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매는 비즈니스로 일합니다 (177)
TaKa 엔터테인먼트 송남철.
송남철은 쏟아지는 기사들을 확인하며 비릿한 웃음을 지었다.
오현의 대마초 흡연 논란이나, 올드 카 매니아 최태현의 대포나 논란 등.
무엇 하나 진실인 건 없었다.
죄다 송남철의 입을 통해 나온 논란들일 뿐.
“박창석이, 내 아래에 있던 놈이 주제도 모르고 날 건드리려고 하니까. 니가 키운 놈들도 다 말아먹게 생긴 거 아니냐. 하하하.”
잠깐 주가가 휘청하긴 했다.
하지만 모든 건 이놈들이 다시 TaKa와 재계약을 진행하면 잠잠해질 것이다.
왜냐?
그걸 뒤엎을 떡밥들은 이미 만들어 놨으니까.
브앤시에서 단독으로 탈퇴를 선언하더니 NRY로 기어들어 간 박쥐 같은 화랑을 E-UNG 걔들과 싸잡아 묶어 불태우면 된다.
지금 잠시 주주들이 시끄러워지긴 했지만, 괜찮다.
모두 톡신만 돌아오면 제자리로 돌아올 수 있다.
톡신의 팬들은 톡신의 신곡을 내달라며 요청했었다.
그런 요청을 계속 무시해 왔던 송남철이었지만, 그라고 이렇게 톡신을 광고로만 굴리고 싶었던 건 아니다.
톡신 녀석들은 나이도 먹은 판에 자꾸만 시장성에서 벗어난 것들을 도전하고 싶어 했고, 송남철은 그것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래서 고집을 꺾을 때까지 광고로만 굴렸더니, 계약이 끝날 시기까지 와 버렸다.
“그러게 나를 왜 나쁜 사람을 만드냐 이 말이야. 멍청한 새끼들.”
송남철은 담배를 물며 책상 위에 구두를 신은 채 다리를 올렸다.
짤막한 다리가 책상 끝자락에 아슬하게 걸쳐 있던 그때였다.
쾅!
“아씨, 깜짝이야. 아뜨!”
갑자기 열린 대표실 문.
송남철의 자세가 무너지면서 동시에 담뱃재가 허벅지에 떨어졌다.
“뭐야!”
허벅지에 떨어진 재를 급하게 털어 내 봤지만 비싼 양복에 구멍이 나 버렸다.
“아오, 씨.”
송남철은 신경질적으로 고개를 쳐든 순간.
흠칫, 숨을 멈췄다.
대표실로 들이닥친 건 최태현이었다.
그것도 화가 나다 못해, 섬찟할 정도로 가라앉은.
“태, 태현아.”
최태현은 조용히 송남철의 대표실을 둘러보다 차분하게 입을 열었다.
“잊은 것 같아서 왔습니다.”
“……뭐, 뭐를.”
찌라시는 기사를 통해 봤을지언정, 아직 이놈들은 그게 내가 던진 거라는 걸 모른다.
아니, 알아도 괜찮아.
그걸 뒤엎을 방법은 나한테밖에 없으니까.
송남철은 그렇게 생각하며 긴장을 풀어 갔다.
최태현이 가만히 송남철을 마주 보며 입을 열기 전까지는 그랬다.
“경고하러 왔습니다.”
“우리, 당신보다 험한 놈이 운영하는 회사도 뒤엎고 나왔던 놈들입니다.”
“10년이 넘는 시간 동안 적어도 우릴 거둬 준 만큼은 벌어다 드렸잖습니까.”
“거둬 줬다는 걸 아는 놈이 지금―.”
송남철의 미간이 휴짓조각처럼 구겨졌다.
송남철의 위협을 무시하며 태현은 차분히 말을 이었다.
“얌전히 말 잘 듣던 애들 건들지 말라는 말입니다.”
“뭐?”
송남철은 더 뻔뻔하게 나가기 쉽지 않았다.
최태현은 자신이 무슨 일을 벌여 뒀는지 아는 듯 떠들어 대고 있었으니까.
“우리가 나간 뒤에 이 회사를 어떻게 감당할지, 이런 식으로 헛짓거리할 시간에 그거나 더 고민하십시오, 대표님.”
예상했던 대로, 다 알고 찾아온 모양이다.
“네, 네놈이.”
“할 말은 끝났으니 가 보겠습니다.”
송남철은 목덜미를 붙들며 황당함에 헛웃음만 터뜨려 댔다.
“너희가 나 없이 이번 일 해결할 수 있을 것 같아!!!”
“…….”
최태현은 대답 대신 아쉬움 없는 걸음으로 대표실을 떠났다.
대표실 문을 나와 엘리베이터 앞에 섰을 때.
최태현은 휴대폰을 확인했다.
일상 대화들을 지나치며 화면을 밀어 올리던 그때였다.
