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매는 비즈니스로 일합니다 (190)
본인들을 처벌하면 이응과 톡신이 망한다라…….
최근 들은 말 중에 가장 재미있는 말이었다.
예찬은 샤워하던 중에 몰래카메라에 찍혔고, 오현은 방 안에서 자고 있던 사진이 찍혔다.
최태현은 아끼던 차에 ‘오빠 사랑해’, ‘게이 새끼ㅗ’라는 긁힌 낙서가 있었던 적도 있고, 주송민은 속옷을 도둑맞았다.
심지어 서승연은 연애하던 중 집 옆에 숨어 있던 팬에게 상처를 입기도 했다.
은호와 은지의 문제를 도와주는 변호사도, 당시 자문을 구하다 가까워졌다.
어지간했으면 사비로라도 처벌을 진행하려 하기도 했었다.
내가 끌어온 녀석들이고, 꼭 나 때문인 것 같아서.
하지만 앞서 모든 일을 치렀던 이 사생팬들은 처벌을 피해 갔다.
심지어 최태현의 차에 낙서한 사생팬과 서승연에게 상해를 입혔던 팬은 동일 인물이기까지 했음에도 말이다.
모든 건 회사의 탁상 회의에서 난 결론이었다.
회사가 그들 역시 ‘팬’이라는 이름으로 끌어안았다.
주주들 또한 본인들의 돈줄을 쳐 낼 리가 없었다.
주주들의 반대에 사건은 매번 쉬쉬하며 넘어갔다.
매번 박 대표가 바라던 정당한 처벌은 이뤄지지 못했다.
“고소하시겠다고? 그래.”
어디 해 보세요.
창석은 자비라는 단어를 좋아하지 않는다.
이 점은 은호와 통하는 점이었다.
창석이 회사를 차리기 전.
악착같이 돈을 모으고, 온갖 경제 공부를 한 데는 내 가족.
내가 끌어들인 자식 같은 내 연예인들을 지키기 위해서였다.
고로, 돈 때문에, 돈이 무서워서 누군가의 말에 휘둘리는 건 아주 질색이었다.
“하!”
불청객은 어이없는 웃음을 터뜨리며 소리쳤다.
“이, 이은호랑 이은지!”
“…….”
은호와 은지의 이름이 나오자, 박 대표가 반응을 보였다.
이거다 싶었는지, 불청객은 두 사람을 미끼로 내걸며 다시 한 번 도발했다.
“아저씨 때문에 이미지 망쳐질 텐데 고소해? 하라고? 이은호랑 이은지도 그렇게 생각할까?”
“하하하하.”
“뭐가 웃기다고 웃어!”
당당하게 소리치는 불청객을 내려다보며 창석은 입을 열었다.
“저기, 미안하지만, 불청객들한테 선처해 주지 말라는 말은 그쪽이 말하는 은호가 한 말이라서.”
박 대표가 웃으며 말하자, 불청객들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나는 우리 애들 말을 잘 들어주는 대표라, 들어주는 것뿐이랍니다?”
은호의 말도 말이었지만, 이미 TaKa 엔터테인먼트에 있을 당시 톡신이 겪은 많은 일들 때문에라도 NRY 엔터테인먼트 소속 연예인의 안전을 위협한 ‘불청객’에게는 선처란 없는 단어였다.
“팬을 이렇게 대해도 되는 거야!!!”
벼랑 끝에 몰린 듯 울먹이며 얼굴을 긁힌 불청객이 소리쳤다.
창석은 그에 보란 듯 답했다.
“여기 팬이 어디 있다고.”
“뭐, 뭔…….”
“아. 뭐, 보안 요원분이나 경찰분들 중에 있다는 말인가?”
창석은 조롱하듯 눈웃음을 지어 주며 불청객의 헛소리를 비웃었다.
“합의는 없습니다.”
* * *
자랑
은지의 기능 시험 날.
은지가 우울한 얼굴로 시험장을 나오는 걸 본 그때, 은호가 입을 열었다.
“아, 재수 없어.”
현우는 그런 은호의 반응에 갸웃거렸다.
시무룩하던 은지는 어느새 은호와 현우가 기다리던 곳으로 다가왔다.
“떨어졌어요?”
현우가 우울한 은지의 표정을 보며 물었다.
“그게…….”
은지의 목소리가 기어들어 갔다.
작아지는 은지의 목소리만큼 은호의 눈썹이 못마땅하게 뒤틀렸다.
“괜찮습니다. 시험은 또 보면 되는 거니까.”
현우가 위로하던 그때.
은지의 입꼬리가 수상하게 씰룩였다.
“헤헤, 구라지용! 감점, 제로! 완전 완벽하게 합격했어요!”
은지가 활짝 웃으며 말했다.
한편 그 순간 현우의 시간이 잠시 멈춘 듯했다.
날뛰는 은지를 보며 은호는 질린다는 듯 고개를 저었다.
“축하드립니다.”
“이제 연습 면허 나오면 운전할 수 있는 거죠?”
