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매는 비즈니스로 일합니다 (191)
[아영 ― 보여 줘]
[나 ― 멀?]
[아영 ― 앨범]
― 보여 줘!]
[나 ― 앨범 너 저번에 샀다고 하지 않았어?]
[아영 ― 잠깐 급전 필요해서 주문 취소했다가 재주문 넣어서ㅠㅠㅠ]
― 도착하려면 나는 아직 한참 남음 ㅠ]
[나 ― 그거 봐]
― 굶어도 덕질은 굶으면 안 된다고ㅋㅋㅋ]
― 어차피 살 건데 플미 붙어서 비싸지기 전에 사 둬야지]
[아영 ― ㄹㅇ ㅋㅋㅋㅋ]
― 여튼]
― 빨리빨리빨리빨]
― ㄹ빨ㄹㅣㅃ빨빨 ㄹ]
― 보자]
아영의 독촉에 은정은 뒤늦게 상자를 열었다.
상자 안에는 상자와 같은 디자인의 ‘빨주노초파남보’ 8종의 비하인드 포토북 중 빨간색이 왔다.
“어, 뭐야!”
한편, 패키지를 알려 주던 페이지에서의 안내와 다른 점이 하나 있었다.
“양장본이야?”
은정은 중지의 두 번째 마디 뼈를 이용하여 노크하듯 포토북의 단단함을 확인했다.
“와.”
처음 상품을 구매하던 당시에는 잡지 같은 저렴한 느낌으로 올 줄 알았다.
‘웬만하면 비용을 아끼기 위해서라도 잡지 같은 느낌으로 빼니까…….’
하지만 NRY 엔터테인먼트에서는 E%들을 위해 ‘가성비’보다 ‘가심비’에 더 많은 신경을 쓴 듯.
미니 앨범인데도 케이스의 내구성이 뛰어나고 손톱자국이 남지 않는 원단과 같은 많은 배려가 눈에 띄었다.
비하인드 포토북 아래, 일반 포토북은 양장본까지는 아니었지만 그래도 나름 단단한 하드 케이스로 제작되어 있었다.
그렇게 또 한 번 사진 타임이 이어졌다.
특히 앨범에 열띤 촬영을 하던 은정은 촬영을 마친 뒤, 아영에게 보내려는 사진을 고르던 그때였다.
처음엔 앞서 상자를 촬영할 때와 같이 항공샷을 찍어 보내려 했다.
하지만…….
‘안 보여. 모서리 이 포인트가, 안 보여!’
왼쪽 모서리 끝의 빛을 받을 때만 반짝이는 EG 마크가 있다.
하지만 이게 안타깝게도 정면에서는 보이지 않았다.
거기다 측면에 빛마다, 이건 중요하니까 다시 한 번 말한다.
‘측면에 빛마다’.
E-UNG.
첫 번째 미니 앨범.
필기체로 쓰인 ‘TIME’.
마지막으로 ‘NRY 엔터테인먼트’의 마크까지.
빛에 따라 보였다가 사라지는 이, 이, 이…….
앨범의 영롱함이 고작 단 한 장의 사진으로는 담기지 않는다!
그럼 여러 장을 보내면 되는 게 아니냐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놉’.
한 장에서 오는 임팩트가 있다.
이제 막 다시 E%로 돌아온 아영의 덕심을, 이 모든 포인트가 표현되지 않은 심심한 한 장의 사진으로 꺼트리고 싶지 않다.
은정은 교수님께 성적의 문제점을 이야기하려 보내는 문자보다 더 심각하게 고심하다, 고민 끝에 노트북을 열었다.
‘우리 서용 씨, 포토샵까지 돌리기엔 간당간당한 녀석이지만, 오늘만큼은 힘을 내주기를……!’
아, ‘서용’ 씨는 참고로 이 ‘문서용’인 노트북을 구매하던 당시 붙인 이름이었다.
‘오늘만큼은 내 덕질 친구를 위해 힘을 빌려 줘! 서용!’
얼마나 지났을까.
[아영 ― 은정아]
― 은정]
― 은]
― 정]
― 은정아]
아영이 이후로 약 40분간 답이 없는 은정을 걱정스럽게 부르던 그때였다.
아영의 걱정에 돌아온 답은 사진이었다.
아영은 ‘ㅋㅋㅋㅋ’를 화면 가득 채울 정도로, 말 그대로 빵 터졌다.
[아영 ― ㅋㅋㅋㅋㅋㅋㅋㅋ(중략)]
― 김은정 미쳤냐고 진짴ㅋㅋ(중략)]
[나 ― 많은 노력이 들어갔다]
[아영 ― ㅋㅋㅋㅋ아니 저기 반짝이 포인트 뭔데 ㅋㅋㅋㅋㅋㅋ]
[나 ― 꼭 저 부분들 기억해 놓고]
― 눈에 박아 두고 실물 영접해!!!]
― 저기가 빛에 따라서 생기고 사라지는 그 디테일을!!!!!!]
― 이 감동을 너도 느껴!!!]
