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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매는 비즈니스로 일합니다-173화 (173/309)

남매는 비즈니스로 일합니다 (173)

나나 이은호한테 투표를 받으면 우승이라…….

“근데 뭔가 이상한 게 있어.”

“뭔데?”

“오빠나 나나 배찬 선배한테 호감이 있었잖아. 속물 같긴 해도 호의로 사 주신 선물은 진심으로 감사했으니까.”

“그렇지.”

“근데 왜 날 탈락시키신 거지?”

“무슨 말이야?”

은지는 팔짱을 끼며 왼손으로 뺨을 문지르며 말을 이었다.

“나랑 배찬 선배 팀 된 거, 배찬 선배가 나한테 먼저 제안해 줘서 됐었거든. 출발 전까지 분위기가 나쁘지도 않았고…….”

은지는 뒷말을 쉽게 꺼내지 못하는 듯 보였다.

“뭔데, 또 무슨 촉이 와?”

“아, 응. 그, 미션 종이 있잖아. 처음에 받은 거, 번호 말고.”

“어.”

“똥 추리일 수도 있지만 그걸 봤을 때, 선배는 모른다고 했는데 그, 거짓말 같은 느낌을 받았거든.”

“그 ‘감’으로 맞힌 게 한두 개가 아니잖아. 난 니 감 믿는다.”

은호가 단호하게 던진 믿는다는 한마디에 은지는 의외였는지 놀란 눈으로 은호를 돌아보며 웃었다.

“그건 쫌 고맙네?”

“고마우면 평소에 맞먹지나 마셔.”

“하하, 그건 싫어.”

“그러시겠지. 그래서 그건 됐고, 그게 언젠데.”

“오빠가 딱 출발하기 직전……이었던 것 같은데, 오빠가 에러랜드 직원분 앞에 있었으니까.”

에러랜드 직원 앞에 있을 때라…….

「“어어! 은호 씨, 미션 구역은 스스로 찾으셔야 합니다.」

PD가 당황하며 외쳤던 말이 떠오른 그때였다.

되면 좋고 아니면 말고 심정으로 직원에게 미션지 장소를 대놓고 물어봤었더랬다.

‘아……!’

은호는 실마리를 잡은 듯 반쯤 감고 있던 눈을 번쩍 떴다.

“야, 나 알았다.”

“뭘?”

“나 내 미션 장소 아까 직원분한테 물어봤었거든?”

“어. 근데.”

“그때 근처에 너랑 선배가 있었어. 선배가 그 내용을 들었고, 그게 만약 걸리면 안 되는 위치였다면?”

“왜 걸리면 안 돼?”

“거기가 스파이를 탈락시키는 중요한 구역인 거지.”

“인형이 있나?”

“그래! 인형!”

은호는 급하게 휴대폰을 켜며 문자를 다시 읽었다.

[‘에러랜드 호러 하우스’에 위치한 스파이의 기지가…….]

기지다.

“거기가 배찬 선배님 기지인 거야!”

“아? 그럼 오빠를 거기에 못 가게 하려고 나를 버렸다는 거야?”

“그렇지.”

“왜 나지?”

“니가 내 동생이니까.”

“그게 무슨 상관이야?”

“내가 널 구하러 올 줄 알았던 거겠지.”

“……아.”

은지는 은호가 구하러 왔다는 것이 새삼 실감이 난 듯 복잡한 감정이 뒤섞인 짧은 감탄을 흘렸다.

“그런 거라면, 확실히 이건 점수인가 보네.”

“그래?”

“응. 아까 딱히 혼자만 보는 종이라고 생각 안 하고 선배님한테 내 점수 종이를 보여 주고, 나도 선배님 점수 종이를 봤었거든.”

은지는 1점.

정배찬은 2점.

스파이는 점수가 반영되지 않는다는 전제하에, 그렇다는 건?

“오빠보다 낮은 건 결국 스파이들뿐이니까, 나를 죽이더라도―.”

“‘탈락’시키더라도.”

은호는 ‘죽음’과 연관된 단어에 예전에 비해선 거부감이 줄어들었다.

하지만 여전히 은지의 입으로 직접 듣는 건 불편했는지 재빠르게 단어를 수정했다.

은지는 은호의 마음을 이해는 하기에 불만 없이 정정하며 말을 이었다.

“그래. 탈락시키더라도. 어쨌든 간에 오빠한테 점수 받은 사람이 우승인 거겠지.”

“근데 너 탈락했다고 알람 뜬 뒤에 정배찬 선배가 금방 또 탈락했다고 떴던 건 뭐지?”

“그거 아니야?”

“뭐.”

“시크릿 아이템.”

“아……! 가짜 문자를 보낼 수 있는 건가?”

“그런 것 같아.”

“근데 너는 알고 있잖아.”

“응?”

“정배찬 선배가 탈락 안 했다는 거 말이야.”

“그렇지. 선배가 나가자마자 오빠가 바로 들어왔으니까. 계산 착오인 건가?”

“그럴 확률이 커. 내가 이렇게 일찍 올 줄은 몰랐을 거야. 가는 길엔 느리게 걸어가고 있었고 여기 올 땐 너 혹시라도 욕 할까 봐 미친 듯이 달려왔거든.”