“할 수는 있지만, 하지는 않을 겁니다.”
“예?”
흥분한 은지는 현우의 한마디에 갸웃거린 고개 그대로 돌처럼 굳어 버렸다.
현우는 그런 은지를 보며 평소와 같은 자애로운 미소를 띤 채 말했다.
“주차 먼저 통달하기 전까진 도로 안 나갑니다.”
은지는 충격을 받은 듯 반쯤 입을 벌린 채 현우를 원망하듯 노려봤다.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그건 현우의 철학과도 같은 단호한 부분이었기에, 은지는 면허를 위해 따를 수밖에 없었다.
* * *
‘등본상 혈육’의 2화에는 운전면허에 도전하는 은지의 이야기가 방영됐다.
은지가 하나씩 해낼 때마다 은호가 투덜거리면서 시비를 걸었다.
그러나 은호가 현우와 둘만 있을 땐, 은지가 잘해서 오빠로서 민망하다는 둥 불안하다는 둥.
은호가 은근슬쩍 솔직히 이야기를 꺼내며 동생 자랑을 해 ‘츤데레’ 면모가 돋보였던 화였다.
[랑이… 츤데레 정석 그루밍 킹이네 은지 털 다 빠지겠다ㅠ]
└털 빠진데 도랐ㅋㅋㅋㅋ
└아 물 먹다 뿜었잖아ㅋㄱㅋㅋㅋ
[아 왜 나한테는 저런 오빠 없냐고!!!!!!]
└이퍼야 혹시 외동이야?
└어? 응. 외동이야. 어떻게 알았어?
└그냥 그럴 것 같았어
└왜???
[위에 이퍼야, 있으면 저런 오빠는 내 애인이어야지. 친오빠는 아니지.]
└그래도 친오빠는 매일 볼 수 있잖아
└내 오빠가 되는 순간 그놈은 방구석 백수 색희야.
└ㄹㅇ 지금도 방구석에 처박힌 저 백수 색희 일주일째 얼굴도 안 보고 살고 있어 ㅇㅇ
└저기 거기 백수는 살아 있어?
└몰라 살았는지 뒤졌는지 관심 없어
└ㅋㅋㅋㅋㅋㅋㅋㅋㅋㄱㅋ
2화에는 남매나 형제, 자매가 있는 E%들의 많은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동시에 남매를 부러워하는 외동들도 많았다.
남매가 있는 E%들은 부러워하지 말라며 일상의 나쁜 일들을 털어놨다.
하지만 어째서인지, 이야기가 나올수록 외동들은 오히려 예상치 못하게 더 ‘재밌겠다’라며 더 부러워하는 반응이 나왔다.
* * *
기능 시험 합격 이후.
연습 면허가 생긴 은지는 도로는커녕 빈터에서 상자를 쌓아 두고 주차 연습에 매진했다.
‘등본상 혈육’에는 주차 연습과 본격적인 면허 취득까지의 이야기가 나왔다.
― 하핰, 핸들 꺾는 데 니 몸은 왜 꺾냐?
―아 ―삐―쳐! 이은호! 집중 안 돼!!!
―응. 집중해도 밟은 상자가 수십 개였죠?
은지의 머리 위로 입술 모양의 CG와 함께 ‘-5’라는 글자가 붙었다.
마치 데미지를 받은 것 같은 편집이었다.
한편, 이어서 은호는 회복이라도 하듯 ‘+3’이 차올랐다.
―조용! 조용히! 쫌!
은지가 신경질을 내며, 손을 뻗어 특유의 화려하고 날카로운 손톱으로 은호의 무릎을 찍었다.
―아악!
비명을 지르는 은호의 머리 위에는 곧이어 ‘물리’라는 글자와 함께 데미지 ‘-10’이 깎였다.
‘등본상 혈육’에서 남매 싸움이 일어날 때면 집어넣는 특징적인 편집이었다.
은호는 놀란 얼굴로 운전석의 은지를 바라보며 말했다.
―야, 뭐야. 그거 진짜 아파.
은지는 오른손을 들어 손가락을 순서대로 유연하게 까딱였다.
―내가 바로 가위손이다.
하하하하.
은정은 수업을 받고 오는 길에 사 온 초콜릿 과자 안타볼을 입에 넣으며, 휴대폰으로 결제한 ‘등본상 혈육’의 VOD를 시청 중이었다.
그때였다.
지잉.
영상이 멈추며 문자 알림이 떠올랐다.
“아!”
은정은 투덜거리며 화면을 가리는 알림창에 미간을 구겼다.
[[Web발신] <한영 택배> 김은* 님의 상품 배송이 완료…….]
문자 내용 읽기 전까진 그랬다.
은정은 본능적으로 벌떡 누워 있던 침대에서 일어났다.
이후 곧장 여자 기숙사의 방문을 박차고 1층 로비로 달렸다.
택배 보관함이 로비에 있었기 때문이다.
“허억, 허억. 택, 배요.”
