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매는 비즈니스로 일합니다 (196)
은지는 기타 줄을 튕기며 모닥불과 잘 어울리는 멜로디를 연주했다.
은지가 연주하는 곡은 다음 앨범에 들어갈 곡 중 하나였다.
“뭐야.”
“왜.”
은지는 눈을 감은 채 연주를 이어 가며 은호에게 대꾸했다.
“왜 멜로디 바꿨어.”
“가사가 이쪽이 더 잘 어울리더라고.”
“그래?”
이쪽이 더 좋아서 바꿨다는 은지의 결정에 은호는 불만 한 번 없이 빠르게 수긍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음악에서만큼은 서로의 결정을 의심 없이 존중하는 것.
그게 E-UNG의 바탕이었다.
카메라에는 여전히 은호와 은지 둘만 있는 것처럼 보였다.
한편, 사실 은지가 연주를 시작할 때부터였을까.
옆 천막에서 은호가 챙겨 준 고기를 먹던 스태프들이 하나둘씩 조명 주변으로 모여들었다.
관객도 있겠다.
작은 맥주 반병이긴 하지만, 은호에게는 적당한 취중이라 기분이 딱 좋을 때였다.
“마침 판자 무대 위다. 각인가?”
“하핰.”
어릴 적, 공터에서 열렸던 두 사람만의 콘서트.
은지는 은호가 한 말이 무슨 의미인지 눈치챈 듯 웃음을 터뜨렸다.
은호는 비틀거리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당장은 스태프분들이긴 하지만, 이젠 정말 관객이 있다는 것…….
‘아, 우리 E%들 보고 싶다.’
팬분들이 ‘보고 싶다’라는 말을 쪽지로 보내 줄 때 또는 게시판에 종종 오프에서 보고 싶다는 글을 올릴 때.
항상 그 아래 댓글을 달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았다.
나도 보고 싶다고.
내가 당신들을 얼마나 좋아하는지 모를 거라고.
은호는 E-FAN에 올라오던 게시글과 팬들의 쪽지를 떠올리자, 차마 취기 탓에 감추지 못한 웃음이 실실 새어 나왔다.
취중이라 그런가.
평소라면 티 나지 않게 감췄을 감정이었지만 쉽지가 않다.
한편, 스태프 중 몇몇은 그렇게 나른하게 웃는 은호를 홀린 듯 빤히 바라보며 감탄했다.
‘심장 아파.’
‘와. 얼굴은 정말…….’
남매 싸움에서 은호와 은지는 ‘그런 얼굴 그렇게 쓸 거면 그 얼굴 나 줘’라는 말이 절로 나올 표정을 종종 짓곤 한다.
그래서 잠시 잊었는데…….
‘연예인은 연예인이구나.’
스태프는 짧은 감탄을 삼키며 은호를 마저 구경했다.
“이 자리에 와 주신 여러분들을 위하여!”
“하하하핰, 아, 이은호 또 취했어.”
은호가 맥주병을 마이크처럼 쥐자, 은지는 웃으며 타박했다.
말은 그렇게 하면서도 은지 역시 이 분위기는 즐거운 듯, 기타를 통통 두드리더니 자연스럽게 연주하던 멜로디를 바꿨다.
“눈을 뜬―.” //기울임
은호가 노래를 하려다 급하게 멈췄다.
“야, 이거 아직 공개하면 안 되나?”
“안 될걸. 대표님 잔소리 혼자 감당할 수 있으면 하고.”
“절대 불가능. 그럼, 음…….”
주어가 빠져있음에도 두 사람은 무리 없이 소통되는 건지, 스태프들은 의미를 알아듣기 힘든 대화가 잠시 오갔다.
그러다 잠시 후.
은호는 맥주병을 마이크처럼 쥔 채, 카메라맨을 돌아보며 물었다.
“감독님, 듣고 싶으신 곡,”
“어. 어, 나? 어, 음.”
카메라 감독님은 잠시 고민한 후 대답했다.
“‘Same day Same time’?”
“오?”
예상치 못했던 곡이었는지, 은호의 눈이 잠시 술이 깬 것처럼 커졌다.
그러다 이내 ‘하하’ 웃었다.
은지 역시 웃기는 마찬가지였다.
카메라맨은 갸웃거리며 자신이 실수했나 싶어 다른 스태프를 돌아봤다.
설명을 위해 은호가 입을 열었다.
“그게, 은지랑 제가 곡을 쓸 때 대부분 저희 어릴 적 경험에서 나왔거든요.”
“그렇지.”
이어지는 이야기는 술기운이기에 나온 진심이었다.
“이거는, 음. 은지가 썼던 듀오의 답가로 제가 가사를 처음 썼던 곡인데.”
“녹음 할 때 많이 울었지.”
“난 안 울었어.”
“내가 말이야. 아오, 꼭 한마디를 안 넘어가냐.”
“지는.”
하하하하하.
둘의 숨 쉬듯 나오는 싸움에 방심하던 스태프들이 터졌다.
은호는 스태프들을 따라 웃으며 이야기를 마저 이었다.
