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매는 비즈니스로 일합니다 (204)
은호가 버럭 소리치자, 은지의 방문 너머에서 후다닥 무언가가 달리는 소리가 났다.
“너지, 이 묘새끼야!”
“넌 무슨 댈 핑계가 없다고 연탄이 핑계를 대냐?”
“니가 몰라서 그렇지 저 자식 저거 사람처럼 말하고 처먹고 너처럼 엿 만들고 다 한다니까?”
“와, 이젠 아이스크림 처먹은 거 숨기겠다고 미친 척까지 하네. 이은호 대―단하다.”
“아니, X발, 나 아니라고!”
은호가 거칠게 머리를 헝클이며 화를 내던 그때였다.
‘어?’
은지의 방을 신경질적으로 쳐다보던 은호는 무언가를 본 듯, 시선을 고정한 채 멈춰 섰다.
“뭐냐? 저거.”
“이번엔 뭔데?”
“아니. 야, 이은지. 너 뭐, 네 방에 사람 형체 같은 물건 뒀냐?”
“아니?”
“진짜?”
“……X발.”
철석.
소리만 들었을 땐 무슨 파도라도 친 줄 알았다.
은지의 손바닥이 벼락처럼 떨어져 은호의 등짝을 강하게 내려찍었다.
“미친놈아, 아이스크림 처먹은 거 X랄 했다고 무서워하는 거 뻔히 알면서 방에 귀신 있다고 X랄 하냐! 소름 돋게 왜 그래!!!”
“아니, 봐! 있잖아!”
은호가 외친 말에 은지는 그제야 자신의 방문 쪽을 바라봤다.
그리고 얼었다.
은호의 말이 맞았다.
은지의 방 안에는 누가 봐도 사람 형태의 그림자가 문틈으로 비쳤다.
“이은지. 너, 방에서 나온 지 얼마나 됐냐.”
“어, 얼마나 됐긴, 화장실 갔다가 냉장고 본 거니까…….”
“한 시간은 넘었다는 거네.”
“……응.”
은호는 성큼 은지의 방문 앞으로 다가갔다.
은호는 귀신보다 사람이 훨씬 무서웠다.
생각해 봐라.
침대 아래에 귀신이 있는 게 덜 무서울까.
사람이 있는 게 덜 무서울까.
차라리 귀신인 게 낫지.
은호는 그런 쪽이었다.
그래서 혹여나 진짜 사람일까.
은호는 긴장하며 은지의 방문에 손을 올렸다.
그때였다.
“아아악!!!”
갑자기 뒤에서 은지가 비명을 지른 탓에 은호는 흠칫 심장을 부여잡았다.
어느 때보다 ‘빡친’ 눈으로 은호가 은지를 돌아봤다.
“너 때문에 심장 멎는 줄 알았다. 왜 소리 지른 건데.”
빈말이 아니라 진짜 심장 멎는 줄 알았다.
“어?”
은호가 짜증 섞인 목소리로 묻자, 은지는 조금 당황한 모습으로 답했다.
“그, 그냥, 놀라서……?”
“이리 와. 그냥 니가 열어, X발.”
“악! 아악! 잘못했어! 닥치고 있을게!”
“이 악물고 주둥이 닫고 있어라.”
“아라써.”
은지는 양손으로 입을 틀어막았다.
은호는 한숨을 내쉬며 다시 은지의 방문을 조심스럽게 열었다.
“…….”
“…….”
문을 연 그 순간.
“뭐야.”
정작 방 안에는 중앙에 굉장히 이상한 자세로 뻗어 있는 살이 찐 건지 몸집이 커진 연탄뿐.
“뭐냐. 너.”
“냐, 냐앙.”
“여기 누구 있었어?”
연탄은 은호의 눈을 피했다.
“아무것도 없어?”
“어. 없어.”
은지는 은호의 대답에 그제야 천천히 방문으로 다가왔다.
한편, 혹여나 무언가 튀어나올까 봐 두려웠는지 은지의 양손에는 당장이라도 내던질 각오가 된 2L짜리 생수 두 통을 들고 있었다.
“아, X나 무서워. 어떡해.”
은호는 힐끔 은지를 돌아보며 중얼거렸다.
“니 얼굴이 더 무서운데.”
“X랄 마라. 이거 너한테 다 던져 버리는 수가 있다.”
“응. 던지면 니 이불에 물 다 뿌릴 거임.”
은지는 대꾸할 가치를 잃은 듯, 반박하는 대신 중지를 세우며 쪼그려 앉았다.
조금 전 분명 사람 같은 그림자를 봤던 탓일까.
은지는 방 안에 연탄밖에 없다는 걸 알아도 차마 쉽게 발을 들이질 못했다.
“연탄아, 이리 나와.”
“야―옹.”
그래서 연탄이랑 같이 오늘은 거실에서 자려고 했는데.
“……잠깐만.”
그때였다.
은호는 천천히 고개를 갸웃거리며 연탄을 돌아봤다.
“너…….”
“…….”
