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매는 비즈니스로 일합니다 (205)
「“오튜브랑 E-FAN에 한복을 입고 추석 인사를 하면 어떨까요.”」
9월 말이 코앞으로 다가올 무렵, 은호의 제안은 딱 거기까지였다.
갑자기 DI 뮤직 엔터테인먼트 대표가 흔쾌히 이 한옥 촬영지를 제공해 주기 전까지는 그랬다.
박창석 대표는 촬영에 가성비를 중요하게 여긴다.
그렇게 아낀 가성비로 덕분에 더 많은 포토 카드와 굿즈를 제작할 수 있었기에, 이번 역시 그러했다.
「“마침 새로운 배경에서 촬영할 기회가 생겼는데 이 기회를 단순히 추석 인사 영상 촬영으로만 날리기에는 아쉽지 않겠냐.”」
NRY 엔터테인먼트의 전 직원들은 눈을 빛냈다.
「“다음 싱글 뮤직비디오 스토리, 몇 주 전에 은호가 넘긴 거 있지.”」
「“네.”」
「“거기 예상안 중에서 당장 사극 느낌으로 바뀌어도 문제가 없는 부분을 찾아봐. 기왕 리스크 없이 받았는데, 본전을 뽑으면 더 좋잖아.”」
이건 바로 그 가성비의 결과였다.
그렇게 이번 촬영은 회사에서 말하기는 본전을 뽑자는 의미에서 ‘뽕 뽑는’ 콘셉트 비디오 촬영까지 병행하게 됐다.
「“거, 우리 와이프가 가성비 촬영 하나는 세상에서 제일 고퀄리티로 잘 뽑는데…….”」
대표님의 자랑 아닌 자랑으로, 그렇게 이번에 촬영을 담당한 PD님.
오랜 기간 톡신의 뮤직비디오 촬영을 담당했던데다, 현재는 대표님의 부인이신 김철수 PD님이 맡게 됐다.
말은 ‘콘셉트 비디오’라고 하지만 뮤직비디오에도 들어갈 게 불 보듯 뻔하다.
‘마침 곧 나올 싱글이 ‘인연이 엮였다’라는 의미가 있기도 하니까.’
DI 뮤직 대표님이 제공해 준 한옥 촬영지를 이용한 조선 시대 배경은 ‘과거’를 표현함에 있어선 나쁘지 않은 선택이었다.
그러니까 나 또한 불만은 없다.
오히려 이야기가 더 풍부해질 것 같아서 상당히 마음에 든다.
은호는 다시 구경하던 느티나무가 있는 방향을 돌아봤다.
성인 넷이 팔을 활짝 펼쳐 둘러도 다 감아지지 않을 정도로 거대한 밑동.
아래만큼이나 하늘로 뻗어 간 가지 역시 밑동 못지않게 굵고 커다랬다.
어쩐지 속을 울렁거리게 할 정도로 오랜 세월이 느껴지는 고즈넉한 풍경이다.
그런데…….
‘이 풍경이 나한텐 왜 이렇게 불안하게 느껴지는 걸까.’
* * *
“생각에 잠긴 느낌으로 풍경을 감상하면서 이렇게 한 바퀴 돌아 주면 돼.”
“네!”
은지는 철수 PD의 요구에 맞춰 촬영을 진행했다.
모니터 속 은지는 아무도 없는 느티나무 아래를 평온하게 거니는 양갓집 규수와 같았다.
고운 풍경에 주변 또한 고요했다.
하지만 실상은 촬영을 이끌어 가는 철수 PD 너머에는 ‘쉿쉿’이라며 조용히 하라 서로에게 경고하는 동네 어르신들이 가득했다.
한창 느티나무 아래에서 몇 컷을 촬영했을 때였다.
툭.
느티나무에서 무언가 은지의 머리 위에 떨어졌다.
‘뭐, 뭐지?’
은지는 흠칫 놀랐지만, 공포보다 앞선 이성을 겨우 붙들며 소심한 손길로 머리를 더듬었다.
혹여나 벌레일 경우 잘못 털었다가 머리가 망가지면 촬영이 엉망이 되니까.
일정에 방해가 되고 싶지 않았기에, 은지 나름대로 최대한 이성을 붙잡은 행동이었다.
머리를 더듬던 그때, 딱딱한 무언가가 손에 걸렸다.
‘나무……?’
갸웃거리며 머리에 떨어진 그것을 집어 눈으로 확인했을 때, 은지는 가슴을 쓸어내렸다.
‘휴.’
최악의 시나리오였던 벌레는 피했으니 다행이었다.
그런데 어째서일까.
중년 즈음으로 보이는 사람들은 여전히 은지의 촬영을 하나의 동네 구경거리처럼 즐기고 있었다.
하지만 은지의 머리 위로 나뭇가지가 떨어진 이후부터 노년층 주민들은 반응이 달랐다.
몇몇의 어르신들의 얼굴이 파리하게 질리더니 자리를 뜨기까지 한다.
