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남매는 비즈니스로 일합니다-194화 (194/309)

남매는 비즈니스로 일합니다 (194)

“쟤는 하루에 두세 곡을 매일 찍으니…….”

나는 가사를 더 짜내기도 힘든 지경이건만.

괴물 같은 이은지는 뭐 떠오르는 노래가 그렇게나 많은지 지치지도 않는다.

심지어 그 퀄리티도 도저히 모른 척 무시할 만한 퀄리티가 아니었다.

덕분에 난 쏟아지는 가이드 속에서 과부하가 온 지는 이미 한참 지났다.

나도 사람은 사람인지, 최근에는 번 아웃 단계까지 아슬하게 온 기분이었다.

이걸 좋아해야 할지, 말아야 할지.

거기다 나는 아무래도 스스로 일을 만드는 재주가 있는지, 톡신 선배님들 세계관을 엮은 포인트, 뮤직비디오의 디테일 부분들에 대한 문제 및 연출 제안, 화랑 씨 곡 가사 등.

얼마 전까지는 200장이 넘는 편지들에 팬분들의 이름을 몽땅 써 넣기까지.

앨범 활동 외에도 많은 것을 하며 불태워 버렸다.

그래도 E%들의 이름을 쓰는 일은 개인적으로 재미있었다.

혼자서 200명의 이름을 다 쓴 건 아니었다.

은지가 글씨 공부를 할 때 내가 가르쳤기 때문인지 글씨체가 나랑 굉장히 비슷하다.

물론 이은지 글씨가 내 글씨보다 훨씬 못났지만, 아무튼.

덕분에 약 150명 정도는 내가, 남은 50명 정도를 이은지가 썼다.

짐을 다 싼 후.

이은지는 먼저 내려가겠다며 나갔다.

‘저 짧은 시간 동안 도대체 트렁크에 뭘 저렇게 쑤셔 담은 건지…….’

이은지가 챙겨 나가는 트렁크는 곧 터질 것처럼 지퍼 부분이 팽팽했다.

예전에 펜션에 갈 때였던가.

그때 슬기 씨와 물리 법칙도 무시하고 꾹꾹 눌러 담던 그 트렁크를 떠올리자 궁금했던 마음마저 눈 녹듯 흔적조차 없이 사라졌다.

모르는 게 신상에 좋을 것 같았다.

‘…….’

그나저나 캠핑이라…….

나는 불 피우는 것을 좋아했다.

방화 말고.

첫 화로를 만들 적엔 실패 후 동생 앞에서 아주 펑펑 울어 버렸지만…….

실패는 성공의 발판이라고.

이후에는 ‘젖은 것은 불이 붙지 않는다’라는 것을 몸소 배웠기에 마른 것을 위주로 장작을 모았다.

그렇게 불을 피우고 불씨를 관리하는 데에 나름대로 도가 트게 됐다.

불씨가 튀지 않을 거리에 상자로 만든 작은 집에 둘이 찢어진 패딩을 이불 삼아 잠을 청할 때.

폐가 근처 곳곳의 풀밭에선 풀벌레 소리가 많이 났다.

따뜻한 와중에 풀벌레 소리와 타닥거리는 모닥불 소리.

이은지는 옆에서 패딩을 이불처럼 덮고 잠들어서 ‘쌔액’보다는 ‘쉬에에엑, 쉬에엑’거리는 특이한 코골이를 하고는 했다.

이 모든 소리가 합쳐지면, 나한테는 그 어떤 음악도 비교가 되지 않는 편안한 노래가 됐다.

나는 그때 그 세상과 단절된 것처럼 평화로운 그 풍경.

그 소리.

그 시간을 나는 개인적으로 가장 좋아했다.

캠핑장을 가는 것도 광고를 위해서라고는 하지만, 그때가 떠오른 탓일까.

“재미있을 것 같다.”

설렌다.

게다가 우리의 일상을 촬영하다 보니, 슬기 씨와 현우 형님이 없는 둘만의 여행.

‘대표님을 만난 이후로는 처음이지 않나?’

오랜만이라 그런가.

더더욱 들뜬 마음을 안고 계단을 내려가며 1층 문 앞에 선 차를 바라봤다.

1층에는 낯선 SUV 차량이 한 대 서 있었다.

감독님이 처음 촬영하기 전 운전면허를 취득하라던 제안은 바로 이 차 협찬 때문이었다.

혹여나 실수했다가 광고주님께 미움을 살까 봐 정보를 약 이틀간 아주 달달 외웠던 라움 자동차의 신차였다.

이름은 ‘부포스’라고, 어느 나라의 외국어로 수리부엉이라고 했던 것 같은데, 솔직히 거기까지는 관심이 없어서 잘 모르겠다.

앞쪽 페이스를 기존과 다른 느낌으로 바꾸면서, 이게 묘하게 수리부엉이의 얼굴을 닮았다고 그런 이름이 붙었다고 했다.

