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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매는 비즈니스로 일합니다-198화 (198/309)

남매는 비즈니스로 일합니다 (198)

팬 사인회가 있기 몇 시간 전.

새벽 4시.

“아, X발.”

정말 좋은 날인데.

아침부터 뭔 일이 생길 것처럼 시작부터 재수가 없다.

은지는 욱신거리는 배를 움켜쥐며 이불에 묻어 버린 짜증 나는 피 얼룩을 신경질적으로 쏘아봤다.

생리 날까지 적어도 사흘은 더 남아서 방심하고 있었다.

종종 앞당겨지는 날이 있긴 하지만…….

‘X발.’

어쨌든 이건 며칠 전에 들은 DI 뮤직과의 협업 제안 이야기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아서 그렇다.

‘그래.’

이건 다 에이슬 때문이다.

은지는 퀭함을 넘어 살벌한 기운을 풍기며 천천히 매트에서 몸을 일으켰다.

은지 옆에서 배를 까고 뻗어 자던 연탄마저 화들짝 놀라며 캣 타워에 몸을 숨길 정도로 은지의 분위기가 날카로웠다.

본의 아니게 다시 잠들기는 애매한 시간에 일어나 버린 이상, 은지는 잠을 포기하고 샤워를 했다.

물이 떨어지는 긴 머리를 꾹꾹 눌러 짠 뒤 대충 수건을 이용하여 틀어 올렸다.

옷까지 다 갈아입고서 욕실을 나왔다.

은지는 곧장 은호의 방문으로 향했다.

은호의 방은 은호와 은지가 이곳에 살기 전부터 서랍장이 많이 있던 방이었다.

그 덕분에 약 같은, 당장에는 필요 없지만 없으면 안 되는 그런 생필품 같은 것들은 전부 은호의 방에 있는 서랍에 들어 있었다.

그래서였다.

벌컥.

은지가 은호의 방문을 열고 들어서자 벽 한구석에 펼쳐진 매트 위에 새우잠을 자던 은호가 우물거리며 잠결에 몸을 뒤척였다.

“이은호.”

“…….”

“진통제 어딨어.”

“…….”

은지는 방 문틀에 몸을 기대며 은호를 불렀다.

하지만 당연하게도 꿈나라에 가 있는 사람한테 답이 돌아올 리가 만무했다.

“후……웁!”

이럴 줄 알았는지 은지는 이를 악물며 은호가 끌어안고 잠든 이불을 붙든 뒤 온 힘을 다해 잡아당겼다.

“뭐, 뭐야…….”

강제로 잠에서 깬 은호는 눈도 못 뜬 채 물었다.

“이은호, 진통제.”

“뭔, 갑자기 깨워놓고 진통제는 왜.”

“왜겠냐. 생리통 때문에 뒈질 거 같으니까 빨리 내놔.”

생리통이라는 이야기를 듣자, 은호는 슬쩍 눈을 뜨며 곧장 한 서랍을 열었다.

지금 진통제를 주지 않았다간 오히려 며칠 동안 더 힘들어진다는 걸 알기에 본능적으로 움직인 행동이었다.

“괜찮냐?”

“뭐가.”

“오늘 팬 사인회.”

“몰라, 안 괜찮아도 괜찮게 만들어야지.”

은지는 은호가 건넨 진통제를 받아 들자마자 즉시 입 안에 두 알을 털어 넣으며 말을 이었다.

“프로잖아.”

은지는 곧장 거실 냉장고를 열어 물을 찾았다.

“깨워서 미안. 아침부터 재수가 없으려나 봐.”

물과 함께 약을 넘기고 나서야 이성이 돌아온 듯, 은지는 짤막한 인사를 던졌다.

짧은 인사였지만 은지는 상당히 많이 미안해하고 있었다.

은호는 그런 은지의 성격을 알고 있기에 픽 웃으며 휴대폰을 찾았다.

“됐어. 어차피 일어났어야 했어.”

은호가 말을 마친 그 순간.

귀신같이 휴대폰 알람이 울렸다.

“봐.”

은호는 대충 알람을 꺼 버린 후 정말 아무렇지 않은 듯 태연하게 욕실로 들어갔다.

정신없는 팬 사인회 날의 시작이었다.

* * *

은정과 아영은 거리가 조금 있는 앞쪽의 특이한 색의 머리칼을 한 여자를 빤히 바라보고 있었다.

“아! 아니다. 에이, 아니네.”

“아니야?”

“응. 네 말대로 그냥 똑같이 염색한 사람이었어.”

은정과 아영이 보던 사람은 에이슬이 아니었지만, 실제로 에이슬은 그 자리에 있었다.

그것도 은정과 아영보다 세 명 정도 건너뛴 멀지 않은 거리에.

……휴.

두 사람의 속삭이던 이야기를 들은 에이슬은 자신이 아니라는 걸 확인하더니 그제야 가슴을 쓸어내렸다.

‘걸린 줄 알았어…….’

