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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매는 비즈니스로 일합니다-199화 (199/309)

남매는 비즈니스로 일합니다 (199)

“……?”

옆에서 들리던 혈육의 비즈니스 사운드가 멈췄을 때부터였다.

은호는 한 음침한 분위기의 팬을 앞에 두고 굳어 있었다.

심지어 그 팬이 몸을 덜덜 떨며 무슨 이야기를 하자 “그래요?”라며, 지금까지 중 가장 본인 성격 그대로 대답하기까지.

‘뭐지?’

은지는 갸웃거리기도 잠시.

“꺄악, 언니!”

“아.”

은호에게서 신경을 돌려 정면을 바라보자 은지는 짧은 탄식을 흘렸다.

사실 은지는 은호에게 신경을 쓸 여유가 없었다.

은호는 귀신같이 정확한 시간에 맞춰 팬들과의 이야기를 마무리 지었는데, 은지는 시간에 관계없이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초과하는 경우가 잦았다.

그것도 굉장히.

그 결과, 은지의 줄은 여전히 한참이나 남은 상황.

그렇다고 이제 와서 빨리빨리 넘기기엔 그것도 조금…….

“손깍지 끼워 주세요!”

“응! 자!”

은지가 양손을 활짝 펼친 채 팬에게 웃어 보이자, 이제 중학생쯤 되어 보이는 팬은 조심스럽게 양손을 포개며 행복한 미소를 지었다.

“손……. 이렇게요?”

그때 은지와 깍지 낀 손이 부러웠는지 은호 앞에 선 팬도 손깍지를 위해 은호에게 손을 펼쳐 보라며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짠!”

은호 앞에 선 팬은 활짝 웃으며 은호가 펼친 손에 제 손을 겹치더니 꼭 붙잡은 채 팔을 흔들었다.

은호는 처음엔 귀가 눈에 띄게 붉어질 정도로 당황하더니 이후에는 본인도 재미가 들린 듯 다음 팬에게 먼저 활짝 양손을 펼치며 손깍지를 바랐다.

다른 팬들의 눈에는 은호가 마냥 기분이 좋아 보였다.

하지만 은지의 시선에는 조금 다른 듯 은지는 은호에게 의심 어린 눈초리를 던졌다.

‘무슨 생각을 저렇게 하냐.’

그렇게 얼마나 지났을까.

은지는 은호가 누구 때문에 그토록 생각이 많아졌는지 알 수 있었다.

“저, 저…….”

어, 얘…….

앞으로 다가온 팬을 올려다본 은지는 잠시 머뭇거렸다.

다가온 팬은 무언가 우물거리며 이야기를 했지만, 시끄러운 주변 분위기에 마스크까지 쓰고 있는 탓에 목소리가 잘 들리지 않았다.

안 되겠다 싶었는지 그녀는 주변을 두리번거리더니 조심스럽게 마스크를 내리며 말했다.

“어, 아, 안, 안녕하세요.”

“……안녕. 반가워요.”

드러난 얼굴을 마주한 순간 은지는 잠시 굳었다.

하지만 이내 이전 팬들과 차이 없이 웃어 보이며 인사를 건넸다.

물론 속마음은 그렇지 못했지만.

‘X친, 얘가 여길 왜 와?’

은호 앞에 있을 땐 검은 가발과 눌러쓴 모자에 심지어 검은 마스크까지 쓰고있으니 누굴지 알아볼 수 있었을 리 없었다.

그런데, 아무리 그렇다고 해도 너는 아니지.

네가 여기 있으면 안 되지.

에이슬.

* * *

You're a weed

난 널 위해 준비된 Herbicide

밟고 뽑아 흔적조차

뵈지 않게 지워 줄게

와, 대박.

이렇게도 싸울 수가 있구나.

처음 디스곡이라는 걸 받아 봤을 땐 딱 그 정도의 기분이었다.