“어머니, 어디 가세요!”
“아이고, 조용해라.”
“어르신?”
“나, 나도 집에 가련다.”
은지는 떠나는 어르신들을 바라보다 갸웃거리며 머리에서 떼어 낸 느티나무의 잔가지를 바라봤다.
잎사귀조차 붙어 있지 않은 작은 가지였다.
그때, 함께 우르르 떠나려던 어르신 중 한 할머니가 몸을 돌렸다.
“아가.”
“네?”
은지가 나뭇가지를 보며 갸웃거리고 있던 때였다.
주변 분위기에 혼란스럽던 스태프들과 철수 PD도 덕분에 의문이 풀릴 수 있었다.
“이 느티나무는 예로부터 재앙을 알려준다. 특히 아가처럼 그렇게 가지에 맞은 사람들.”
“아…….”
할머니의 나긋한 이야기에 은지는 다시 손에 쥔 느티나무 잔가지를 바라봤다.
“몸조심혀라, 아가.”
짧은 경고만 남기고서 할머니는 몸을 돌려 떠나 버렸다.
“어우, 방금 거 고추밭 할머니 아녀?”
“해도 뭐 저런 재수 없는 소리를 해.”
“근데, 나도 들었어. 이게 몇 년 된 건데, 기식이네 할아버지가 여기 아래에서 쉬시다가 다리에 잔가지를 맞았대.”
“뭔 일 났나?”
“며칠 뒤에 사고 나서 그 다리만 콱.”
“세상에…….”
남아 있던 주민들이 수군거리며 떠들어 댔다.
한편 그 이야기를 들은 스태프들도 하나둘씩 수군거림에 동참했다.
수군거림은 어느새 목소리가 점점 커지면서 촬영장은 시장통이 따로 없을 만큼 시끄러워졌다.
그 모습이 못마땅했던 철수 PD는 한숨을 내쉬며 참다못해 입을 열었다.
“실례지만 촬영 중이라 조용히 부탁드립니다.”
“아이고, 미안합니다.”
목소리가 가장 크던 한 중년 남자가 사과하며 총대를 메고 주변을 조용히 시켜 나갔다.
“사고…….”
거리가 조금 있긴 했지만 은지도 주민들의 이야기를 들었다.
은지는 덤덤하게 가지를 바라보다 침묵했다.
철수 PD는 아무래도 신경이 쓰였는지, 그런 은지를 빤히 바라보다 가까이 다가왔다.
“은지야.”
“네, PD님.”
“괜찮아?”
“괜찮아요.”
은지는 괜찮은 척 웃어 보이며 넘기려 했다.
“조심하면 돼. 만일 주민들 말이 맞는 말이라 해도 그러라고 알려준 걸 거야.”
“네.”
철수 PD는 말없이 은지의 등을 토닥이며 다시 몸을 돌렸다.
“촬영이나 마저 이어 가자, 싱숭생숭할 땐 일이나 하는 게 최고야.”
“하핰. 네.”
굳어 있던 은지의 얼굴에 그제야 진짜 웃음이 피어났다.
‘그래. 괜찮을 거야. 조심하면 돼. 주의하면 돼. 그럴 거야.’
* * *
은지가 개인 촬영을 마치고 다시 한옥으로 돌아온 후.
별일 아니었다는 듯 슬기와 수다를 떨며 느티나무 잔가지가 떨어진 일을 이야기했다.
그리고 주민들의 이야기까지 이어 가던 그때였다.
이야기를 들은 은호는 와락 미간을 구기며 은지가 들고 온 잔가지를 빼앗았다.
“버려.”
“아, 왜!”
“재수 없으니까 당장 버리라고! 넌 그걸 왜 들고 왔냐.”
“아, 싫어!”
평소 촬영장에서는 둘만 있는 게 아니고서야 절대 큰 소리를 내지 않던 은호였다.
뭐, 은지와 장난치다가 툭툭 튀어나온 적은 있었던 것 같기도 하지만, 적어도 이렇게 쉽게 화를 내는 사람은 아니었다.
그런 은호가 은지가 손에 쥐고 있던 가지 하나 때문에 큰 소리를 냈다.
은호를 아는 슬기나 현우, 회의하던 철수 PD조차 깜짝 놀라서 은호와 은지를 돌아볼 정도였다.
“가짜겠지. 이게 뭐라고 그렇게 화를 내.”
“그……. 하…….”
은호가 고개를 푹 숙이며 한숨을 내쉬자, 은지가 씁쓸한 웃음을 터뜨리며 말했다.
“무슨 생각하는지는 알겠는데, 괜찮아. 나 안 뒤져, 이은호.”
“야, 그 소리 내가 하지 말라고…… X발.”
오늘은 은지가 차분히 은호를 달랬다.
슬기와 현우는 그런 두 사람을 놀란 눈으로 바라보던 그때였다.
곧 슬기와 현우의 눈이 곧 튀어나올 것처럼 커다래졌다.
