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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매는 비즈니스로 일합니다-201화 (201/309)

남매는 비즈니스로 일합니다 (201)

대놓고 말하다시피 불쾌함을 드러냈음에도 어 대표는 물러날 생각이 없었다.

좀 심했던 것 같아서 돌아가시길 예를 갖춰 청했건만 이건, 아예 들은 척도 않는다.

‘그래. 니 마음대로 하세요.’

창석도 이젠 ‘에라, 모르겠다.’ 하는 심정으로 다시 모니터나 바라봤다.

다시 업무에라도 집중해 보려던 그때였다.

“여긴, 따로 비서가 없나 봅니다.”

대표들이라면 편의를 위해 비서를 두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하지만 창석은 아직까진 비서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고 있었다.

“따로 비서는 없습니다. 비서가 할 일은 대부분 직원 중 그때그때 여유로운 사람들한테 맡기고 있기도 하고, 그게 아닐 땐 그냥 제가 직접 하는 편이 편해서.”

“그렇군요. 그럼…….”

드디어 가는 건가?

어석배 대표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창석은 설레는 마음으로 어 대표를 힐끔 바라봤다.

“송주 씨.”

“네?”

들어오면서 박 대표가 ‘송주’라고 부른 이름을 기억해 둔 듯 어석배 대표는 지나가던 송주를 불러 세우며 물었다.

“커피는 셀프인 것 같은데, 어디서 끓여 오면 됩니까?”

“예? 네?”

……타 오라는 식으로 말했다면 차라리 그걸 빌미로 쫓아내려 했더니, ‘어디서 끓여 오냐’라는 질문은 전혀 예상치 못했다.

당황한 송주 씨는 얼떨결에 직원 휴게실 방향을 가리켰다.

창석은 뒤통수를 붙들며 땅이 꺼질 것 같은 깊은 한숨을 내뱉었다.

“고맙습니다.”

어 대표는 덤덤하게 고개를 까딱인 뒤 송주가 가리킨 직원 휴게실로 향했다.

설마설마했는데.

그 ‘설마’가 현실이 됐다.

어 대표는 잠시 후 어디서 꺼낸 건지, 지냥이 얼굴이 그려진 머그 컵에 본인이 마실 커피를 직접 내려오더니, 곧장 대표실로 돌아와 책상 건너에 다시 앉았다.

이 자식은 역대급이다.

진짜, 역대급이다.

“음. 커피 향이 좋군요.”

“예…….”

“저희도 타 먹는 것 말고 내려 먹는 거로 바꿔야겠습니다.”

박 대표는 살짝 아득해진 정신을 겨우 붙들었다.

이쯤 되니, 이 인간도 일부러 이러는 건가 싶었다.

‘그래. 언제까지 버티나 어디 한번 해 보자.’

박 대표는 스트레스가 쌓여 성질이 날 지경이자, 업무를 하면서 그 성질을 폭발시켰다.

창석은 은호와 은지 및 톡신과 화랑의 싱글 앨범 준비를 직접 통솔하는 만큼 정말로 굉장히 바쁜 상황이었다.

다행이라면 일에 몰입하고 나니, 눈앞에서 얼쩡거리는 어 대표를 진심으로 무시한 채 정말 일에 몰두했다.

그렇게 시간이 꽤 흘렀을 때.

“대, 대표님.”

“응? 아, 벌써 퇴근 시간인가?”

“네. 6시…….”

“벌써 퇴근 때구나.”

어석배 대표가 점심시간 이후에 왔으니, 오후 2시부터 시작해서 벌써 4시간이나 흘렀다.

업무에 몰두했을 땐 당연히 돌아간 줄로만 알았는데, 고개를 들자 어석배 대표는 여전히 그 자리에 그대로 앉아 있었다.

NRY 엔터테인먼트 직원들이 평소와 다름없이 인사차 박 대표에게 들른 그 순간.

소파도 두고 여전히 창석의 건너편에 앉아 있는 어석배를 직원들은 일제히 당황스러운 눈으로 바라봤다.

‘아직도 있었어?’

‘대단하다.’

직원들로선 박 대표, 은호, 은지 이후 엄청난 고집불통을 만난 기분이었다.

엉덩이에 쥐가 나진 않았을까 걱정될 정도로 커피를 들고 앉았던 그 자세 그대로.

“저희는 먼저 퇴근해 보겠습니다.”

“그래. 조심히들 들어가.”

“대표님도 오래 남아 계시지 말고, 오늘은 꼭 일찍 들어가세요. PD님 기다리신다잖아요.”

“너희 덕분에 내 신혼이 걱정이 없다. 나도 이것만 마무리하고 갈 거야. 걱정하덜덜 말고 얼른들 가 봐.”

그 대표에 그 직원이라고 해야 할까.

태연하게 인사하는 박 대표를 따라, 어석배가 있음에도 직원들은 평소와 다름없이 인사를 마친 후 그대로 줄줄이 회사를 떠났다.

