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남매는 비즈니스로 일합니다-181화 (181/309)

남매는 비즈니스로 일합니다 (181)

반복되는 벌스가 지나고, 어느새 끝에 다다른 ‘Red’.

너라는 작은 변화 하나에

다가오는 이 밤 위

알리고 알려

느려진 속도만큼이나 은지의 깊은 음색이 더해졌다.

미련해도 미쳐 가도 어쩌겠어

멍청하게 바보처럼

나는 결국 마지막을 놓지 못해

완성된 뮤직비디오를 먼저 감상한 은호는 노래를 따라 흥얼거리다, 잠시 생각에 잠겼다.

나 나나 나 Red Light

나 나나 나 Red Night

나 나나 흐트러졌어

‘Red’의 가사는 지금껏 그래 왔듯 내가 썼다.

‘Red’는 이번 ‘TIME’ 앨범에서 지금껏 이은지와 내가 촬영한 뮤직비디오 중, 가장 수위가 높았다.

그 대상이 나랑 이은지가 아니니까 가능한 촬영이었다.

사실 ‘Red’는 내가 가사를 쓸 적과 완성된 곡의 분위기가 상반된 예시 중 하나였다.

가사를 쓸 때.

이은지는 노래를 들려주던 당시에는 ‘했다, 말았다’ 같은 단어를 가이드에 담아 뒀었다.

그 단어들에서부터 ‘변덕’을 떠올렸고, 그걸 주제로 가사를 써 보기로 했다.

그래서 가장 먼저 고민했던 건, 내가 부렸던 변덕이 어떤 게 있나였다.

고민을 거듭하다 문득 하늘을 봤을 때, 마침 노을이 지고 있었다.

그리고 변덕.

두 가지가 겹치자, 강한 기시감에 어느 시기를 떠올렸다.

낮인지 밤인지도 모르는 시간처럼 내가 가장 혼란스럽던 그때.

은지가 세상을 떠났던 그때.

이걸 덕분이라고 해야 할지 다른 느낌으로 탄생한 ‘Red’를 듣다 보니, 참.

얼떨결에 그간 가장 털기 힘들었던 일을 조금이나마 세상에 털어놓은 기분이었다.

* * *

이은지랑 같이 살던 기숙사.

대표님이 우리에게 살라며 내어 줬던 옥탑방.

회귀 전 NRY 엔터테인먼트의 신사옥이 세워진 이후, 그곳은 은지가 살아 있을 때 일찍이 건물 통째로 이은지의 개인 작업실로 바뀐 지 오래였다.

‘여기가 우리의 첫 ‘진짜 집’이라고.’

이은지는 그 옥탑방에 남다른 애정이 있었는지, 이곳에서 더 많은 영감이 샘솟는다며 자주 방문하고는 했었다.

작업실이 된 이후에는 난 딱히 옥탑방을 방문하지 않았다.

신사옥에 훨씬 더 좋은 작업실이 있는데, 굳이 주택가 골목 구석의 그 집까지 갈 이유가 없었으니까.

이은지가 세상을 떠났다는 걸 뒤늦게 받아들인 그날까지는 그랬다.

하지만 오랜만에 옥탑방을 방문한 그날.

현관 앞에서 창백한 이은지를 마주쳤을 때, 눈앞이 핑 도는 기분이었다.

죽은 동생을 다시 만난 순간.

의외로 그때는 기쁜 기분보다 두려움이 더 앞섰다.

나를 바라보던 감정 하나 없는, 창백한 시체 같은 그 굳은 얼굴.

꼭 나를 원망하는 듯 보였다.

왜 일찍 오지 않았느냐고.

왜 멋대로 방송을 마치고 가는 걸 원할 거라며 판단했느냐고.

처음엔 두려웠지만, 차츰 그 두려움만큼이나 죄책감이라는 놈이 내 숨통을 조여 왔다.

“눈앞에 보이면서, 말이라도 해 주면 안 되냐.”

“아니, 아니다.”

“하지 마. 그건 그것대로…….”

“그것대로 더 힘들 것 같으니까.”

나는 미쳐갔다.

이은지가 떠난 이후.

병원은 아파도 가지 못하고, 애초에 건물조차 쳐다보지 못할 지경이었다.

창백한 이은지를 만난 이후에는 수시로 이은지를 묻은 벚나무를 찾아가기도 했었다.

혹시 여기 오면 옆에 있는 굳은 그 얼굴이 조금이나마 다른 표정을 보여 줄까 싶어서.

어지간했으면 그 달라지는 표정 한 번 보겠다며 생전 처음으로 도진 형의 소개로 무당까지 찾았다.

이후에는 큰 금액을 들여 굿판까지 벌였다.

하지만 정작 큰일을 벌인 이유였던 달라진 표정은 끝내 볼 수 없었다.

「“이미 산신님 품에 있거늘. 어허, 왜 이 아이는 제 발로 여기 남았나.”」 //기울임

다만, 무당의 입을 통해 별안간 이상한 소리는 들을 수 있었다.

‘제 발로 여기 남았다.’

그 말이 걸렸다.

그래서 더 그랬던 것 같다.