[아영 ― ㅋㅋㅋㅋ앀ㅋㅋㅋㅋ]
― 아 김은정 개또라이 진짜ㅋㅋㅋㅋㅋㅋㅋㅋ]
[나 ― 그만 웃고 얼른 기억해 둬 알았지?]
[아영 ― ㅋㅋㅋ알아쎀ㅋㅋㅋㅋ]
아영의 대답에 은정은 흐뭇하게 웃으며 ‘서용’을 덮었다.
“고생 많았다, 서용.”
“…….”
“네가 오늘 내 덕후 친구 하나를 지켜 줬어.”
한참을 웃고 떠들다 보니, 어느새 잘 시간이었다.
슬슬 창문으로 날아드는 퍼덕이는 망할 요정들 덕분에 날이 어두워졌다는 걸 모를 수가 없었다.
[아영 ― ㅃㅃ]
― 참 근데]
― 너 과제는 다 했어?]
[은정 ― 굿밤~]
[아영 ― 묻지 말라는 거냨ㅋㅋ]
[은정 ― 좋은 밤~]
[아영 ― ㅋㅋㅋㅋㅋ너도~]
아영이와 대화를 마친 후 은정은 완충재로 장난을 치던 그때였다.
“헐, 아, 맞다.”
은정은 뒤늦게 아직 상자 속에 다른 검은색 종이 완충재로 쌓인 물건들이 많다는 걸 깨달았다.
“아.”
생각해 보니 ‘디럭스’는 들어 있는 패키지가 많았다.
아니나 다를까.
완충재를 뒤적이다 보니, 안에는 그 외에도 투명한 비닐에 쌓인, 가지고 있던 것과는 다른 포즈의 ‘지냥’, ‘호냥’의 10cm 캐릭터 인형 키링.
한 장씩 소중하게 비닐 포장이 되어 있는 총 25장의 포토 카드 뭉치.
EG등.
스티커북.
E-UNG 달력 등.
하나하나 검은 종이 완충재로 쌓여 있는 탓에 꼭 보물찾기라도 하는 기분으로 상자를 뒤적였다.
그때였다.
‘뭐, 뭐야, 이 수집욕을 자극하는 이건!’
케이스와 같은 디자인으로 손바닥만 한 검은색의 포토 카드를 보관할 수 있는 사진첩이 들어 있었다.
이건 분명히 본인들도 포토 카드의 개수가 무지막지하다는 걸 아주 잘 알고 있다는 증거였다.
빈 곳을 견디지 못하는 덕후의 지갑을 열게 만들려는 수작질!
하지만 이런 수작질이라면…….
‘하, 속은 쓰리지만 환영이지.’
공짜로 공식 굿즈를 더 준다는데 누가 마다할까.
“하…….”
은정은 보물 같은 굿즈들을 몽땅 꺼낸 뒤, 만족을 넘어 황홀한 신음을 흘리며 입을 열었다.
“이게 ―검열―지. 아.”
한창 이 황홀함을 즐기던 그때였다.
은정은 문득 시선에 거슬리는 아직 열지 않은 길쭉이 직사각형의 상자에 시선이 갔다.
생각해 보니까…….
방에 돌아올 때만 해도 들고 있던 상자는 두 개였다.
길쭉이 직사각형의 상자와 완충재가 담겨 있던 택배 상자.
아마 첫 번째 상자에 없었던 포스터가 들어있는 것 같은데…….
“와, 지렸다.”
이미 가심비는 100%를 넘을 지경이건만, 이젠 가성비도 넘칠 지경이다.
기쁜 마음으로 이번 역시 손톱을 이용하여 조심스럽게 상자를 열었다.
아니나 다를까.
안에는 이전 상자처럼 종이 완충재에 둘린 검은색 지관 통이 들어 있었다.
위쪽의 검은색 뚜껑을 딴 뒤.
방향을 아래로 돌리자, 쏙 빠져나온 포스터.
‘왓 더, 홀리몰리…….’
더는 아영이 부럽지 않아졌다.
아영이 받은 포토 카드의 대형 버전인 포스터가 생겼으니까.
맨살에 재킷을 걸친 은호와 비슷한 차림으로 거리를 둔 채 거울처럼 앉아 있는 은지.
차이점이라고는 긴 머리카락과 화려한 손톱, 조금 더 진한 메이크업이 끝이었다.
다 다른 건가?
아무튼.
X나 좋다.
쓰읍.
은정은 흐를 것 같은 입안에 고이는 침을 삼켰다.
그때였다.
혹시나 뭐가 더 있나 싶어서 박스 안을 확인한 그 순간.
은정은 숨이 턱 틀어막혔다.
심장이 쿵쾅거렸다.
첫 짝사랑을 했을 때도 이렇게까지 두근거리지는 않았는데 말이다.
‘이거, 설마. 그 추첨이벤트…….’
‘뭐 이렇게 고급스럽고 난리야.’
‘떨리게…….’
상자 안에는 고급스럽게 EG 마크가 새겨진 붉은 왁스로 실링된 검은 편지 봉투 하나가 쓸쓸히 상자 구석에 놓여 있었다.
아무래도 완충재 틈에 숨겨 놓기에는 발견되지 않을 위험이 있어서 두 번째 상자에 넣은 거겠지.
