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남매는 비즈니스로 일합니다-195화 (195/309)

남매는 비즈니스로 일합니다 (195)

“뭐야.”

“잘 주무셨냐?”

“뭐야. 나, 뭐지.”

“넌 너지, 뭐긴 뭐야.”

“나 잤어?”

“어. 코까지 골던데.”

“…….”

은호는 멍하니 챙긴 줄도 몰랐던 검은 작사 노트를 바라봤다.

“도착했어. 내려.”

“벌써?”

“벌써는 무슨, 한 시간 달렸거든?”

“한 시간……?”

“응. 혼자 오버란 오버는 다 떨더니 꿀잠 주무셨지.”

은호가 잠긴 목소리로 중얼거리자, 은지가 킬킬거리며 답했다.

차에서 내리자 줄지어 이어진 똑같은 커다란 천막 건물들이 보였다.

“잘 잤으면 힘 좀 써.”

“힘?”

은호가 갸웃거리던 그때.

은지가 벌컥 운전석을 박차고 내리더니, 곧장 트렁크 쪽으로 향했다.

은호가 뒤따라 내리자, 은지는 그제야 트렁크를 열었다.

덜컹.

“짜자자잔.”

트렁크에는 낯선 아이스박스가 세 통이나 들어 있었다.

“뭐야?”

“대표님이 준비해 준 선물.”

“난 이야기 못 들었는데?”

“오빠는 또 뭐 사 주겠다고 하면 다 거절하니까 나한테 말씀하신 거겠지. 읏챠.”

은지는 묵직한 아이스박스 하나를 챙겨 들었다.

“그거 무거운 거 아니냐?”

“무거우면 뭐, 대신 들어주게?”

“아니. 제일 가벼운 거 들고 가게.”

퍽.

은지는 방송인 것도 잊고서 욱하는 마음에 아이스박스를 들던 자세 그대로 은호의 허벅지를 걷어찼다.

아프긴 하지만 재미있기도 했는지, 은호가 킥킥거리며 뒤따라 아이스박스 하나를 집어 들었다.

“3번, 3, 3…….”

“멍청아, 저기가 1번, 여기가 2번이면 니가 선 거기가 3번이겠지.”

“아, 알거든! 확인한 것뿐이거든.”

“뉘예, 뉘예.”

쾅!

은지는 신경질적으로 아이스박스를 내려 두고 은호에게 달려들었다.

“아악.”

“억.”

은호는 본능적으로 아이스박스를 들어 맹수의 돌진을 막아 냈다.

은지는 상자에 부딪쳐서 아팠고, 은호는 은호대로 충격이 적진 않았는지 통증을 호소했다.

한편, 두 사람의 투덕거림을 숨어서 지켜보던 카메라맨은 이를 악물며 웃음을 참으려 노력 중이었다.

“아이스박스 하나 더 남았지?”

“어.”

“가지고 올게.”

은지가 나가려던 그때였다.

“야, 잠깐만.”

“응?”

“넌 뭐 캠핑하는데도 구두 신고 왔냐?”

이제 봤다.

‘운전할 때만 해도 운동화 신고 있었던 것 같은데…….’

어느새 은지는 굽이 상당한 검은 슬링 백─발뒤꿈치 부분을 고정하는 끈이 있는 디자인─ 구두를 신고 있었다.

“아, 이거.”

은지는 흙을 튀기며 다리를 들어 구두를 확인하더니 활짝 웃으며 말했다.

“방송이잖아.”

은지의 대답에 은호는 이마를 ‘탁’ 치며 황당한 한숨을 터뜨렸다.

하여간, 저것도 못 말리는 고집이다.

이은지는 방송에서만큼은 구두를 꼭 신고 말겠다며 슬기 씨한테 고집을 부렸다고 들었다.

그 고집 아니랄까.

리얼 예능이라고 해도 다를 건 없는 모양.

“야, 됐어. 내가 가지러 갈게.”

