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매는 비즈니스로 일합니다 (182)
“어, 어떻, 아니. 대체 왜요?”
“PD님이 어디 아프신 건…….”
따닥.
은지와 은호가 나란히 경악하던 그때.
박 대표는 참다 못했는지 빛의 속도로 둘의 이마에 딱밤을 먹였다.
은지와 은호는 양손으로 이마를 감싸 쥐면서도 여전히 믿기지 않는다는 얼굴.
“이게 그렇게 놀랄 일이냐?”
“그럼 이게 안 놀랄 일이에요?”
“…….”
은호가 또박또박 따져 들자, 박 대표는 할 말이 없는지 고개를 떨궜다.
그때, 은지가 갸웃거리며 물었다.
“있잖아요.”
“오냐.”
“솔직히 대표님이랑 철수 PD님.”
“왜. 또 무슨 말을 하려고.”
“그, 두 분 액면가가 적어도 10살 정도 차이 나 보이는데…….”
“아니야! 무슨 소리야!”
박 대표가 벌게진 얼굴로 버럭 소리쳤다.
“이놈들이!”
하하.
은호와 은지는 화내는 박 대표가 마냥 재미있는지 겁을 먹기는커녕 웃기만 했다.
“니들은 나를 몇 살로 보고 있는 거야?”
“40대 중후반?”
“이것들이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초반이야!”
“아…… 예?”
은호와 은지는 진심으로 놀란 듯 동그랗게 뜬 눈으로 서로를 돌아봤다가 다시 박 대표를 바라봤다.
“저희 만났을 때 40대 아니었어요?”
“그땐 만으로는 서른아홉이었지.”
“어쨌든 마흔이잖아요.”
“만 나이로 쳐.”
은지가 오리처럼 입술을 쭉 뺀 채 투덜거리자, 박 대표는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볼펜 하나를 손에 쥐었다.
“입, 입, 입.”
볼펜으로 입술을 세 대 맞은 은지.
은지는 뾰로통한 얼굴로 투덜거렸다.
“아프잖아요.”
“아프라고 때렸지. 그리고 이놈아, 아무리 그래도 열 살은 너무하잖아.”
“대표님 머리 보면 충분―.”
은호가 슬쩍 말을 덧붙이다 입을 닫았다.
박 대표의 살벌한 눈빛 때문이었다.
박 대표의 머리가 벗어지는 데에 은호와 은지가 상당한 이바지를 한 탓에, 사실 두 사람이 할 말은 아니긴 했다.
“바둑이 엄마, 아니.”
“바둑이 엄마?”
“처, 철수 씨랑 나랑 아무튼, 다섯 살밖에 차이 안 나.”
“와, 다섯 살. 어쨌든, 도둑놈이네요.”
“맞아. 양심 어디 갔어.”
“은지 너까지! 이놈들아, 프러포즈는 내가 받은 쪽이야!”
“엑?”
은지가 이상한 소리를 내며 놀란 그때, 은호가 뒤따라 물었다.
“그, 프러포즈 정의가 결혼하자고 청혼하는, 그거 말씀하시는 거 맞죠?”
“은호야, 너까지 놀리지 마라.”
“하하, 근데 장난이 아니라, 진짜, 너무, 예, 너무 놀라서 그래요.”
어지간히 당황한 듯 은호는 목소리가 다 떨렸다.
“PD님은 대체 대표님 어디가 좋대요?”
은지가 도저히 모르겠다는 듯 물었다.
그때였다.
“아-!”
“아, 내 눈!”
은호와 은지는 동시에 스스로 제 눈을 찔렀다.
박 대표가 갑자기 평소에 보이지 않던 부끄러워하는 모습을 보인 탓이었다.
중년의 수줍음.
아버지의 애교를 본 기분이 딱 이럴까.
썩, 좋은 기분은 아니었다.
“어, 얼른 집에 들어가기나 해!”
“네에. 근데 대표님도 그렇게 부끄러워할 줄 아셨구나~.”
