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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매는 비즈니스로 일합니다-176화 (176/309)

남매는 비즈니스로 일합니다 (176)

“안 취했다니까?”

“엔 취휐뒈뉘꿰?”

“진짜, 확 그냥.”

“때려 봐, 때려 봐.”

“안 때려. 너 또 내 눈에 모래 뿌릴 거잖아, 또라이야.”

“당근.”

“똥이 더러워서 피하지 무서워서 피하겠냐.”

“나보고 똥이라는 거야?”

“응.”

“이―.”

은지가 발끈하며 달려올 때였다.

“헐!”

“뭐, 뭔데.”

은호가 은지 너머를 보며 놀란 척을 하자, 은지는 움찔거리며 뒤를 돌아봤다.

돌아본 뒤에는 고장 난 가로등뿐이었다.

은지가 마른침을 삼키며 다시 은호를 돌아보자, 은호는 여전히 은지의 너머를 노려보고 있었다.

“야, 너, 너 뒤에…….”

그때였다.

은호는 표정 관리가 힘들었는지 입꼬리가 씰룩거렸다.

은지는 그제야 눈치챘다.

아, 이 자식이 나를 놀렸구나.

“하지 마! X친 새끼야!”

은호는 들켰다는 걸 알았는지 끅끅거리며 웃음을 터뜨렸다.

이후 은호는 골목을 달리기 시작했다.

“아, 같이 가!!!”

막상 은호가 떠나 버리자, 혼자인 건 무서웠는지 은지도 은호 못지않게 빠르게 골목을 달렸다.

투덕거리며 집에 도착하자, 낯선 검은 대문이 달려 있었다.

사실 오늘 저녁 주연의 가게에 방문한 이유는 이것 때문이기도 했었다.

박 대표는 은호와 은지의 이름이 알려지기 시작하자 이젠 CCTV만으로는 불안했는지, 사옥으로 쓰던 때에는 떼어 뒀던 대문을 다시 달았다.

깔끔한 검은 대문은 새하얀 벽과 대비되어 세련된 느낌도 나는 듯 보였다.

문제는 없던 대문이 생기자 은호와 은지에게 여러모로 당혹스러운 상황이 생겼다는 것이다.

“이거, 대표님이 열쇠 어디에다 두겠다고 했었지?”

“열쇠가 아니지 않아?”

“뭐였지.”

맥주 반 캔으로 몰려온 술기운 때문에 떨어진 기억력이 문제였다.

은호와 은지는 난감한 한숨을 흘리며 전화를 들었다.

“어, 은호야.”

“대표님, 이거 문 어떻게 열어요?”

“너 술 마셨냐?”

“…….”

귀신은 아무래도 대표님이 아닐까.

일부러 풀린 발음도 똑바로 하려고 노력하면서 말했건만, 별 소용이 없었나 보다.

“반 캔 마셨습니다…….”

“맥주로 혀 풀리는 네가 한편으로는 참 신기하다.”

“그만 놀리시고 대문 여는 방법 좀 알려 주세요…….”

박 대표는 술 못 마시는 은호를 놀리기도 잠시, 새로 단 대문 여는 법을 알려 줬다.

일반적인 대문과 달리 번호 키 자체가 두꺼운 문 속에 숨겨진 보안이 뛰어난 문이었다.

박 대표의 안내를 따라 은호는 미리 설정된 비밀번호 ‘000000’을 누르고 안으로 향했다.

“비밀번호는 너희 편한 대로 바꿔.”

이후 박 대표의 설명에 따라, 은호는 비밀번호를 수정했다.

번호는 거실에 놓인 사물함 비밀번호와 같은 ‘1111’에 추가로 ‘95’를 눌렀다.

은지의 생일이었다.

삐― 삐―.

“같은 번호 네 자리 이상은 입력 안 된다.”

“아.”

어쩐지 안 된다는 알람 같더라니.

