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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매는 비즈니스로 일합니다-184화 (184/309)

남매는 비즈니스로 일합니다 (184)

신부 대기실의 불투명한 유리문을 열고 들어선 그 순간.

“와…….”

은지는 양손으로 입을 틀어막은 채 철수 PD의 모습을 눈에 담았다.

긴 레이스 소매의 곳곳에 나비가 수놓아진 머메이드 웨딩드레스.

오늘의 주인공인 김철수가 새하얀 새 둥지 같이 포근해 보이는 의자에 앉아 있었다.

“왔어?”

“어떡해…… PD님, 너무 예뻐요.”

“하하하, 은지씨 왜 울어.”

감동이 과했는지 은지는 그냥 그 모습을 본 순간 울컥거림을 참지 못하고 울음을 터뜨렸다.

“두 사람도 오늘 되게 멋있네.”

철수가 웃자, 은지는 눈물에 화장이 번진 눈가를 긴 손톱으로 긁어 내듯 정리하며 따라 웃었다.

오늘 은호와 은지는 축가를 위해 둘 다 같은 네이비색 정장을 맞춰 입었다.

은호는 평소에도 덤덤해 보이지만 오늘은 앞머리를 깔끔하게 끌어 올린 탓일까.

평소보다 더 차가운 분위기를 띠고 있었다.

한편, 은지는 머리끈에는 정장에 맞춰 검은 장미 핀으로 포인트를 줬다.

오늘은 그저 깔끔하게 정수리에서부터 묶기만 했다.

하지만 머리칼이 워낙 긴 탓일까.

날개뼈를 넘어설 정도로 긴 꼬리가 생겨 있었다.

엄격할 정도로 일자로 쭉 뻗은 꼬리는 슬기가 새벽부터 곱슬기가 있는 은지의 머리를 몇 시간 동안 붙잡은 결과물이었다.

잠깐의 헤프닝이 지나고, 은호와 은지는 김철수의 양쪽에 서며 사진을 남겼다.

[결혼 축하드립니다.]

[대표님이랑 오래오래 행복하세요! 피디님, 엄청 이뻐요 요정 같아!!! ㅠㅠ]

은호와 은지는 철수와 짤막한 인사를 나눈 뒤, 간단히 방명록을 남겼다.

이후 은지는 신랑 신부 행진 때 지인들이 뿌릴 수 있게 놓여 있는 색색의 꽃가루가 담긴 컵도 하나 챙겼다.

그때, 슬슬 하객들이 몰려오는 시간인 듯 신부 대기실의 문이 열리며 우르르 한 무리의 여자들이 들어왔다.

“세상에. 철수야, 너무 예쁘다!”

조용했던 신부 대기실이 순식간에 북적거렸다.

철수 PD의 지인들인 듯, 철수 PD는 쏟아지는 축하 인사에 고맙다는 인사를 하는 데 정신이 없어보였다.

은호와 은지는 바쁜 철수에게 고갯짓으로 먼저 나가 있겠다는 인사를 대신했다.

그렇게 신부 대기실을 빠져나왔을 때였다.

“은호야, 은지야.”

익숙한 목소리에 고개를 돌리자, 이제 막 박 대표와 인사를 끝마친 듯 회색 깔끔한 정장 차림의 지예찬이 있었다.

옆에는 왠지 와이셔츠 단추가 터질 것같이 아슬해 보이는 영희도 함께였다.

“안에 사람 많아?”

“네. 지인분들이 우르르 들어오셔서, 나중에 그분들 나오시면 들어가요.”

“오, 그래야겠다.”

지예찬은 은호와 이야기를 나누다 곁에 있는 은지를 보며 눈이 커졌다.

“와, 은지도 오늘 멋있네.”

“제가 한 멋짐 하죠. 하하하하.”

자찬하는 은지를 보며 은호가 절레절레 고개를 저었다.

“곡은 먼저 보내 뒀어?”

“도착하자마자 현우 형이 전달하겠다고 USB 들고 갔어요.”

“그렇구나.”

“다른 선배님들은 아직 안 오신 건가요?”

“애들, 다 같이 왔는데 지금 팀장님 놀리느라…….”

지예찬이 고갯짓으로 박 대표가 인사 중인 입구 쪽을 가리켰다.

“이야, 팀장님도 꾸미면 신랑 같아지는구나.”

“신랑 같아진다니, 이놈이.”

“아니, 아버지 자리에 계셔야 하는 분이 신랑이시니, 으악. 하하하.”

은호가 목을 빼며 그쪽을 바라보자, 때마침 박 대표가 장난치는 주송민을 쥐어박고 있던 타이밍이었다.

정신없이 시간이 흐르고, 예식이 시작됐다.

사회자는 클라우드 댄스 팀의 김인혁이 맡았다.

양가 어머님들이 입장하고, 딱딱한 분위기 속에서 화촉 점화를 진행하려던 그때였다.

“30대, 40대 딸 아드님 두신 여사님들 맞으십니까? 굉장히 고우신데…….”