“나갓!”
박 대표는 놀리는 은호와 은지에게 버럭 소리치며 둘을 내쫓았다.
내쫓긴 둘은 똑 닮은 얼굴로 히죽였다.
* * *
이후 집으로 돌아왔을 때.
먼저 쿵쿵거리며 방 안으로 들어갔던 은지가 경악하며 튀어나왔다.
“이, 이은호!”
“왜.”
“바퀴라도 나왔어?”
“끔찍한 소리 하지 마!”
은지는 영혼이 빠져나갈 것처럼 기겁하며 소리쳤다.
“그 방 꼬락서니에 안 나오는 게 난 더 신기한데.”
“아! 장난치지 말고, 그것보다 큰일 났다고!”
“왜.”
“연탄이 없어졌어!”
무슨 일인가 했더니…….
연탄이 또 사라졌나보다.
안절부절못하는 은지와 다르게 은호는 태연했다.
“너 검은 옷 위에 한번 봐 봐.”
“검은 옷? 없는, 어!”
찾았다.
“아핰핰, 있다. 찾았어.”
검은 털인 연탄이 눈을 감은 채 검은 옷이나 검은 의자나 검은 가방 속 안에 들어가면 정말 물아일체(物我一體)가 따로 없었다.
종종 있는 일인지라, 이것도 어느새 일상이 됐다.
어지간히 깊이 잠든 듯, 연탄은 눈을 뒤집어 깐 채 고롱거리는 소리까지 내며 뻗어 있었다.
연탄은 화장실에 갈 때나 본인 화장실이 더럽다고 눈치를 줄 때 외에는 대부분 은지의 방에 있다.
그래서 나는 녀석이 스스로 내 방에 오지 않는 이상 접점이 없었다.
그 덕분에 연탄과 대화를 안 한 지도 꽤 됐다.
은호는 천장등 대신 간접등으로 이용하는 머리맡에 놓아둔 EG등을 켜며 매트에 드러누웠다.
“피곤하다.”
피곤한데, 피곤해서 좋다.
나조차 이해되지 않는 기분이었다.
그나저나 대표님이 결혼이라니…….
회귀 전에는 머리가 다 날아갈 때까지 혼자 지내셨는데…….
회귀 전에는 애초에 철수 PD님 얼굴조차 뵌 적이 없었다.
지예찬 선배도 살갑게 대화를 나누기는커녕 인사조차 힘든 사이였다.
깨톡―.
호랑이도 저 말 하면 나온다더니.
깨톡, 깨―깨깨―깨깨톡. 깨톡.
연달아 오는 깨톡 소리에 질겁하며 참다 못해서 휴대폰을 집어 들었다.
[지예찬 ― 은호야
― 은호
― 은호
― 은호
― 은…….]
예찬 선배가 ‘은호’로 단톡방에 도배를 해 놨다.
안 그럴 것 같은 사람이 이런 모습을 보일 때마다 어이가 없어서 헛웃음이 터졌다.
[나 ― 네네넨네네네네넨네…….]
난 밀린 만큼 ‘ㄴ’, ‘ㅔ’를 광적으로 두드렸다.
[지예찬 ― 소식 들었어?]
[나 ― 대표님 결혼이요?]
[지예찬 ― (미친 듯이 고개를 끄덕이는 하찮은 고양이 이모티콘)]
지예찬 선배는 원래 이모티콘을 잘 안 쓰는 사람인 줄 알았는데…….
나뿐만 아니라, 이건 톡신 멤버들도 그런 줄로만 알았다.
‘Red’ 뮤직비디오 촬영 당시.
은지가 쉬는 시간에 “이거 우리 집 연탄이 닮아서 귀여워요!”라며 이모티콘 하나를 선물했다.
그날부터였다.
[지예찬 ― (입을 가리며 미친 듯이 ‘세상에! 세상에! 세상에!’를 외치고 있는 하찮은 검은 고양이 이모티콘)]
[지예찬 ― 너희는 안 놀랐어?