은호가 장난스럽게 은지를 바라보며 놀리자, 은지는 그 부분에 대해선 할 말이 없긴 한 듯 얌전히 고개를 끄덕였다.

“일단, 이동 먼저 하자. 우승 방법은 알았지만, 그래도 시간 날리는 건 아까우니까.”

“우승 방법을 알아? 어떻게?”

은호는 어느새 글씨가 흐려진 종이에 다시 손전등 빛을 비췄다.

죽음이 우리를 갈라놓아도, 우린 항상 함께였어.

이번 체인지 파트너에 참여하기 전부터 우린 이미 팀이었다.

둘 중에 누가 탈락을 하든, 그건 변함이 없다.

나는 걷고 또 걸어 날 믿는 너를 믿고서

가장 큰 힌트는 이거였다.

우리는 서로만 믿으면 된다.

우리가 가장 잘하는 것 말이다.

“우주선 쪽으로 먼저 가자. 아무래도 퓨처 시티 쪽이 정배찬 선배님 기지인 것 같으니까.”

* * *

체인지 파트너에서 정배찬의 작전은 항상 괜찮은 축에 속했다.

다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승 경험이 없는 것은 한 가지 문제점 때문이었다.

‘자만.’

그는 승리를 눈앞에 뒀을 때마다 시야와 생각이 극도로 좁아진다.

그렇게 다 된 밥을 다른 멤버들에게 빼앗기는 경우가 허다했었다.

이번 역시 그러했다.

조사랑은 미리 알아 둔 지름길을 통해 먼저 ‘인형의 집’으로 도착해 있었다.

바로 뒤편에 조사랑이 숨어 있다는 것도 전혀 모른 채 여유롭게 인형의 집으로 다가가던 그때였다.

“정배찬! 내 인형 내놔!”

“아아아아악! 아파! 아파! 아프다고!”

“음즈느 느 은흔 느느느르그! (얌전히 내 인형 내놓으라고!)”

두 사람은 일생일대의 대결을 벌였다.

정배찬이 인형을 안 뺏기기 위해 팔을 높이던 그 순간.

정배찬보다 덩치가 작았던 조사랑은 힘으로는 이길 수 없다고 판단한 듯, 그대로 정배찬의 옆구리를 물어 버렸다.

하지만 쉽게는 안 빼앗길 생각인지 팔을 내린 그 순간.

정배찬은 마치 알을 품는 새처럼 인형을 품은 채 둥지를 틀고 바닥에 들러붙어 소리쳤다.

“스파이가 기지를 걸렸으면 곱게 가셔야지!”

“이러는 게 어디 있어!”

“여기 있다!”

“동맹, 그래! 우리 동맹하자. 어?”

“안 해! 스파이 주제에!”

“그래, 하지 마! 오늘 너 죽고 나 죽자!!!”

조사랑은 끙끙거리며 정배찬을 뒤집으려고 했기만 쉽지 않았다.

정배찬도 어지간했던 것이 뒤통수까지 물렸건만 절대 풀 기미가 보이질 않았다.

그 난리 통 사이에 두 사람의 휴대폰엔 문자가 도착해 있었다.

[C팀 이은지가 영혼 연결로 부활…….]

조사랑은 문자를 확인했고, 이때를 틈타 정배찬은 조사랑의 인형을 인형의 집으로 들고 달려갔다.

“아, 안 돼!!!”

조사랑이 다급하게 뒤쫒아 정배찬을 붙잡았고 그 바람에 정배찬의 티셔츠가 찢어지기까지.

하지만 정배찬은 결국 인형의 집에 조사랑 기지의 인형을 꾸역꾸역 반납해 냈다.

“아아악!”

조사랑은 절규하다 어느새 다가온 검은 손 스태프들에게 끌려갔다.

“내가, 해냈어. 해냈다고!!!”

20대 초중반의 성인 남녀가 인형 하나를 두고 투덕거리는 모습은 멀리서 보면 코미디가 따로 없었지만, 정배찬에게는 아주 값진 하나의 승리였다.

“이제, 은호한테 가서…… 어?”

승리를 만끽하며 조금 전 도착한 문자를 확인한 정배찬은 얼굴이 파랗게 질려 버렸다.

은호의 표를 얻기 위해, 얼른 달려가기 위해 노력했던 것이건만…….

긴 싸움 끝에 남은 것이라고는 오프 숄더가 되어 버린 티셔츠뿐.

참고로 이 티셔츠, 목이 딱 맞던 라운드 티였다.

‘은, 은지가 살아났다니…….’

그래도 아직은 괜찮다.

은호와 은지는 적어도 스파이가 다섯 명인 건 모를 테니까.

이걸 이용해서 어떻게든 다시 신뢰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그렇게 정배찬은 헛된 기대를 품었다.

* * *

‘연락’을 받고 당황한 건 정배찬뿐이 아니었다.

정배찬과 조사랑의 난리를 즐겁게 구경하던 PD.

“무, 뭐라고?”

