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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매는 비즈니스로 일합니다-206화 (206/309)

남매는 비즈니스로 일합니다 (206)

‘하여간, 얘들은 놀 땐 한없이 애들 같다가도 일할 땐 잘해.’

두 사람은 싸우던 와중에도 “촬영 들어가겠습니다!”라는 스태프의 말 한마디에 언제 그랬냐는 듯 다시 진지하게 촬영에 임했다.

그래서인지 은호와 은지는 온종일 정신없이 투덕거리긴 했지만, 스태프들은 물론 철수 PD 또한 거기에 불만은 없었다.

은호와 은지의 노래를 시간에 비교하자면 새벽과 노을이 지는 그 시각이 딱 맞았다.

철수는 그래서 지금 그 시간이 되기를 기다렸다.

따로 배경 처리를 할 수도 있었지만, 기왕 이렇게 온 거.

기왕 이렇게 돈 들인 거, 영화 같은 분위기로 현실감 있게 촬영하고 거기 얹는 게 더 그림이 예쁘게 나오니까.

시간대는 특별히 철수가 신경 쓴 디테일 중 하나였다.

‘곱다, 고와.’

철수는 촬영에 임하는 두 사람을 흐뭇하게 바라봤다.

조금 전까지 이까지 악물고 싸우기에 걱정했는데, 역시 쓸데없는 걱정이었나 보다.

‘혹시 몸 안에 다른 사람이 들어있나?’

그런 괜한 생각이 들 정도로 은호와 은지는 짧은 시간 동안 몰입하는 것이 굉장히 뛰어났다.

은호는 대청마루에 한쪽 다리를 올린 채, 한 손으로는 갓을 살포시 쥔 모습으로 하늘을 바라보고 있었다.

특유의 차분한 분위기가 잘 어울리는 모습이었다.

은지는 은호의 바로 앞에 쪼그려 앉아, 생각에 잠긴 듯 쓸쓸한 눈빛으로 흙바닥에 동그라미를 그리고 있었다.

셋, 둘, 하나.

신호에 맞춰 두 사람은 동시에 카메라를 노려봤다.

철수는 아련하던 주변의 분위기가 두 사람의 눈빛 하나에 단숨에 날카롭게 변하는 그 찰나를 원했다.

조금 전까지 그렇게 싸웠지만, 그래도 아련한 분위기를 연출해야 하는 순간이었다.

“컷!”

완벽했다.

“야, 이은지.”

“뭐.”

“저거 코털 아니냐?”

“아, 아니거든!!!”

“와, 이은지 코털 겁나 기네.”

“뭘 보고, 아니, 미친 X아! 그냥 먼지 날아간 거잖아! 코에 스치지도 않았어!”

“에이, 맞잖아. 창피하니까 아닌 척하기는.”

“아니라고, X친 오빠 새끼야!”

“악! 핰! 아! 진짜 아파! 앜!”

“처! 웃지를! 말던가! 아니! 라고!”

열 받은 은지가 은호의 등짝을 수없이 내려찍었다.

“아, 알았어. 알았어. 미안해.”

“…….”

은지는 은호의 사과에 손바닥을 공중에 멈춰 세웠다.

“코털 아니고 겨털인데, 내가 잘못 말했네.”

“야, 그냥 뒤져. X새끼야.”

“악! 아핰! 앜!”

보란 듯 잘 해낸 남매는 컷 사인이 떨어지자 함께 모니터링을 하며 다시 싸워 댔다.

은호는 맞아서 앓으면서도 은지를 놀리는 것만큼은 포기할 생각은 없는 듯했다.

은호는 일방적으로 맞으면서도 깔깔거리며 은지의 속을 긁었다.

‘다른 사람이랑 대화할 땐 세상 어른스러운 녀석이…….’

은지는 평소에도 아이 같은 순수한 면이 있다만, 은호는 그렇지 않아서일까.

철수는 새삼 이런 은호를 매번 볼 때마다 신기한 기분이 됐다.

아무래도 조금 전 연기도 서로 닿는 자세도 없고 허공을 보며 연기하는 덕분에 나올 수 있는 연기였나 보다.

그걸 증명하듯 바로 이어지는 신에선 은호와 은지는 서로 마주한 채 5초 이상을 굳은 얼굴로 봐야 했는데…….

“프, 프푸풉!”

“아! 얼굴에 이은지 침 튀었어!!!”

“아, 미아핰, 아, 핰핰핰핰핰!”

“하하하핰! 왜 웃어!!!”

“몰라, 어헝, 니 얼굴이 웃겨. 허어엉.”

“개소리하지 마. 니 얼굴이 더 웃기거든.”

“허어어엉. 이은호 얼굴이 너무 웃겨요. 흐어어엉.”

서로의 얼굴을 보자마자 빵 터져 버리다 못해 은지는 웃음이 안 멈춘다며 엉엉 울기까지 했다.

‘정말…… 둘 다 똑같이 생겨서는…….’

철수에게는 NG가 났음에도 가장 즐거웠으면서도 동시에 굉장히 힘들었던 촬영 중 하나였다.

