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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매는 비즈니스로 일합니다-200화 (200/309)

남매는 비즈니스로 일합니다 (200)

책임

“피부가 조금 많이 흰 편이긴 하지만, 제 다크서클이 정말 턱까지 오진 않을 텐데…….”

벽 쪽에 가려 보이지 않았던 어석배 대표가 속을 알 수 없는 미소를 띠며 나타났다.

“누추한 곳에 귀한 분이 오셨군요.”

창석은 어 대표의 등장에도 불구하고 예상했다는 듯 표정 한 번 변화 없이 그를 맞이했다.

‘누추한 곳에 귀한 분이.’

이 말은 자신을 상대보다 숙이기 좋은 문장 중 하나다.

다만, 동시에 ‘니가 여길 왜 왔냐’라는 원초적인 질문이 될 수도 있다.

창석의 의도는 전자보다는 후자에 훨씬 가까웠다.

「“고민을 해 보고, 이후 다시 한 번 연락을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그때까지만 아무쪼록 이해해 주시길 바랍니다.”」

그렇게 인사 후 헤어진 지 뭐 며칠이나 지났다고 숨통을 죄러 왔는데.

반가울 리가.

언질 하나 없이 무작정 방문한 어 대표가 솔직히 불쾌했다.

하지만 어석배 대표는 창석의 뒤틀린 친절에도 불구하고 감정 없는 덤덤함을 유지하고 있었다.

“답이 늦으시길래.”

“아직 며칠 지나지도 않았는데 너무 재촉하십니다. 하하.”

“나이를 먹으니 마음이 급해서 말이지요.”

“하하. 저랑 얼마나 차이가 나신다고.”

“액면가만 보면 대표님께서 훨씬 어리시니…….”

외모가 ‘젊다’라는 말은 보통 칭찬으로 통한다.

다만, 직위와 함께 ‘어리다’라는 말을 놓으면 글쎄.

과연 칭찬일까.

‘어우! 숨 막혀!’

은근한 신경전 속에서 등 터지는 새우 꼴이었던 송주는 양 대표님의 눈치를 보다 도망치듯 자리를 피했다.

“급한 쪽이 저희다 보니, 속이 달아 이렇게 왔습니다.”

대표실을 떠나는 송주를 바라보며 어 대표가 말했다.

굳은 표정과는 반대로 굉장히 친절한 어투였다.

창석은 경계 상태였지만 적어도 표정만큼은 그와 처음 마주했던 DI 뮤직 사옥에서처럼 입꼬리를 끌어 올린 가짜 미소는 뒤집어쓴 채였다.

어 대표가 굽히긴 했지만, 명백히 ‘갑’과 ‘을’을 나누면 NRY이 ‘을’이긴 했으니까.

하지만 물러서기엔 이쪽도 자존심이 있기에 버텼다.

그리고 ‘경험상’ DI 뮤직은 능구렁이 스타일을 딱히 좋아하지 않는다고도 들었고, 말이다.

그게 아니더라도, 창석은 은호와 은지 생각에 목을 더더욱 꼿꼿하게 세웠다.

‘내가 숙이는 순간, 은호와 은지 역시 DI 뮤직의 에이슬보다 아래가 될 수 있다.’

그래서였다.

자칫 부러지는 한이 있어도 창석은 목을 세워야 했다.

“죄송합니다. 하지만 공짜 밝히다간 머리가 벗겨진다는 속담도 있잖습니까. 저희도 시간이―.”

어석배 대표는 처음 듣는다는 듯 눈 그늘이 진한 눈을 크게 뜨며 되물었다.

“그런 말이 있습니까?”

“어 대표께서는 풍성하시지만 저는 보다시피 벗겨지고 있는 처지라 한 올 한 올이 귀하다 보니 조심해야지요.”

비록 박 대표가 먼저 농담을 하긴 했지만, 어 대표의 시선이 노골적으로 잠시 박 대표의 머리에 머물다 내려왔다.

어쩐지 열 받는 시선이지만, 창석은 침착하게 말을 마저 이어 갔다.

“아무튼, 그래서 더 고민할 시간이 필요하다는 말입니다.”

공짜 밝히다간 머리가 벗겨진다.

그 문장부터가 시작이었다.

단순한 농담처럼 보이는 이 이야기에는 숨은 뜻이 있었다.

회사를 운영하다 보면 여러 방면에서 경계할 것이 많다.

그중 하나가 바로, ‘공짜’.

특히 감당하기 힘들 정도로 큰돈이 걸린 공짜는 위험하다.

이후 어떤 폭풍으로 돌아올지 시간이 지나기 전에는 누구도 예상할 수 없으니까.

베푸는 그 사람을 제외하고는 말이다.

‘어느 귀인이 가난했던 누군가를 도와 그가 돈을 벌어 큰 회사를 세우고 이후 그 귀인에게 보답한다.’

그런 전래 동화 같은 이야기가 있기도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이유가 이상하잖아.’