맨정신에는 도저히 이야기할 자신이 없어서 술을 마셨다.

‘술도 못 마시는 주제에.’

술만 마시면 주절거리며 이은지한테 말을 걸었다.

너는 왜 여기 있는 거냐고.

왜 가지 못한 거냐고.

……나를 원망하는 거냐고.

창백한 이은지가 나를 가만히 바라보고 있을 때면 마치 ‘왜 너는 안 죽어?’라고 묻는 것 같았다.

그건 아마.

지금 생각하면 이은지가 아니라 내가 나한테 물었던 질문이었던 것 같다.

그럴 때면 난 답을 이은지가 남긴 일기장에서 찾았다.

「내가 죽어도 너는 살아야지. 망할 새끼야.」

갈겨쓴 얼굴만큼이나 못난 글씨.

특유의 거친 말투.

당장이라도 그 싸가지 없는 목소리가 들릴 것 같았다.

그러기를 바랐다.

하지만 동시에 다시는 듣지 않길 바라기도 했다.

차라리 나랑 다시는 엮이지 말고, 부디 좋은 곳에 가라고.

나 같은 능력 없는 오빠 말고, 너만큼은 가족다운 가족 만나라고.

제발.

다음 생에는 그저 행복하게 살아 달라고.

그런 것도 잠시.

하루에 적으면 수십, 많을 땐 수백, 수천 번.

나는 계속 마음이 바뀌었다.

욕심인 걸 알면서도 사라지지 말아달라 빌던 때도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잠깐 눈을 떴을 때, 창밖을 돌아보자 노을이 지는 시간이었다.

‘Red Light, Red Night.’

그 가사의 배경이 되는 날.

상태가 안 좋을 때면 어김없이 옆에는 창백한 이은지가 나를 보고 있었다.

하지만 그날따라 걱정스럽게 보는 것 같기도 했다.

빈속에 술만 퍼부은 지 며칠째였는지도 모르겠다.

은지가 떠난 그날 이후, 내 시계는 멈췄다.

「“니가 드디어 미쳤구나. 정신 차려, 이은호! 산 사람은 살아야 할 것 아니야!”」

도진이 형이 화를 내며 소리쳤다.

같이 일하는 몇 년 내내 화 한 번 내지 않던 사람이었는데.

그 사람 좋은 형이 처음으로 큰 소리를 지르며 화를 낸 날이었다.

살아생전 이은지랑 참 많은 구석이 닮아 있는 형이었다.

그래서 더.

더 아팠다.

형은 비싸건, 싸건, 집 안에 있는 모든 술병을 몽땅 버렸다.

몇 없는 팬들의 선물을 정리한 벽장 속에 숨겨 뒀던 위스키 한 병만 빼고.

형이 떠나고 난 뒤, 난 비틀거리며 위스키의 병을 열었다.

잘 열리지 않아서 홧김에 병 입구를 깨트려 버린 것 같다.

어디서 난 건지 모를 핏자국이 바닥에 즐비했다.

나는 유리 섞인 병째로 속이 불타는 그 기분을 형벌이라 여기며 독한 위스키 한 병을 원샷했다.

그리고 다시 눈을 떴을 때.

번쩍이며 보이는 붉은 조명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왔다.

「“이은호!”」

도진이 형이 버럭 소리치며 얼음장 같은 손으로 나를 짚었다.

형 손이 아니었다면, 아마 난 ‘내가 드디어 미쳐서 스스로 불을 질렀구나’ 그렇게 생각했을 것이다.

그만큼 온몸이 불덩이가 된 것처럼 뜨거웠다.

머리와 손과 발, 입 주변.

곳곳이 전부 피투성이였다.

이마에 흐르는 핏줄기 때문인지 평범한 밝은 보름달도 붉은 달처럼 보였다.

그날.

형은 오지 않는 응급차를 기다리다 못해 나를 차로 실어 달렸다.

번쩍이며 보였던 붉은 조명은 형이 개인적으로 준비해 둔 사이렌이었다.

지금 생각하면 그걸 가지고 다니던 도진이 형도 참 대단하다.

한편으로는, 내가 그만큼이나 불안정했다는 증거였던 것 같기도 하다.

그렇게 병원에 반강제로 입원한 날.

나는 ‘병원’이라는 공간 자체에 발작하며 결국 채 하루를 버티지 못하고 탈출했다.

그리고 집으로 돌아오자마자 나는 이은지 일기장을 붙들고 그냥 울었다.

왜 우는지도 모른 채.

그냥.

계속.

온 힘이 눈물로 다 빠져나갈 때까지 계속 울었다.

「너는 살아」

울면서도 이은지가 남긴 일기를 계속 읽었다.

눈을 감아도 그 글자의 볼펜 자국까지 떠오를 만큼.

계속.

읽고, 또 읽고.

그렇게 기절하고 다시 눈을 떴을 때 나는 마음을 다잡았다.

그날부터였다.

이은지가 떠난 뒤 멈춰 있던 내 시간이 다시 흐르기 시작한 때가.

그때부터 사흘이었다.

「“대표님, 저 미친 듯이 일만 하게 만들어 주세요.”」

대표님에게 무릎까지 꿇으며 간청했다.