― (고개를 좌우로 미친 듯이 갸웃거리고 있는 하찮은 검은 고양이 이모티콘)]
알고 보니 그냥 없어서 안 쓰는 거였거나 마음에 드는 게 없어서 안 쓰는 거였는지, 선배는 은지가 보내 준 이모티콘을 굉장히 애용하고 있었다.
다만, 하필 은지는 골라도 꼭 자기 같은 걸 골라서…….
정신없는 고양이 캐릭터가 자꾸만 시선을 강탈했다.
[지예찬 ― 너희는 프러포즈 어떻게 했는지 이야기 들었어?
― (미친 듯이 손뼉 치는 하찮은 검은 고양이 이모티콘)]
[나 ― 헐 아뇨]
프러포즈!
정신없는 고양이도 이겨 낼 만큼 관심이 가는 이야깃거리였다.
예찬 선배는 잠시만 기다리라며 자리를 비웠다.
잠시 후.
[지예찬 ― 허락받았어 (미친 듯이‘OK’를 날리는 하찮은 검은 고양이 이모티콘)]
철수 PD님께 개인적으로 이야기를 해도 되는지 허락을 구하고 온 모양.
이후 선배의 입으로 전해 들은 프러포즈 이야기는 상당한 충격으로 돌아왔다.
“믿기지가 않네.”
철수 PD님의 짝사랑은 상당히 오래되었었다.
대표님과 처음 마주했을 때.
그러니까 김철수 PD님이 용돈벌이 겸 톡신의 ‘홈마’로 활동하던 그 시절부터였다.
* * *
외전: 바주카포
박창석은 은호와 은지가 지내고 있는 구사옥에서 차를 타고 약 30분 걸리는 거리에 혼자 살고 있다.
‘혼자 산다’라고 하지만, 박 대표의 집 크기는 아이 넷을 길러도 남을 만큼 방도 많고 크기도 넓은 전원주택이었다.
그런데, 실상 그 많은 방은 제각각 다리용 방, 상체 방, 등 방, 유산소 방 등, 그렇다.
모두 운동 테마로 이뤄진 방들이다.
참고로 박창석은 거실에 침대를 놓고 생활했다.
한편, 그 많은 방 중에서 유일하게 운동이 테마가 아닌 방이 하나 있긴 했다.
크기가 가장 큰 안방으로, 방 하나가 통째로 고양이들의 캣타워였다.
박창석이 모시는 삼색이와 얼룩이는 오튜브에서 은지의 더러움 게이지 측정기로 사용되던 그 고양이 사진의 주인공들이었다.
삼색이와 얼룩이는 가족이 한 마리 더 있었다.
김철수가 입양한 ‘바둑이’.
바둑이라는 이름은 분양하던 당시, 창석이 철수와의 어색함을 풀기 위해 장난스럽게 붙였던 이름이었다.
하지만 창석에게 호감이 있던 철수는 그 이름을 그대로 사용하기로 했다.
그런 박창석의 집에 철수는 주기적으로 바둑이를 핑계로 자주 방문하고는 했었다.
‘오랜만이네.’
철수는 잘 관리된 잔디밭 위에 가지런히 놓인 돌다리를 건너 검은 현관문 앞에 섰다.
가장 최근에 박창석네 집에 온 건 몇 주 전.
은호와 은지가 막 바빠지기 시작하던 무렵.
TaKa 엔터테인먼트에서 톡신을 구해 내기 위해 급하게 나서야 했던 그날이었다.
「“고맙다.”」
담배도 몸 상한다고 다 끊으셨던 분이 얼마나 화가 났으면 안 피우던 담배를 피웠을까.
그런 와중에 담배는 위로가 되지 못했는지, 창석은 담배 한 갑을 통째로 뒤틀어 놓았다.
철수는 차 안에 놓인 작은 쓰레기통에 처박힌 담뱃갑을 보며 웃었다.
아직 한가득 들은 채 속을 터뜨린 담배들.
