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남매는 비즈니스로 일합니다-185화 (185/309)

남매는 비즈니스로 일합니다 (185)

“Will You Marry Me?”

She asked

“Yes.”

He answered

그녀가 물었고, 그가 답했다.

은호가 희미한 리듬을 타며 평소 간드러지게 노래할 때와 다르게 낮은 목소리로 나긋하게 읊었다.

짧은 내레이션을 끝으로, 은지는 연주하던 곡의 박자를 바꿨다.

본격적인 축가의 시작이었다.

먼 길 돌아 만난 두 사람

오늘은 영원할

긴 여행을 시작하는 날이에요

간지러운 가사 탓도 있고, 개인적으로 다른 이유도 있어 이번 축가에서 은지는 은호만 노래하길 원했다.

그 결과, 이번 축가에서 은지는 연주와 허밍 정도만 담당했고, 노래는 은호가 전부 맡게 됐다.

특별한 두 사람이 하나 되는 날

날씨도 축복하는 좋은 날이에요

하늘은 맑은가요

두 사람의 미래처럼 밝은가요

은지가 작곡한 곡에는 항상 특유의 슬픔이 어려 있었다.

희망이라는 것을 가르친 그가

이렇게 인연을 마주했죠

하지만 오늘은 평소와 다르게 은호만 노래를 부르기 때문인지, 그 슬픔조차 창석과 철수의 미래를 응원하는 기도인 것 같았다.

좋은 날이에요

난 그대에게 감정을 배웠어요

우연이 인연으로

지금껏 눈물 한 번 없었던 창석은 이후 이어진 은호의 노래에 급하게 고개를 쳐들었다.

먼 길 돌아 만난 두 사람

오늘이 하나 되는 날이에요

피가 섞인 자식은 아니지만…….

비록 갓난아기였을 때부터 기르진 않았지만…….

그럼에도 박창석에게 은호와 은지는 아들이고 딸이었다.

하늘이 어둡나요

쌀쌀한 바람들이 할퀴나요

기른 자식들.

한 번만 더 기회를 얻어 보려 노력했던, 불도저처럼 ‘성당에 딸린 보육원’이라는 힌트 하나만으로 이 녀석들을 찾기 위해 고군분투했던 나날들.

길고양이 같던 둘에게 고기를 미끼로 내걸었던 그때까지.

행복이라는 것은 이렇듯

끝내 이렇게 인연을 찾아냈죠

창석은 곁을 돌아봤다.

철수는 리시안셔스, 은방울꽃, 목화, 세 가지의 하얀 꽃이 섞인 부케 뒤로 얼굴을 가린 채 맺힌 눈물을 닦아 내며 축가를 감상하고 있었다.

철수의 부케 속 리시안셔스는 창석의 가슴 한편 부토니에와 부모님의 코르사주에도 한 송이씩 달려 있었다.

좋은 날이에요

그래. 좋은 날이다.

은호와 은지의 일이 아니었다면, 철수 PD와도 연락할 일은 없었다.

TaKa 엔터테인먼트를 떠나 톡신과 헤어지면서 주변의 모든 관계를 정리했었으니까.

은호와 은지를 위해 다시 바뀐 연락처로 한 사람 한 사람씩 모았다.

그 결과가 바로 지금.

평생 혼자 살 생각까지 했던 자신에게.

생전 처음으로 열렬하게 고백해 준 여자가 생겼다.

그리고 그녀와 이 자리에 섰다.

난 당신에게 평온을 배웠어요

은호는 웃으며 노래를 이어 갔다.

한편, 은지는 점점 감정이 차오르는지, 허밍조차 더 이어 가지 못했다.

인연이 운명으로

먼 길 돌아 만난 두 사람

드디어 하나 되는 날이네요

은호가 노래를 맡은 가장 큰 이유는 아무래도 이것 때문이었다.

연습하던 당시에도 울컥울컥했고, 결혼식장에서까지 실수하고 싶지 않았다.

완벽하게 축하해 주고 싶었으니까.

그래서 은지는 눈물을 쏟으면서도 기타 연주만큼은 실수 없이 해내려 노력하고 있었다.

바람은 걱정하지 말아요

추우니 떨어지지 말라

하늘도 응원하니

그때였다.

순자는 옆에서 청룡이 흐느끼는 소리가 신경 쓰였는지, 팔꿈치로 옆구리를 찌르며 핀잔을 줬다.

“주책이야.”

“그, 흐흑.”

청룡은 나름의 이유가 있었다.

지인들이 아들놈 사업도 성공했겠다 나이도 찼는데 이제 결혼해야 하는 거 아니냐는 말과 함께 자리를 만들어 주겠다느니 하나둘씩 말을 보탤 때.

청룡은 ‘아들놈 인생이니 저 알아서 할 거야. 신경들 꺼.’라며 투덜거렸었다.

아들을 대할 적엔 가장 묵묵했다지만, 청룡은 아버지로서 항상 창석을 응원했다.

혹 비가 와도 두려워 말아요

그대가 흘릴 눈물들

하늘이 모두 흘려 줬으니

앞은 맑은 날이 반길 거예요

가사에 왈칵 터져 버린 듯.