“아무튼, 제가 진짜 많이 후회했던 순간을 담은 곡이거든요. 이게.”
“응.”
이야기는 감독님한테 했건만, 은지가 곁에서 대답했다.
“곡이 지금 분위기랑 찰떡이기도 하고. 하하.”
“맞아. 감독님 초이스 굿.”
은지가 한마디를 더하며 엄지를 세우자, 카메라 감독은 카메라를 위아래로 끄덕이는 것으로 대답했다.
“하하. 자─.”
은호가 술기운에 비틀거리며 앉아 있던 은지의 머리에 손을 얹었다.
“시작!”
마치 라디오의 시작 버튼을 누르듯.
은지는 은호의 한마디에 고개를 까딱이며 박자를 타더니 금세 ‘Same day, Same time’의 간주를 연주하기 시작했다.
어둔 밤이 내려와
(어둔 밤이 내려와)
원곡은 재즈바에서 흐를 법한 분위기로, 피아노와 베이스 드럼, 스냅 사운드가 주를 이뤘다.
하지만 지금은 피아노도, 베이스 드럼과 스냅도 모든 악기가 빠지고 어쿠스틱 기타만 있는 ‘Same day Same time’였다.
모닥불을 피워 둔 밤하늘 아래.
지금.
이 순간.
이보다 더 잘 어울리는 곡이 있을까.
그 자리에 있는 은호와 은지는 물론, 스태프 전체가 그런 생각을 하며 두 사람의 작은 콘서트를 감상했다.
Same day Same time
(Same day Same time)
Same day other crime
(Same day other crime)
은호는 평소 말할 때 저음의 목소리를 가졌지만, 노래할 땐 기술을 위해 고음을 주로 사용하고는 했었다.
저음의 댐핑이 은지만큼 강하지 않기도 했고, 어린 시절부터 노래할 때면 고음으로 부르는 게 버릇이 되다 보니 그렇게 불렀지만, 어느새 이제는 그게 은호의 상징이었다.
하지만 오늘은 누군가에게 보여 주기보다는 그냥 그 분위기를 즐기며 나오는 노래이기 때문일까.
은호는 고음도, 꾸미는 기술도, 무엇 하나 없는 생목소리로 노래를 이어 갔다.
나서야 했던 새벽길에
걸어야 했던 새벽길을
은지는 연주하며 복잡한 기분이 들었다.
이런 건 처음이었다.
은호가 모든 걸 놓고 진짜 제 목소리로 계속 노래하는 것.
그런 은호의 변화가 마음에 드는지 은지는 이후 은호의 목소리가 더 돋보이도록 허밍에 가깝게 노래하며 제 목소리를 오히려 기타에 섞여 들게 맞췄다.
그 덕분일까.
노래는 듣기 좋은 균형이 맞춰지면서 원곡과는 또 다른 풍부함을 자아냈다.
악몽조차 되지 못한 기억이
더는 널 시리게 하지 않게
두 번 놓지 않을게
다신 잃지 않을게
하이라이트로 원곡에서는 시원한 고음이 나올 차례였다.
하지만 은호는 은지가 바꿔 연주하는 멜로디에 맞춰 편안한 저음으로 노래를 이어 갔다.
고음일 땐 터지는 매력이 있었던 만큼, 저음으로 이어 가는 노래에는 은호의 냉정하면서도 특유의 나긋하고 나른한 성격이 그대로 담겼다.
듣기 좋으면서도 어쩐지 가슴을 파고드는 이유 모를 울적함에 스태프들 중에서는 훌쩍이며 눈물을 훔치는 몇몇이 있기도 했다.
“감사합니다.”
노래가 끝난 뒤.
은호는 간이 무대에서 엘레강스하게 인사 후, 폴짝 뛰어 릴렉스 의자로 돌아왔다.
취하긴 했는지 비틀거리던 은호는 겨우겨우 아슬하게 넘어지지 않고 의자에 앉았다.
은지는 은호가 제대로 앉은 후에서야 안심한 듯 한숨을 내쉬었다.
릴렉스 의자에 편안하게 앉아, 모닥불을 쬐며 산 너머에서 들려오는 풀벌레 소리.
“좋다.”
모든 것이 은호가 원했던 그 풍경이었다.
쬐는 조명이 있긴 하지만, 괜찮았다.
물론 반갑지 않은 손님도 섞여 있긴 했다.
찰싹!
“아, 모기.”
“하하하.”
“왜 나만 물어.”
“오빠가 더러운갑지.”
“뭐래. 방 꼬락서니만 보면 니가 더―.”
“…….”
은호는 급하게 입을 닫았다.
‘카메라 앞에서 방 이야기하면 진짜 물어뜯어 버릴 줄 알아.’
‘…….’
은지의 살기를 띤 눈빛 때문이었다.
농담이 아닌 걸 알기에 은호는 조용히 입을 닫았다.
한편, 슬슬 술을 깨기 위함인지 은호는 챙겨 온 간식 중 사탕 하나를 입에 던져 넣었다.
“뭐야. 나도 줘.”
“자.”