연예계에 발을 들이기 전에는 주먹질만 싸움인 줄 알았다.

다른 아이들하고 얽힐 일이 애초에 없었으니까.

하지만 본의 아니게 이은호보다 일찍 이곳에 발을 들인 이후에는 생각이 바뀌었다.

‘오빠는 이런 관심을 바랐던 건가.’

지금껏 가져 본 적 없던 이은호의 꿈에 의문이 생겼다.

이곳은, 그러니까.

이 카메라 앞에 서면 강제로 웃어야만 했다.

하지만 그렇게 웃는 사람에게도 여긴 칼을 뱉는 사람들이 부지기수.

그 칼은 너무도 예리해서 단순한 주먹다짐보다, 현실의 칼보다도 무서울 정도로 사람의 가슴을 파고들었다.

이런 곳이니까.

이런 세계니까.

그래서 나는 더 솔직해지려고 했다.

숨기려고 하지 않아도 숨겨진 것이 되는 이곳에서.

만일 의도를 가지고 숨겼다간, 그 어떤 것이라도 밝혀진 그 순간.

입으로 뱉어 낸, 손으로 써 낸 그 칼들이 나를 난도질해 버릴 테니까.

나는 어차피 이러나저러나 난도질을 당한다면 남이 뱉은 이야기보단 내가 뱉은 내 이야기로 당하는 편이 나았다.

남 입에 오르내려도 오롯이 진실로만 오르내리길 바랐다.

하지만 너무 솔직한 것도 문제인 듯, 이은호의 피가 말린다는 염려에 조금은 얌전한 모양새로 솔직했다.

음, 나는 얌전하게 굴었다고 생각했는데…….

「“은지야, 방송에서는 제발 말 좀 조심해라. PD는 좋다지만, 하, 내가 너 입만 열면 무슨 소리를 할지 가슴이 떨려서 요즘 TV를 못 보겠다.”」

대표님 안색을 보면 그게 아닌가 싶기도 한데, 어쨌거나 나는 솔직했다.

길바닥을 떠돌던

쓰레기가 주제를 모르네

그래서 대뜸 물어뜯어 대는 에이슬이 더 신기했다.

내 과거가 어쨌다고.

과거에 거지였다고 지금도 거지여야 하는 건가.

사실 한편으로는 거슬렸다.

하지만 병X에게 미끼를 던져 주면 더 날뛰어 댈 걸 알기에.

나는 그냥 모른 척 눈을 돌렸다.

그게 내가 할 수 있는 가장 어른스러운 행동이었다.

그 결과가.

이은호가 그따위로 행동할 줄 알았다면 그러지 않았을 텐데 말이다.

「“안녕하세요.”」

「“안녕, 반가워요.”」

이은호가 회귀했다는 그 시간에, 나는 에이슬과 인사를 나눈 적 있었다.

DI 뮤직에서 손을 쓴 건지, 각종 기사가 시끄럽게 내 이름을 떠들어 대는 그때.

나는 에이슬과 정작 방송국 화장실에서야 처음 얼굴을 마주했다.

우스운 상황이었다.

나는 얘가 나를 왜 싫어하는지조차 모르는데, 온갖 기사들은 우리를 경쟁자랍시고 떠들어 댔다.

솔직히 그건 괜찮았다.

이유 모를 혐오는 지긋지긋하리만큼 어릴 적부터 겪어 왔던 일이었으니까.

‘일방적으로 밟히는 처지가 아닌 것만 해도 어디야.’

그것만 해도 나는 잘 살아왔다고, 잘 올라왔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이번 디스곡 사건도 인생에 재미있는 한 면이라고 생각했다.

그렇게 지나치려고 했다.

“풉.”

안쓰러운 것을 보며 오히려 자신의 위치를 감탄하는 에이슬의 사람을 참…….

심란하게 만드는 그 비웃음을 듣기 전까지는 말이다.

