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매는 비즈니스로 일합니다 (186)
운전
“굳이 미운털 박혀 있는데 꼬리 흔들러 갈 필요 있나요.”
은지도 아니고, 은호가 이런 말을 하다니…….
박 대표가 놀란 눈으로 은호를 바라보다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
“그래. 그럴 필요는 없지.”
“…….”
그럴 필요는 없다.
나름대로 긍정적인 대답이었지만 은호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왠지 무언가 남은 듯한 찝찝함을 본능적으로 느낀 탓이었다.
“음, 대표님.”
이럴 때 나서는 건 대부분 은지였다.
이번 역시 은지가 당당히 대놓고 물었다.
“뭐 숨기고 있죠. 뭐예요?”
은지의 질문에 기다렸다는 듯 박 대표의 입가에 감추지 못한 미소가 피어났다.
결혼식 때와는 다른, 굉장히 수상한 미소였다.
“너희 운전면허 있지.”
순간, 은호가 뻣뻣하게 굳었다.
“이은호만 있어요.”
은지는 그런 은호를 이상하게 바라보며 답했다.
“은호야, 운전할 수 있냐.”
“…….”
은호는 조용히 박 대표의 시선을 피했다.
“운전면허 있잖아.”
“……있지. 있긴, 있지.”
어정쩡한 대답에 은지와 박 대표는 이해할 수 없다는 듯 고개가 기울어졌다.
“운전대를 안 잡은 지 몇 년이 넘어서…….”
은호가 기어들어 가는 목소리로 말하자, 박 대표의 미간이 구겨졌다.
“무슨 소리야. 너, 작년이었나, 재작년에 취득했잖아.”
이걸 어떻게 말을 해야 할까.
취득은 그래, 2년 전.
정확히 20살이 되던 해에 취득했다.
하지만 운전대를 안 잡은 진, 곧 10년을 앞두고 있다.
이 말은 즉, 회귀 이전과 이후 모두를 통틀어, 운전면허는 취득했지만 차를 몰아 본 적이 없다는 말이다.
“가, 갑자기 운전면허는 왜요?”
은호는 다급하게 말을 돌렸다.
“너희를 고정으로 프로그램 하나 만들어 보려고.”
“예?”
박 대표는 책상에 턱을 괴며 웃었다.
운전면허가 필요한 이유는 금세 알 수 있었다.
짤랑.
회사 유리문 위에 달린 종소리가 났다.
누군가 회사 안으로 들어왔다는 소리였다.
“어, 왔어.”
은호와 은지는 문을 등지고 있는 탓에 당장에는 누가 들어섰는지 알 수 없었다.
고개를 돌리자, 반가워하는 박 대표와 달리, 은호와 은지는 처음 본 사람이었다.
“아!”
은지가 제 허벅지를 강하게 내려치며 소리쳤다.
“왜?”
“아니, 그! 설마…….”
“뭔데.”
은지는 입을 틀어막더니 이내 진지해진 얼굴로 생각에 잠겼다.
“그, 운전하면서 토크쇼하고 미션하던 프로그램 있잖아…….”
은지가 속닥거리며 이야기하자, 은호는 곰곰이 고민하다 다시 은지를 돌아봤다.
“모르겠는데.”
“아니, 씨. 그럴 거면 왜 생각하는 척한 건데.”
“생각하는 척이 아니라, 내가 TV를 잘 안 보니까 그때 뭐 봤나 싶어서 고민해 본 거지.”
“그거나, 그거나! 아무튼, 그런 프로그램이 있었고, 거기 감독님이실 거야. 그랬던 거 같아.”
“네가 웬일이냐?”
놀리는 건 아니었다.
은지는 사람의 얼굴을 보통 잘 기억하는 편이지만, 자주 본 사람들에 한해서로.
본 지 오래된 사람은 대부분 바로 알아보지는 못했으니까.
고로 이런 경우에는…….
“저 감독님이 자주 고정으로 꽂아주셨거든.”
기억에 남을 만큼 오랜 기간 같이 일한 경우라는 말이었다.
박 대표가 대표실을 나가, 전청윤 PD와 인사를 나누는 동안, 은호는 은지에게 전청윤 PD의 이야기를 들었다.
TV를 많이 봤던 건 아니지만, 도움이 될까 싶어서 어떤 프로그램이 어떤 채널에서 하는지 정도는 조사했던 적이 있다.
몇 없는 기회였던 만큼, 나가서 방송국명을 잘못 말하는 실수는 피하고 싶었으니까.
아무튼 그렇게 은지에게 설명을 듣다 보니, 전청윤 PD와 은지가 함께했던 프로그램들이 대부분 ‘tvH’ 채널에서 진행한 것들이 많았다.
“PD님, CK E&M 소속이신 건가.”
“어? 어. 맞아. 어떻게 알았어?”
