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매는 비즈니스로 일합니다 (189)
불청객
‘등본상 혈육’의 2화가 방영된 후.
연습 면허가 생긴 은지는 도로는커녕 빈터에서 상자를 쌓아 두고 주차 연습에 매진했다.
은호는 은지를 놀리기 위해 함께 나갔다.
아무래도 혼자 집에 있을 땐, 조용히 가사만 쓰고 있을 뿐이니 방송을 위해서이기도 했다.
애초에 ‘TIME' 앨범 배송이 시작되면서, 최근에는 집 안에서보다 바깥에서 할 일이 더 많았다.
은지의 운전 연수도 연수지만, 녹음 등등.
최근 녹음은 1층의 녹음실보다 기기가 훨씬 좋은, 은지의 스승님이신 배진수 작곡가님의 스튜디오에서 본격적인 녹음을 진행하는 중이었다.
이렇게 되면서 문제가 하나 생겼다.
지켜 줄 사람이 없는 집 안.
촬영을 위해 미리 배치해뒀던 카메라들이 연탄의 신경질에 희생을 당했다.
집에 설치해 뒀던 카메라는 이후 다시 설치가 번거롭긴 하지만, 어쩔 수 없이 매번 설치하는 식으로 진행하게 됐다.
연탄이 은호와 은지가 나간 틈에 카메라 몇 대를 ‘아작’ 낸 결과였다.
연탄은 그렇게 오랜만의 자유를 얻었다.
연탄은 안전지대였던 은지의 방 안에서 벗어나, 금지 구역이었던 거실에 대자로 뻗어 배를 긁적거렸다.
‘이제 좀 집 같네.’
자유를 되찾은 연탄은 안락한 거실에서의 여유를 즐겼다.
은호와 은지가 스케줄 때문에 외출한 이후, 매일 이어지던 일상이었다.
고로, 오늘 역시 연탄은 여유롭게 거실에서의 노곤한 시간을 즐기고 있었다.
그러던 중, 연탄의 샛노란 눈이 번쩍 뜨였다.
“대박.”
멀지 않은 곳에서 들린 낯선 소리.
연탄은 여유를 넘어 만사가 귀찮아 늘어진 평소와 다른, 날카로운 분위기를 띠었다.
“무슨 요새급인데?”
“요새면 뭐 해. 사각지대가 뻔히 있는데.”
담벼락 너머에서 들린 불청객의 소리가 연탄만 들을 수 있는 거리에서 점차 일반인들도 들을 수 있는 거리까지 다가왔다.
연탄은 검은 연기를 온몸에 두르며 크기를 줄였다.
연기가 사라질 무렵.
연탄은 사람의 형태를 감추고 익숙한 고양이의 모습으로 엉덩이를 든 채, 꼬리를 살랑이며 문 앞에 얌전히 엎드렸다.
당장이라도 펄쩍 뛰어오를 준비 자세였다.
한편, 불청객들은 ‘등본상 혈육’에 나왔던 다섯 개의 CCTV를 피해, 사각지대 중 하나인 구석 담벼락을 넘었다.
“악! 따가워. X발!”
“뭐야, 철조망 남았어? 제대로 끊었다며!”
“아니. 뭐지? 다 끊었는데 갑자기 따끔해서…….”
“찔린 거야?”
“으음, 아니야. 찔리진 않았어. 착각인가 봐.”
“조심해.”
불청객 중 하나가 폴짝 뛰어내리며 그 요새급이라는 담벼락을 넘었다.
철조망을 둘러 두긴 했지만, 담 높이가 두 사람이 합심하면 넘을 수 있을 정도의 옛집의 낮은 담벼락이라 가능한 일이었다.
그렇게 안전망을 끊고, 철저한 보안도 뚫고 침범한 두 불청객은 1층을 기웃거리다, 곧장 본목적이었던 2층을 향했다.
“와~, 성지다. 성지.”
“하하. 빛강석이니 뭐니, 대표 새끼 보안에 힘쓰고 있다 자랑하더니, 입장 프리패스~.”
“하하하하.”
키득거리는 불청객들은 집 앞에 아무도 없다는 것을 정확하게 알고 온 듯, 조심하는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흐음.”
불청객 중 하나가 집 주변을 둘러보다, 현관문 옆 부엌 창문을 덜컹거렸다.
창문이 잠겨 있는지를 확인하려는 행동이었다.
불청객한테는 아쉽게도 입구 옆의 부엌 창문은 단단히 잠겨 있었다.
애초에 철창으로 막혀 있던 탓에 넘어갈 수도 없었다.
“드라이버 가지고 올 걸 그랬다.”
“내가 챙기려고 했는데 니가 창문 여러 개니까 하나는 열려 있을 것 같다며.”
“아, 아직 다 안 봤으니까. 일단 옆에나 보자.”
“X친. 나이스.”
유일하게 철창이 없는 한 창문.
카메라 설치를 위해 잠시 철창을 빼 뒀던 거실 방향으로 난 창이었다.
불청객이 기뻐하며 창문을 건드리려던 그때였다.
“야, 잠깐만, 위에 봐.”