김인혁이 긴장된 분위기를 풀기 위해 던진 말에 심순자 여사와 철수의 어머니, 윤덕희 여사는 소녀처럼 까르륵 웃음을 터뜨렸다.

“저희 딸, 앞으로 잘 부탁드려요.”

“부탁할 게 뭐가 있나요. 후후, 저희야말로 늙은 아들놈에게 예쁘고 귀한 따님을 허락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덕분에 한결 풀어져 훈훈한 분위기 속에서 순자와 덕희는 함께 손을 잡고 화촉에 불을 밝혔다.

“평생 로또복 결혼 한 방에 터뜨려 버리신 NRY 엔터테인먼트 대표! 신랑 박창석님 입장!”

“하하하, 감사합니다!”

인혁이 신랑 입장을 외친 그 순간.

창석은 ‘신랑’이라는 낯선 단어에 입가의 웃음을 차마 감추지 못하겠는지, 잇몸이 보일 정도로 환하게 웃으며 별빛 같은 조명이 깔린 화려한 길을 행진했다.

창석은 내내 좌우를 돌아보며 하객들에게 꾸벅 90도 각도로 고개를 숙였다.

“이어서 오늘의 주인공, 신부, 김철수 님! 입장!”

본래 아버지의 손을 잡고 입장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지만, 철수는 홀로 길 위에 섰다.

지인들이나 어른들이 함께 서 주겠다며 이야기도 했었지만, 철수는 모두 거절했다.

「“나한테는 평생 엄마가 엄마이기도 했고 아빠이기도 했어요.”」

「“엄마가 고생한 자리에 굳이 다른 사람들한테 잘 보이기 위해서 누군가를 들러리로 세우고 싶지 않아요.”」

그런 이유에서, 철수는 혼자 서겠다 했다.

하지만 철수는 혼자이기에 더 고고하게 아름다웠다.

“끅…… 윽, 끅.”

“왜 울어, 넌.”

“아니, PD님 너무 멋있고, 또, 끅, 예쁘고, 흑, 아름답고, 허엉…….”

“야, 손 내봐.”

“끅, 손은 왜.”

은지는 훌쩍이면서도 일단 손을 펼쳤다.

우는 은지에게 은호는 외국산 초콜릿 하나를 건넸다.

“먹고 조용해.”

“하하, 뭐야, 이건 또 언제 챙겼어?”

“너 질질 짜는 거 알고 미리 챙겨뒀어.”

“하하.”

은호가 건넨 초콜릿은 신부 대기실에 놓여 있던 간식거리 중 하나였다.

은지는 입안에 초콜릿을 밀어 넣으며 축축해진 눈가를 닦아 냈다.

숍에서 받았던 메이크업은 이미 절반 이상이 눈물에 다 날아가 버린 지 오래였다.

그래도 입안에 달콤한 게 들어가서인지, 은지는 웃으며 결혼식을 마저 지켜봤다.

한편, 은지가 눈물을 그치자 이번엔 철수의 어머니.

윤덕희 여사가 훌쩍이며 손수건으로 눈가를 콕콕 찍어 닦았다.

속상한 마음보다는 당당한 딸이 오늘따라 더 예쁘고 자랑스러운 마음에 터져 나온 눈물이었다.

아름다운 피아노 선율에 맞춰, 헬퍼의 도움을 받으며 철수가 입장했다.

긴 치맛자락과 베일이 바닥에 끌리며 사락거리는 기분 좋은 소리를 냈다.

주인공이라는 단어가 잘 어울리는 그런 자태였다.

푸핫.

길의 중간쯤 도달했을 때였을까.

철수는 한쪽 무릎을 꿇은 채 손을 내밀고 있는 창석을 보며 웃음을 터뜨렸다.

창석의 손 위로 새하얀 레이스 장갑을 낀 철수의 손이 얹어졌다.

창석은 입꼬리가 말려 올라간 채 고개를 들었다.

절대 놓지 않겠다는 듯.

창석이 에스코트하며 철수의 손을 꼭 쥔 채 단상으로 걸어왔다.

“이어서 본격적인 결혼 생활 전, 두 분이 직접 작성하신 혼인 서약서 발표가 있겠습니다.”

창석과 철수는 주례 대신 서약을 발표하는 시간을 만들었다.

서약서의 내용은 평범했다.

“검은 머리가 파 뿌리가 될 때까지 함께하겠습니다. 사랑하겠습니다.”

첫 문장까지는 그랬다.

“남편의 머리가 다 빠져, 중간이 비어 버린 대머리가 된 이후에도, 함께하겠습니다. 사랑하겠습니다.”

하하하하하.

철수가 서약문을 진지하게 읽었지만, 그 내용 탓일까.

식장에선 큰 웃음이 터져 나왔다.

“얼굴로 봐서는 열 살 차이가 아니냐며 자식 같은 녀석들에게 오해를 받기도 했지만, 그래도 함께하겠습니다. 사랑하겠습니다.”

이어서 창석이 읊은 서약에 은호와 은지는 웃음을 참지 못하고 다른 하객들과 함께 웃음을 터뜨렸다.

“프러포즈하던 순간, 박창석의 전용 PD가 되어 주겠다던 약속을 끝까지 지키며 함께하겠습니다. 사랑하겠습니다.”