‘후. 집중.’

내가 이걸 보고 할 말은 하나다.

“오, 차 멋있다.”

“잘 빠졌지?”

미리 1층에 대기하고 있던 은지가 말했다.

“어. 튼튼해?”

“응. 안전 테스트를 다 거쳐서 사고 위험률이 다른 차들보다 압도적으로 적다고 (중략)…….”

은지가 저 모자란 호박 대가리로 정말, 정―말 열심히 외웠다.

성공적으로 설명을 마친 은지에게 손뼉을 쳐 주고 싶었지만, 카메라가 돌아가고 있어서 참았다.

대신 대본에 쓰여 있던 그대로 대답했다.

“그래? 안전하겠네.”

“응. 오빠, 사고 무서워하잖아.”

“……어, 그, 응. 근데 사고를 안 무서워하는 사람이 어디 있겠어.”

대본에 있으니까 하는 거긴 한데, 조금 불편하다.

‘교통사고 무서워하는 걸 딱히 인터뷰에서 밝힌 적은 없는 것 같은데…….’

그냥 대중들도 다 공감할 주제라서 넣은 것일 수도 있지만, 정말 불편한 부분이었던 터라 이건…….

상당히 찝찝했다.

말하는 이은지도 그다지 좋은 기분은 아닌 듯 표정이 서늘하다.

그래도 차가 ‘잘 빠졌다’라는 건 진심이었다.

새 차, 새 장소, 가벼운 짐.

일이긴 하지만, 그래도 오랜만에 온전히 즐기러 가는 외출이라서일까.

‘설렌다.’

이은지가 운전석에 오르는 걸 보기 전까지는 그랬다.

‘오, 세상에. 쟤가 운전해?’

나는 그간 믿지도 않던 신에게 빌었다.

‘살려 주세요.’

* * *

매일 운전하던 현우 형이 아닌, 은지가 운전석에 앉아 있다.

은지는 면허 취득을 두 번째 시험에서 합격했다.

첫 시험에서는 출발 직전.

「“떨어졌어요……. 액셀은 무슨 발 떼자마자 탈락이래!!!”」

「“왜요?”」

「“신호…… 위반이라고…….”」

집으로 가는 길.

이은지가 시험을 치기로 했던 길을 가며 왜 떨어졌는지, 어디에서 신호 위반을 했는지 알 것 같았다.

출발선의 바로 머리 위.

오르막에 어느 정도 올라온 이후에는 보이지 않을 애매한 곳에 있는 신호등 하나.

그곳에 신호가 있다는 걸 못 보고 출발했다가 떨어진 모양이었다.

「“하하핰핰핰, 아, 진짜 빡대가리. 핰핰핰.”」

2종이라고 놀렸던 걸 그날 비웃음으로 후련하게 되돌려 줬다.

하지만 내 놀림에 더 자극을 받은 건지, 은지는 두 번째 시험 날.

정말 이 악물고 시험 코스에 있는 모든 신호등의 위치를 외우더니, 결국 안정적으로 합격을 따냈다.

그렇다.

그렇게 이은지는 이제 1종 보통 면허가 있다.

면허는, 있다.

“얼른 타.”

“…….”

고민된다.

얘가, 면허를 따긴 했는데…….

“아! 빨리! 괜찮다고, 쫌!”

“너는 괜찮겠지, 나는 안 괜찮아.”

“타라고! 연습 많이 했다고!”

“얼마나.”

“봤잖아!”

“연습할 때 상자 수십 개를 시원하게 밟아 대는 건 많이 봤지.”

거기에 대해서는 할 말이 없는지 은지는 눈을 피했다.

“그, 그건 연습 때고! 이젠 면허 땄잖아!”

“너 면허 받은 지 얼마 됐는데.”

은지는 또 한 번 눈을 피하며 소심하게 입을 열었다.

“이틀?”

“와, X친. 면허에 잉크는 말랐냐?”

순간 난 방송인 것도 잊고서 거칠게 물었다.

“번들거리긴 하는데.”

“안 타.”

“아! 쫌, 2종 오토 장롱 면허 주제에! 그렇게 불만이시면 직접 운전해!”

“그건…….”

사실 이은지보다 더 못 믿는 게 나 자신이라서, 차마 당당히 그러겠다고 할 수 없었다.

현재 난 본의 아니게 취득한 지는 고작 2년이건만, 회귀 이전을 합치면 실질적으로 9년 이상 운전대를 잡아 본 적도 없는 ‘2종 자동’, ‘장롱 면허’ 타이틀을 가진 드라이버다.

“니가 운전대 잡을 거 아니면 싸물고 1종 보통님 믿고 타셔.”

“와, 이제 이걸로 까겠다 이거지?”

“호호. 까다니, 팩트지.”

“…….”