“그럼 같이 가. 나 차에 기타 놓고 왔어.”

“기타도 가지고 왔냐?”

“야망이잖아.”

“감성이겠지.”

“야망이나 감성이나.”

“전혀 다른 거거든, 멍청아.”

“아, 몰라.”

“빡대가리.”

“닥쳐, 우럭 대가리 주제에.”

“응, 호박 대가리야.”

“한 마디를 안 져줘요. 동생한테 이겨 먹으면 좋냐?”

“어. 완전 좋은데. 세상 최곤데.”

은지가 ‘메롱’ 후 콧김을 뿜으며 걸음에 속도를 붙이자, 은호도 웃으며 걸음을 빨리했다.

은지가 기타를 챙기는 그동안 은호는 마지막 아이스박스를 챙겼다.

그리고 다시 3번 천막으로 돌아오는 길.

“야, 이은지.”

“뭐.”

“너 농사해도 되겠다.”

“갑자기 뭔 말이야.”

은호는 돌아가는 흙길에 앞서 보이는 의미심장한 구멍들을 가리키며 말했다.

“당장 뭐 심으면 자랄 거 같지 않냐?”

은지의 구두 자국을 가리키며 한 말이었다.

은지가 지나간 자리에 희미한 발자국에 당장이라도 씨앗을 심을 수 있는 깊이 있는 구멍이 있었다.

“하, 씨, 앀, 하핰핰핰핰.”

이번엔 은지의 취향을 저격한 개그였는지 은지가 기타를 끌어안은 채 끅끅이며 웃었다.

“솔직히 이건 너도 인정하지?”

“이건 인정. 하핰핰.”

한편 구멍은 돌아가는 길에 은지의 발걸음마다 늘어나, 결국 두 배나 많아졌다.

캠핑장은 이른 시간에 심지어 평일이라 사람이 없었다.

방송을 위해 전체를 빌린 걸 수도 있겠지만, 따로 전달받은 바가 없어서 그건 아닌 것 같았다.

“와!!!”

“우와아아악!!!”

그때였다.

은호와 은지의 행복에 젖은 환호성이 산을 울렸다.

아이스박스 내부를 확인하면서 터져 나온 비명이었다.

“아빠, 최고!!!”

은지가 대표님을 칭하는 호칭에 은호는 놀라다가 이내 활짝 웃었다.

“그러게.”

좋아하는 이유는 하나였다.

고기.

아이스박스 안이 전부 수비드가 되어 있어 굽기만 하면 되는, 상태 좋은 스테이크로만 그득하게 채워져 있었다.

한 상자는 돼지로, 한 상자는 소로, 한 상자는 목마를 때를 대비하여 돌 얼음과 함께 한 손에 들어오는 작은 사이즈의 병맥주와 사이다가 한가득 들어 있었다.

고기 상자는 파란 아이스박스지만, 이것만 녹색인 걸로 보아 아무래도 협찬의 냄새가 솔솔 났지만…….

뭐, 어때.

캠핑장 바로 앞쪽에 바비큐 기계로 은호와 은지는 고기를 먹을 만큼 꺼낸 후, 나머지는 천막 안 냉장고에 집어넣었다.

맥주도 마찬가지로 냉장고 안으로 향했다.

‘지금 먹었다간 시작부터 필름 끊겨 버릴 테니까.’

은호와 은지는 자신들의 주량을 스스로도 잘 알고 있었다.

무슨 캠핑을 오자마자 먹을 생각부터 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캠핑은 좋은 자연을 보면서 밥 먹으러 가는 거 아닌가?

적어도 은호와 은지는 그랬다.

직원이 숯을 올려주고, 바비큐 준비가 끝난 뒤, 은호와 은지는 결연하게 마주 보고 섰다.

“가위, 바위, 보!”

고기를 구울 사람을 정하는 가위바위보였다.

첫 번째는 둘 다 같은 것을 냈기에 무승부.