에이슬은 쓰고 있던 검은 단발 가발을 정리하며 마스크를 단단히 끌어 올렸다.

절대 걸리면 안 된다.

에이슬은 흠칫 분노에 불타고 있는 매니저를 떠올리다 고개를 저으며 겨우 떨쳐 냈다.

에이슬은 큰손 E% 중 하나였다.

디럭스 버전으로 출시된 비하인드 북 전권을 모은 것은 물론, 포토 카드도 100장을 다 모았다.

중복은 소장용과 감상용, 보관용으로 나눴고 이외에 남은 것들은 나눔을 통해 남몰래 홍보까지.

즉, DI 뮤직 엔터테인먼트 사옥 내 모든 직원에게 E-UNG의 앨범을 돌리고도 조금 남을 정도의 양을 구매했다.

다만, 그렇게 많이 구입했음에도 불구하고 전생에 죄라도 지었는지 ‘어이슬’ 이름으로 배송된 앨범 세트에는 아쉽지만, 은호의 편지는 물론 팬 사인회권은 당첨되지 못했다.

민간신앙 같은 부류이긴 하지만, 에이슬은 혹시나 자신이기 때문에 안 된 것 아닐까.

그런 마음에 사정사정해 가며 매니저의 이름으로 추가 주문을 넣어 봤다.

많이는 구매할 수가 없었다.

수량도 수량이었지만, 매니저가 하나 이상은 안 해줄 거라며 콕 집어 말한 탓이었다.

그랬는데.

놀랍게도 매니저의 이름으로 주문한 단 하나.

거기서 나왔다.

「To. 유리 님」

비록 이름은 제 이름이 아니었지만, 은호의 편지를 받은 에이슬은 그날 밤 곧장 편지와 검은 봉투까지 그대로 밀봉해서 보관해 뒀다.

그리고 이 사실은 매니저에게는 비밀로 했다.

매니저는 에이슬의 E% 활동을 그다지 좋은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진 않았다.

에이슬의 고집적인 면을 알기 때문도 있지만, 에이슬이 관심을 가지면 자연히 불편한 어 대표의 관심도 그쪽에 쏠린다.

그 결과 본의 아니게 피해를 주는 경우가 잦았다.

이런 부분에 그다지 관심이 없는 에이슬은 ‘왜 그렇게 반대하는 거냐’라며 자주 불만을 뱉었지만, 매니저는 단호했다.

‘무조건 반대할 테니까.’

그런 상황에 에이슬이 E-UNG의 팬 사인회에 간다는 걸 당연히 곱게 허락할 리가.

그래서 에이슬은 계획을 세웠다.

「“화장실 갈 거야!”」

「“그래. 입구 앞에서 기다릴게. 다녀와.”」

에이슬은 화장실 핑계를 대며 매니저와 함께 작업실을 나왔다.

이후 웬 첩보 영화 못지않게 화장실에서 가발을 쓰고 청소 직원의 유니폼으로 변장을 하는 등.

에이슬을 입구에서 대기 중인 매니저를 지나치며 DI 뮤직 엔터테인먼트 사옥을 벗어났다.

이후에는 챙겨 온 카드로 백화점에서 간단히 옷 한 벌을 사 입고, 마스크와 모자까지 구매한 후 이 자리에 왔다.

에이슬에게는 웬만한 액션 영화의 뺨을 후려칠 정도의 미션을 해치운 기분이었다.

“순서대로 입장하겠습니다!”

오늘 팬 사인회의 스태프인 듯 멀지 않은 곳에서 한 남자의 외침이 들렸다.

‘드디어! 드디어! 어떡해! 심장 터질 것 같아!’

에이슬은 설레는 마음을 진정시키며 줄어드는 줄을 따라 안으로 들어섰다.

* * *

“어? 은정 씨?”

“헉……!”

눈을 마주친 은호가 바로 자신의 이름을 부르자, 은정은 입을 틀어막으며 쉽게 말을 뱉지 못했다.

“편지 쓸 때 은정 씨가 여럿 있었거든요.”

“그랬어요?”

“네. 그래서 한 분은 이한대에서 뵌 은정 씨가 오지 않을까 생각했는데, 진짜 오셨네요.”

은호의 미소에 은정은 다시 한 번 입을 틀어막으며 말려 올라가는 입꼬리를 감췄다.

“편지 읽어 봤어요?”

“네!”

“어땠어요?”

“저 너무 좋아서 진짜 몇 주 동안 잠을 못 잤어요!”

“어, 그러면 안 되는데.”

잠을 못 잤다는 말에 은호의 얼굴에 걱정하는 기색이 스쳤다.

은정은 그런 표정 하나하나를 눈으로밖에 못 담는 게 아쉬워 미칠 지경이었다.

다행이라면 뒤에서 거리를 두고 떨어져 있는 아영이 카메라로 촬영을 하고 있다는 점이었다.

은정은 아쉽지만, 그 정도로 만족했다.

“이거, 오빠가 주신 편지 답장이에요.”

“오! 감사합니다.”

