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매는 비즈니스로 일합니다 (172)
‘제발 저를 구해 주세요.’라는 미션을 확인한 순간.
은지가 갸웃거리며 무슨 말인지 전혀 모르겠다는 반응을 보였다.
정배찬은 무슨 소리인지 아주 잘 알고 있었지만, 일부러 모른 척하며 이어서 스태프에게 건네받은 다른 쪽지를 확인했다.
2
정배찬의 번호는 2번이었다.
팀인 덕분일까.
1?
은지가 제 종이의 번호를 보여 준 덕분에 번호를 볼 수 있었다.
정배찬의 눈빛에 이채가 맴돌았다.
「“스파이의 표는 ‘0점’으로 들어가오. 투표 후 당신이 가장 높은 ‘점수’가 되면 우승이요.”」
이래서 그 가짜 노인이 몇 ‘표’가 아니라, 몇 ‘점’이라고 설명했나?
고로, 은지는 1점짜리 표라는 말이었다.
스파이의 표는 0점으로 집계된다.
그 스파이는 총 다섯 명이라고 했으니, 그 말은 곧.
이미 기념품 가게에서 두 사람의 마음도 다잡아 뒀겠다.
은호가 몇 점인지는 몰라도 이대로 은호의 표를 받으면 우승이라는 말이었다.
‘물론 내 스파이 기지를 들키지 않았을 때 말이지.’
정배찬을 빠르게 머리를 굴리며 판단했다.
“이쪽인 것 같다, 은지야.”
“어? 그래요?”
에러랜드의 지도는 정배찬의 손에 있었다.
정배찬은 실실 새어 나오는 웃음을 애써 감추며 길을 안내했다.
「“스파이님의 기지를 지킬 방어 함정이 적용될 겁니다. 함정을 뚫어 내지 못하는 사람은 탈락하게 됩니다.”」
PD가 말했던 규칙을 떠올리면서 정배찬은 은지를 이용할 계획을 잡았다.
목적지는 하나였다.
「“사랑, 어디 가?”」
「“아, 호러. 아니, 그그…….”」
에러랜드에 정확히 ‘호러’라는 단어가 들어가는 장소는 단 한 곳뿐.
‘호러 하우스.’
사랑이는 무서운 걸 싫어하면서 거기에 어떻게 인형을 놓고 왔는지는 모르겠지만…….
‘아마 무서워하는 만큼 깊은 곳에 두고 오지는 않았겠지.’
그렇게 도착한 호러 하우스.
“여, 여기는 아닌 거 같은데요. 선, 선배!”
정배찬은 은지를 호러 하우스에 밀어 넣었다.
그때, 은지가 들고 있던 손전등의 빛이 인형을 스쳤다.
“앗, 차가워!”
정배찬의 눈이 어둠 속에서도 반짝였다.
‘아하, 이런 식으로…….’
하늘도 자신의 편인 걸까.
조사랑의 기지 방어 시스템이 발동되면서, 스파이 기지의 방어 시스템이 어떻게 굴러가는지를 이해할 수 있었다.
그때였다.
띠링.
[C팀 이은지 탈락]
정배찬의 입가에 실실 미소가 피어올랐다.
“선배님……?”
“미안하다, 은지야. 네가 1점인 걸 원망해.”
“어? 자, 잠깐, 선배 설마! 스……, 으읍!”
정배찬의 얍삽한 짓에 열을 받을 대로 받은 은지는 화를 내려고 했다.
하지만 갑자기 나타나 뻗어 온 탈락자를 처리하는 검은 손에 의해 입이 틀어막혀 버렸다.
“네가 붙잡힌 덕분에 곧 네 오빠가 오겠지.”
“으읍! 읍! 븝브!”
그때였다.
지잉.
또 한 번 다음 문자가 도착했다.
정배찬은 휴대폰을 확인하며 여유로운 미소를 지었다.
[위치: 에러랜드 호러 하우스.
제한 시간: 30분…….]
‘유예 시간’을 알리는 문자였다.
‘체인지 파트너’에서는 탈락을 했더라도 30분 안에 다른 멤버가 구해 준다면 부활할 수 있는 ‘영혼 연결’ 시스템이 존재한다.
하지만 그건 단 1회뿐으로, 구해 준 멤버가 탈락하면 둘 다 탈락한다.