청룡은 오늘 이 자리에서 누구보다 오열하고 있었다.

그간 믿어 온 아들이 과분하리만큼 아리따운 아내와 어여쁜 손주 남매를 데려왔으니…….

‘여한이 없다’라는 말을 이렇게나 이해할 수 있게 될 줄은 몰랐다.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

부부의 인연은 물과 같아

첫 축가도 어느새 끝을 향하고 있었다.

함께 가는 그 길

지금까지와 다를지도 모를

그 길

좋은 날이에요

은호는 창석과 눈을 마주치며 활짝 웃었다.

‘녀석…….’

은호가 이렇게 환하게 웃을 줄 아는 녀석이었구나.

은호의 기분 좋은 미소에 창석도 따라 웃었다.

이젠 혼자가 아니니까

유명한 그 문장처럼

Don't worry, be happy

간드러진 떨림에 하객들마저 일제히 숨을 죽인 채 노래를 감상했다.

be…… happy……

노래가 끝나고, 은호는 긴 한숨을 흘리며 입을 열었다.

“행복하세요, 대표님.”

노래를 부르는 동안의 얇은 고음은 사라지고, 평소의 굵은 목소리로 은호는 짧은 인사를 남겼다.

“고맙다.”

창석은 흰 장갑을 낀 손으로 눈 끝자락에 아슬하게 맺힌 눈물을 훔쳤다.

이후 그 손에 힘을 실어 크게 손뼉을 쳤다.

그런 창석을 따라 하객석에서도 열렬한 박수가 이어졌다.

그때였다.

훌쩍이던 철수도.

눈물이 맺혔던 창석도.

오열하던 청룡도.

아련하게 딸을 바라보던 덕희도.

덤덤히 눈물을 훔치던 순자도.

“겨흐혼 츅흐, 끅, 드려 끅, 여허엉엉…….”

은지의 눈물 콧물 뒤섞인 인사 탓에 한뜻으로 웃음을 터뜨렸다.

은호의 덤덤하고 아련한 분위기의 인사와는 거리감이 큰 탓에 더 크게 다가온 듯했다.

“이사― 큭!”

사회를 맡았던 클라우드 멤버 인혁 역시 차마 이 웃음바다를 피해 갈 순 없었다.

“악!”

그때, 은호는 은지를 토닥이는 척 등을 손바닥으로 내려쳤다.

“으이그.”

“아, 왜 때려!”

“으이그으.”

“아! 그만해!”

“너는―.”

마이크를 이미 헬퍼를 통해 전달한 탓에 은지의 비명과 은호의 잔소리는 하객들의 웃음소리에 묻혀 버렸다.

이후에는 톡신도 나와서 노래를 불렀다.

은호와 은지 때도 휴대폰을 들었던 인원은 많았지만, 톡신이 나오자 안 그래도 많은 인파가 더 앞으로 몰려들었다.

첫 곡에 비해선 상당히 정신없게 두 번째 축가를 끝마친 후, 마지막으로 은호와 은지가 함께 선 세 번째 축가까지 성공적으로 끝냈다.

이후 양가 부모님께 인사를 드리는 시간이 찾아오자, 창석은 덕희 여사의 앞에 넙죽 절까지 하며 “감사합니다!”를 외쳤다.

덕희 여사는 당황하는 것도 잠시.

장난스러운 윽박을 내질렀다.

“내 딸내미 울리기만 해 봐!”

“눈물 한 방울 안 나게! 손에는 휴가 때 바닷물이나 씻을 때 말고는 물 한 번 안 묻히고 살 수 있도록 만들겠습니다!”

덕희 여사의 도발에 창석은 힘 넘치는 인사를 건네며 허리가 접힐 정도로 머리를 숙였다.

이후 화려한 꽃가루들이 휘날리는 허공을 가르며 두 사람은 앞으로 나아갔다.

* * *

집으로 돌아온 저녁.

뒤풀이에서 결국 한잔을 걸친 은호와 은지.

골목에 부는 강한 밤바람을 맞으며 술이 조금 깬 은호는 옆에 비틀거리는 은지보다는 조금 또렷한 눈동자를 하고 있었다.

연회장에서 한복을 입고 돌아다니는 박 대표를 보고 술 한 잔이 들어간 이후로는 싹둑.

아무 기억이 없었다.

‘정신을 차려 보니 골목을 걷고 있다.’

딱 이 문장 같은 상황이었다.

“열쇠가…… 아.”

“야, 야야, 야!”

그때였다.

옆에서 취기에 비틀거리던 은지는 아직 정신이 덜 돌아온 듯, 가방 속 물건을 내던지며 뒤적였다.

은호는 서커스라도 하듯 은지가 던진 물건을 공중에서 재빠르게 낚아챘다.

“아핰핰핰.”

“웃지만 말고 빨리 다시 담아! 왜 물건을 던지냐, 넌.”

“아니이, 열쇠 찾아야 하니까…….”

“대문은 번호키인데 열쇠를 왜 찾냐?”

“엉? 오, 어엉?”