앨범 케이스에 넣지 않은 이유는 포장 이후 당첨자가 확실히 결정이 났고, 그래서 이렇게 두 번째 상자에 넣어 둔 걸까.
은정은 책상에 검은 편지 봉투를 경건하게 올려 두고 진지하게 고민했다.
은정은 방 불을 끈 뒤, 스탠드 조명만 켠 채 한 편의 탐정 영화를 촬영하는 듯한 분위기를 만들었다.
팔꿈치를 책상에 올린 채, 손은 깍지를 끼고 입을 눌렀다,
조명 때문인지 분위기가 무거웠지만…….
실상 조명을 끈 이유는 이한 대학교가 산과 가깝기 때문이었다.
그 말은 곧, ‘파닥’보다 ‘퍼덕’이 더 어울리는 요정님이 자꾸 불빛에 이끌려 방 방충망에 날아드는 꼴을 보고 싶지 않아서.
그 이유가 끝이었다.
그렇게 잡게 된 분위기긴 했지만, 적어도 은정의 경건한 마음과는 퍽 어울렸다.
은정은 고민했다.
저 EG 마크가 찍힌 왁스를 가르며 편지를 뜯고 싶지 않았다.
봉투를 가르자니, 이것도 싫다.
그냥 이대로가 예뻐서 이대로 고이 보관하고 싶은 욕구가 컸다.
하지만 그렇다고 열지 않자니, 안에 있는 것을 확인하고 싶다.
드르륵.
은정은 고민 끝에 커터 칼을 꺼냈다.
심지어 혹시 몰라 날까지 새로 갈아 끼웠다.
“후…….”
정확하게 직선을 유지하며 은정은 검은 봉투의 윗부분을 갈랐다.
뼈아픈 선택의 결과는 두 장의 검은 종이였다.
한 장은 화려하게 꾸며진 팬 사인회 당첨권.
그리고 다른 하나는…….
‘X친.’
진심.
안 꺼냈으면 나중에 울 뻔했다.
은정은 차마 은호의 편지에는 손을 대지도 못한 채 입을 틀어막기 바빴다.
현재 시각 새벽 1시.
새벽에 소리 지르는 민폐 E%가 되지 않기 위한 나름의 매너였다.
사실 편지는 이름 부분을 빼면 자필로 쓴 편지를 프린팅한 것일 뿐이었지만, 역시 갓창석.
전혀 티가 나지 않는 데다, 어쨌든 이름만큼은 은호님이 직접 쓴 것 같았다.
설마 이거 이렇게 200명한테 다 보낸 걸까.
손목은 괜찮으실까.
걱정도 걱정인데, 왠지 배덕감이 느껴지는 기쁨이긴 하지만 어쩌겠어.
X나 좋아. 어헝헣헝헣헝.
게다가 NRY 엔터테인먼트는 역시 중요한 부분을 잘 안다.
‘이거 분명히 빛창석 씨도 이응 덕질을 하고 있는 게 분명하다니까.’
‘From’ 문장 사이.
희미하게 지워진 ‘사랑’이라는 단어가 민망해서 ‘ㅅ’만 썼다가 지운 ‘듯’한 그 흔적…….
NRY 엔터테인먼트의 능력으로 당연히 완벽하게 지울 수 있었지만, 이건 역시.
본인들 눈에도 귀여워서 남겨 둔 거겠지.
은정은 마음으로나마 박 대표를 향해 코피를 쏟으며 엄지를 세웠다.
‘잘했어요. 아주 좋아.’
녹색 괴물이 되어 당장 눈앞의 테이블을 부숴 버릴 수 있을 것 같지만, 책상은 이한 대학교 것.
심지어 그 위에 이 귀한 편지님이 올라가 있기에 참아 냈다.
은정은 몇 번 더 잃으면 닳기라도 할까.
아주 조심히 봉투에 편지와 팬 사인회 당첨권을 다시 집어넣으며 생각했다.
‘팬 싸인회 때, 뭐 입지?’
아직 몇 주나 남았지만, 은정에게는 ‘몇 주밖에’ 남지 않았기에 마음이 급했다.
아영에게 자랑을 하는 것마저도 잊은 채 은정은 기숙사 옷장을 열어, 사인회 날 무슨 옷을 입을지 고민에 빠졌다.
그날 수업이 있건 없건, 자체 공강은 당연한 일이었다.
* * *
편지
아직 앨범이 포장 단계에 있던 때.
잠시 퇴근 전, 회사에 방문한 은호는 회의 중 한 제안을 냈다.
“뭘 써?”
“당첨자분들께 축하 인사 전하는 손편지요.”
“갑자기 그게 왜, 아니, 너, 그 많은 사람들 편지 다 쓰면 손모가지 며칠, 아니지. 적어도 몇 주는 못 쓸 각오 해야 돼.”
“그거라면, 하나 쓰고 프린팅된 걸로 보내면 되죠. 결국 E%분들한테 쓰는 거니까.”
은호의 제안에 은지는 동의하는 듯 반짝이는 눈으로 박 대표와 은호를 번갈아 바라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