“거지 남매가 광내니까 꽤 볼만한 꼴이지, 결국 출생은 못 속이네.”

“어디서 지나가는 개가 짖나?”

은근히 꼽을 주는 에이슬의 목소리를 귀까지 파대며 완전히 무시했다.

“실례.”

이후에는 보란 듯 어깨를 밀치며 화장실을 나왔다.

웃음기를 머금었던 얼굴에는 언제 그랬냐는 듯 싸늘하게 굳어졌다.

“뒤졌다, X 같은 년.”

병X한테 딱히 답을 해 줄 이유가 없었는데, 그때 이유가 생겼다.

애가 좀 X 같아야지.

그리고 그 결과.

로 나온 대중의 결과는 확실했다.

제대로 갚아 줬다고 생각했다.

이은호가 그런 일을 당했다는 걸 듣기 전까지는 말이다.

지나간 시간은 돌릴 수 없다.

흔히 그렇게 말하지만 지나가지 않은 시간이면 어떨까.

에이슬을 다시 마주치면 어떻게 갚아 줄까.

때릴까.

시원하게 욕이나 뱉어줄까.

“패, 패, 팬이에요.”

여러 가지 방법을 고민했는데, 막상 마주한 에이슬을 벌벌벌벌 떠는 모습이 꼭 비에 젖은 검은 강아지 같다.

“어, 언, 언니.”

와.

내 인생에 얘한테 언니라는 말을 들어 볼 수 있을 줄은 상상도 못 했는데.

뒤통수를 강하게 얻어맞은 듯 은지는 얼얼한 기분으로 에이슬을 바라봤다.

지금 눈앞에 탈수기에 털리듯 발발 떠는 빨래 같은 이 꼬맹이가 그 독기 가득하던 ‘ㅅ’으로 시작하는 그 X년이 맞는지.

“너무 머, 멋, 머싯, 멋있어요.”

혼란스럽다.

그래도 지금까지 계속해 온 반복 작업 덕분일까.

머리가 제 일을 못 하고 있는 와중에도 손은 자신이 할 일을 알고 있다는 듯 숨 쉬는 것과 다르지 않게 사인을 써 냈다.

다행이라고 해야 할까.

정작 이 혼란을 만들어 낸 에이슬은 빤히 보기만 하는 내 시선에 점점 얼굴이 새빨갛게 달아오르더니 점점 울먹이기 시작했다.

뭔, 뭐야. 내가 뭘 했다고 울어?

“잠깐만!”

뒤늦게 이성을 되찾으며 에이슬을 멈춰세웠지만, 에이슬을 허둥지둥 사인을 챙기더니 도망치듯 자리를 빠져나갔다.

“허……!”

황당한 숨을 터뜨린 은지는 긴장하던 어깨를 떨어뜨리며 한숨을 흘렸다.

‘쟤, 원래 저런 성격이었나?’

그때 봤던 에이슬도 이 당시엔 이런 성격이었던 걸까.

혹시라도 그랬던 거라면, 도대체 어디서부터 어떻게 잘못되어야 저런 애가 그렇게…….

* * *

“와 주신 모든 분께 감사드리고 앞으로도 열심히…….”

손목이 얼얼하던 사인 시간이 끝나고, 은호와 은지는 인사를 위해 작은 단상 위에 올랐다.

인사를 끝마친 뒤.

이후에는 일정이 없는 덕분에 곧바로 퇴근 시간이 됐다.

은호와 은지는 차로 향하는 발걸음이 급했다.

아직 팬분들이 남아 있기에 직접적인 언급은 할 수 없었지만, 은호와 은지는 꼭 이야기해야 할 문제가 있었었다.

“이은지.”

“어.”

“…….”

은호가 은지를 부른 순간.

은지는 은호를 돌아본 그 순간.

두 사람은 찰나에 말 한마디 없이 눈빛만으로 수많은 감정과 생각을 공유했다.