다른 한 명이 불청객 동료를 제지하며 창문의 윗부분을 가리켰다.
수상한 기계가 내부와 연결되어 있었다.
“X발, X나 꼼꼼하게 해 놨네.”
“뭐 잘난 새끼들이라고 X나…….”
그 ‘잘나지 않은 새끼들’을 보기 위해 미션 임파서블을 찍는 두 사람이 할 말이라기엔 이질감이 가득한 말이었지만, 아무튼.
불청객들은 어떻게 할까 고민하던 그때였다.
철컥, 쾅.
큰 소리에 화들짝 놀라며 두 사람은 몸을 숨겼다.
하지만 별다른 일이 없자, 두 사람은 천천히 밖으로 나왔다.
“연탄인가?”
“이게 뭐라고 이렇게 떨리냐. 하하.”
“그러니까. 아. X발. 놀래라.”
불청객이 가슴을 쓸어내리던 그때였다.
“먀옹.”
연탄이 울었다.
막히는 것 없이 맑은 울음소리.
두 불청객은 숨어 있던 벽에서 나와, 조심히 현관문으로 향했다.
“대박.”
“하하!”
불청객들은 쾌재를 불렀다.
연탄의 짓인 듯, 잠겨 있던 갈색 알루미늄 현관문이 미세한 틈을 보이며 열려 있었다.
운이 좋다고 생각했다.
두 사람은 눈치를 보다 이내 ‘들어가 보자’라는 신호를 보내며 현관문 앞으로 향했다.
그렇게 현관문을 연 그때였다.
“꺄악!”
“아악! 이 X친 고양이 새끼가!!!”
불청객 중 하나는 얼굴을 가린 채 욕지거리를 뱉어 냈다.
찰나에 연탄이 뛰어오르며 앞장서던 불청객의 얼굴을 손톱을 세워 깊게 긁어 냈다.
연탄은 불청객이 휘두른 손에 맞아 날아갔지만 안전하게 착지 후, 털을 빳빳이 세운 채 경계를 이어 갔다.
얼굴을 가린 불청객의 손바닥을 타고 손목 부근에서 핏방울이 투둑떨어졌다.
뒤따라오던 다른 불청객이 걱정하며 물었다.
“괘, 괜찮아?”
“괜찮겠냐!!!”
신경질적으로 소리치는 동료의 피를 본 그때.
동료는 한편으로 본인이 당하지 않아서 다행이라 생각하며 가슴을 쓸어내렸다.
“연탄아! 우리야! 진정해. 우쭈…….”
영상으로 여럿 접한 덕분일까.
내적 친밀감과 현실 친밀감을 착각이라도 한 건지.
다른 불청객은 마치 연탄이와 몇 번 만나 인사를 나눠 봤던 사람인 양 연탄을 달래려 들었다.
물론, 통할 리는 만무했다.
연탄은 재빠르게 뛰어와, 다른 불청객의 다리를 물었다.
“악! X친! 이 고양이 새끼가!!!”
반바지를 입고 있었던 탓에 얼굴을 공격당한 동료보다야 덜했지만, 연탄의 이가 깊이 박혀 들었다.
물린 불청객은 다급하게 발을 털어 냈지만, 연탄은 쉽사리 떨어지지도 않았다.
“X발!”
불청객이 주먹을 내지르려던 그때.
다행히 연탄은 맞기 전에 다리에서 이를 뽑아내며 은호의 사물함 위로 도망쳤다.
연탄의 발톱과 입 주변에는 불청객들의 피로 보이는 붉은 자국이 덕지덕지 묻어 있었다.
그때였다.
연탄이 거실의 창문에 두 차례 몸통을 받았다.
“뭐, 뭐야. 왜 저래?”
불청객들이 ‘피맛을 보더니 돌아 버린 건가’라고 생각하던 그순간.
삐익―!
삐익―!
삐익―!
집 안은 물론, 아래층에서까지 귀가 아린 경고음이 울렸다.
“……조졌다.”
불청객은 거실 쪽 창문에 엮여 있던 수상한 장치를 떠올렸다.
수상한 장치들은 모두 보안 장치로, 한 번의 충격이 있을 때 보안 요원이 출동한다.
이어서 세 번 이상의 충격이 있을 때, 경고음이 울리게 되어 있는 장치였다.
한 차례 만에 경고음이 울리도록 설정할 수도 있지만, 현행범인 불법침입자의 도주 우려가 있기에 박 대표는 이렇게 설정해두었다.
물론.
은호와 은지가 들어올 때면, 대문의 비밀번호를 누르는 그때.
집 안의 모든 보안 장치들이 해제됐다.
그래서 박 대표는 꼼꼼하게 비밀번호를 누르는 것을 가르친 것이었다.
그렇지 않은 경우라면 창문을 열어도, 대문을 건드려도 곧장 신호가 전달된다.
연탄은 꼬리로 창문을 몇 차례 건드렸다가 여러 번 요원들을 불러 본 경험이 있었다.
덕분에 연탄은 ‘아, 이걸 두 사람 ─은호와 은지─가 없을 때 건드리면 사람이 온다’라는 걸 깨달았다.