“이제 시작인가?”
이때를 기다렸다는 듯, 정배찬은 휴대폰 연락처 속 ‘X’에게 문자를 보냈다.
[아이템 사용]
[<시크릿 아이템> 사용을 확인했습니다. 이후 보내시는 메시지는 본문 그대로 전체 발송됩니다.]
[C팀 정배찬 탈락]
[<시크릿 아이템>이 사용되었습니다.]
X의 마지막 문자가 도착한 그 순간.
[C팀 정배찬 탈락]
정배찬이 원했던 문자가 모두에게 발송됐다.
“자, 그럼 다 된 밥 다른 애들이 잡아채 가면 안 되니까, 이거나 처리해 보실까.”
정배찬은 이번엔 할 일을 다 한 조사랑의 기지를 부숴 버리기 위해 인형을 찾았다.
은지는 어느새 검은 손들이 가져온 의자에 손과 발은 물론 입은 X 표식이 그려진 마스크로 막혀 있었다.
은지는 혼란스러운 눈빛으로 정배찬을 올려다봤다.
그리고 X 표식이 그려진 마스크를 슬쩍 내려 정배찬을 향해 물었다.
“이게, 대체 무슨 상황이에요? 선배님 진짜 스파이에요?”
정배찬은 여유롭게 그런 은지를 내려다보며 고개를 저었다.
“그런 섭섭한 말을 하면 구해 주기 싫어지잖아, 은지야.”
“뭔…….”
은지의 눈이 온갖 X욕을 하고 있었지만, 정작 봐야 할 사람은 어둠 속에서 잘 보이지 않는 듯했다.
‘영혼 연결’은 그 사람의 마스크를 벗겨 내야 시작이다.
하지만 정배찬은 은지를 구해 줄 생각 따윈 전혀 없었다.
그랬다간 모든 게 허사가 되니까.
만일이라도 은호의 손에 은지가 부활한다면?
은지는 은호에게 조금 전까지 자신이 했던 행동을 이를 것이다.
그래서였다.
“잘 있어, 은지야.”
“이, 이 스파이야아아아아악!!!”
“와, 목청 엄청 좋네.”
호러 하우스를 도망치듯 빠져나온 정배찬은 솔직히 놀람을 넘어 쫄았다.
은지의 광기 어린 비명에 건물이 울리는 것 같았다.
독하다고 해도 아무렴 좋았다.
프로그램이 시작한 지 몇 년 만에 드디어 1등을 할 기회니까!
그리고 그렇게 말해 봐야, 은호한테는 이미 자신도 탈락이라고 알려진 후였다.
인형을 ‘위치’에 반납하면, 조사랑의 기지는 ‘부서진 스파이의 기지’로 바뀌고 곧 일반인의 접근이 금지된다.
그 말은, 은호가 은지를 찾으러 왔지만 은지를 구해 낼 수는 없다는 말이다.
이후 은호한테 자신은 영혼 연결로 부활한 척 접근하면?
그리고 다른 멤버들이 서로 스파이인 줄도 모르고 골고루 잘해 줄 때, 나는 은호한테만 잘해 줘서 은호의 표를 얻으면?
계획이 완성된다.
‘정배찬 첫 우승 달성.’
모든 게 완벽하다.
* * *
정배찬의 계획은 치사하긴 했지만, 나쁘진 않았다.
다만, 그 계획에 큰 착오가 하나 있었다.
은호가 생각보다 일찍 조사랑의 기지에 도달했다는 점이었다.
정배찬이 인형을 반납지로 가지고 가던 그때.
은호는 이미 은지와 함께 인형이 놓여 있던 곳 아래 놓인 종이도 혹시 몰라서 호러 하우스 밖으로 가지고 나왔다.
“이거 내가 풀어 줘야 하냐?”
은호가 은지의 마스크를 보며 묻자, 은지가 격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정배찬이 떠난 뒤.
짧은 시간이었지만 은지는 검은 손 스태프에게 ‘영혼 연결’에 대한 설명이 짧게나마 들은 참이었다.
은호가 은지의 마스크를 벗기고 얼마 지나지 않아, 새로운 문자가 전달됐다.
[C팀 이은지가 영혼 연결로 부활했습니다.]