“네가 말해 주는 게 전부 ‘tvH’ 채널에서 했던 거잖아.”
“오올.”
‘대단한데~’라는 듯한 은지의 감탄에, 은호가 민망해진 듯 괜히 은지의 머리를 밀어내며 말했다.
“CK E&M에서는 우리한테 호감이 있는 편이니까, 걱정은 덜었네.”
“무슨 걱정?”
“니 주둥이 걱정.”
“내 주둥이가 뭐 어때서!”
“세상 사람들 다 아는데 너만 모르지.”
“뭡.”
은지가 무언가 더 소리치려고 했지만, 은호가 재빠르게 입을 틀어막아 버렸다.
박 대표가 어느새 바깥에서 인사를 마친 듯 전청윤 감독을 대표실로 모셔 왔기 때문이었다.
“처음 뵙겠습니다. 이은호라고 합니다.”
“안, 안녕하세요. 이은지입니다.”
은호가 고개를 숙이며 은지의 머리를 눌렀다.
은지는 당장 은호의 손을 쳐 내고 싶은 마음을 억누르며 은호를 따라 인사를 건넸다.
“하하, 만나서 반갑습니다. 전청윤이라고 합니다.”
“일단 앉아서 이야기하지.”
“그럴까요?”
박 대표의 안내에 전청윤 감독은 박 대표의 건너편에 앉았다.
원래 은호와 은지의 자리였던 탓에, 은호와 은지는 넓은 책상을 빙 둘러 박 대표의 옆자리로 향했다.
자리에 앉아, 간단히 인사를 더 나눴다.
인사라고 해 봐야 오튜브 채널을 잘 보고 있다.
은지의 도움을 받아, PD님께서 제작하신 어떤 프로그램을 잘 봤었다.
입바른 소리가 고작이었지만.
“자, 인사는 이만하면 됐고, 본론으로 가 보자고.”
박 대표의 제안에 전청윤은 마침 원했다는 듯 입을 열었다.
“두 분의 ‘매운맛 남매’라는 캐릭터를 이용해서 프로그램을 제작하고 싶습니다.”
전청윤은 어린 은호와 은지에게 편하게 대할 법도 하지만, 깍듯하게 예의를 갖추며 이야기를 이어 갔다.
“창석 대표님과는 대학 시절부터 알고 지냈던 사이인데…….”
은호와 은지가 받아들이는 걸 걱정한 건지, 그는 박 대표와의 인연이 어디서부터 시작되었는지를 비롯하여 긴 이야기를 이어 갔다.
약 30분간 이어진 이야기에 은지는 꾸벅꾸벅 졸음이 몰려오는 눈꺼풀을 들기 위해 노력했다.
한편, 은호는 전청윤의 정보들을 입력이라도 하듯 머릿속에 기록해 나갔다.
tvH 소속 감독이며, 박 대표와는 대학 시절 선후배 사이로.
지금껏 따로 오가던 연락이 없다가 이번 박 대표와 김철수 PD의 결혼식 날.
두 사람 모두와 인연이 있던 전청윤은 결혼식장에 방문했다.
이후, 은호의 기억이 뚝 잘린 피로연과 뒤풀이 당시 박 대표와 프로그램에 관한 이야기가 오갔으며 여기까지 오게 됐다.
“이번에 어떤 프로그램을 할지 고민하고 있을 때 대표님께서…….”
‘체인지 파트너’ 이후, 전청윤은 때마침 요즘 화젯거리인데 불구하고 별다른 활동이 없는 은호와 은지에게 관심이 갔다.
마침 박 대표의 결혼식에 참석했을 때.
그는 농담처럼 두 사람의 캐릭터를 살린 일상이든 토크든 프로그램을 한번 만들어 보고 싶다는 제안을 했고, 당연히 거절할 줄 알았지만 박 대표가 그거 좋다며 곧장 ‘OK’를 했다.
정리하자면 그런 이야기였다.
「“어떤 분이시냐.”」
「“착해. 순하고, 또…….”」
「“또?”」
「“내가 종종 실수하면 당황하시긴 해도, 방송의 재미로 넘기는? 아무튼 좋은 분이셨어.”」
회귀 전, 그와 여러 프로그램을 함께했다던 은지한테 물어도 딱히 걸리는 것 하나 없이 괜찮은 사람인 것 같아, 은호도 찬성이었다.
게다가 자제했다고는 하나, 당시에도 은지는 거칠었다.
‘그런 이은지랑 여러 프로그램을 하면서 사고 한 번 터지지 않았다는 거니까.’
기왕 방송한다면 이쪽이랑 하는 게 괜찮지 않을까.
‘게다가 CK E&M이니까.’
‘그는 1+1=1’ OST ‘Last day’ 제작 이후 협업을 하는 동안 우리를 좋게 봤던 건지.
