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매는 비즈니스로 일합니다 (188)
은호가 은지의 방에서 나간 뒤.
상자에서 기어 나온 검은 고양이, 연탄 주위로 검은 연기가 일렁이더니 서서히 몸집이 커졌다.
차츰 고양이의 형체에서 사람의 형체로 변해 가던 그때.
검은 연기 속 물체가 두리번거리며 상자 속에 숨겨 둔 익숙한 은호의 셔츠와 운동복 바지를 꺼내 주섬주섬 챙겨 입었다.
이후 사람의 형태를 띤 연탄은 은지의 책상 의자에 앉아, 한숨을 내쉬며 방 안 곳곳을 둘러봤다.
남은 카메라가 있는지를 확인하는 것 같은 몸짓.
스스슥.
방 안에 아무것도 없다는 걸 확신한 후에서야, 검은 연기가 모습을 감췄다.
연기에 가려 보이지 않던 창백한 피부가 드러나며 감겨 있던 눈이 뜨였다.
샛노란 눈동자의 타원형 동공이 서서히 원의 형태를 갖춰 갔다.
연탄은 은지가 작업할 때 사용하는 푹신한 의자에 앉으며 중얼거렸다.
“이게 편한데…….”
연탄은 남매와 큰 차이가 없는 자신의 손발을 시무룩하게 바라보며 한숨을 흘렸다.
그때, 엉망으로 흘러내린 검은 머리가 거슬린 듯, 후 불어 얼굴에서 떨어뜨리며 입을 열었다.
“어쩌지.”
* * *
NRY 엔터테인먼트 사옥 안 스튜디오의 빔 프로젝터는 정류장에 멈춰 선 버스와 노선을 바꾸며 급하게 달려가는 듯한 택시의 사진을 비췄다.
“앞에 버스가 있습니다.”
“네!”
“그리고 옆에는 어떻죠?”
“택시가 지나가고 있습니다!”
현우의 짧은 설명에 은지가 씩씩하게 답했다.
“자, 질문. 은지 씨는 여기서 어떻게 해야 할까요?”
“어떻, 어, 어, 그, 버스 뒤에 멈춰요!”
“가장 조심해야 할 점은?”
“어, 그, 그그, 그!”
“3.”
“그!”
“2.”
“아, 알았는데!”
“1.”
“아! 승객! 그, 손님, 아니, 보행자 조심!”
“맞습니다. 내리는 보행자가 있을 수 있으니 경계하며 버스 뒤에 멈춰 선 후 이동하는 편이 좋죠.”
“급하면요?”
“급할 땐 승객이 튀어나오는지를 경계하며 택시가 지나간 후에 노선을 바꾸셔야겠죠. 요지는 보행자 주의입니다.”
“네!”
처음엔 솔직히 기본적인 것만 알면 점수는 나오니까, 그냥 보러 가 볼 생각이었다.
「“손 잡고 건너기?”」
은지가 어린이 보호구역 표지판도 못 알아볼 정도로 심각하다는 걸 알기 전까지는 그랬다.
「“클러치를 밟고 액셀을 살살 밟으면서 일정 속력에 다다랐을 때 기어를 교체……”」
표지판은 그렇게 모르면서 어떻게 차에 대해서는 잘 아는 건지.
은호와 박 대표와 현우, 심지어 슬기까지도 그런 은지에게 의문을 가졌다.
“저 레이싱 게임 좋아하거든요.”
“……그랬어?”
은호는 당황스러운 눈으로 은지를 보며 물었다.
“응. 그래서 스승님 스튜디오 가는 길에 오래된 오락실 하나 있는데 거기 레이싱 게임 하러 종종 들렀어. 사람 없을 때.”
그래서 이런저런 것들에 대해 알아본 적이 있다며.
네 사람의 궁금증은 은지의 대답을 듣고 풀렸다.
한편 은호는 처음 듣는다는 반응에 은지가 픽 웃음을 터뜨렸다.
“그러게, 동생한테 관심 좀 가지셔야지.”
“그건 좀 아닌 듯. 너도 나한테 관심 없는 거 마찬가지잖아.”
“음, 그래. 그건 인정.”