은호는 잠시 고민하다 ‘083093’을 입력했다.

은호의 생일과 생년이었다.

“은호야, 혹시나 하는 마음에 하는 말인데, 생일로는 하지 말아라.”

“아.”

은호의 당황한 듯한 목소리에 박 대표는 이내 ‘하하’ 웃음을 터뜨렸다.

한참을 고민한 끝에, 비밀번호는 ‘935811’이 되었다.

어쨌든, 생년월일이 다 들어가지 않았으니까 되지 않았을까.

박 대표는 여전히 찜찜했지만, 그 정도는 나쁘지 않다고 생각한 듯 얼른 들어가 보라며 통화를 끝마쳤다.

“그러고 보니까 곧 오빠 생일이네.”

“벌써 그렇게 됐나.”

“뭐 가지고 싶은 거 있냐.”

“딱히.”

신기한 대문을 만지작거리는 것도 잠시, 은호와 은지는 계단을 올랐다.

은호는 은지를 뒤따르며 몰랐던 새에 생긴 담벼락의 가시 같은 안전 창을 신기하게 바라봤다.

“참, 아직 그거 안 나왔던가?”

“뭐.”

“VR.”

“아, 모르겠네. 몇 년 더 있어야 나오지 않나?”

“그랬나?”

이럴 때면 평범하게 대화하고 있지만, 새삼 서로가 회귀 전 기억이 있다는 게 실감 나는 순간이었다.

“왜 나와 있으면 나 생일 선물로 사 주려고?”

“아니. 내가 미쳤어?”

“파쳤음.”

“아, 쫌! 그런 것 좀 하지 말라니까. 재미없어.”

“난 재미있어.”

“아이고, 아재.”

“지는 나이는 너도 똑같이 먹었거든.”

투덕거리며 계단을 올라오다 보니 어느새 갈색 알루미늄 문 앞이었다.

은호가 주머니에서 집 열쇠를 꺼내 건네자, 문 앞에 있던 은지가 문을 열었다.

“아무튼 VR은 내가 해보고 싶어서. 나 그때 바빠서 해 보고 싶다고만 하고 해 본 적이 없었잖아. 연탄아!”

“냐―.”

문 앞에서 돌아온 은지를 반기듯 연탄은 꼬리를 바짝 세운 채 곧장 은지의 다리로 달려와 가볍게 머리를 꿍 찍었다.

“하긴…….”

그런 연탄의 내숭도 이젠 익숙해진 은호는 가볍게 혀를 차며 마저 이야기를 이었다.

“이맘때 너 두 번째인가 세 번째 미니 앨범 준비하고 있었었나?”

“아마 세 번째인가? 그랬을걸.”

“한창 바빴을 때네.”

“응. 그래서 그거 나왔다고 들었을 때 신기해서 매니저 오빠한테 해 보고 싶다고 떼썼었거든.”

“아, 기억난다. 네가 하도 그거 가지고 자기 갈군다고 매니저 형이 나한테 뒷담 많이 했었어.”

“집 잘 보고 있었쪄? 늦어서 미아내~.”

은지가 연탄의 뺨을 문지르며 혀 짧은 소리를 내자, 은호는 못 들을 걸 들었다는 듯 두 귀를 검지로 틀어막았다.

그런 은호에게 은지는 조용히 중지를 세우며 웃어 보였다.

두 사람 사이에서 연탄은 노란 눈동자를 굴리며 은호와 은지의 얼굴을 눈에 담았다.

“뭐.”

“냐옹.”

은호가 연탄을 보자, 연탄은 모른 척 다시 은지를 향해 몸을 돌렸다.

* * *

한 가족

“어차피 합칠 거라면 재미있게 가요.”

“이게 장난도 아니고 재미는 무슨 재미야.”

“말을 하자면 그렇다는 거죠. 내 동생들 건드린 만큼 송남철 대표도 그만큼 끌어내려야 후련하잖아요.”