두 번째.

은지가 음흉한 미소를 지었다.

은호 또한 꿍꿍이가 있어 보이는 입꼬리였다.

“가위, 바위, 보!”

은지는 보자기를 냈다.

은호가 항상 두 번째에 주먹을 낸다는 걸 기억하고 낸 거였건만!

“하하! 더는 안 당하지!”

은호는 가위를 냈다.

“삼세판이었어!”

“헛소리하지 마라. 구워.”

“삼세파아아아안!!!”

“시끄러워! 구워!”

“아아앙!”

“아, 욕 나올 거 같네.”

“아아아아아앙!!!”

“그만해!!! 알았어. 삼세판 해! 쏠려! 그만!”

“히히.”

“이번엔 진짜 안 봐준다.”

“알겠어.”

은지가 공포에 가까운 앙탈을 떨자, 은호는 하얗게 질린 얼굴로 은지의 요구를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가바보!”

은지, 주먹.

은호, 주먹.

“가─위, 바위, 보!”

은지, 가위.

은호, 보자기.

“따흐, 씨…….”

은호는 활짝 펼친 손을 붙들며 흘러내렸다.

“1:1이다.”

이후 주먹 대 주먹, 가위 대 가위를 반복하다 2:2까지 왔다.

“가위, 바위…….”

달궈지는 바비큐 기계 앞, 무거운 공기가 맴돌았다.

“보!!!”

“아즈아아아아!!!”

은호가 주먹을 번쩍 들며 소리쳤다.

“그것 봐, 어차피 구울 거 그냥 구우면 될걸, 멍청아. 하하!”

은지는 입술이 댓 발 나와선 얼굴로 욕을 해 댔다.

은호는 방송인 것도 잊고서 활짝 웃으며 그런 은지를 약 올리기 바빴다.

하지만 정작 고기를 굽는 건 둘이서 나눠 구울 수밖에 없었다.

배려라기보단, 은호가 먹기 위해 그럴 수밖에 없었다.

은지는 고기를 불판에 올리고, 치익 한 번, 뒤집어서 치익 한 번 더 구운 후 곧장 그릇이 아닌 제 입으로 집어넣었다.

이런 상황인지라, 가지고 온 소고기가 전부 은지 뱃속에 들어가기 전에 은호는 불판 앞자리를 빼앗을 수밖에 없었다.

* * *

[등혈 3화 (스포 있음) 후기

지지 운전 포스 지리고

고기 먹방 부럽고]

└운전 랑이 2종 오토라고 놀리는 거 겁나 웃음ㅋㅋㅋㄱㄱㅋ

└랑이 팩트라니까 반박 못 하는 거 뻘하게 빵터졌다ㅋㅋㅋㅋ

[등혈 3화 보는데 ㅋㅋㅋㅋ 고기 박스 두 개 한가득 푸짐한 거 빛창석 당신…!]

└진자 부럽더라 나도 빛창석 같은 아부지 줘…

└빛창석 씨가 이응이들 아버지야?

└그냥 아버지 같은 분이라서 그런 거 아니야?

└친 아빠라기엔 안 닮았는ㄷ... 랑이도 그럼 탈모…….

└아악!!!!

[가위바위보 져서 불판 앞에 갔는데 오히려 포식하는 지지 귀여워ㅋㅋㅋㅋㅋ]

└두 조각 굽자마자 입에 들어갈 때 물먹다가 뿜었다ㅋㅋㅋㅋ

[랑이 지지 운전 못 믿다가 뻗어 버린 거 나만 웃었어?ㅋㅋㅋㅋㅋ]

└급브레이크 밟았다가 사투리 터진 그 장면?ㅋㅋㅋㅋㅋ

└응 그거 밥 먹으면서 보다가 오열했어 낰ㅋㅋㄱㅋㅋㅋ

* * *

소고기가 동나고, 이어서 은호와 은지는 돼지고기를 구웠다.