젠장.

할 말이 없다.

“2종 오토인 ‘누구’ 씨보다야, 내가 아주 훨씬 더 잘할 테니까 그만 X병 떨고 빨리 타시지.”

“와, 하…….”

은지가 야비하게 웃었다.

어이가 없어서 황당한 웃음밖에 안 나온다.

확.

차 안에 설치된 카메라만 아니면 저 약 오르게 주둥이를 놀리는 이은지 뺨을 모차렐라 치즈처럼 늘려 버리고 싶었다.

게다가 이은지 손톱에는 흰 바탕에 검은 고양이 무늬가 있어서 왠지, 집에 뻗어서 잘 다녀오라며 발가락만 까딱거리던 연탄이 녀석이 떠올랐다.

손톱 때문인가.

왠지 이은지랑 연탄이 같이 낄낄거리는 것 같아서 기분이 매우 언짢다.

투덜거리기는 했지만, 난 얌전히 차에 올랐다.

내가 운전을 못 하니까.

……선택지가 없었다.

대신 안전띠를 매는 건 물론.

난 창문 위 손잡이까지 꼭 붙든 채 결의를 다지며 외쳤다.

“……출발.”

“아오, 오버는 진짜!”

은지는 기어를 ‘P’에서 ‘D’로 바꾸며, 천천히 골목을 빠져나왔다.

잘 가는가 싶던 그때.

은지의 입꼬리가 사악하게 비틀렸다.

은지는 골목을 빠져나가기 직전.

사람이 아무도 없는 곳임을 확인하더니, ‘훅’ 브레이크를 밟았다

“야!!!”

은호가 새하얗게 질린 얼굴로 방송인 것도 잊고서 버럭 소리쳤다.

“아핰핰핰핰핰.”

은지는 핸들에 머리를 파묻은 채 끅끅거렸다.

“아, 장난, 장난. 아, 핰핰핰핰.”

“야, 씨! 장난 같은 소리하네!!! 함만 더 해 봐라. 내 여서 손잡이 대신에 니 머리카락을 다 쥐어 뜯어 버리는 수가 있다, 진짜.”

어지간히 놀란 듯, 은호는 본토 사투리를 터뜨리며 은지를 타박했다.

하지만 그 모습이 은지에게 더 코미디가 따로 없었는지, 눈가에 눈물까지 맺히는 지경이었다.

“핰핰핰, 알았엌핰핰핰. 재밌네, 이거.”

“재미는 무슨!”

“이제 안 할게. 안 할게. 하하하핰.”

“하, 씨, 간땡이 다 떨어지는 줄 알았네.”

“심장 말짱하면 됐지.”

“그 입이라도 쫌.”

“알았어. 알았어. 하핰.”

은지는 은호가 이렇게 화낼 때면 진담이라는 걸 알고 있었다.

진짜 머리털 다 쥐어 뽑힐 것 같아서 장난을 더는 치지 않았다.

그래도 은지가 정상적으로 운전을 하자 확실히 잘하긴 했다.

의외로 편안한 운행에 긴장하던 은호도 차츰 창문 위에 달린 손잡이를 놓고 편안하게 등을 기댔다.

긴장이 풀리자, 이내 차가 달리면서 나는 백색 소음에 점점 눈이 감기는지 은호는 고개를 꾸벅거리다 점점 눈을 감았다.

현우의 옆에 탔을 때는 말동무가 되어 주기 위해 억지로라도 깨어 있으려고 노력하고는 했는데, 운전자가 은지이기 때문이었을까.

“휴―우.”

은호는 한숨 같은 코골이를 하며 차 안에서 정말 편안하게 깊이 잠이 들었다.

은지가 빨간 불에 멈춰 섰을 때, 왠지 조용한 옆이 궁금했는지 힐끔 은호를 바라봤다가 이내 빵 웃음을 터뜨렸다.

“하핰, 하여간 별별 X랄 다 떨더니, 으이그.”

장난 섞인 타박도 잠시.

신호가 파란 불로 바뀌자, 은지는 다시 전방을 주시하며 천천히 속력을 올렸다.

하늘이 맑았다.

‘이렇게 둘이 어디 쏘다니는 거 엄청 오랜만이네.’

은지는 희미한 웃음을 띠며 출발하기 전 은호와 똑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다.

“음음~ 흐음음음~.”

머릿속에는 기분 좋은 컨트리풍 멜로디가 떠오른 듯.

은지는 외국의 시골에서 들릴 법한 멜로디를 콧노래로 흥얼거리며 머릿속 박자에 맞춰 핸들을 톡톡 두드렸다.

사고의 기억도 있고, 심지어 면허 나온 지 이제 이틀 차인 초보 운전자.

하지만 은지의 당돌한 성격만큼이나 차는 머뭇거림 한 번 없이 시원하게 차선을 바꾸며 앞으로 나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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