PD는 한 스태프의 연락을 받은 순간, 얼굴에서 미소가 증발해 버렸다.

“어떻게!”

“저도 그건 모르겠어요. 갑자기 두 사람이 추측하면서 ‘착착착착착’ 맞혀 버리는데…….”

“그게 말이 된다고 생각해?”

“정말인걸요!”

“너희가 알려 준 거 아니고?”

“아니에요! 절대 아니에요! 중간에 끼어들 틈도 없었는걸요!”

PD의 의심에 전화 너머 스태프는 억울함을 호소했다.

하지만 PD는 쉬이 의심을 거둬 내지 못했다.

대체 어떻게?

힌트를 주긴 했다만, 그래.

스파이가 다섯 명이라는 걸 알아낸 것까지는 이해할 수 있다.

애초에 알아내라고 던져 준 힌트였으니까.

그리고 인형을 이용하여 스파이의 기지를 무너뜨리는 방법까지도.

하지만 우승 방법을 알아내는 건 다른 문제였다.

가사를 이용해서 남겨 두긴 했다만, 그걸 해석해 냈다고?

보통 이런 식으로 문제를 냈을 때 체인지 파트너의 멤버들은 게임이 끝날 때나 되어서야 뿌려지는 히든 힌트를 조합해서 ‘아, 그게 힌트였구나!’ 하는 반응이었다.

그래서 이맘때면 슬슬 S급 힌트를 통해 스파이에 대해 이야기를 해 주는데…….

“여기서 그걸 알려 줬다간 방송 분량이…….”

“……일단, 흘러가는 대로 두자.”

PD는 스태프들과 모여 짧은 회의를 거쳤다.

하지만 의외로 은호와 은지가 정배찬을 놀리기 위해 작당하고 벌인 일 덕분에, 방송 분량은 문제가 없었다.

* * *

“익스트림 월드랑 튤립 파크에 있는 것도 사라졌대.”

한편, 그사이 두 사람은 서로 싸우면서 보내기라도 한 걸까.

아니면 한 사람이 두 인형을 모아 없애 버린 걸까.

동시에 스파이의 기지 두 곳이 사라졌다는 알림이 떴다.

그동안 은호와 은지는 정배찬의 기지에 도착했다.

이미 탈락해 본 은지는 ‘인형에게 빛을 비추면 안 된다’는 조건을 알고 있었다.

덕분에 은호는 손전등을 끄고 눈이 어둠에 적응되고 난 뒤, 안으로 진입해 인형을 얻어 냈다.

이번 역시 이후에 챙겨 나온 흰 종이에 손전등 빛을 비춰 봤지만, 의외로 힌트는 모두 같은 내용이 쓰여 있는 것 같았다.

“어? 얘는 파란 원피스네.”

“왜?”

“호러 하우스에서 본 건 빨간 옷이었거든. 옷이 다 다른가 봐.”

“옷이?”

“눈 색도 옷이랑 맞춰진 것 같긴 한데, 어두운 계열이라 티가 크게는 안 나네. 비슷해.”

“그래?”

은지는 이름은 못 외워도 사람이나 물건의 생김새는 기가 막히게 잘 기억하는 편이다.

은지가 ‘비슷하다’라고 하는 정도라면 은호 본인과 다른 사람들 눈에는 ‘그냥 똑같은 것 아닌가?’ 싶은 정도라는 말이었다.

“옷이 다르다라…….”

은호는 잠시 고민했다.

이대로 게임을 끝내 버릴 수도 있는데…….

그러기 아쉬울 정도로 더 재미있는 방법이 떠올라 버렸다.

“이은지.”

“응?”

은호는 속내를 감춘 뱀처럼 묘한 미소를 지으며 입을 열었다.

“우리 배찬 선배 자멸하게 만들어 볼래?”

“자멸? 아…….”

은지는 훨씬 더 입꼬리를 끌어 올리며 웃었다.

거울처럼 똑 닮은 얼굴이었지만, 은지의 눈매 때문인지, 메이크업 때문인지…….

은지는 은호보다 훨씬 사악한 분위기를 띠며 대답했다.

“완전, 콜.”

* * *

은호와 은지를 찾아 떠돌던 정배찬은 처음엔 제 기지를 찾았다.

분명 누군가 왔다 간 흔적은 있건만, 인형은 그대로 놓여 있었다.

정배찬은 이후 은지와 함께 받은 미션지 구역도 혼자 돌아봤지만, 도착한 위치에는 이미 종이도, 인형도 사라진 후였다.

얻은 것 없이 다시 제 기지로 돌아온 그때였다.

“어!”

길쭉한 남녀의 뒤태를 보자마자 알았다.

“은호야!”

익숙한 목소리에 은호와 은지가 고개를 돌렸다.

정배찬은 멈칫하며 다가가던 걸음을 늦췄다.

은호와 은지가 고개를 돌리던 그 순간.

마치 덫을 놓고 기다리던 먹잇감이 서서히 다가온 듯이.

은호와 은지는 밝은 갈색 눈동자에 섬뜩한 이채를 띠며 환하게 웃고 있었다.

‘……뭐지?’

정배찬은 불안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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