살아야 했다.

나는 바보처럼

마지막을 놓지 못해

망할 먼저 가 버린 내 동생이.

나를 세상에 묶었으니까.

대표님을 통해서 나는 매일 집에 돌아온 즉시.

술 한잔하지 않고도 기절할 만큼 과한 스케줄을 잡았다.

너라는 존재 하나

그것조차 끊지 못해

이은지를 생각할 틈이라고는 하루에 차로 이동하는 잠깐밖에 없을 만큼 미친 듯이 바쁘게.

그렇게 반년.

나는 그렇게 살았다.

살아남았다.

Red Light, Red Light

너라는 존재 하나 끊지 못해

Red Night, Red Night

잔잔한 베이스의 감쇠 음을 끝으로 ‘Red’의 뮤직비디오가 끝났다.

가사를 쓸 땐 그랬지만, 뮤직비디오 제안서를 쓸 때 당시.

오히려 난 그때 생각을 하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공감할 수 있는 노래를 불러야 하니까.’

그때 내 감정은 너무 깊고 어두워서, 지금의 나조차 공감하기 쉽지 않았다.

게다가 지금 나는 그때만큼 창백한 이은지가 두렵지 않다.

“대박, 예찬 선배 완전 야해요!”

옆에서 헛소리해대는 저 이은지가 모두 설명해줬으니까.

“야, 야해? 그거 칭찬 맞지?”

“그럼요! 입술 도장 잘 어울리는 가수는 선배님이 무조건, 진짜 무조건 1위!”

“그거, 좋은 건가?”

“좋은 거죠. 진짜, 진짜, 지인짜 보다가 코피 터질 뻔했잖아요. 그렇지, 언니! 아, 하하하!”

은지가 슬기를 돌아본 그때였다.

실상 슬기는 이미 핏자국이 번진, 양쪽 콧구멍에 말아 놓은 휴지를 꽂은 채였다.

슬기 씨 모습에 깔깔거리는 이은지.

시끄러운 저걸 보고 있으니, 여러모로 생각이 많아졌다.

‘이젠 어느 정도 적응이 된 줄 알았는데, 아직인 걸까.’

모든 게 꿈만 같다.

이런 일상이 믿기지가 않아서.

그래서 그런가.

너무 행복해서 오히려 불안하다.

모든 것이 단번에 깨져 버릴까 봐.

“뭐야, 야! 이은호!”

그때였다.

“너 또 무슨 쓸데없는 생각하지!”

누구 동생인지 눈치는 더럽게 좋아선.

은지의 매서운 손이 얼굴로 날아들었다.

“좋은 말로 할 때 놔라.”

“니가 나한테 좋은 말 한 적이 언제 있다고! 아악!”

내 뺨을 쥐고 당기는 손을 따라서 아주 똑―같이 나도 이은지 뺨을 있는 힘껏 잡아당겼다.

“아아아아악! 놓으라고!”

“먼저 놔라. 니가 먼저 잡았잖아.”

“이상한 생각 하는 게 눈에 보여서 물어본 거잖아!”

“그래. 넌 이제 니 손이 주둥이다 이 말이지?”

“아아아악!”

이은지가 홧김에 손끝에 힘을 실을수록 나도 똑같이 강한 힘을 줬다.

“내일 무대도 있으면서 왜 그래! 둘 다 그만해요! 멍 들겠어!”

슬기의 만류와 더불어 현우까지 조용히 몸으로 은지랑 은호 사이를 막아섰다.

덕분에 서로의 뺨을 붙들던 손을 놓을 수 있었다.

오른쪽 뺨이 욱신거린다.

‘꿈이라면 안 아프다던데…….’

망할 동생 덕분에 확 현실감이 커졌다.

일단 그게 꿈을 구분하는 방법이라면 이건 꿈이 아닌 건 확실하다.

이은지 손은 선배가 옆에 있는 걸 잊을 만큼 진심으로 더럽게 아팠으니까.

“이은지, 이 X친 또라이야! 멍 들었잖아!”

“나도 멍 들었어! 이 우럭 새꺄!”

서로 버럭 소리치는 은호와 은지를 보며 지예찬은 개그 프로그램을 시청하듯 웃었다.

한편, 은호와 은지의 뺨에 슬금슬금 보라색으로 올라오는 멍을 보며 슬기는 씁쓸한 웃음을 지었다.

‘저건 또 어떻게 가려야 하나…….’

입은 분명 웃고 있건만.

슬기의 눈가에는 눈물 한 방울이 또르륵 흘렀다.

* * *

계약

‘톡신’이 TaKa 엔터테인먼트와의 계약을 정리하고, 드디어 NRY 엔터테인먼트와 계약을 맺었다.

하지만 이게 중요한 게 아니었다.

“예?”

“대표님이랑 누, 누구라고요?”

은호와 은지가 못 들을 말을 들은 듯 경악하며 재차 되물었다.

박 대표는 벌써 열 번째 같은 질문에 똑같은 대답을 하고 있었다.

“김철수 PD랑 다음 달에 결혼할 거라고…….”

“누구요?”

“그만해, 이놈들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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