은지가 왜 이런 반응을 하는지, 은호는 알고 있는 듯 여유로운 모양새였다.

“우리 이사한 집 아니야.”

“아? 어라, 뭐지.”

회귀 전, 은지와 마지막으로 살았던 집은 보안이 철저했던 전원주택이었다.

그 집 대문은 열쇠를 사용했어야 했는데, 아무래도 이번에 생긴 대문이 그때와 비슷한 검은색이라 회귀 전과 혼동이 오는 모양이었다.

은호는 은지를 옆으로 밀어내고, 박 대표가 일러 줬던 방법으로 문을 열었다.

들어선 이후로는 익숙한 길이었다.

2층 옥탑방으로 향하는 길.

“이은호.”

“뭐.”

“우리 다음 앨범은 뭐 할까.”

“넌 가끔 되게 뜬금없는 타이밍에 중요한 걸 물어보더라.”

“나잖아.”

“하!”

은호는 어이가 없다는 듯 헛웃음을 터뜨리며 먼저 2층 옥상에 발을 디뎠다.

“다음 앨범, 너 예전에 만들고 싶다던 곡들 있지 않았냐.”

“있었지. 상업적인 느낌이 아니라서 포기한…… 오!”

무슨 좋은 아이디어라도 생긴 건가 싶어서 뒤를 돌아본 그때였다.

“허.”

은호는 황당함에 헛웃음을 터뜨렸다.

“샤라랄랄랄랄라~.”

은지는 결혼식에서 행진할 때 뿌려야 하는 꽃가루를 쓰지 않은 채 잊고 가방에 넣어 둔 듯.

이제 와서 그걸 뿌리며 휘날리는 꽃가루 아래에서 옥상을 빙글빙글 돌아 댔다.

“돌았네, 돌았어.”

“이쁘잖아!”

“너만 빼면 딱 이쁘겠다.”

“X랄 하지 마세요, 진짜!”

“하하핰.”

은호의 도발에 그제야 술기운이 깬 듯 은지의 눈에 생기가 돌았다.

그만큼 쥔 주먹도 강력했다.

“아, 아파!”

다음 앨범에 대한 토론은 새까맣게 잊어버린 채, 은호와 은지는 집 안으로 들이닥쳤다.

“야! 이은지! 꽃가루 다 쓸고 와!”

잠시 후.

갈색 알루미늄 문이 다시 열렸다.

은지는 손에 파란 빗자루와 녹색의 끝이 깨진 쓰레받기를 들고, 흩뿌리고 놀았던 꽃가루를 묵묵히 쓸었다.

다시 돌아온 일상이었다.

* * *

―NRY 엔터테인먼트 대표의 결혼식이 화제…….

―톡신과 최근 화제를 모은 이응까지 축가를 부른 영상…….

―미공개 곡 가제, ‘좋은 날이에요’가 최근 결혼식 축가로…….

NRY 엔터테인먼트에서는 오튜브를 운영하고 있다.

은호와 은지의 일상 채널 하나는 기존의 활동으로 곧 구독자 40만 명을 앞둘 정도로 채널의 크기는 상당한 상황.

그렇기에 이번 축가 영상도 당연하게 오튜브에 업로드되었다.

박 대표와 철수의 철저한 계산 아래에 진행된 일이었다.

이제 부부가 되었기 때문인지, 아니면 애초부터 한마음이었던 건지.

박 대표와 철수 PD는 톡신의 NRY 엔터테인먼트로의 영입이 화제가 된 만큼, 이번 결혼식을 E-UNG의 ‘TIME’ 앨범 홍보의 기회로 이용했다.

이미 은호와 은지는 오튜브에서 많은 일상이 밝혀졌지만, 정작 제대로 된 예능 출연은 <체인지 파트너>가 고작이었다.

이유는 TaKa 엔터테인먼트가 E-UNG의 출연을 막는 공고를 내렸던 그 당시 때문이었다.

암묵적으로 등을 돌렸던 방송국을 향한 소심한 복수?

복수라기엔 NRY 측에도 손해가 있긴 했지만, 괜찮았다.

의외였던 건 팬들의 반응도 상당히 괜찮았다는 것이다.

몇몇 팬들은 아쉬운 목소리를 내긴 했지만, 은지의 말실수 부분이 염려되었던 건 은호와 박 대표뿐만은 아니었는지…….

은지의 성격을 알고 있는 팬들은 하나같이 같은 반응이었다.

<체인지 파트너>에서는 재미있게 편집되어 넘어갔다지만, 다른 곳에서 똑같이 행동하다 뭇매 맞진 않을까.

염려 섞인 걱정들이 쏟아졌다.

그래서 그런지 공중파에서의 활동이 적은 부분에 대해선, 의외로 E%들은 긍정적인 반응이었다.

게다가 ‘적다’고는 하나, <체인지 파트너>와 그 외 화젯거리들이 쏟아지는 덕분에 ‘안’ 나가는 것이지, ‘못’ 나가는 건 아니었다.

「“굳이 미운털 박혀 있는데 꼬리 흔들러 갈 필요 있나요.”」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