하지만 앞서 배가 찬 것도 있는 데다, 돼지는 익는 시간이 오래 걸려서 그런지 포만감이 차오르는 듯 은호와 은지는 소고기보다는 조금 더 이성을 되찾은 ‘인간’다운 식사를 이어 갔다.

그때 무렵, 이젠 사이다로는 감당되지 않는 고기 특유의 니글거림에 특단의 조치가 필요했는지, 은호와 은지는 사이다를 멈추고 금단의 음료를 꺼냈다.

맥주.

어느새 날이 어두워지고 노을이 지던 하늘에는 별이 보일 정도로 맑은 밤하늘이 뒤덮었다.

‘어떻게 몇 시간 동안 먹기만 하냐.’

……라고 은호는 스스로 생각했다.

답은 본인이 알고 있었다.

‘넣다 보니 되더라.’

그사이 바비큐 기계는 할 일을 마쳤고, 은호는 남은 고기를 다 구워 스태프들에게 나눠 준 뒤 불을 껐다.

소량의 고기는 안줏거리를 위해 챙겼다.

바비큐 기계 속 불씨는 작은 모닥불로 옮겨졌다.

“고기만 먹어서 그런가.”

“라면 땡기냐.”

“어. 더 먹으면 PT 선생님 울겠지?”

“당연하지.”

“그럼 먹어야지.”

“하하.”

다행이라면 하나를 통째로 먹는 건 아니고, 스프를 따뜻한 물에 타서 먹는 정도로 얼큰한 맛을 원하는 위를 달랬다.

부른 배를 두드리며 은호와 은지는 천만 내부에 놓인 릴렉스 체어를 펼쳤다.

의자에 앉아 모닥불을 보며 꼭 커피처럼 라면 국물을 홀짝이고 있으니, 그냥 그 상황이 웃겨서 웃음이 멈추질 않았다.

맥주 한 병의 절반 이상이 비었을 무렵.

은지는 술기운에 챙겨 온 기타를 꺼내 들었다.

타닥거리는 모닥불을 안주 삼아, 은호 역시 병째로 맥주를 들이켜 댔다.

다만, 절반 이상 빈 은지의 맥주병과 다르게 은호의 맥주병은 이제 고작 딱 절반에 다다라 있었다.

얼굴은 누가 봐도 은호 쪽이 더 눈에 띄게 알딸딸해졌지만 말이다.

누가 보면 몇 병은 마신 것 같지만, 이제 고작.

심지어 작은 버전 맥주병의 절반이었다.

은지도 붉기는 마찬가지였지만, 은호보다는 술이 강하긴 한 듯, 두 모금이나 더 마셨음에도 아직은 버틸 만한 것처럼 보였다.

“후…….”

은호는 턱을 괴며 조금 버거운 듯 맥주 향이 깊게 밴 한숨을 흘렸다.

그때였다.

디링.

은지가 기타를 조율하는 소리에 은호는 눈이 느리게 그쪽을 돌아봤다.

“뭘 봐.”

풀린 눈으로 가만히 쳐다보는 은호가 거슬렸는지, 은지가 투덜거리듯 물었다.

“그냥.”

“뭐.”

“너 기타 잘 치는 거 보면 그건 좀 부러워서.”

디리링.

몇 차례 손길 만에 조율이 끝난 듯.

은지는 기타를 만지작거리며 본격적으로 연주할 자세를 잡으며 물었다.

“가르쳐 줘?”

“아니. 적어도 너한테는 안 배울래.”

단호한 은호의 대답에 은지는 목을 빼며 물었다.

“왜? 나 꽤 잘 가르쳐.”

“그냥. ……재수 없어.”

취중 진담에 은지는 피식 웃으며 중지를 세웠다.

술기운 탓일까.

두 사람은 어느새 카메라가 있다는 것도 잊고서 정말 캠핑 분위기를 즐기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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