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매는 비즈니스로 일합니다 (187)
은호는 질문하는 은지를 가만히 바라봤다.
그러다 턱을 만지며 고민에 빠졌다.
“야.”
“응.”
“기왕이면 2종 해라.”
은지의 눈썹이 비틀렸다.
딱 집어 2종?
왠지 수상하다.
“2종? 왜?”
은지가 의심하며 묻자, 은호는 은근슬쩍 시선을 돌리며 답했다.
“1종 따서 뭐, 너 트럭 몰 것도 아니잖아.”
은호는 은지가 2종 오토를 취득하길 바랐다.
나름의 이유가 있었다.
그러나 은호는 자신이 한 회유로 인해 은지의 마음에 불을 지피게 될지 예상하지 못했다.
은지의 눈이 반짝였다.
“트럭……!”
트럭 이야기가 나온 순간.
이미 은지의 마음은 확신이 선 것 같았다.
“트럭 좋다!”
갑자기 무슨 상상을 한 건지, 은지가 흥분하며 소리쳤다.
“1종이다!”
“……1종 따게?”
“응!”
“왜?”
“멋있잖아! 여자라면 트럭 정도는 몰아 줘야지!”
“…….”
이게 아닌데.
은호의 표정을 본 은지는 환하게 웃으며 물었다.
“무슨 꿍꿍이 중?”
“아무것도 없는데.”
“아무것도 아닌 게 아닌데?”
“기왕이면 2종 오토로 따길 바랐지. 어차피 수동으로 몰 것도 아니잖아.”
“몰 줄 알면 좋지. 그리고 둘 중에 솔직히 까리한 건 1종이잖아. 수동이면 클러치 빡 해서 빡!”
얘 운전 처음 아닌가?
은지가 흉내를 내는 자세에서 의외로 기어와 클러치 위치가 정확했다.
“누가 운전을 빡빡거리면서 하냐?”
“내가 빡빡거리면서 할 거거든. 그리고 수동이 더 재미있대.”
“재미 따지지 말고 그냥 2종 하지.”
“아, 싫어!”
“요즘 다 자동으로 나오는데 굳이 멋있다고 수동 하려고?”
“당연하지!”
은호는 이마를 짚으며 한숨을 흘렸다.
“야, 그냥 2종 해.”
“싫어! 아까부터 왜 이― 아? 아하?”
은지가 음흉하게 웃으며 킬킬거리자, 은호는 무언가 찔리는 게 있는지 눈을 돌렸다.
“이은호.”
“뭐.”
“너 몇 종 땄어,”
“…….”
“와―. 이은호 본인이 2종 땄다고 동생한테 밀리기 싫어서! 와……!”
“아, 뭐!”
유치할 수도 있지만, 사실이었다.
은지의 1종 취득을 반대한 이유는, 유치한 걸 알고도 있지만…….
작은 자존심이었다.
결국 은지는 은호의 반대는 무시하고 1종 보통으로 결정을 내렸다.
“매니저 오빠.”
“네.”
“혹시 운전할 때 조심해야 할 점? 혹시 그런 거 알려 주실 거 있어요?”
시야를 넓게 봐라.
정면을 잘 봐라.
은지는 이런 조언을 받기 위해 현우를 찾았다.
현우는 질문한 은지를 덤덤하게 바라보다 천천히 입을 열었다.
“도로 위에서는…….”
“네!”
“나 빼고 다 미친놈들이라고 생각하십시오.”
“에?”
은지가 갸웃거리고 있을 때, 현우는 유유히 업무 보고를 위해 사라졌다.
“나 빼고 다 미친놈……?”
은지는 그 말을 되새기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 * *
[내가 본 게 진심 시롸?]
└롸?
└시롸 > 실화
└그걸 몰라서 그렇게 썼겠냐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빛창석 대표님 아내분이 애들 뮤비 감독님이래]
└헐 ㄹㅇ?
└능력자끼리 만났네 ㄷ
└뮤비 어떤 거?
└해가 & 이 길 위랑 세데세타(Same day, Same time), 레드?내가 알기로는 그럼
└그냥 다 했는데? 헐
└무쳤다ㄷㄷ
팬층이 커지면서 일일이 문자에 답을 하기가 힘들어진 만큼, 팬들에게는 아쉬운 이야기였지만 E-FAN은 은호와 은지를 위한 단체 메시지를 보내고, 개인의 답을 받는 기능을 업데이트했다.
또한 선택적으로 은호와 은지가 개개인에게 답을 할 수 있도록 구현되었다.
물론 거기에는 ‘EG 포인트’가 필요하다.
포인트는 굿즈를 하나 이상 구매하거나 15일 이상 꼬박꼬박 애플리케이션에 접속해 출석만 해도 웬만한 활동을 무리 없이 할 수 있었다.
[포션 유입인데 이팬 어플이 처음이라서 혹시 여기 뭐 해야 하는 거 있나요.]