그때, 연탄은 아무래도 무언가 찔리는 게 있는지 은호의 눈을 슬쩍 피했다.
그때였다.
바스락.
연탄이가 슬쩍 움직일 때마다 수상한 비닐 소리가 났다.
‘이 자식.’
엉덩이 아래에 뭔가 숨기고 있구나!
“햐―악!”
은호가 섬뜩한 이채를 띠며 순식간에 은지의 방 안으로 튀어 들어가더니, 격하게 난리 치는 연탄의 뒷덜미를 재빠르게 붙들고 옆으로 치워 냈다.
연탄이 어정쩡하게 앉아 있던 자리에는 아니나 다를까.
아이스크림 봉지 두 개와 세 개의 아이스크림 막대가 깔려 있었다.
“너…….”
은호가 연탄을 무섭게 쏘아보자, 연탄은 언제 중앙에 앉아 있었냐는 듯 후다닥 캣타워에 올랐다.
이은지가 이 방에서 나가 있었던 시간은 한 시간.
변비인 이은지는 더 걸렸을 수도 있다.
하지만 아이스크림의 흔적은…….
은호는 미소를 지었다.
하지만 그 눈빛은 웃는 것보단 크게 화가 난 편에 가까워 보였다.
“너 이리와. 이은지.”
“엉?”
“넌 니가 처먹고 기억 못 하고 나한테 지X 한 거면 진짜 가만 안 둘 줄 알아라.”
“뭔 소리야! 나 안 먹었거든!!!”
“그럼 니 방에 이게 왜 있는데! 연탄이 새끼가 저 발바닥으로 사람처럼 이렇게 비닐을 뜯었겠냐?”
은호와 은지가 서로의 머리를 쥐어뜯으며 진심으로 싸우고 있는 그동안.
연탄은 큰 소리가 날 적마다 흠칫하며 급하게 양발의 끈적거리는 아이스크림의 흔적을 바쁘게 치우는 데 집중했다.
은호는 처음엔 연탄이 아이스크림을 먹었다고 생각했지만, 아무리 봐도 깔끔하게 뜯긴 비닐의 흔적이 사람의 손길을 탄 게 분명해 보였기에 의심을 거뒀다.
하지만 그렇게 대판 싸웠음에도 은지가 사 온 아이스크림 8개 실종 사건은 미제로 남게 됐다.
연탄이 사람 말은 해도, 사람으로 모습을 바꿀 수 있는 줄은 전혀 예상하지 못하고 있었으니까.
적어도 그 사실을 알게 되었을 땐 은지의 생일에 다다를 때인 11월쯤으로.
9월이었던 당시에는 상상조차 못 하고 있었다.
* * *
곧 추석을 앞둔 며칠 전.
촬영이 하나 잡혔다.
긴 촬영은 아니고 콘셉트 비디오 겸 추석 시즌에 맞춰 E%에게 짧은 추석 인사를 전할 간단한 촬영이었다.
촬영지는 몇백 년은 족히 살아온 듯한 느티나무를 마주 보고 있는 경주의 한 한옥이었다.
먼저 준비를 마친 은지는 담벼락을 따라 걸으며 건물을 구경하고 돌아오는 던 중이었다.
황토와 돌이 차곡차곡 쌓여 발끝을 세워야 겨우 안이 보일락 말락 할 높이의 담벼락.
은지는 담벼락 위에 놓인 기왓장이 신기한지, 긴 손톱으로 소심하게 톡톡 건드려 보며 눈을 빛냈다.
170이 넘는 큰 키 덕분일까.
은지의 한복 차림은 상아색의 뽀얀 저고리 아래 짙은 남색의 치마가 마치 깊은 바다처럼 끝없이 이어지는 느낌이었다.
자칫 수수하게만 보일 수도 있었지만, 치마의 끝자락에 저고리에 맞춰 상아색의 나비와 꽃 자수 덕분에 화려함 또한 적당히 챙긴 모습이었다.
“와, 은지님 그러고 있으니까 여기 양갓집 규수 같아요!”
그런 은지를 뒤늦게 본 슬기는 감탄을 아끼지 않았다.
“아…….”
은지는 평소에는 대부분 긴 머리를 풀어 헤친 채 다녔다.
하지만 아무래도 한복에는 깔끔한 머리가 더 잘 어울렸기에, 슬기는 급하게 구매한 치마와 꼭 어울리는 푸른빛의 자개 비녀를 이용해 은지의 머리를 깔끔하게 틀어 올렸다.
한복까지 잘 갖춰 입고 나니 양반집 규수 같다는 말이 절대 빈말은 아니었다.
“안 이상해요?”
은지는 한복이 어색한지, 깔끔하게 틀어 올린 머리를 어색하게 만지작거리며 물었다.
“전혀요! 엄청 잘 어울려요.”
“헤헤, 다행이다. 한복은 처음 입어 봐서 걱정했거든요.”
회귀 전 생활 한복은 협찬으로 입어 본 적 있었지만, 이렇게까지 제대로 입은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그래서일까.