최태현의 손끝이 멈춘 곳은 은호가 보낸 ‘폭탄’이라는 이름의 녹음 파일이 있는 곳이었다.
[선배님들이 알고 계시는 편이 앞으로 일에 도움이 될 것 같아서요.]
은호의 이야기는 정확했다.
이걸 미리 접하지 않았더라면 오현은 또 한 번 죄책감에 무너졌을 것이고, 최태현 자신 역시 겉으로 티는 내지 않았을지언정.
“죽을까 고민했겠지.”
최태현은 느리게 눈을 감았다 뜨며 한숨을 흘렸다.
사람들은 자주 잊는다.
‘톡신’이라는 이름이 널리 알려졌다고는 하나.
톱스타 반열에 올랐다고는 하나 인간이 아니게 되는 건 아닌데…….
우리도 결국엔 ‘사람’이다.
기사가 막 터져 나오던 시기에 제정신으로는 버티고 있기 힘들었는지 오현은 술을 찾았다.
다른 멤버들이 이럴 때일수록 제정신으로 있어야 한다며 오현을 뜯어말리는 그동안.
최태현은 대신 여러 SNS나 댓글을 통해 팬들과 팬이 아닌 사람들의 반응들을 확인했다.
최태현도 저격 기사의 대상이었지만, 그는 맏형이었기 때문일까.
동생들은 최태현은 말리지 않았었다.
‘어떻게 같은 사람에게 이렇게까지 말을 할 수 있을까.’
그래서 모두 봐 버렸다.
자신에게 남겨진, 오현에게 남겨진, 톡신에게 남겨진.
모든 한마디 한마디들이 칼과 같았다.
온몸을 베고, 찌르는 괴로운 기분이었다.
아니라고 외친들.
이들은 그저 물어뜯을 것이 필요했다.
사실을 알게 된들.
‘아, 그랬어?’
‘그랬구나.’
우리의 괴로움은 딱 그 정도의 가십거리다.
욕을 할 땐 우르르 와서 물어뜯는데, 사과를 받아야 할 땐 남아 있는 사람이 없다.
이미 여러 차례 그랬던 걸 봐 왔기에 알 수 있다.
박창석 팀장은 항상 말했다.
빌미를 주지 말라고.
그래서 항상.
톡신이라는 이름을 달고 있을 땐, 항상.
조심하고 또 조심했다.
단 한 번도 해이해진 적 따위 없다.
박 팀장님은 우리 톡신에게 신 같은 존재였으니까.
그분의 말씀은 틀린 적이 없었으니까.
우리가 절벽 끝에 내몰려 악질이었던 회사의 요청을 따라야 하나 고민하던 그때.
「“정신 똑바로들 차려라.”」
박 팀장님은 무너지지 말라 했다.
‘언제나 끝은 오니까.’
그때 제일 중요한 건 우리의 행동과 마음가짐이라고 말했다.
박 팀장님은 결국 끝을 만들었다.
그리고 우리는 대중이라는 존재의 손바닥 위에서 재단됐다.
썰리고 또 썰리며.
우리를 보며 뜯어 먹을 부분이 있는지를 확인하는 ‘눈’들.
박 팀장님의 말씀 덕분에 우리는 대중의 기준에 통과될 수 있었다.
송 대표는 이 위기를 벗어날 키를 알고 있다.
하지만 그건 또 다른 희생자를 낳겠지.
송 대표를 처음 만났을 땐 작은 기업을 크게 일으키려는 욕심 있는 사람이었다.
욕심은 나쁘지 않다.
발전의 씨앗이 되니까.
다만, 그 방향성은 다시 확인해 봐야 했다.
박 팀장님이 TaKa 엔터테인먼트를 떠난 뒤부터가 그러했다.
팀장님이 회사를 떠난 뒤, 회사는 많은 것들이 바뀌었다.
옳은 말을 하던 이사진들은 벽 같은 송 대표에게 지쳐 하나둘씩 팀장님을 따라 회사를 떠났다.
더 좋은 조건으로 제안 오는 곳이 허다했으니까.
굳이 썩어 가는 회사에 평생 남아 있을 이유가 없었다.
이젠 우리만 남았다.
송 대표는 우리에게 자극적인 노래를 원했다.
대중의 선택을 ‘무조건’ 받을 수 있는 그런 노래.
그건 좋은 시선뿐만이 아닌, 흔히 ‘어그로’성을 띤 그런 것을 말했다.
하지만 우리 팬들, 포션들은 그런 모습의 우리를 좋아한 게 아니다.
좋아한들, 우리의 색은 그게 아니다.
그래서 우리는 송 대표의 제안을 거절했다.
그 결과.
몇 년간 우리에게는 광고와 화보 일만 들어왔다.
가수라는 업무에서 많이 멀어진 일들만 주야장천 하고 있다.
머리 좋은 예찬이는 진작 계약을 마친 즉시 떠나갔다.
