽게 은지를 부른 그때였다.
“야!!!”
순간 은지의 우렁찬 소리에 이명이 울렸다.
고막이 터지지야 않았겠지만, 진심으로 걱정될 정도로 귀가 얼얼했다.
“내 방에서 당장 나와!!!”
『이, 이제 여긴 내 구역이라고!』
“이 새끼가 감히 누구 방을 자기 멋대로 구역이라고!!!”
『니가 그랬잖아!』
“그건 니가 평범한 고양인 줄 알았을 때고!!!”
난리가 따로 없다.
“아무튼, 난 오늘 외박하고 들어갈 거니까. 연탄이랑은 원만하게 합의해라…….”
“어. 알았다. 난 저 묘 새끼랑 담판 지어야 하니까 끊는다.”
들릴지 안 들릴지 모르겠지만, 일단 할 말은 해야겠다 싶어서 대충 말을 했더니, 의외로 은지는 간단하게 답하며 전화를 끊었다.
은호는 끊어진 휴대폰을 신기하게 바라보며 갸웃거렸다.
“얘가 웬일이지.”
“왜.”
“아. 그게…….”
태현이 묻자, 은호는 겨우 생각에서 벗어나며 입을 열었다.
“은지가 원래 일 때문 아니고서야 외박을 절대로 허락 안 하거든요.”
“은지가? 의외네.”
“혼자 오래 있는 걸 되게 싫어하는 애라…….”
아.
대답을 하는 중에 갑자기 답을 찾은 느낌이었다.
‘연탄이가 있어서 그런가?’
* * *
은호가 나간 뒤, 한참이 지나고 나서야 현관문으로 향하는 은호의 발소리가 들렸다.
은호가 떠났음을 증명하듯 묵직한 대문이 닫힌 소리가 났다.
“너.”
『네?』
은지가 입을 연 건 그때였다.
연탄은 제 죄를 아는 듯 은지의 발아래 납작 엎드린 채 소심하게 은지를 올려다봤다.
물론 눈을 정확하게 마주칠 수는 없었다.
각도도 각도였지만, 연탄이 차마 그럴 수가 없었다.
연탄에게만큼은 항상 천사 같던 은지였기에, 은지가 이렇게 무섭게 변한 것을 연탄은 생전 처음 보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처음부터 말할 수 있었던 거야, 아니면…….”
『저기, 처, 처음이 혹시 언제…….』
“언제기는, 이은호가 너 데리고 처음 집에서 고양이를 키울 거라느니 뭐니 하던 그때.”
속사포처럼 뱉는 은지의 어투에 연탄은 흠칫하며 엎드린 상태에서 양 앞발까지 공손하게 모았다.
연탄은 답을 위해 입을 벌리려던 그때였다.
“아니지. 아니야.”
『녜?』
“이은호 말로는 네가 우리 회귀한 거랑 연관 있다는 듯이 말했었지.”
『…….』
연탄의 눈이 바쁘게 좌우를 오갔다.
“너 다 불어. 네가 감추고 있는 것들, 싹 다.”
『나, 나 말을 잘, 못…….』
“헛짓거리하지 마라, 좋게 말로 할 때.”
연탄이 꾀를 부리자, 은지의 눈에 섬뜩한 이채가 스쳐 갔다.
더 도망칠 곳은 없었다.
『나, 나는 신이야.』
연탄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문제는 첫 마디가 좋은 선택은 아니었는지, 은지의 표정이 험악하게 굳어졌다.
“X랄 하고 자빠졌네.”
은지의 냉정한 한마디에 연탄은 노란 눈동자가 일렁거리더니 돌연, 울컥한 듯.
또르륵.
닭똥 같은 눈물 한 방울을 흘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