지예찬과 박 대표가 진지한 대화를 나누는 건너편에는 은지, 은호가 나란히 앉아 박스를 접고 있다.

손들이 하나같이 바빴다.

게다가 은지와 대각선 자리에 앉아 있는 화랑까지.

화랑은 은호와 은지가 접어 둔 상자에 주문 목록을 확인 후, 편지와 폴라로이드 사진, 머그 잔, 셔츠 등등 랜덤 사은품을 하나 넣고 포장하는 행동을 반복하고 있었다.

지예찬은 가만히 이 풍경을 바라보다, 박 대표를 불렀다.

“박 팀장님.”

“언제 대표라고 부를래?”

“이렇게 몇 년을 불러서 잘 안 떨어져요. 아무튼, 팀장님.”

“왜.”

“난 왜 갑자기 불려 와서 이러고 있는 거예요?”

지예찬은 웃으며 들고 있던 완충재를 흔들었다.

표정은 웃고 있었지만, 한편으로는 살짝 짜증이 난 듯했다.

“오랜만에 같이 밥 먹자고 하길래 왔더니 부려 먹기만 하고…….”

“먹어. 이거 다 하고.”

“……세상에 천하의 지예찬을 앨범 포장하는 데 써먹는 사람은 팀장님뿐인 거 알죠?”

“천하의 지예찬 씨, 시끄럽고 손이나 빨리 움직이셔.”

“하면서 떠드는 거거든요. 내가 이응이들 거 싼다고 하니까 돕는 줄 알아요.”

“그건 고맙네.”

“근데, 아니, 애초에 사람 쓰면 되잖아요.”

“썼어.”

“그럼 이걸 왜 굳이 직접 하는 거예요?”

“이건 한정판으로 나눠 주는 거니까.”

“진짜 정성이다. 정성이야…….”

박 대표는 힐끔 지예찬과 은호와 은지를 순서대로 돌아봤다.

그러곤 피식 미소를 띠며 말했다.

“쟤들이 그러고 싶다는데 어떻게 안 해 주겠냐. 어려운 것도 아닌데.”

“와, 쟤들한테 해 주는 절반만 우리한테도 해 주지.”

“우리 회사 들어오면 딱 절반은 해 줄게.”

“약속했어요.”

“그래, 그래. 그러고 보니, 주주총회는 언제냐.”

“다다음주에요.”

“얼마 안 남았네.”

“그나저나 여기 회사는 안 내놓을 거예요?”

“뭘?”

“주식요.”

“왜, 니가 다 쟁여 둘라고?”

“하하, 예.”

박 대표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말을 이었다.

“남들한테 휘둘리면서 회사 운영하고 싶진 않아.”

“오―. 나 그럼 팀장님하고 계약하면 내가 하고 싶은 거 눈치 안 보고 만들어도 돼요?”

“이미 그러고 있는 애들 있는데, 뭘.”

박 대표는 고갯짓으로 은호와 은지를 가리켰다.

“참, 쟤들 벌써 두 번째 EP 제작 중이라는 소문 돌던데, 진짜예요?”

“말도 마라…….”

박 대표가 질린다는 듯 고개를 젓자, 지예찬이 갸우뚱거리며 호기심을 드러냈다.

“은지랑 은호랑 요즘 클라우드에 파일 쌓고 있거든.”

“오, 많아요?”

“통과한 게 세 자리 넘었을걸.”

“통과? 세, 세 자리?”

“은호가 가사 짠다고 고생이 많아.”

“어떻게 백 곡이 넘어요. 거짓말도…….”

박 대표는 조용히 휴대폰을 꺼내 사내 클라우드 파일 중, 은호와 은지가 공유 중인 파일을 열었다.

지예찬은 휴대폰을 건네받은 후, 파일들을 훑었다.

아래로 내리고 내려고 계속 이어지는 곡들을 보며 지예찬의 표정은 점점 경악에 가까워졌다.