어석배 대표의 말은 그래.

100% 믿어서 본인이 조카 녀석을 너무 아껴서 그런 지원을 한다고 한들.

적어도 수천이다.

앨범 제작을 생각하면 많으면 억 단위를 넘어갈 텐데 NRY 엔터테인먼트에게 요구하는 부분은 고작 자신의 조카 에이슬과 꼭 함께 작업해 달라는 매우 단순한 조건.

‘심지어 나누는 것도 아니고 몽땅 DI 뮤직 측에서 지원하겠다는 게 말이나 되는 건지…….’

저작권이나 그로 인해 발생할 수익이라도 높은 비율로 달라고 했다면 당장에 ‘OK’를 했을 수도 있다.

하지만 어석배 대표는 원한다면 우리 NRY 엔터테인먼트와 동등하게 ‘5 대 5’로 나누겠다는 조건을 내걸었다.

의심스러워도 너무 의심스러울 정도로 후한 조건.

이러는데 DI 뮤직 사옥에서 쉽사리 대답이 나오겠냐고.

거기까지만 해도 계산해 볼 것들이 산더미건만…….

이후 은호와 은지에게 이야기했을 때 두 사람의 어정쩡하던 그 반응까지 더해지니 창석은 머리가 터질 지경이었다.

은지는 에이슬이라는 이름이 나온 그 순간 눈에 띄는 또렷한 적대감을 드러냈다.

은지는 평소 대부분 장난 섞인 분노를 자주 표출한다.

종종 진심이 있긴 하지만.

‘그 역시도 은호와 함께 활동을 제안했을 때나 사랑 노래를 부르라는 내 요구가 있었을 때.’

콕 집어 말해 보자면 ‘친오빠와 어떻게 그딴 걸 하냐’는 생리적인 거부감에서 나오는 분노였다.

그 말은 곧.

대상은 대부분이 은호에게 한정되어 있고, 은호나 페이옵 때와 같은 ‘불편한 일’이 있지 않은 이상 진지하게 누군가를 싫어하지 않는다는 말이다.

그래서 무슨 일이 있었던 건가 싶어서 직접 알아보기도 해 봤다.

그러던 중 알게 된 일로, 셀라스 숍의 강미주 원장의 말에 따르면 앞에서 아주 잠깐 마주친 적이 있다고 했다.

‘하지만 그때 이후론 스케줄 시간대가 달라, 지금껏 단 한 번도 얽힌 적이 없었다고…….’

그 외에는 아무리 뒤져 봐도 에이슬과 은지 사이에 일어난 일은 없었다.

에이슬의 음원 사이트 1등이 문제였을까 싶어 그쪽으로도 살펴보긴 했지만, 은호와 은지는 그닥 순위에 연연하지 않았다.

굳이 말하자면 오히려 본인들이 어디까지 할 수 있을까를 테스트하는 느낌에 가까웠다.

여기까지 아닌 것 같다고 지나치고 나니, 왠지 걸리는 그때 당시 은호의 대답.

「“진정해. 일어나기 전이잖아.”」

무엇이 일어나기 전이라는 걸까.

「“에이슬이랑 무슨 일이라도 있었냐. 왜 그렇게 열을 내?”」

「“무슨 일이 있긴요! 아무 일도 없, 없는, 없, 이, 이, 으아아악!!!”」

내 질문에 은지는 아까운 머리를 쥐어뜯어 대며 격한 반응을 보였다.

은호는 태연한 듯 굴고 있었지만, 드러나지 않을 뿐.

몇 년 동안 같이한 경험상 은호 또한 ‘에이슬과의 협업’이 못마땅하기는 마찬가지인 듯했다.

‘차라리 DI 뮤직이 아니었다면 호기심에라도 받아들였을 텐데…….’

하필 DI 뮤직 엔터테인먼트라서…….

* * *

사실 어석배 대표와는 초면이지만, 과거 현 DI 뮤직과는 이미 인연이 있는 사이다.

이건 ‘톡신’이 ‘세더티브’라는 이름으로 기획되었던 그 시절 이야기로.

당시 조직폭력배 출신의 소속사 대표는 욕심이 많았다.

당시 ‘더 운 아이 엔터테인먼트’였던 현재 ‘DI 뮤직’에게 전 대표는 한 사업을 제안했다.

하지만 안에서 새는 바가지가 밖에서 안 샐까.

당시 나는 여러 비리와 폭로를 터뜨리며 회사를 수면 위로 끌어올리며 당시 전 대표의 손아귀에서 세더티브의 탈출을 계획하던 중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예상대로 그는 좋지 않은 손버릇을 더 운 아이와의 협업 때도 그대로 행했고, 마침 때를 노려 그 전 대표의 뒤통수를 거하게 후려친 게 바로 나였다.

난 계획대로 세더티브 전체 멤버 녀석들을 빼냈고, 현재 은호와 은지가 기숙사로 사용하고 있는 그 집에 녀석들을 잠시 숨겼다.