“이, 이은호 우냐? 울어?”
“닥쳐.”
“헐…… X친, 이은호 진짜 울어?”
“아, 닥쳐! 안 울어!”
버럭 소리는 쳤지만, 은호는 악착같이 숙인 고개를 들지 않았다.
“아닌데? 우는데?”
“아, 꺼져!”
은지가 아래쪽에서 은호를 확인하려 하자 그 순간.
퍽.
은호는 새빨개진 얼굴로 은지의 안면을 밀쳤다.
“아핰핰핰핰.”
은지는 얼굴을 맞든지 말든지 마냥 은호의 붉어진 눈가를 가리키며 숨넘어갈 것처럼 웃어 댔다.
“뭐 그거로 질질 짜냐?”
“뭐, X발. 우는 게 어때서.”
“어? 우는 거 인정하는 거네?”
“응. 이은지 얼굴 X나 못생겨서 울었다.”
웃던 은지는 ‘못생겼다’는 도발에 표정이 굳었다.
그리고 잠시 후.
“이리 와, X새끼야. 오늘 해물 파전 만들게 썰어 버리려니까.”
은지는 은호의 목을 조를 기세로 손을 뻗었다.
은호는 그런 은지를 가뿐히 피하며 중지를 세웠다.
“응. 이거나 먹어, 못생긴 동생아.”
“잡히면 조사뿔 줄 알아, X 자식아!”
“응. 잡아야 뭘 하든 말든 하지. 하핰.”
슬기와 현우는 잠시 스태프와 철수 PD를 돌아봤다.
스태프들과 철수 PD는 하나의 시트콤을 보듯 잠시 웃더니 다시 회의를 이어 갔다.
다행히 이들은 모두 철수 PD와 꽤 오랜 기간을 함께한, 은호와 은지의 이런 모습도 몇 차례 촬영하면서 종종 본 모습이기 때문이었다.
슬기와 현우는 수심이 깊은 한숨을 내쉬며 가슴을 쓸어내렸다.
그동안 은호와 은지는 한옥의 넓은 앞마당에서 비녀와 갓까지 쓴 고운 한복 차림으로 잡기 놀이를 빙자한 ‘잡히면 뒤진다’를 진행 중이었다.
소리 없이 은호의 얼굴만 보면 ‘즐겁게 노는구나’라고도 할 수 있었지만…….
“이은지 얼굴 X나 무서워! 하하하핰.”
은호의 말대로, 그러기엔 바로 뒤에 쫓아오는 은지의 얼굴이 고운 한복까지 더해지면서 열 받은 천년 묵은 구미호가 따로 없었다.
한옥의 넓은 마당을 지치지도 않는지 두 사람은 미친 듯이 달렸다.
그렇게 한 시간.
“허억, 허억. 이은지, 너 때문에 쓸데없이 헉, 힘 뺐잖, 아.”
“개, 새핵, 끼야. 니가, 학, X랄만, 헉, 안 했으면, X발. X나 힘드네. 하…….”
은호와 은지는 대청마루에 둘 다 대자로 뻗어 누웠다.
다행히 아직 세팅이 마무리되지 않은 탓에 여전히 쉬는 시간이긴 했다.
그래서인지 뻗은 은호와 은지를 웃으며 쳐다보는 스태프들.
한편, 지쳐 쓰러진 둘을 유일하게 한 대 쥐어박고 싶어 하는 한 명이 있었다.
“하…… 이 남매들 정말…….”
한참 전에 땀 때문에 몽땅 날아가다시피 지워진 은호와 은지의 메이크업 때문에 슬기의 한숨이 깊었다.
“어쩔 수 없죠…….”
그런 슬기의 마음을 유일하게 이해하는 현우가 은지의 간식으로 챙겨 뒀던 초콜릿 하나를 내밀며 말했다.
슬기는 현우가 내민 초콜릿을 보며 피식 웃더니 곧장 입 안에 털어 넣어 와작 씹어버렸다.
“내가 진짜, 은지님 팬만 아니었으면 이 헬 직장 진작에 때려치웠을 거예요.”
“전 요즘 대표님이 그래서 팬을 우대한 게 아닐까 싶습니다. 하하……”
“하하, 하…….”
빛나는 E-UNG 이은호와 이은지의 뒤에서 두 사람이 온전히 빛날 수 있게 돕는 역인 슬기와 현우.
두 사람은 서로만 공감할 수 있는 ‘못 말리는 자식 새끼들’을 기르는 그 기분에서 흘러나오는 씁쓸한 웃음을 애써 삼켰다.
그때였다.
“야 근데, 이은지.”
“또 뭐.”
“한복 입고 그렇게 고릴라처럼 달리면 좀 깨는 거 같지 않냐?”
“그렇게 치면 지는―, 아, X발. 또 빡치게 만드네, 이―!”
겨우 끝난 줄 알았건만 그동안 지쳐 뻗어 있던 은호와 은지는 곧 2차전이 발발(勃發)하기 직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