두 사람의 태연한 대화에 가만히 지켜보던 박 대표와 슬기와 현우가 웃었다.
그러던 박 대표는 슬기와 현우를 돌아봤다.
“은지 가르쳐 줄 사람.”
슬기와 현우는 은근슬쩍 눈을 돌렸다.
“보너스는 물론, 강의비까지 두둑하게 챙겨 줄게.”
“제가 하겠습니다.”
슬기가 놀라는 그때, 현우가 평소에는 볼 수 없는 재빠른 속도로 손을 들었다.
“……너, 뭐 돈 급하니?”
박 대표는 어지간히 놀란 듯 그렇게 물었지만, 현우는 평소와 같은 덤덤한 얼굴로 고개를 저었다.
“통장에 많이 쌓아 둬서 나쁠 건 없는 게 돈이니까요.”
그렇게 시작됐던 수업이었다.
본격적인 촬영은 필기시험 날로.
학원을 가지 않은 만큼 교통안전 교육을 한 시간 동안 받게 됐다.
은지가 공부하는 모습은 박 대표가 따로 촬영했던 영상으로 대체됐다.
“다녀오겠습니다!”
은지는 손을 흔들며 시험장 안으로 향했다.
그리고 약 한 시간이 조금 넘는 시간이 지난 무렵.
멀리 건물 안에서 왠지 자신감 넘치는 걸음걸이로 나오는 은지.
은지를 기다리며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마시던 은호는 당당한 은지의 모습이 거슬리는 듯 다른 곳으로 눈을 돌렸다.
“이~은~호~.”
걸음걸이만큼이나 부르는 말투도 왠지 신경 쓰였다.
그때, 이번 운전면허 취득의 스승 역할을 맡았던 현우가 다가온 은지에게 물었다.
“몇 점이었습니까.”
“히히. 백 점 만점……!”
여기까지 말했을 때.
현우는 ‘네? 잘 못 들었습니다?’라는 얼굴을, 은호는 ‘그럴 리 없다’라는 확신을 가진 얼굴이었다.
“아니, 그렇게까지 못 믿을 말이야?”
“어.”
“네.”
은호와 현우의 빠른 대답에 은지의 입이 댓 발 튀어나왔다.
“83점이야…….”
“합격이긴 하네요.”
“푸핫!”
은지가 솔직하게 받은 점수를 이야기하자, 은호가 소리 내 웃으며 말했다.
“그렇지. 그래야지. 이은지 넌 공부 머리는 아니지.”
“이은호 말하는 거 재수 없네. 그럼 오빤 몇 점인데!”
“응. 적어도 너보단 높았어.”
“몇이냐고!”
“너보다 높았다고.”
“그러니까 몇이시냐고요.”
은호는 은지가 쏘아보는 시선을 피하며 작은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86인가, 88인가…….”
점수를 들은 은지의 첫 마디.
“……장난 똥 때리냐.”
“드럽게 똥을 왜 때리냐.”
“니나 나나 도찐개찐(도긴개긴)이잖아. 뭘 비웃어! 지도 똑같이 멍청하면서!”
“적어도 너보단 높거든!”
투덕거림이 심화되기 전, 은호와 은지 사이를 현우가 가르며 말했다.
“저보다 낮으면 두 분 다 조용하기.”
“매니저 오빠 몇 점이었는데요?”
현우는 살짝 입꼬리를 올리며 답했다.
“만점입니다.”
“…….”
“…….”
은호와 은지는 입을 닫았다.
시험을 마친 뒤, 은호와 은지는 현우가 운전하는 차를 타고 다시 사옥으로 향했다.
한참을 달리던 현우는 문득 궁금해진 듯 정면을 주시한 채 물었다.
“은지랑 은호는…….”
“네?”
힐끔 백미러로 확인하자, 꾸벅꾸벅 졸고 있는 은지와 멍하니 창밖을 보고 있는 은호.
대답은 은호의 목소리였다.
“두 사람, 체인지 파트너 출연할 때 추리하는 거 보니까 공부 잘할 것 같았는데.”
“그거 놀리는 거죠.”
“하하, 아니야.”