“아, 안 먹을래.”
은지는 사탕을 받자마자 다시 은호에게 건넸다.
“넌 뭐 달래서 줘도 난리야.”
“아니, 이거 자두 사탕이잖아. 이거 싫어. 맛없어. 아재 같아.”
“사탕한테 왜 그래. 너무하네. 맛만 좋은데. 그치? 사탕아?”
“맛이 갔네. 갔어.”
사탕한테 말을 건 후 입에 넣는 은호를 보며 은지는 절레절레 고개를 저었다.
다정하게 말을 건넨 것과는 달리, 은호는 자두 맛 사탕을 입에 넣자마자 아작이며 깨부쉈다.
“아.”
그러다 무언가 떠오른 듯, 은호가 은지를 돌아봤다.
“야, 은지야.”
“왜.”
“그때 기억나냐.”
“그때라고 하면 내가 어떻게 알아.”
“너 요만한 꼬맹이 때, 이상한 동그란 사탕인지 껌인지 그거 하나 사달라고 온갖 땡깡 다 부렸던 날.”
“그때 꼬맹이였던 건 너, 아니. 오빠도 마찬가지거든. 그리고 그땐 어렸잖아!”
은지가 은호의 어깨에 가볍게 주먹을 휘두르며 투덜거렸다.
“하하, 아, 아파. 맞아. 어렸지. 너도, 나도.”
“그게 그렇게 불만이었냐?”
“불만보다는…….”
타닥.
장작이 부러지며 모닥불 통에서 불씨가 폭죽처럼 피어올랐다.
“그냥, 그때가 아직도 기억에 남아서.”
“왜?”
“‘그 일’을 제외하면 인생 살면서 제일 서러웠을 때가 그때라서.”
‘그 일’은 은지가 세상은 떠난 일이었지만, 그걸 제외하면 가장 서러웠던 때라는 건 진심이었다.
“뭐가 서러워.”
“돈이 없던 게.”
“아.”
장난처럼 투덜거리던 은지의 눈가가 잠시 일렁였다.
“너보다 고작 두 살 많아도 나는 네 오빤데, 하나뿐인 보호자인데…….”
“……꼬맹이가 무슨 보호자야.”
“그러게 말이다. 그땐 네 말대로 꼬맹이라 어리니까 할 수 있는 게 없는 거야.”
“그때가 내가 10살이었고, 오빠가 12살? 이었던가?”
“그랬지.”
“그럼 당연한 거지.”
“그래, 당연한 거지. 지금은.”
카메라 앞에서도.
서로에게도.
취중 진담이라는 말이 있듯.
추억을 자극하는 자연의 소리에 은호는 처음으로 솔직한 이야기를 꺼내고 있었다.
“그땐 내가 어른인 것 같았지.”
“어른은 무슨. 내가 오빠 하도 어른인 척해서 학교 다닐 때 그거 때문에 짜증 냈잖아.”
“그랬나?”
“응. 내 키가 오빠랑 비슷했을 때.”
“아, 하하. 어. 기억난다.”
“키도 비슷한데 고작 두 살 많으면서 자꾸 혼자 어른인 척 구니까.”
“구니까, 뭐.”
“재수 없었어.”
“재수라니, 은혜를 모르네.”
“은혜는 무슨.”
은지는 투덜거리며 릴렉스 의자에 등을 기댔다.
그때를 떠올리듯.
은지는 밤하늘을 바라보며 이야기를 마저 이어 갔다.
“나도 이제는 나 하나, 내 몸 하나쯤은 책임질 수 있는데 자꾸 나보다 약하고 키도 비슷한 놈이―.”
“야, 안 비슷했어. 그래도 그때까진 내가 3㎝ 더 컸거든?”
“뭐래. 그걸 ‘비슷하다’라고 하거든. 어쨌든, 고작 나이 많다고 애 취급하는 거 그거 엄청 짜증 났었다고.”
“……그랬냐?”
“그랬다. 오빠가 나 때문에 그렇게 다치는 일 없게 하려고 나 아저씨들한테 막 싸움 배우고 그랬었잖아.”
“아, 하하. 뭐야, 그때 아저씨들 붙들고 싸우자 거리던 게 나 때문이었다고?”
“그래, 멍청아.”
“하하. 그래도 이젠 혼자 어른인 척 안 그러잖아. 다 이야기하잖아.”
“알아. 그래서…….”
“뭐, 고맙냐?”
“고맙긴 무슨.”
퍽.
은호의 시비 같은 질문에 은지의 주먹이 돌아왔다.
“아아. 진짜 아파.”
“약골. 운동하셔.”
“하거든. 넌 그만큼 더 먹으니까―.”
퍽퍽.
조금 전 장난 같은 주먹이 아닌, 진짜 힘 실린 주먹이 날아오자 은호는 살기 위해 입을 닫았다.
‘등본상 혈육’의 3화와 4화는 그렇게 투덕거리는 두 사람의 이야기를 끝으로 마무리됐다.
4회차가 끝난 뒤.
E-FAN에는 3화 못지않게 뜨거운 반응들이 쏟아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