TaKa 엔터테인먼트의 공고에 우리를 빠르게 손절하던 다른 방송사와는 다르게 CK E&M은 우리한테 꾸준히 제의를 주던 유일한 방송사였다.
당시엔 다른 계획이 있어 거절했지만…….
“아.”
이야기를 다 들은 직후, 궁금한 부분이 하나 있었다.
“운전면허 이야기는 어쩌다 나온 건가요?”
은호의 질문에 전청윤 감독이 답했다.
“스케줄이 있을 때는 관계가 없지만, 매니저랑 코디도 없는 진짜 일상을 촬영할 때가 있잖아요.”
“네.”
“그때 이동하게 된다면 택시를 탈 수는 없으니 저희 측에서 차량을 대여해 드리려고 했거든요.”
“협찬이라는 말이군요.”
“그렇죠.”
전청윤 감독은 손으로 ‘OK’을 모양을 만들어 보이며 말했다.
그러니까 프로그램 제작 전에 광고를 따 놨고, 광고 조건이 아무래도 출연자가 직접 운전하는 이런 쪽이었나 보다.
운전면허증을 취득한 지 고작 2년.
하지만 내 장롱면허 기간은 회귀 전을 합치면 곧 10년을 앞두고 있다는 게 문제였다.
‘나 지금 주차하는 방법도 다 까먹었다고…….’
이 이야기를 내가 스스로 입 밖으로 꺼낼 수 있을 리가.
그때였다.
“저, 제가 면허 따는 것부터 촬영하는 건 어때요?”
대표님과 감독님의 시선이 단번에 은지를 향했다.
“매니저 오빠 운전하는 모습 볼 때마다 저도 운전하고 싶었거든요. 시간이 없어서 면허를 못 따고 있던 거라…….”
박 대표와 전청윤 감독의 눈에 불이 붙었다.
“그거 좋네.”
“좋습니다!”
괜찮은 아이디어였는지, 두 사람은 한마음이 되어 대답했다.
“은호는…….”
너도 운전 연습 다시 할래?
……라는 의미로 대표님이 이쪽을 돌아봤다.
하지만 나는 대답할 수 없었다.
처음에 운전을 안 했던 건, 도진이 형이 대신 해 줬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금은, 그냥 내가 운전대를 잡을 자신이 없다.
‘…….’
이은지가 사고 난 직후.
도대체 어떻게 사고가 났기에.
어떤 식으로 부딪쳤기에.
왜 이은지가 그렇게 되었던 건지 …….
그걸 두 눈으로 직접 봐야겠다는 욕심에 영상을 재생했다.
대표님은 은지의 차에 차량 내부와 앞뒤를 촬영하는 블랙박스를 달아 뒀었다.
반대에도 불구하고 나는 영상을 확인했고, 영상을 확인한 후 구역질을 쏟아 냈다.
나는 모르겠다.
여전히 차에 오를 때마다 몸은 긴장한다.
‘그나마도 이은지가 옆에 있으니까 타는 거지…….’
그래서 이은지가 대단하고 부러웠다.
정작 사고 당사자인 본인은 운전을 배우겠다고 하는 상황이니까.
‘하여간, 대단해.’
* * *
첫 만남인 만큼 아주 간단한 회의만 거쳤다.
이후 전청윤 감독이 떠나고, 박 대표는 이후 직원들과 회의차 잠시 대표실을 나가 있던 그때.
은지는 상기된 얼굴로 고민에 잠겨 있었다.
그런 은지를 가만히 바라보던 은호가 물었다.
“넌 차 안 무섭냐?”
“왜 무서워?”
이걸 뭐라고 말해야 할까.
은호가 고민하던 그때였다.
“아, 그거 때문에 죽었으니까?”
“……어.”
죽었다는 단어에 눈에 띄게 은호의 표정이 굳어졌지만, 은지는 괜찮다는 듯 손사래를 치며 말을 이었다.
“그땐 아무것도 모르고 죽었으니까. 적을 알고 나를 알면 백전백승이라잖아.”
“갑자기 그 말이 왜 나와?”
“아무것도 모를 땐 모르니까 그냥 저세상행이었잖아.”
“…….”
“그러니까 적어도 내가 배우면 내가 나를 살릴 수 있지 않을까 싶은 거지.”
“…….”
하하.
은호는 놀란 눈을 한 채 은지를 빤히 바라보다, 웃음을 터뜨렸다.
이걸, 역시 이은지라고 해야 할까.
“야, 멘탈 하나는 진짜, 네가 나보다 훨씬 낫다.”
“그걸 이제 알았냐?”
은지의 대답에 은호가 언제 웃었냐는 듯 정색하자, 은지도 익숙하다는 듯 태연하게 말을 돌렸다.
“그래서 어떻게 생각해?”
“뭘.”
“나 1종 딸까, 2종 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