└없어 그냥 타카랑은 차원이 다른 빛창석의 배려를 느끼면서 편하게 덕질해
└ㅋㅋㅋㅋㅋㅋㅋ빛창석교냐고
└포션이들 환영해 *(^0^)*
└이름 앞에 병아리가 EG 마크로 바뀔 때까지~~
└어 뭐야 이런 게 있었네 ㅋㅋ
[지금까지 이퍼들 이렇게 편하게 덕질한 거?]
└(코쓱)
└그리고 앞으로 너도 그렇게 되겠지
└ㅋㅋㅋㅋㅋ
그동안 E-FAN은 조금 더 시스템이 확장되며 이후 다른 기획사에서의 유입도 생각한 듯, ‘NRY’란 아래 하위 카테고리로 ‘E-UNG’, ‘TOXIN’란이 새로 생기게 됐다.
그러면서 소속사별, 통합 게시판이 새로 개설되면서 톡신의 팬들과 이응의 팬들이 한곳에서 대화를 나누는 것도 가능해졌다.
[예능 같은 곳에 애들 좀 나오게 해 달라 했더니 프로그램 하나를 만들어 버리네ㅋㅋㅋㅋ]
└진짴ㅋㅋㅋㅋ 창석 씨 당신이 최고야 ㅠ
└감독님 우리 은지 잘 부탁드려요 ㅠㅠㅠㅠ
└ㅋㅋㅋㅋㅋㅋㅋㅋ
└은지가 입을 열 때마다 E%들 가슴이 철렁 ㅋㅋㅋㅋㅋ
└오히려 좋아
└거친 언니 너무 조아 ㅋㅋㄱㅋ
└흔들다리 효과냐고 ㅋㅋㅋ
[빛창석 당신이 최고야 ㅠㅠㅠ]
└얘들아 NRY에 뼈 묻어 ㅠㅠㅠ
└ㄹㅇ ㅠㅠㅠ
[아 프로그램 생겼다길래 궁금해서 공지 사항 봤다가 제목 보고 빵 터졌다ㅋㅋㅋㅋㅋ]
└어 뭐얔ㅋㅋ 나도 이제 확인함ㅋㅋ 저거 누가 낸 아이디어냐 ㅋㅋ
└ㅋㅋㅋㅋㅋㅋㅋㅋ
└찰떡이긴 ㅎ ㅏ넼ㅋㅋㅋㅋ
* * *
프로그램명은 ‘등본상 혈육’으로 결정됐다.
「연예계 매운맛 친남매 아이돌로 알려진 ‘E-UNG’ 그룹의 이은호, 이은지.
그들이 말하는 무대 뒤 특별하지 않은 비하인드 리얼리티 일상」
당연한 말이지만 NRY 엔터테인먼트의 지원이 많이 들어간 방송이었다.
짬짬이 오튜브에서도, tvH 채널에도 방영된 짧은 영상들의 홍보 효과는 확실했다.
관심을 끈 장면 중 하나는 은호, 은지와 톡신 멤버들이 모여 회의를 하는 장면.
실제로는 ‘더운 오후’를 녹음하던 날 촬영한 영상일 뿐이었지만, 지금껏 공개된 적 없던, 비하인드 북으로 제작된 영상들을 맛보기로 내보낸 것이다.
게다가 톡신과 은호와 은지는 사이가 가까운 편이었다.
실제로 오현이 그림을 새로 샀다며 단톡방에 자랑한 적이 있었다.
[오! 외계인이 똥 싸는 거 같당]
한편 은지는 그림 사진을 보며 눈에 보이는 대로 그렇게 말을 한 적이 있었다.
오현이 예술적 가치를 설명하기 위해 최선을 다했지만, 은지의 미적지근한 대답에 진심으로 토라졌었다.
이후에 달래기도 했다.
그 외에도 서승연이 와인 먹고 취한 날.
[잔 속 붉은색이 꼭 사랑에 빠지고 싶은 내 마음 같아]라는 (흑)역사적인 톡을 남기는 등 단순한 가요계 선후배 관계를 넘어, 가족처럼 가까운 사이가 되었다.
이번에 방영될 ‘등본상 혈육’에서도 자연히 출연은 본의 아니게 당연한 일이었다.
은호가 그래도 혹여나 하는 마음에 따로 지예찬에게 물었다.
지예찬은 물론, 톡신 멤버들은 일제히 “이용해, 전에도 우리 이용하라고 했었잖아.”라며 손쉽게 허락을 내어 줬다.
촬영은 두 번의 회의를 더 거친 이후부터 진행하게 됐다.
“카메라는 여기랑 여기 방향에 있으니…….”
리얼리티라는 이름을 단 만큼 집 안 곳곳에 카메라가 설치됐다.
하지만 별도로 은지의 방에 설치된 카메라는 오래 남아 있지 못하고 빠르게 철수해야만 했다.
“누나 괜찮다니깐, 응?”
“샤아아악!”
범인은 연탄이었다.
연탄은 은지의 방 안에 설치된 카메라들이 불쾌했는지.