은지의 어색한 분위기는 의외로 우아한 한복과 어우러져 굉장히 고급스러운 느낌을 자아냈다.
슬기는 심장을 붙들며 짧은 심호흡을 삼켰다.
‘귀여워……!’
평소 당돌하고 항상 쌩쌩한 은지에게서는 쉽게 보기 힘든 얌전한 분위기인 탓일까.
정말 귀한 장면이었다.
하지만 옷이 아무리 날개가 되어 준 들, 은지는 은지랄까.
“아, 이은호 색, 오빠는요?”
자연스럽게 ‘이은호 새끼’라고 할 뻔한 은지는 급하게 말을 고치며 슬기에게 물었다.
“하하, 옷만 갈아입으시면 끝나니까 금방 오실 거예요.”
은지다운 실수였는지, 슬기는 ‘그럼 그렇지’라는 느낌으로 웃음을 터뜨리며 대답했다.
“아, 저기 오시네요.”
그때, 슬기가 은지의 너머를 보며 말했다.
슬기의 말대로 은호가 느긋한 걸음으로 이쪽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은지와 맞춘 듯 은호의 의상 또한 내의는 고운 상아색에 푸른빛의 쾌자를 걸친 모습이었다.
“오, 뭐야. 이은지, 좀 잘 어울린다?”
익숙한 시비조가 들린 순간.
그간 어색하게 굳어 있던 은지의 입꼬리가 평소의 장난기 가득하던 표정으로 돌아왔다.
“오. 우럭 씨, 용궁 가는 날인가 봐.”
“그럼 그렇지. 주둥이 열리니까 분위기 다 깨 먹네.”
“하하핰.”
은호가 어디서 난 건지 모를 나뭇가지로 은지의 옆구리를 찌르려 하자, 은지는 자연스럽게 공격을 피하며 은호의 상태를 뜯어 살폈다.
“오, 뭐야. 갓까지 제대로다.”
“어. 근데 이거 은근히 더워.”
은호가 높이 솟은 갓을 툭툭 건드리며 말했다.
그때였다.
“이은지 씨!”
“아, 네!”
한 스태프가 은지를 찾았다.
아무래도 은지의 장면을 먼저 촬영하려는 듯했다.
은지가 촬영을 위해 떠나고, 은호는 주변을 둘러보다 한 스태프를 붙잡으며 물었다.
“저 여기 마루에 앉아 있어도 되나요?”
“네. 편하게 계세요.”
허락을 구한 은호는 대청마루에 편하게 앉아, 한옥의 고즈넉한 분위기를 즐기며 마주 보고 있는 거대한 느티나무를 바라봤다.
저 나무를 볼 때면 여기 도착했을 때부터 기묘한 기시감이 느껴졌다.
‘분명 어디선가 본 것 같은데…….’
정확하게 언제 봤다고 콕 집기에는 흐린 기억.
“은호 씨!”
“……?”
은호가 느티나무를 보며 멍하게 생각에 잠겨있던 그사이에 언제 다가왔는지, 슬기가 카메라를 들어 보이며 말했다.
“대표님 프로젝트용으로 사진 한 장 찍을게요. 하나, 둘!”
“가, 갑자기요? 아.”
찰칵.
준비할 시간 따위는 전혀 주지 않은 채 슬기는 그대로 사진을 촬영해 버렸다.
은호는 확인을 위해 슬기에게 카메라를 전해 받아 사진을 본 순간, 눈에 띄게 얼굴이 붉어졌다.
“저, 슬기 씨, 다시 찍으면 안 될까요. 너무 어정쩡하게 찍은 것 같은데…….”
“안 돼요. 처음에 찍은 사진으로 할 거라고 대표님이 정했잖아요.”
이건 ‘비하인드 북’이 예측했던 것보다 반응이 훨씬 좋았던 것 때문이었다.
감명이라도 받은 건지, 최근 대표님은 매 촬영이나 일정을 기념할 ‘첫 번째’ 사진만을 모은 사진첩을 제작하자며 프로젝트를 구상했다.
「“이건 일단 만들고 나서 판매할 정도라면 굿즈로 팔고, 아니라면…….”」
「“아니라면요?”」
「“너희 성장 기록인데, 내가 보관해 둬야지.”」
DI 뮤직 대표도 구워삶은 대표님을 누가 말릴까.
‘오늘 이 촬영지처럼 이득은 있으니 딱히 불만은 없긴 하지만…….’
최근 NRY 사옥에 방문할 때마다 처음 보는 사람이라면 우리 회사 직원인 줄 착각할 정도로 뻔뻔하게 있는 DI 뮤직의 어 대표님을, 우리는 매번 대표님보다 먼저 마주치고 있다.
그런데 DI 뮤직 대표가 왜 이렇게 우리 회사에 지원을 못 해서 안달이 난 건지는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할 수 없었다.
‘어이슬도 그렇고 어 대표님도 그렇고…….’
어째 그 집안은 사람들은 하나같이 이상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