은호가 묻자, 현우는 잠시 당황하다 웃으며 말했다.
진심으로 그렇게 물은 건 아니었는지, 은호는 장난기 어린 웃음을 띠며 창밖을 돌아본 채 입을 열었다.
“눈치를 많이 봐서, 눈치로 먹고 살아온 거였죠. 외우는 머리는 없어요.”
“음, 외우는 머리가 없다기엔 가사나 안무는 잘 외우지 않나?”
“그건 뭐랄까. ‘이해’ 쪽에 가까운 거죠. 예를 들어, 음. 아, 달을 표현했다 하면 ‘Red’에서 해가 지고 달이 떠오르는 부분 있잖아요.”
“아, 응.”
“그때, 머리 위로 손을 뻗어서 달이 떠오르는 걸 형상화한 느낌이거든요. 그런 걸 보통 외운다기보단 ‘익히다’에 가깝죠. 몸이 기억하게 만드는 거니까.”
“아하. 그런데, ‘이해’가 추리할 때도 통해?”
“그건 이해해서 굴린다고 해야 하죠.”
“이해해서 굴린다?”
“네. 제가 파악한 그 사람의 성향, 성격, 습관, 버릇 같은 게 있잖아요.”
“그렇지.”
“그럼 제 상상 속 필드에 그 정보들이 반영된 그 사람을 형상화한 인형을 놓아 두는 거예요.”
“인형…….”
“AI를 만드는 거죠.”
“아아.”
“그리고 파악한 자료를 바탕으로 그 구상되는 이야기를 따라가면 먼저 결론이 보이는데, 그게 잘 맞아떨어져서……. 이게 이제 형님의 눈에는 잘하는 것처럼 보이는 거 아닐까요.”
은호는 창에서 눈을 떼고 현우의 뒷머리를 보며 답했다.
운전석 뒷좌석인 탓에 어쩔 수가 없었다.
은호의 이야기를 들은 현우는 짧은 감탄을 흘리며 말했다.
“신기하네.”
“그래요?”
“응. 사람을 그렇게 구체적으로 파악하는 게 쉬운 일은 아니니까.”
“하하.”
웃던 은호의 표정이 창밖을 돌아보며 냉랭하게 바뀌었다.
“사람을 못 믿으면 경계가 심해져서 파악하고 싶지 않아도 파악하게 되고, 그럴 리 없다고 믿고 싶어도 결국은 의심하는 부분이 맞아떨어지더라고요.”
“…….”
“항상 의심하고 사는 건 너무 피곤한 짓인데, 자꾸 나쁜 것만 생각하면 오히려 사소한 좋은 일에 엄청 기쁘고, 한편으로는 그래서 사람한테 상처를 덜 받아서…….”
은호가 작게 중얼거린 탓일까.
정작 현우는 이야기를 듣지 못한 듯 보였다.
하지만 은호는 딱히 들으라고 한 말은 아니었는지 묵묵히 창밖을 돌아보며 마저 말을 이었다.
“그렇게 살아남은 거고, 살아남는 거죠…….”
* * *
첫 방송은 은지의 면허 취득보다는 집 소개와 일상에 초점이 맞춰졌다.
덕분에 가장 큰 일화 중 하나였던 연탄이가 카메라를 다 떼어 버리는 것도 나가게 됐다.
그리고 E-FAN은 전혀 몰랐던 은호와 은지의 반려동물 연탄이 이야기로 폭발했다.
카메라를 건드는 과정에서 드러난 검은 털 틈에 눈에 띄는 분홍색 발바닥 때문이 큰 것 같았다.
[젤리… 젤리를 보자!!!!]
└연탄이 ㅠㅠㅠㅠㅠㅠㅠㅠ
└핑크핑크핑크핑크(도배 중)…….
[연탄이 왜 은호랑 은지랑 닮았냨ㅋㅋㅋㅋ]
└성질 보자마자 지랑이 애들인 거 딱 보임ㅋㅋㅋㅋ
└새까만 연탄이 ㅠㅠㅠ 귀여워어어 나 검은 고양이 싫어했는데 오늘부터 최애 색이다
광적인 반응이 있는 한편.