“연애 기간도 없이 급하게 결혼부터 하지만, 이런 나한테 먼저 다가온 그녀에게 평생 감사한 마음으로 함께하겠습니다. 사랑하겠습니다.”

이후로도 창석과 철수만의 특별한 서약들이 이어졌다.

결혼식장은 처음엔 재미있는 서약문에 웃는 하객들로 시끌벅적했었다.

하지만 곧 먹먹한 문장들이 이어지자 하객들은 하나같이 조용히 두 사람의 서약을 경청했다.

“서로의 못난 면도 끌어안으며 평생 보듬어 주고, 덮어 주고 사랑하는 부부로 살겠습니다.”

“신랑 박창석.”

“신부 김철수.”

“이 시간, 저희의 부부됨을 맹세하는 자리에 증인으로 와 주신 여러분들께.”

“진심으로 감사하다는 인사 올리며.”

“여러분께 부끄럽지 않은 부부로 평생 행복하게 살아가겠습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창석과 철수는 선언문을 끝마치며 하객들을 향해 고개를 숙였다.

짝짝짝짝.

하나둘씩, 사람들의 손뼉이 더해지며 휘파람까지 얹어져 파도처럼 박수갈채가 쏟아졌다.

이어서 창석의 아버지.

청룡이 단상에 서며 성혼 선언문을 읽었다.

“크흠, 2015년 9월 1일, 신랑 박창석 군과 신부 김철수 양은 일가친척과 친지를 모신 자리에서…….”

청룡은 잠시 입술을 앙다물었다가 겨우 다시 입을 열었다.

“일생의 동고동락을 함께할 부부가 되었음을 엄숙히 선언합니다. 박창석의 아버지, 박, 청룡.”

선언문 낭독을 끝마친 후, 청룡은 주름 사이 젖은 눈으로 마흔을 넘은 아들을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귀한 아내님 잘 모시고 살아라. 시댁은 어차피 해외에 있으니 올 생각도 하지 말고.”

“하하, 아버지.”

“잘 살아.”

청룡은 단상에서 내려오며 창석을 강하게 끌어안았다.

이후, 몸을 돌려 오늘부터 사돈이 된 윤덕희 여사에게 깊이 고개를 숙였다.

그리고 나서야 청룡은 다시 원래 자리로 향했다.

청룡이 내려가고, 이후 윤덕희 여사가 단상에 서서 창석과 철수에게 덕담을 이어 갔다.

“처음엔 사돈어른께 죄송하지만, 나는 신랑이 정말 마음에 안 들었다. 네가 너무 고운 딸이라서 처음엔 그랬다.”

“엄마―.”

“하지만 오늘 이 예식장에 서고, 네가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모습으로 행복해하는 것을 보니, 이제야 신랑이 마음에 차는구나.”

창석은 조용히 웃으며 고개를 숙였다.

“행복하렴, 우리 딸.”

“……응. 행복, 할게. 꼭.”

철수는 아랫입술을 물었건만, 끝내 눈물을 흘리는 윤덕희 여사를 따라 같이 울음을 터뜨렸다.

또 한 번 박수갈채가 쏟아지고, 이어서 축가 시간이 찾아왔다.

일찍이 메이크업을 고친 은호와 은지는 미리 자리에서 일어나 있었다.

은호와 은지가 창석과 철수 앞에 서며 마이크를 쥐었다.

“은지가 두 분을 위해 클라우드에 쌓인 곡을 고르지 않고 ‘또’ 작곡을 했습니다.”

왜 ‘또’라는 말이 붙었는지 알고 있던 박 대표는 웃음을 터뜨리며 물었다.

“몇 곡이냐.”

“여섯 곡 중에 세 곡 입니다.”

“며칠 걸렸어?”

“작곡은 이틀 안에 다 끝났지만, 작사는 하다 못한 부분이 있어서 놓치면 그냥 즉석으로 부를 거예요…….”

박 대표의 질문에 퀭한 얼굴로 차분히 대답하는 은호.

곧이어 상황을 이해한 하객들에게도 웃음이 번졌다.

“고마워, 은호 씨.”

“제가 고생한 만큼 두 분 꼭 행복하게 사셔야 합니다.”

“그럴게.”

철수도 곧 상황을 이해한 듯 웃으며 인사를 건넸다.

그때였다.

디리링.

은지는 어디서 났는지, 준비해 둔 통기타를 어깨에 메며 간단하게 튜닝을 마쳤다.

“이 곡은, 머리칼이 다 벗겨지기 전에 세상에서 가장 멋있는 여자분께 청혼받은 대표님과 세상에서 가장 든든한 남자를 고른 PD님.”

하하.

창석과 철수는 웃으며 잠시 서로를 바라봤다.

은호는 그런 두 사람을 눈에 담으며 맑은 미소를 띠었다.

“이 곡은 오직 두 분을 위해서 준비한 곡입니다.”

은호의 덤덤한 목소리가 멎자, 별 가루가 은하수가 되어 흐르는 듯한 맑은 피아노 연주가 이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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