“은지는 뭐, 밥 먹고 곡만 써? 아니, 곡만 써도…….”

어떤 느낌의 트랙인지, 확인차 40번 대에서 하나, 70번 대에서 하나, 100번 대에서 하나씩 골라 재생해 봤다.

“와…….”

어쿠스틱 기타를 베이스로 뽑은 트랙.

이국적인 라틴풍 트랙.

그리고 마지막으로 오르골을 돌리는 태엽 사운드를 시작으로, 싱그러운 분위기로 이어지다 베이스 리듬과 함께 반전 매력이 있는 트랙까지.

하나같이 다른 색깔의 곡들에 더더욱 감탄이 나오지 않을 수가 없었다.

“몇 개 훔쳐 가고 싶네.”

“훔치기는, 돈도 많은 놈이. 애들 용돈이라도 쥐여 주고 가져가.”

“당연히 농담이죠.”

“확인하는 동안 농땡이 부렸으면 얼른 다시 마저 싸. 빨리해야 밥먹으러 간다.”

“예, 예.”

지예찬은 투덜거리면서도 후배들을 위한 일이기에 묵묵히 일을 도왔다.

수십 개의 상자를 트럭에 싣고 나서야 박 대표는 손을 털었다.

“끄아아아! 끝!”

은지가 시원하게 기지개를 켜며 소리치자, 은호도 뒤따라 하품을 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고생 많았다. 이제 밥 먹으러 가자.”

“뭐 먹으러 가요?”

“비싼 거 사 줘요. 나 이용했으면 그만한 건 사 줘야지.”

“초밥, 소고기, 돼지고기, 오리고기, 닭고기. 다들 하나씩 골라 봐.”

“돼지요.”

“돼지고기!”

“소고기.”

“돼, 돼지?”

박 대표는 의외였는지 은호와 은지를 놀란 눈으로 돌아보며 물었다.

“화랑이는 그렇다지만 너희가 웬일이야?”

“냉동실에 아직 한우 차돌 좀 남았거든요.”

은호가 답했다.

한편, 이번에는 유일하게 소고기를 골랐던 지예찬이 놀란 눈을 하며 물었다.

“와, 한우 차돌. 그것도 팀장님이 사 줬어?”

“헤헤, 아뇨.”

지예찬의 물음에 은지가 헤벌쭉 웃으며 헛기침을 해댔다.

“으흠! 제가 체인지 파트너에서 우승해서 받아 왔어요.”

“뭘 니가 받아 와.”

은지의 자랑에 은호가 미간을 뒤틀며 말을 보탰다.

“내가 우승하는 방법 찾아내고 PD님이랑 딜해서 다 떠먹여 준 거잖아.”

“어쩌라고, 나도 추리 많이 했어. 그리고 우승자는 결국 나잖아.”

“애초에 내가 너 안 찍었으면 우승도 못 했거든.”

“안 들려~~~.”

“저 호박 대가리.”

“뭐래, 우럭 대가리가.”

“안 들린다며?”

은지가 입꼬리를 아래로 끌어내리며 은호의 말투를 따라 하려던 그때였다.

“와, 개 못생겼다.”

“푸핫.”

은호가 질겁하며 던진 공격은 평소와 다름없었다.

바로 옆에 지예찬이 웃지만 않았으면 그랬다.

“선배니임!”

“미, 미안해. 하핫.”

은지가 상처받은 표정으로 지예찬을 돌아보자, 지예찬은 웃음이 참아지지 않는지 고개를 푹 숙인 채 어깨를 들썩여댔다.

“이은지 못생겨서 선배님이 우시잖아.”

“뭔 소리야!”

“하하하, 아, 둘이 이야기하는 거 보면 귀여워 죽겠네.”

은호와 은지는 똑 닮은 당황스러운 표정으로 고상하게 웃고 있던 지예찬을 돌아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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