은호는 인정하고 싶지 않았지만, 연탄이의 성격이 E-UNG와 매우 닮았다는 이야기도 많았다.
한편, 촬영 과정에서 자연히 은호와 은지의 집 전체가 노출되었는데, 박 대표가 미리 기숙사에 없앴던 대문을 다시 달고, CCTV를 추가로 설치하고, 담벼락에 안전망을 추가했기에 별다른 문제는 없었다.
[질문, 예전에 있던 오튜브 영상 중에 옥탑방이랑 장면이랑 1층 녹음실로 갈 때 계단 장면 나온 적 있나?]
└없었을걸?
└아 근데 대문 없을 때 앞에서 눈싸움한 적은 있다
└그거 회사 사옥 아니었어? 지금 주소 바뀌었잖아
└ㅇㅇ 거기가 집이기도 한 거지 그때도 2층에 집 있었으니까
└아하 이해. 알려 줘서 고마워!
예전부터 오튜브나 NRY 엔터테인먼트의 구사옥 시절부터 알던 팬들은 대부분 ‘오! 전체적으로 이렇게 생긴 곳에서 지내고 있었구나’ 정도의 반응이 많았다.
하지만 사옥이 바뀐 후 유입된 이퍼들은 여러모로 혼란스러운 듯했다.
[오늘 등본상 혈육 본 이퍼들 모여 봐 ‘그거’ 나만 그랬어?]
└‘그거’ㅋㅋㅋㅋㅋㅋㅋㅋ
└제목 보자마자 뭐 말하는지 알았다 ㅋㅋㅋㅋ
└너도?
└너도?
└나도 ㅋㅋㅋㅋ
[<후기> 등본상 혈육 1화
되게 멀리 있는 존재인 줄 알았는데 갑자기 엄청 가까워진 것 같다]
└이고 ㅇㅈ
└ㄹㅇ 겁나 멋있는 언니 오빠에서 갑자기 동네에서 얼굴이 제일 잘난ㅋㅋㅋㅋ
└걍 다 좋아 ㅠ
└ㅋㅋㅋㅋㅋㅋㅋㅋ
[나 등혈에서 익숙한 옥탑방 갈색 문 보자마자 뭔가 있잖아 그 나쁜 의미는 아니고 예상치 못한ㅋㅋㅋㅋㅋ 알지?]
└초기 이퍼들 아니면 다들 놀랐을 걸 오튜브 옛날 영상까지 다 찾아본 팬이면 알았을 듯
[오튜브에서 집 나왔었다는 거 그거 제목이 뭐예요? 암만 뒤져도 안 나와서 ㅠ]
└ㅇ? 어 뭐지 링크 찍으려고 했는데 이거 비공개 영상 돼 있어
└아 위치 보여서 영상 내렸나 보다 ㅠ
구사옥에서 NEY 엔터테인먼트가 신사옥으로 이동한 이후.
박 대표가 은호와 은지의 인기가 높아진 만큼 안전상 집이 보이는 영상들을 대부분 비공개 처리를 했다.
하지만 그게 오히려 새로 유입된 E%들과 기억에만 의존하는 E%들에게는 혼란을 주는 모양이었다.
[등혈(등본상 혈육) 보고 나 좀 충격 나쁜 의미는 아니고 그냥 예상치 못했다는 느낌이었어요…]
└무슨 느낌인지 ㅇㅎㅋㅋㅋㅋ지랑이 둘 다 생긴 게 좀 고급지잖아요 ㅋㅋ
└ㅇㅈ
[겉만 보고 당연히 아파트에서 살 줄 알았지 그런 옥탑방은 예상 못 했음]
└근데 또 녹음실 보면 낡았다고 하기에는 애매함 집은 이뻐서
└오 맞아. 외부 담벼락 화이트톤 하니까 옛날 집 안 같아 보이고
└은호 방 꽃무늬 벽지는?
└고건 쫌… 으음; ㅋㅋㅋ
은호와 은지에게는 평범한 일상이었지만, E%들과 팬이 아닌 시청자들한테도 여러모로 놀라운 일이었는지, 갈색 알루미늄 2층 옥탑방은 여러모로 큰 관심을 모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