“여, 여기요.”
이제 막 연락을 보낸 듯, 아직 자리를 떠나지 못한 기사가 당혹스러운 눈으로 은정을 바라봤다.
은정은 매의 눈으로 본인의 택배 상자들을 찾아내더니, 이후 택배 상자를 두 손으로 받치고 계단 하나를 오를 때도 경건한 마음으로 하나씩 올라 제 방으로 돌아왔다.
첫 번째 깔끔한 상자 위에 붙은 송장의 ‘보낸 분’에는 ‘NRY 엔터테인먼트’가 쓰여 있었다.
“드디어 왔다.”
칼로 개봉하자니 혹여나 안에 계신 귀한 분께 상처가 날까 은정은 테이프를 손톱으로 뜯어내며 조심스럽게 상자를 열었다.
하지만 상자를 연 순간 안에 있는 것에 상처가 날 걱정은 전혀 하지 않아도 됐다는 걸 알았다.
“하, 우리 빛창석 님. 포장도 완벽하셔.”
은정은 미간을 엄지와 검지로 짚으며 ‘크흐’ 하고 감탄을 흘렸다.
장난식으로 흘린 말이었지만, 솔직히 이응에게도 우리 E%들한테도 그만한 대표님은 없을 거라는 건 E%로서 진심이었다.
상자 안에는 은호와 은지의 이번 앨범 콘셉트에 맞춰 밤하늘을 뜻하는 검정, 파랑, 짙은 보라색의 옥수수 완충재와 노을 지는 시간을 표현한 노랑, 빨강 그리고 그 외에도 하얀색의 완충재가 한가득 들어 있었다.
그 틈으로 빼꼼히 드러난 검은색의 종이 완충재까지.
2중으로 안전하게 포장된 앨범은 여러모로 만족스러웠다.
한편, 안에 들어 있는 눈길을 끄는 검은 카드 한 장.
은정은 뭐지 싶어 꺼내든 순간,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
옥수수 완충재의 색은 식용색소를 사용하여, ‘E-UNG’의 앨범을 주문해 주신 ‘E%’님들의 인체에 해가 없도록 특별히 제작되었습니다.
다만 ‘식용’은 아니오니, 안전을 위해 +절대!+ 드시면 안 됩니다!
귀엽기도 하고, 왠지 모를 간절함이 느껴지는 경고장이었다.
은정은 장난삼아 검정, 파랑 등등 각각의 색깔별로 하나씩 꺼낸 뒤, 물을 이용해 그것들을 연결하여 원을 만든 후 손목에 걸었다.
동심이 생각나는 장난감이었다.
한편, 이어서 그물 형태의 검은색의 종이 완충재를 치워 내자, 깔끔한 무광의 검은 천으로 싸인 상자가 드러났다.
중앙에는 떡하니 음각으로 새겨진 EG 마크까지.
“아, 아!”
사진 찍는 걸 깜빡했다.
상자를 여는 순간부터 촬영하지 못한 아쉬움을 담아, 은정은 다소 광적일 정도로 촬영을 했다.
찰칵찰칵찰칵찰칵찰칵.
설레게 만든 무광의 검은 앨범 케이스와 완충재들이 가득한 상자.
손목에 걸고 있는 완충재로 만든 팔찌까지.
촬영을 마친 뒤.
은정은 앨범 케이스를 촬영한 사진들을 뒤적였다.
“이거다.”
은정은 케이스를 촬영한 사진 중, 가장 잘 나온 ‘항공샷’을 누군가에게 깨톡으로 보냈다.
일전에 포토 카드 자랑으로 배를 아프게 만들었던 돌아온 덕후 아영이었다.
숫자 1이 사라지고 잠시 후.
[아영 ― ?]
― 뭐야]
[나 ― 흐흐흐흫]
― 따라란↗ 따라란↘ 따라란↘ 딴]
― 뜬↘딴↗딴↗]
[아영 ― 사쿠라여?]
― ㅋㅋㅋㄲㄲㅋㅋㅋ]
[나 ― ㅋㅋㅋㅋㅋㅋㄱㅋ]
― 드뎌 앨범 왔어]
[아영 ― 오 부럽다 난 돈 모자라서 심플셋 샀음 ㅠ]
[나 ― 나도 돈 없어 하지만…]
[아영 ― ?]
은정은 콧김을 내뿜으며 진지하고 빠르게 키패드를 두드렸다.
[나 ― 옛말에]
[아영 ― ???]
[나 ― 밥은 굶어도 덕질은 굶으면 안 된다고 했음]
[아영 ― ㅇㅈ ]
― ㅋㅋㅋㅋ]
― 그래서 뭐 샀는데?]
[나 ― 디럭스 ]
― (‘역시 나야’라면서 긴 머리를 휘날리며 자기도취에 빠진 하얀 대가리 이모티콘)]
[아영 ― 헐]
그때, 아영은 곧장 앨범에 관심을 보이며 물었다.
[아영 ― 그래서 앨범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