대체 어떻게 찾았나 싶을 정도로 곳곳에 숨겨 둔 카메라를 분홍색 발바닥으로 팍팍 내려쳤다.
카메라가 바닥에 떨어진 이후에도 신경질적인 발길질은 멈출 생각이 없어 보였다.
이후 카메라맨이 직접 들어가 있는 방법을 생각해 봤으나, 좋은 방법은 아니었다.
“으아!”
“연탄아!”
“은지 씨, 살려 주세요!”
“샤악!”
팍팍팍팍팍.
연탄의 매서운 발길질이 은지에게 연행되는 동안에도 계속됐다.
심지어는 카메라맨의 옷을 스크래쳐로 사용하는 등, 직접적인 대상이 있으니 더하면 더했지…….
‘이걸 덕분이라고 해야 하나…….’
그렇게 연탄의 신경질 덕에 집에는 화장실과 함께 은지의 방도 카메라를 피할 수 있는 하나의 안전 구역이 됐다.
“정신이 쏙 빠지네.”
연탄과 얽힌 헤프닝 하나가 마무리된 후, 은지는 난감한 한숨을 흘리며 천천히 나갈 채비를 하기 시작했다.
“어디 나가냐?”
“어.”
“어디?”
“스승님 스튜디오에서 만질 거 있어서.”
“……또 나와?”
은호가 살짝 질겁하며 묻자, 은지는 그 표정이 재미있는지 웃으며 답했다.
“어. 또 나와. 그리고 세 곡이야.”
“야, 안 되겠다.”
“뭐가?”
“나도 진수 작곡가님한테 배울 테니까, 공장장 너도 가사 써.”
“공장장이라니, 하하. 아무튼 싫음. 내가 가사 쪽으로는 재능이 없어서~.”
“누군 있어서 머리 쥐어짜냐.”
“몰랑.”
은지는 양 귀를 틀어막은 뒤, ‘안 들린다~’를 시전하며 도망치듯 나가 버렸다.
“저거 저거…….”
시끄럽게 닫힌 현관문을 황망하게 바라보던 은호는 한숨을 내쉬며 매트에 누웠다.
그것도 잠시.
은호는 누워 있던 매트에서 일어나 카메라 앞에서 손뼉을 치며 무언의 신호를 보였다.
이후, 은호는 카라에 끼워 둔 마이크를 제거했다.
마이크까지 제거를 마친 은호는 천천히 몸을 일으키더니 곧장 은지의 방으로 향했다.
문을 열자, 방송이라고 깨끗하게 정리된 은지의 방.
안에는 캣 타워 하나와 전자 피아노, 노트북이 올려져 있는 책상, 이불이 곱게 개어져 있는 매트가 놓여 있었다.
캣 타워는 당연히 연탄의 집이자 놀이터였다.
은호는 꼭대기 층을 바라봤다.
이름 그대로 동그랗게 말려 있는 연탄이 그곳에 있었다.
“연탄.”
“…….”
“오늘 왜 이렇게 뿔이 났냐.”
연탄은 은호의 목소리에 천천히 샛노란 눈을 뜨며 답했다.
『……저 까만 것들.』
“카메라?”
『몰라. 여하튼 저것들을 왜 내 구역에 들여야 하냐고.』
“이은지가 카메라가 뭔지 설명 안 해 줬냐.”
『해 줬어. 찍고 기억하는 물건이라며, 그걸 다른 여러 명이 돌려보는 거고.』
“잘 아네. 그럼 우리 직업이 뭔지도 알잖아.”
『그것도 알아. 니들은 그렇게 드러내고 사는 게 맞으니까.』
“뭔 점쟁이처럼 말하네. 아무튼 그걸 알면서 왜 그렇게 난리 친 건데?”
『당연히, 저것들이 있으면 내가 편하게…….』
“편하게? 뭐.”
『몰라. 나가.』
“왜 말을 하다 말아.”
『아, 아!』
“야야, 큰 소리 내면 다 찍힌다.”
“니아아옹.”
연탄은 신경질적인 울음소리로 언어를 바꾸며 은호에게서 등을 돌렸다.
폴짝.
캣 타워에서 내려간 연탄이 향한 곳은 피아노 아래에 놓인 한 상자 속이었다.
더 이야기하고 싶지 않다는 의미였다.
은호는 가만히 그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다 읊조렸다.
“……상자 터지겠다.”
은호의 말대로.
연탄이 들어간 상자는 곧 터질 것처럼 까만 엉덩이가 꽉 끼었지만, 연탄은 그건 상관없다는 듯.
점점 더 깊숙하게 그림자에 섞여 들었다.
‘…….’
은호는 그 모습을 가만히 바라보다 못 말린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부탁대로 은지의 방을 나왔다.
다시 제 방으로 돌아온 은호는 카메라를 보며 손뼉을 쳤다.
손뼉은 감독과 미리 이야기를 나눠 뒀던 편집을 요청하는 신호였다.
은호는 다시 마이크를 착용한 후, 매트에 누워 검은 가사 노트를 꺼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