“NRY 엔터테인먼트는 대표보다 직원이 더 일찍 퇴근하는군요…….”

어석배는 신기한 장면을 보듯 회사를 떠나는 직원들과 박 대표를 번갈아 봤다.

창석은 힐끔 그런 어석배를 바라봤다가 다시 모니터로 눈을 돌렸다.

“제가 다 처리할 수 있는 일이면, 직원들은 제시간에 퇴근시킬 수 있으면 시켜 주는 게 좋지 않겠습니까.”

창석의 대답에 어석배는 그런 창석을 빤히 바라보며 답했다.

“일플레닛에서 NRY 엔터테인먼트의 직원 평가가 좋은 이유가 이래서…….”

“……그런 것까지 찾아보셨습니까?”

어석배는 조용히 눈웃음으로 답을 대신했다.

저승사자의 ‘데스 윙크’를 보는 기분이 딱 이런 걸까 싶을 정도로 싸늘한 웃음이었다.

박 대표의 머릿속에 ‘스토킹 의심 중’으로 저장되어 있던 어석배의 정보가 ‘스토커’로 업데이트됐다.

사실 DI 뮤직에 방문했을 때부터 그는 범상치 않았다.

「“목이 타는군. 아이스크림 하나만 먹겠습니다.”」

「“……?”」

「“드릴까요?”」

「“아, 아뇨. 저는 괜찮습니다.”」

「“그래요? 흠, 맛있는데. 김 비서, 거 냉동실에서 바 하나만 가져와.”」

비서조차 당황하던 그 모습이 선명하게 떠오른다.

박 대표는 그날 이후, DI 뮤직 엔터테인먼트를 조사차 인맥이 넓은 보영 씨를 통해 DI 뮤직 내부의 분위기를 조사해 봤다.

「“지인 말로는 그런 모습은 본 적 없다고 하던데요? 오히려 굉장히 엄하고 말 한마디 걸기 힘든 포스를 풍기면서 한 번씩 회의 때만 얼굴을 비춘다고…….”」

보영 씨를 통해 내부 직원인 지인의 이야기를 전해 들은 그때.

솔직히 이야기를 들었을 땐 어석배 대표가 본인의 홈그라운드 안이라 ‘갑’의 권위를 내세우려고 일부러 그러는 줄 알았다.

하지만 오늘 일을 겪고 나니까 알겠다.

그 살짝 나사 빠진 듯한 성격이 사실은 어 대표의 본래 성격인 것 아닐까.

사실 이러나저러나 왜 우리 회사에서 이런, 거침없는(?) 행동을 보이는 건지.

창석에게는 여전히 혼란스럽긴 마찬가지였다.

6시가 지나고, 직원들이 모두 퇴근한 뒤.

회사 안에는 중간중간 서류를 넘기는 종이가 팔랑이는 소리도 들리기는 했지만, 컴퓨터 작업이 많아서 키보드와 마우스 클릭 소리가 대부분이었다.

그동안에도 어 대표는 식은 커피를 홀짝이며 정말로 퇴근할 때까지 버티고 있을 생각인 것 같았다.

그렇게 2시간이 더 흐르고 8시가 됐다.

“으윽……. 후.”

창석은 기지개를 켜며 업무를 마무리했다.

“흐음, 흐―음.”

어 대표는 어느새 팔짱과 다리는 고고하게 꼬고선 동시에 목은 뻣뻣하게 정면을 응시한 상태로 눈만 감고 있다.

“어 대표님.”

흠칫.

어 대표의 몸이 들썩였다.

묘하게 한숨 같은 ‘흐음’은 코를 고는 소리였는지 아무래도 잠이 들었던 모양.

“하하.”

은호가 잠들었을 때도 이렇게 놀라며 깨어난 적이 잦다 보니, 창석은 순간 웃음이 터져 나왔다.

“…….”

어 대표는 처음으로 당황한 기색을 드러내며 주변을 훑었다.

“오래 기다리셨는데, 같이 저녁 식사나 하러 가시죠.”

창석은 어 대표에게 세웠던 경계의 벽을 아주 조금 허물며 말을 꺼냈다.

이렇게까지 버텼으니, 적어도 조건은 둘째 치더라도 밥 정도는 같이 먹을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라서 한 제의였다.

“맛있는 곳으로 부탁드립니다.”

어 대표는 절대 안 일어날 것 같던 의자에서 일어나, 창석을 뒤따랐다.

그렇게 회사를 나왔을 때였다.

“차는 어디다 대셨습니까?”

“차, 아, 지하철 타고 왔습니다.”

창석은 자연스레 물었고, 어 대표는 뻔뻔하게 답했다.

“기사도, 차도 아니고…….”

“지하철이 재미있어 보여서 그쪽으로 왔습니다.”

당연히 차를 끌고 왔거나 기사가 있을 줄 알았다.