은호가 편지를 받으며 활짝 웃자, 은정은 살짝 정신이 혼미한 것처럼 비틀거리는 행동을 취했다.

그 모습에 은호가 이마를 누르며 웃음을 터뜨렸다.

종종 은호가 웃을 때 보이는 버릇 중 하나를 영상이나 사진이 아닌 실제로 마주하자, 은정은 기쁘면서도 동시에 이성을 챙기며 아영에게 찍으라고 눈짓을 보냈다.

“오빠, 저기 보고 같이 사진 한 번만 찍어 주세요.”

“그래요. 어디 보면 돼요?”

아영은 열정적으로 촬영을 이어 가다, 은정이 지나가고 다음은 자신의 차례가 됐다.

“이름이 어떻게 되세요?”

은호가 아영을 올려다보며 묻자, 아영은 순식간에 붉어진 얼굴로 겨우 입을 열었다.

“김아영…….”

“오, 아영 씨. 이름 예쁘네요.”

“가, 감사합니다.”

아영은 은정이 서 있을 땐 나도 이것저것 많이 이야기하겠다며 다짐했지만, 막상 서자 머리가 하얗게 돼선 입이 잘 열리지 않았다.

은호는 웃으며 아영에게 갸웃거리며 ‘할 말 있어요?’라는 듯 얼굴로 물었다.

“어떡해. 여기 오기 전에 막 질문 생각 많이 했는데, 기억이 안 나요.”

“하하하. 제일 하고 싶던 이야기라도 떠올려 봐요.”

“잘생겼어요. 사랑해요?”

“…….”

은호는 살짝 당황한 듯 멈칫하더니 이내 활짝 웃으며 웃음을 터뜨리며 답했다.

“저도요.”

“저, 저도 뭐요!”

아영은 부끄러워도 ‘이 말만큼은 듣고 말겠다!’라는 마음으로 되물었다.

“어…… 저, 저도 사랑해요.”

사랑이라는 단어가 입에 직접 올리기엔 낯간지러운 단어였는지, 은호의 귀가 곧 떨어질 것처럼 붉어졌다.

그때, 아영은 은정이 종종 말하는 ‘코피 터질 것 같다’라는 기분이 어떤 기분인지 실감했다.

하지만 아영은 이제 다음 사람을 위해 비켜 줘야 할 시간이었다.

머뭇거리며 끌어 버린 시간이 아쉬웠지만 흘러 버린 시간은 다시 되돌릴 수가 없었다.

“저 진짜, 다음에 오프 행사 있으면 또 올게요.”

“그래요. 꼭 기억하고 있을게요, 아영 씨.”

은호가 웃으며 손을 흔들자, 아영은 아쉬워하면서도 다음 사람을 위해 자리를 피해 줬다.

그렇게 몇 사람을 지나쳤을 때였다.

내내 눈가가 아프지 않을까 싶을 정도로 웃던 은호의 표정이 순식간에 굳어졌다.

「“아침부터 재수가 없으려나 봐.”」

아침에 은지가 했던 말이 은호의 머릿속에 스쳐 갔다.

“아, 안녕하세요.”

앞에 앉은 팬이 입을 열자, 은호는 그제야 이성을 되찾으며 답했다.

“네.”

되찾으려고 노력은 해 봤는데, 아무래도 다 찾지는 못한 모양이다.

‘니가 왜 거기서 나와?’

은호는 당장이라도 입을 열어 묻고 싶은 심정이었다.

아무리 가발을 쓰고 마스크로 입을 가렸다고 한들.

흔히 말하는 저 고양이 눈매에 시달린 기간이 몇 개월인데, 잊으려야 잊을 수가 없었다.

“에이슬 씨가, 여긴 어쩐 일로 오셨어요.”

다른 사람이었다면 조금이라도 예의상의 웃음기를 머금고 말을 했을 텐데.

그 에이슬이었기에 은호는 싸늘한 목소리가 그대로 나와 버렸다.

“어, 어떻게? 헉, 저 티 나요?”

에이슬은 진심으로 당황하며 허둥지둥 모자와 마스크를 점검했다.

“…….”

은호는 대답을 아낀 채 손을 움직였다.

빨리 사인하고 보내 버릴 심산이었다.

“저, 패, 패…….”

패?

뭘 패?

“팬이, 이, 에요. 듀, 듀, 듀오 때부터.”

에이슬은 몸은 물론, 말까지 덜덜덜덜 떨리는 지경이었다.

은호는 신기한 광경을 마주한 듯 에이슬에게 한 꺼풀 경계를 벗어 내며 물었다.

“그래요?”

“네!”

은호와 정확히 눈을 마주친 에이슬은 곧 울 것처럼 눈이 글썽거리고 있었다.

그런 자신이 민망했는지 에이슬은 사인을 챙겨, 은호 앞을 벗어나 은지의 사인 줄로 도망치듯 멀어졌다.

은호는 신기한 눈으로 그런 에이슬을 좇았다.

‘쟤가 저런 성격이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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