다행이랄지 이전에 둘이서 ‘잡히면 뒤진다’ 놀이를 하느라 한 시간 달렸던 것 때문에 더 웃을 기운이 없었는지, 덕분에 촬영은 늦기 전에 마무리할 수 있었다.

* * *

이틀간.

경주의 한 한옥에서의 촬영을 마치고 퇴근을 위해 다시 경기도로 올라오는 차 안.

은지는 터널로 들어섰을 때 지나치는 불빛들을 보며 잠시 눈을 감았다.

‘느티나무…….’

이틀간, 촬영이 한창 바쁠 때는 그 나뭇가지도, 사고도, 철수 PD님 말대로 무엇 하나 신경 쓸 겨를이 없어서 괜찮았다.

이은호랑 같이 촬영할 땐 웃은 일이 많아서 그런가?

잡생각이 없었다.

호텔 방에서 혼자 있을 때도, 글쎄.

잡생각이 많을 법도 한데 오히려 이상할 정도로 평온했다.

‘아.’

생각해 보니, 아마 그땐 맥주 한 캔을 까서 그럴지도.

피곤해서 냉장고에 있는 맥주 하나를 보자마자 들뜬 기분에 당기기에 한 캔을 단숨에 비웠다.

그랬더니 다시 눈을 떴을 땐 놀랍게도 소파에 앉은 채 꼬박 잠이 들어 있었다.

‘이은호보다야 낫지만, 나도 술은 약하긴 하구나.’

새삼스럽게 느낀 날이었다.

다만, 그것 때문에 다음 날 촬영에서 허리가 욱신거려서 충분히 NG를 내지 않을 부분도 NG를 많이 냈었던 건 문제였다.

차는 곧 터널을 지나 푸른 산이 보이는 도로에 올랐다.

“은지는 오늘 웬일로 안 자네.”

슬기가 놀리듯 은지에게 물었다.

슬기는 은지에게 여전히 ‘은지님’이라고 부르긴 하지만, 최근에는 현우와 은호처럼 존댓말과 반말을 섞으며 대화를 나눴다.

“음…….”

팔짱을 낀 채 창에 기대 잠든 은호.

은지는 그런 은호를 힐끔 쳐다봤다.

“언니.”

“응?”

“뭐 하나만 물어봐도 돼요?”

“뭐든요. 뭔데요?”

“음―.”

이걸 어떻게 설명할까.

말도 안 되는 걸 설명할 때 아무래도 제일 좋은 핑계는 꿈이었다.

“꿈을 꿨는데요.”

꿈을 꿨는데…….

말은 참 이래서 어렵다.

머릿속에 표현하고 싶은 멜로디는 있는데…….

이걸 굳이 단어로 표현하려니 힘들다.

“에이 됐어요.”

결국 포기.

……하려던 그때였다.

슬기 언니가 황당해하며 조수석에서 이쪽을 돌아봤다.

“은지님.”

“네?”

슬기의 표정이 상당히 당혹스러웠던 탓에 은지는 조금 주춤거리며 답했다.

“세상에 사람을 미치게 만드는 법이 두 가지가 있거든요?”

“그, 그래요?”

“하나는 말을 하다 마는 거고, 다른 하나는…….”

아.

그제야 이해했다는 듯 은지는 웃으며 손을 저었다.

“진짜 별거 아닌 이야기에요.”

“그 별거 아닌 거 때문에 숨넘어가요.”

“하핰핰. 알았어요.”

졌다.

은지는 더듬거리며 조심스럽게 이야기를 꺼냈다.

“가까운 사람이 어, 그, 워, 원수 같은 친구가 죽는 꿈을 꿨어요.”

“어머.”

슬기는 눈이 자연스럽게 은호를 향했다.

“이은호는 아니야!”

“그래요?”

“진짜예요!”

“하하, 알았어. 그래서?”

잠시 씩씩거리던 은지는 다시 차분함을 되찾으며 이야기를 이었다.

“그런데 그…… 원수 같은 친구가 최근에 죽는 그 꿈이 현실이 될 것처럼 막 주변에 불안한 일이 생겨요. 그래서 그 ‘가까운 사람’이 걱정이 많아요.”

고민하는 은지를 보며 슬기는 미소를 띠었다.

최대한 돌려 말하려고 한 것 같지만, 은호와 은지의 이야기라는 건 진작 눈치챘다.

‘그래서 싸웠구나.’

일한 지 다른 코디들에 비해 그렇게 ‘엄청’ 오래됐다고는 말하기 힘들지만, 그래도 나름대로 상당히 가깝게, 적지 않은 기간을 같이 일하긴 했다.

적어도 지금껏 함께 일하는 동안에는 은호는 은지와 있을 때를 제외하면 족히 30대를 넘은 것 같은 어른스러운 모습을 보여 줄 때가 잦았다.

특히 일과 관련된 부분으로는 이제 데뷔한 지 1년도 채 되지 않은 신인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정도로 노련했다.

그러던 은호가 이틀 전.