하지만 오롯이 재미 때문에 지하철을 타고 왔다는 어 대표.

창석은 그냥 이제 ‘이해’라는 것을 포기했다.

“……제 차로 가시죠.”

창석이 오늘 끌고 온 차량은 회색빛의 외제 세단이었다.

“차는 좋은 걸 타시는군요.”

어 대표가 의외라는 듯 말하자, 창석은 보살과 같은 마음씨를 유지하며 조용히 웃음만 지었다.

그렇게 차에 올라, 창석은 일전에 은호와 은지와 함께 갔었던 소고깃집으로 향했다.

가게로 향하는 길.

의외의 곳에서 두 사람은 공통점을 찾았다.

“7살 때부터 이슬이가 누나를 닮았는지 피아노를 그렇게 잘 쳤지요.”

“하하, 그렇군요. 뭐, 저희 애들도 워낙 비범한 녀석들이라서요.”

“그렇습니까?”

“예. 듀오를 내기 전에 작곡가 한 분을 초청했었는데…….”

“페이옵인가, 이슬이가 작업 전부터 하기 싫다며 취소했던 그 작곡가 말씀이시군요.”

“거기도 그랬습니까?”

박 대표가 놀라며 묻자, 어 대표가 무뚝뚝하게 고개를 한 차례 끄덕였다.

“저희도 애들이랑 스타일이 맞지 않아서 타이틀곡에서 밀어냈었던 일이 있었거든요.”

페이옵에 대해서 어떻게 알았는지는 물을 생각조차 없었다.

‘어련히 알아보셨겠지.’

조사하던 중, DI 뮤직은 철수 PD에게 그랬듯 훨씬 더 일찍 커넥션을 진행했던 것을 확인했다.

실제로 에이슬은 이번 음원 차트 1위를 찍은 곡을 녹음하기 전.

페이옵과 함께 작업을 진행하려고 했던 시도가 있었다.

하지만 페이옵의 말투부터 디렉팅 방식 등, 여러모로 에이슬을 마음에 들지 않았는지, 에이슬은 곡을 버리고 다시 만드는 한이 있어도 ‘그 사람과는 절대 작업을 하지 않겠다’라고 선언하며 엎어 버렸다.

“손해가 조금 있었죠. 하지만 결과적으로는 이슬이가 좋은 성적을 거뒀으니, 좋은 일이었습니다.”

어 대표는 그때의 일을 이야기하며 말했다.

“좋은 일이라…….”

하하.

창석은 통화로 소리치던 페이옵을 떠올리며 웃었다.

‘DI 뮤직한테 버려졌다면 적어도 큰 고객은 다 떨어졌겠어.’

박 대표야 거저 준대도 안 받을 생각이니 이렇게 뻔뻔하다지만, 다른 회사들은 DI 뮤직의 후원을 받기 위해 눈에 불을 켜고 있으니까.

DI 뮤직이 버린 페이옵을 당연히 주워 쓸 리가.

게다가 페이옵은 최근 은지가 만드는 곡과 비교하면 다소 올드한 스타일의 작곡을 한다.

시대의 흐름을 따라가지 못한다면 시장에서 도태되는 것은 당연한 일.

‘어쩐지 애잔하네.’

애잔하긴 한데, 딱 거기까지였다.

핸들을 틀어, 우회전하는 동시에 창석은 페이옵을 머릿속에서 지워 내며 말을 이었다.

“저희도 결과적으로는 좋은 일이었습니다.”

“그때부터였나 보군요. 남매가 직접 작곡한 게.”

눈치가 빠르네.

“참고로 작곡은 은지가 혼자서 하는 겁니다.”

박 대표는 고개를 끄덕이며 다른 부분은 정정했다.

그때, 어 대표는 점심 때보다 눈 그늘이 눈에 띄게 진해진 눈을 크게 뜨며 물었다.

“혼자……?”

“네.”

“일주일에 스무 곡을 넘게 만든다고 들었는데, 설마 그게 정말로 혼자…….”

내 새끼가 좀 잘났지.

창석은 실실 올라가는 입꼬리는 애써 붙들었지만, 높아지는 콧대와 어깨는 막을 수 없었다.

“뭐, 그때부터 본격적으로 작사·작곡은 우리 애들이 스스로 했는데 아시다시피, 저희 애들이 곡을 참 잘 다루잖습니까?”

“그, 건…… 그렇습니다.”

어릴 때부터 피아노 잘 쳐서 뭐 하냐?

우리 애들은 작사 작곡 둘 다 잘한다.

뭐, 요약하자면 그런 느낌의 내 새끼 자랑이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수양 남매와 조카 자랑인가.’

DI 뮤직은 은지의 곡을 바라고 있으니, 어 대표는 반박을 포기하며 조용히 박 대표의 자랑을 받아들였다.

‘조카―에이슬― 자랑 VS 수양 남매―은호와 은지― 자랑’ 대결에서 창석은 보란 듯 승리를 거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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