당연히 전 대표는 아래 행동 대장들까지 통솔하며 나를 위협했고, 나는 전 대표가 보내는 놈들을 피하고자 전국 팔도를 떠돌아다녔다.

각종 비리들이 전파를 타고 기사와 뉴스에 오르내릴 무렵.

그제야 전 대표에게서 귀신같이 위협이 멈췄다.

정확히는 돈과 힘으로 찍어 눌려 버렸다는 게 더 맞을 듯하다.

참고로 현재 전 대표는 행방불명 상태다.

사업을 시작하면서 알게 된 사실이 하나 있다.

당시에는 몰랐지만…….

내가 비리를 터뜨린 부분에는 DI 뮤직의 깊숙한 부분, 즉.

어석배가 물밑으로 관리하던 조직과도 연관이 있었던 모양.

그게 우연히 전 대표와의 사업 부분과도 얽혀 있었고, DI 뮤직 측은 꼬리를 자르기 위해 전 대표를 버렸다.

처음엔 치기에 단순히 내가 강해졌기 때문인 줄 알았었지만, 사업을 하게 되면서 업계 사람들과 다시 이야기를 트면서.

나 또한 그 내막을 알게 됐다.

눈이 뜨이고 난 뒤.

나는 당시 언론의 흔적들을 다시 살펴봤다.

언론들은 그 대표를 찾아내는 것보다 조금 섬뜩할 정도로 내가 해낸 업적들을 떠들어 대기 바빴다.

꼭 전 대표를 앞세워 무언가를 감추듯이 말이다.

그때 당시에도 이상하다 느꼈던 부분은 있었지만, TaKa 엔터테인먼트에서 한창 ‘세더티브’ 녀석들을 ‘톡신’이라는 이름으로 받아들일지 말지 간을 보던 시기였기에 깊게 생각하기가 어려웠다.

때마침 터진 내 스포트라이트를 이용해서 톡신 녀석들에게 좋은 기회를 만들었기도 했으니, 그땐 ‘좋은 게 좋은 거지’라며 넘겼다.

‘지금 생각하면 여러모로 찝찝한 구석이 한둘이 아닌데 말이지.’

나는 그래서 DI 뮤직 엔터테인먼트와는 거리를 두고 싶었다.

소문으로도 위험하다는 말이 있긴 하지만, 이 녀석들은 진짜니까.

* * *

“여기까지 찾아 주신 어 대표님께 말씀드리기는 뭣하지만, 지금은 사내에 원체 밀린 일이 많아서 말입니다.”

“하긴, 최근 NRY 엔터테인먼트가 주목받을 일이 많긴 했군요.”

“하하, 뭐, 그렇다 보니, 현재는 아무래도 당장 말씀드리기가 힘듭니다. 저희 녀석들의 의견도 들어 봐야 하고요.”

“녀석들이라면 E-UNG 남매 말씀이십니까.”

“네. 그렇죠.”

어 대표는 은호와 은지의 이야기에 잠시 눈에 띄게 관심을 보이는 듯하더니 이내 느릿하게 고개를 기울이며 생각에 잠겼다.

이때다 싶어, 박 대표는 말을 덧붙였다.

“아무래도 DI 뮤직 측도 바쁘실 텐데, 오늘은 이만 돌아가시는 편이―.”

어석배가 어떤 사람인지, 그땐 전혀 몰랐다.

“아, 그거라면 DI 뮤직 엔터테인먼트는 이곳보다 직원이 많아서…….”

어석배의 대답에 박 대표의 이마엔 핏줄이 돋아났다.

‘이 망할 인간.’

‘NRY’는 ‘DI 뮤직’보다 직원이 적다고 비꼬는 건가?

박 대표는 강제로 끌어올린 입꼬리가 바르르 떨리는 게 느껴졌다.

“그러니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걱정 안 했다.

제발 좀 가라고 한 말이었다.

‘내 회사에서 꺼지라고!’

당장이라도 소리치고 싶지만 은호와 은지를 미끼로 이미 나름대로의 갑질은 한계치까지 밀어 본 상황이라 더 돌려 말하기는 쉽지 않았다.

이럴 때면 은지 생각이 난다.

잠시라도 좋으니 은지가 빙의라도 해서 시원하게 한마디 해 줬으면 좋겠다는…….

‘……은지는 좀, 아닌가.’

창석은 잠시 상상을 하다 고개를 저었다.

차라리 웃으면서 돌려 까거나 보살처럼 웃기만 할 은호가 더 나을까.

창석이 잠시 딴생각에 빠진 그때였다.

“그렇다면, 대표님께서 퇴근하실 때까지 기다리겠습니다.”

“뭔, 예?”

어석배 대표는 특유의 싸늘한 미소를 지으며 뻔뻔하게 의자를 끌고 와, 책상 건너편에 자리를 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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