‘봤냐?’

‘봤지.’

* * *

아영은 팬 사인회가 마무리될 즘.

잠시 휴덕이었던 과거를 되돌아봤다.

“은…….”

그때였다.

아영은 정면을 응시한 채 다급하게 은정이 있던 곳으로 팔을 뻗었다.

‘지금, 꼭 찍어야 하는데!’

카메라를 달라는 수신호였다.

“치워, 치워! 치워!!!”

그때, 은정이 격한 목소리로 아영의 손을 치워 냈다.

아영은 은정을 돌아보자 굳이 말을 하지 않아도 괜찮을 것 같았다.

은정은 이미 바쁘게 카메라에 지금 장면을 촬영하던 중이었다.

‘미친다, 진짜.’

은정은 디럭스 세트까지는 괜찮았다.

하지만 이후 팬 사인회 당첨에 들떠, 새로 옷 두 벌을 더 구매했다.

게다가 오늘 머리는 숍까지 다녀온 작품.

솔직히 ‘숍까지는 오버인가.’라는 생각도 없진 않았지만…….

덕분에 더 당당히 랑이와 이야기를 할 수 있었으니까, 아무렴 어때.

오늘을 대가로 앞으로 몇 주간 컵라면과 삼각김밥으로 밥을 때워야 하지만, 후회 따위는 없다.

‘이걸로 오늘 뽑을 뽕은 다 뽑았다. 어흑!’

은호와 은지, 두 사람이 서로를 마주 본 그 순간.

무슨 이야기를 한 건지 모르겠지만, 뭐든 어떠랴.

무언의 대화라도 나눈 듯 두 사람은 곧 소리 내 웃음을 터뜨렸다.

은정은 카메라에 은호의 모습을 담으며 며칠 전 E-FAN에서 읽은 한 질문 글과 댓글들이 떠올랐다.

[랑이가 우리 앞에서 되게 예절예절하잖아. 사진 정리하는데 랑이 찐 웃음 폴더 따로 만들고 싶어서 구별법 아는 이퍼 알려 줘 ㅠㅠ!!!!!!]

└예절예절ㅋㅋㅋㅋㅋㅋ

└볼이 살짝 붉어!

└예절예절ㅋㅋㅋㅋ ㄹㅇ

└뭔 단어인진 모르겠는데 이해는 했다ㅋㅋㅋㅋㅋ

└앞머리나 이마에 손 올리는 것 같던데 아니면 가리든가

└ 이거 ㄹㅇ

└지지가 이상한 행동하면 꼭 이렇게 웃음!!!

└아 맞앜ㅋㅋㄱㅋ

└ 눈꼬리가 접히고 눈썹이 몰려!

└ 쩐다 어케 봤냐

└이것도 ㅇㅈ

* * *

대표실을 분리하는 파티션을 노크하는 두꺼운 뿔테를 쓴 직원.

하지만 박 대표는 무언가에 몰두하고 있는 듯, 노크 소리를 전혀 못 들은 채 미간까지 구기며 모니터를 노려보고 있었다.

“대표님.”

“응? 어, 송주 씨, 왜?”

송주는 한숨을 흘리며 말을 이었다.

“밖에 손님 오셨는데요.”

“손님? 무슨 손님? 뭐 배달시켰어?”

“아뇨. DI 뮤직에서 오셨다고…….”

‘DI 뮤직’이라는 단어를 듣는 순간, 박 대표의 표정이 희게 질렸다.

“설마. 다크서클 턱까지 내려오고 허여멀건 해서 엄청 성격 나빠 보이는 그런 사람이냐.”

“아, 그게…….”

그때였다.

송주는 당황하며 옆을 돌아봤다.

“처음 만나 뵀을 때, 나름대로 친절하게 인사드렸다고 생각했는데…….”

“…….”

“제가 그렇게 성격이 나빠 보였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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