자신만의 회사를 차리더니, 지금은 하고 싶은 음악만 하고 있다.
최태현은 빈손을 펼쳤다.
‘마이크를 쥔 게, 언제였더라.’
가장 최근에 녹음실을 방문한 건 예찬이와 함께 E-UNG 녀석들의 ‘Wise’, ‘더운 오후’를 녹음할 때가 끝이었다.
톡신 멤버들은 지금 하나같이 30대 중반을 넘겼다.
쏟아지는 어린 아이돌들 사이에서 살아남아 활동하기엔 솔직히 끝물의 끝물이었다.
태현은 펼친 손으로 주먹을 쥐었다.
손톱이 손바닥을 파고들어 가 손톱자국이 남을 정도로 강하게 틀어쥐었다.
‘욕심인 건 알지만 그래도.’
아직 나는, 우리는 톡신으로 노래하고 싶다.
엘리베이터에 올라타고 혼자가 된 태현은 주먹을 쥐고 있던 손을 풀어 얼굴을 가렸다.
‘박 팀장님…….’
30대 후반.
데뷔 때와 달리 나이는 많이 먹었지만 달라진 건 없다.
톡신의 맏형이었던 예찬이가 홀로서기를 위해 떠나고, 동갑내기 세 동생에게 남은 건 자신뿐이었다.
하지만 내가 그 타깃이 되었을 땐,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모르겠다.
나는 예찬이처럼 똑똑하지도 않고…….
그냥 묵묵히 기둥처럼 박혀 있는 것밖에 할 줄 모르니까.
그래서 나는 힘든 순간이 되면 아직도 박창석 팀장님을 찾는다.
언제나 그랬듯이 나한테 답이 되어 줄 테니까.
‘그러니까, 제발.’
TaKa 엔터테인먼트 사옥 내, 1층으로 향하는 엘리베이터 안에서 최태현은 톡신의 맏형이라는 이름을 잠시 벗어 둔 채 무너져 내렸다.
‘그때 우리를 구해 냈던 것처럼.’
이대로 이 말도 안 되는 루머에 파묻혀 사라지고 싶지 않으니까.
제발 한 번만 더.
우리를 구해 줘요.
딱 한 번만 더.
‘톡신’이라는 이름으로 노래하고 싶으니까.
제발.
우리 좀 살려 주세요.
“나 좀 살려 줘요, 팀장님…….”
* * *
식당으로 향하는 길.
예찬, 은지, 화랑이 나란히 뒷자리에 앉고, 앞에는 은호가 앉았다.
운전대를 잡은 건 박 대표였다.
박 대표는 한참을 달리다 조용히 입을 열었다.
“은호야, 은지야.”
“네.”
“…….”
박 대표는 대답이 없는 은지를 백미러로 확인했다.
조금 거리가 있는 식당으로 가는 탓일까.
상자 정리가 생각보다 힘들었던 건지.
은지와 화랑은 서로 어깨와 머리를 기댄 채 잠이 들어 있었다.
한편, 지예찬은 창밖을 보며 생각에 잠긴 눈이었다.
박 대표는 못 말린다는 듯 피식 웃음을 흘리며 입을 열었다.
“은호야.”
“네.”
“이번에 태현이랑 오현이 일 터진 거 알고 있냐.”
“톡신 선배님들이요?”
“그래.”
이야기가 나오자 창밖을 바라보던 지예찬의 표정에 짙은 근심이 어렸다.
“조만간 G-MISIC에 주주총회가 있어.”
“주주총회……?”
주식에는 그다지 관심을 가져 본 적이 없는 탓에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 단번에 알아듣기가 힘들었다.
그런 은호를 알고 있었는지, 박 대표는 약간의 설명을 덧붙이며 말을 이었다.
“예찬이네 회사 주식을 가진 사람들이 모인다는 말이야.”
“아, 네.”
“이건 조금 나중에 발표할 예정인데…….”
박 대표가 뒷말을 끌다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내가 예찬이네 회사를 삼킬 생각이다.”
박 대표가 던진 말에 뒷자리에 앉아 있던 지예찬이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
“톡신을 데려오기 전에 우리 회사가 그만한 이유는 있어야 하니까.”
“아.”
톡신이 NRY 엔터테인먼트에 오는 건 어느 정도 예상했던 일이었다.
다만, 굳이 ‘이유’를 만드는 데에는 이해하기가 어려웠다.
“삼키는 조건이 TaKa를 터뜨리거나, 송남철이를 대표 자리에서 끌어내리는 거거든.”
TaKa를 터뜨리거나 송남철 대표를 끌어내린다.
은호는 잠시 생각에 잠기더니, 곧 정리가 끝난 듯 박 대표에게 되물었다.
“화랑 씨가 가져왔던 그 폭탄 사용하려고요?”
“그래.”
박 대표는 단번에 이해한 은호가 대견한지, 흐뭇한 미소를 띠며 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