원래는 더 일찍 건드릴 생각이었지만…….
연탄 본인도 이렇게까지 이가 안 빠질 줄은 예상치 못했던 탓에 늦었다.
“X발!”
“뭐 해! 튀어!”
하지만 타이밍은 정확했는지, 불청객은 연탄을 날카롭게 쏘아보다, 급하게 계단으로 달렸다.
너무 허둥지둥한 탓일까.
“아악!”
다리를 물렸던 사람은 발목을 삐끗하며 계단에서 굴렀고, 얼굴을 다친 사람은 한쪽 눈이 따끔거려서 감고 있는 탓에 더듬거리다 미끄러져 계단에 엉덩이를 찍었다.
얼얼한 몸뚱이를 이끌고 두 사람은 대문 앞에 섰다.
계획으로는 들어올 때와 다르게 당당히 대문으로 나갈 생각이었건만.
“아, 안, 안 열려!”
대문은 한 차례 바깥에서 열린 기록이 없으면 안에서도 열리지 않게 되어 있다.
즉, 대문은 사용할 수 없다.
게다가 대문에서도 귀가 아린 신호가 터져 나오는 탓에 불청객들은 패닉 상태가 되었다.
“드, 들어왔던 곳으로 나가자.”
뒤늦게 담벼락을 떠올린 두 사람은 급하게 담으로 달려갔다.
그렇게 담을 넘던 그 순간.
“쉽지 않지?”
박 대표가 담벼락 아래에서 얼굴을 다친 불청객을 맞이하며 웃고 있었다.
‘등본상 혈육’ 방송에 ‘철저한 보안’이라는 자막과 함께 비췄던 5대의 CCTV들.
이것들은 눈속임용이었다.
가짜라는 말은 아니었다.
오히려 이 기숙사에 주변에 설치된 CCTV는 총 12대.
얼굴이 가장 선명하게 보이는 고성능 카메라만 5대가 있다.
즉, 불청객들의 생각과는 다르게 사각지대 따위는 존재하지 않았다.
두 사람은 얼굴과 의상이 모두 촬영되었다.
게다가 창석은 이미 두 사람이 담벼락을 넘는 순간.
은호와 은지의 집에 침입자가 들어왔다는 걸 알았다.
담벼락의 안전망이 끊긴 그 순간.
전력이 끊어지면서 ‘문제가 발생했다’는 의미의 경고 알림이 박 대표의 휴대폰으로 전송되기 때문이었다.
담벼락을 넘으며 따끔했던 것도 남아 있던 전류가 튄 것이 아닐까.
거기다 연탄이 이미 두 사람의 소리가 현관 앞에서 들렸을 무렵에 한 차례 창문을 건드려 둔 덕분인지.
회사에서 멀지 않은 기숙사까지 박 대표가 경찰을 불러 도착했을 때에는 이미 출동한 보안 요원들이 끊어진 철창을 확인하며 경찰에게 신고를 한 후였다.
CCTV에는 자주 이런 녀석들이 찍혔다.
하지만 다행히 집 안까지는 침범을 성공한 경우가 없었다.
‘애초에 가능할 리가…….’
토템처럼 집 안을 지키고 있는 성깔 있는 녀석이 있으니 말이다.
박 대표는 연탄을 알았다.
은호와 은지를 제외한 누구에게도 손길을 허락하지 않는, 은지가 데려온 앙칼진 검은 고양이.
모르는 사람이 접근하는 경우.
연탄은 날카로운 이를 드러내며 털을 바짝 세운다.
‘꼭 데려와도 자기 같은 녀석을 데려와서는, 하하.’
오늘도 침입자들의 얼굴에 긁힌 상처와 피가 흐르는 다리의 상태가 연탄의 완벽한 방어를 증명했다.
“다친 거 안 보여요?!”
“잡지 마요! 이, 이거 성추행이야!!!”
한편, 경찰에게 붙잡힌 얼굴을 두 불청객이 버럭 소리쳤다.
“당신들 다 고소할 거야!!!”
그중, 다리를 물렸던 불청객은 박 대표를 위협하며 말했다.
종종 있는 일이다.
먼저 불법으로 침입해 놓고서는 뻔뻔하게 ‘고소하겠다’는 말을 던지는 녀석들 말이다.
하지만 그런 놈들에게는 오히려 협박죄만 더해질 뿐이다.
“아저씨, 진짜 후회 안 해요?”
후회라…….
주식 상장을 하지 않은 이유에는 이 이유가 가장 컸다.
소문이 잘못 나면 주가가 하락한다.
그럼 주주들이 반대하며 일어난다.
TaKa 엔터테인먼트에 있던 당시.
톡신이 참고 넘겨야 했던 많은 것 중 하나가 이것이었다.
“예, 후회 안 합니다.”
“우리가 고소하면 이, 이응이들 이미지 박살 나고 톡신도 망할 텐데?”
“하하.”
박 대표는 사람 좋은 너털웃음을 터뜨리더니, 잠시 후.
박 대표는 사나운 눈을 빛내며 입을 열었다.
“어디 해 보시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