한옥 촬영지에서 은지의 죽음과 관련된 ‘느티나무의 미신’ 때문이라고 해도, 그렇게 격하게 감정적으로 행동하는 건 처음 봤다.

특히 울 줄은, 정말 상상도 못 했던 반응이었다.

그 퍼즐들이 은지의 꿈 이야기를 통해서야 맞춰지는 느낌이었다.

“그 원수 같은 친구는 어떤데요?”

“네? 아, 그 원수 같은 친구는…….”

“어떻게 보면 원수 같은 친구 처지에서는 본인이 죽을 것 같다는 말이잖아요.”

“그―렇죠.”

슬기 질문에 은지는 왠지 뚱한 얼굴로 멍하니 한 곳을 바라보는 게, 은지가 생각에 잠겼을 때 나오는 표정이었다.

“나쁜 고민은 오래 하면 할수록 마음을 갉아먹는대요.”

“응? 아.”

슬기가 픽 웃으며 말을 덧붙였다.

“꿈이라면서요?”

“네…….”

“꿈은 반대라고 하니까요.”

“……그렇죠.”

내내 단순히 걱정이 많던 은지의 목소리에 어쩐지 착잡한 감정이 섞여든 것 같았다.

하지만 슬기는 뒤를 돌아 은지를 본 순간 더는 아무것도 물을 수 없었다.

가라앉은 기분을 들키지 않으려, 은지는 애써 웃으려 하고 있었다.

“괜찮아요?”

“괜찮아요.”

그런 은지를 바라보는 슬기의 가슴이 아려왔다.

‘꿈이라면…… 그렇겠지.’

하지만 은지에게는 현실이었다.

그래서 혼란스러웠다.

하지만 슬기의 한 ‘꿈은 반대’라는 한마디에 은지는 고민을 멈췄다.

길게 고민하는 건 힘들어서, 머릿속에 엉망진창으로 연주하는 온갖 악기들의 향연에 시끄럽기도 하고.

괜히 싫은 거한테 신경을 갉아먹히고 싶지도 않다.

은지는 눈동자만 굴려 은호를 쳐다봤다.

‘자꾸 혼자서 헛짓거리 하는 너 때문이잖아, 이 빡대가리 인간아.’

경부 고속도로를 달리는 차 안은 평화로웠다.

노랫소리 하나 없이, 숨소리에 가까운 은호의 얕은 코골이만 잔잔하게 들렸다.

그때였다.

평온함을 깬 건 평소 보기 힘든 현우의 거친 운전이었다.

끼이익.

“저 X친 새끼가…….”

평소 욕은 절대 하지 않던 현우의 중얼거리는 소리에 은호의 눈이 번쩍 뜨였다.

“무슨 일이에요.”

“아…… 죄송합니다.”

은호가 잠긴 목소리로 묻자, 현우는 순간 저도 모르게 욕한 걸 뒤늦게 눈치챈 듯 당황하며 답했다.

“갑자기 뒤에서 뭐 홀린 것처럼 밟더니 저기까지 간 놈이 있어서…….”

은호는 잠이 단번에 깨 버린 듯 날카롭게 정면을 돌아봤다.

현우의 말대로 앞에는 빠른 속도로 엑셀 밟던 운전자가 서서히 속도를 줄이며 정상 주행을 하고 있었다.

“……피한 겁니까?”

“당연하죠. 저런 놈들 피하려고 제가 운전하는 건데.”

현우가 날이 선 채 답을 하긴 했지만, ‘피했다’라는 대답에 은호는 놀란 몸을 가라앉히며 다시 의자에 등을 기댔다.

“형님이 저희를 구하셨네요.”

“해야 할 일을 한 겁니다.”

“그래도요.”

정말로, 다행이었다.

적어도 첫 번째 악몽은 피한 것 같으니까.

* * *

은호와 은지는 이후 아무런 일도 없이 집에 도착할 수 있었다.

다만, ‘첫 번째 악몽’이라는 건 ‘두 번째 악몽’이 있다는 말이었다.

오는 길에 이틀간 느티나무 잔가지 이야기에 예민해졌는지 잠을 한숨도 못 잤었다.

그렇게 겨우 붙인 게 경주에서 여기까지 올라오면서 차 안에서의 잠깐이 고작.

그때였다.

그때 꿨다.

두 번째 악몽.

대문 앞에 도착한 순간.

은호는 눈에 보이지 않는 속도로 비밀번호를 치고 은지보다 먼저 집으로 뛰어 들어갔다.

집으로 들어온 은호는 은지의 방문을 벌컥 열어젖히더니 곧장 은지의 이부자리가 이리저리 널려 있는 곳으로 향했다.

“너, 나랑 이야기 좀 하자.”

“캭, 캬캭!”

은호는 대자로 뻗어, 코까지 골며 잠들어 있던 연탄의 복슬복슬한 양 뺨과 수염을 붙잡으며 말했다.

『닌 잠든 호랭이 코털 건들면 큰일 난다는 말도 못 들었나!』

“사자겠지. 그것보다 중요하게 할 말 있으니까, 이야기 좀―.”

“방금…… 뭐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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