박창석의 그런 면이 좋았다.
아닌 건 바로 끊어 내는 그런 면.
철컥.
“어유, 깜짝이야. 언제 왔어?”
박창석은 철수를 마중하러 나오던 중이었는지 흰 셔츠에 검은 반바지를 걸치고 있었다.
철수는 문 앞에 서 있는 박창석을 가만히 바라보며 생각했다.
나는 어릴 때부터 원하는 이상형이 확실했다.
나보다 더 대담한 사람.
그러면서도 섬세한 사람.
마음에 걸리는 아이를 지나치지 못해서 결국 부모가 되길 자처한, 이런 사람.
그 여린 마음이 동창이었던 지예찬이 속한 톡신을 구했다.
결국 방송계의 전설이 되기까지.
조직폭력배의 위협을 받자, 대표님은 주눅 들어 숨어 살기보다 미친 듯이 운동해서 이젠 협박하던 놈들보다 더 좋은 몸을 가졌다.
40대에 들어섰음에도 철저한 자기 관리의 결과물인 널찍한 어깨.
듬직한 덩치, 그러면서도 남에게 강요는 하지 않는 면도 마음에 들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완전히 호구인 건 싫다.
능력이 있기에 돕는 것이고, 한계를 넘을 땐 냉정해도 잘 쳐 낼 줄 아는 그런 사람.
「“그나저나 넌 아직도 팀장님 옆에 붙어 다니고 있었네.”」
지예찬이 툭 던진 그 말이 신경 쓰였다.
일로 만난 사이…….
여자친구도 아니면서 바둑이를 핑계로 이렇게 찾아오는 일이 몇 년째였더라.
몇 년째 남녀가 한집에 주기적으로 모였다.
하지만 입에 오를 법한 일은 단 한 번도 일어나지 않았다.
「“이쯤 되면 그냥 고백하지.”」
지예찬 목소리가 들렸다.
그 인간 말대로 진짜 그냥 확 고백해 버릴까.
“철수 씨?”
“…….”
“아, 안 들어와?”
“…….”
“나한테 뭐 묻었, 아, 아마 묻었으면 조금 전에 오는 날인 걸 잊어서…….”
“…….”
“그, 좀 급하게 김치찌개만 끓여 두려다가 튄 걸 거야.”
박창석은 자신을 빤히 바라보기만 하는 철수를 어떻게 대해야 할지 혼란스러운 듯 보였다.
‘어디에 묻은 거지?’라며 두리번거리는 박창석을 바라보며, 철수는 어이가 없어서 웃었다.
난리가 따로 없었다.
진짜, 콩깍지가 두껍게 씌었나 보다.
왜 귀여워 보이고 난리야…….
그때였다.
「“왜, 팀장님도 애인 없는 지 10년 넘었잖아.”」
때마침 지예찬이 했던 말이 방아쇠가 됐다.
“대표님.”
“응?”
문제는 들고 있는 것이 작은 권총인 줄 알았는데…….
“나랑 결혼할래요?”
방아쇠를 당기고 봤더니 바주카포다.
‘펑!’
박창석은 표정에서 생각이 훤히 드러나 보였다.
‘바, 방금, 내가 무슨 말을 들은 거지?’
실수로 바주카포를 쏴버리긴 했지만, 철수는 번복할 생각은 없었다.
“일단 결혼 먼저 하고, 나랑 평생 연애해요.”
“여, 연, 연애? 나랑?”
“네. 대표님이랑 나랑요.”
30대 후반과 40대 초반.
당장 결혼해도 괜찮은 나이잖아.
“이응이들 뮤직비디오도, 톡신 뮤직비디오도 내가 앞으로 평생 당신 전문으로 담당해 줄 테니까.”
“어?”
“나한테 장가 와, 박창석.”
반지 대신 철수는 인연의 시작이었던, 바둑이가 들어 있는 켄넬 가방을 내밀었다.
“……네.”
박창석은 당황하면서도 손은 자연히 켄넬 가방을 받아 들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