은지의 부활을 알리는 문자였다.
은호의 휴대폰을 통해 은지가 부활을 확인한 그 순간.
은호는 눈에 보이지 않는 살벌한 불길이 치솟아 오른 느낌이었다.
은지는 분노에 차다 못해 눈을 까뒤집으며 우렁찬 목소리로 외쳤다.
“저어엉!!!배애애애!!!차아아아안!!!”
깜짝이야.
“어우…….”
은호는 불타오르는 은지에게서 한 걸음 물러서서 때마침 호러 하우스 안에서 챙겨 온 종이를 바라보며 생각했다.
저 듬직한 등짝에다 ‘우리 멍멍이는 뭅니다.’라고 써서 붙여 둬야 하나.
진지하게 고민하던 그때였다.
「“B급 힌트는 ‘빛’입니다.”」
어?
설마?
정말 설마 하는 심정이었다.
종이에 손전등의 빛을 비추자 보이지 않던 글자가 나타났다.
“뭐야? 와, 짱 신기해!”
지금껏 복수에 눈이 멀어 있던 은지도 이성을 되찾으며 신기해했다.
종이에는 짧은 세 문장이 널브러져 있었다.
「다섯 거짓말」「납치된 인형」「인형의 집」
문장들의 아래에는 섬뜩한 붉은 글씨로 익숙한 문장이 쓰여 있었다.
죽음이 우리를 갈라놓아도, 우린 항상 함께였어. 나는 걷고 또 걸어 날 믿는 너를 믿고서
은지는 긴 문장을 읽으며 중얼거렸다.
“와, 섬뜩해.”
그런 은지에게 은호는 어이가 없다는 듯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야.”
“응?”
“이거, 우리 노래 가사야.”
“엉? 헐, 어? 진짜네? 어?”
“이야, 섬뜩하게 가사 써서 미안하다?”
“아니, 그게 아니라. 아니! 이 붉은 글씨가 뭔가 섬뜩하다는, 내 말은 그런 말이었지. 미안해. 진짜 오빠 가사가 별로라는 말은 아니었어!”
은호가 기분 나쁜 티를 내자, 창작물에 관해선 서로를 존중하는지라 은지는 진심으로 당황하며 사과했다.
이런 모습은 생각지도 못했는지, 오히려 은호는 당황하다 이내 웃어 버렸다.
“농담이야, 멍청아.”
“농담 두 번 했다간 팀 해체하겠네.”
“그건 더 어려울걸. 우리 해체하려고 하면 대표님이 강제로 또 여행 데려가지 않을까. 휴대폰 노래 다 금지당한 채로.”
“오, 쉣. 또 온종일 용가리 볼이랑 젓가락 게임만 하겠네.”
낚시터에 여행 갔던 그때를 떠올리며 은호와 은지는 웃음을 터뜨렸다.
은호와 은지의 시선은 다시 빛을 받아 글씨가 나타난 신기한 종이로 향했다.
“다섯 거짓말, 이건 스파이가 한 거짓말인 걸까.”
“아니, 어쩌면 스파이가 다섯 명이라는 힌트일 수도 있지. 그리고 그중 하나는 일단 무조건! 정배찬 선배야.”
은호는 놀란 눈으로 은지를 돌아봤다.
스파이가 다섯이라…….
일리가 전혀 없는 이야기는 아니었다.
‘게다가, 얘…….’
이은지는 내가 회귀했다는 걸 상세하게 따져 가며 추리해서 맞힌 녀석이었다.
이어서 은지는 정배찬과 있었던 일을 이야기를 은호에게 풀어두던 그때였다.
띠링.
또 문자가 도착했다.
[‘에러랜드 호러 하우스’에 위치한 스파이의 기지가 무너졌습니다.
지금부터 ‘에러랜드 호러 하우스’에는 접근을 금지합니다.]
문자를 읽은 은호는 어쩐지 찝찝한 부분을 집었다.
“너를 데리고 나온 지는 꽤 시간이 지났는데, 왜 인제 와서 무너졌다고 하지?”
“거기, 인형이 있었거든.”
“인형? 내가 봤을 땐 없었는데.”
“그땐 정배찬 선배가 들고 나간 후였으니까. 내가 거기에 손전등 비췄다가 이상한 물총 같은 거 맞았었는데, 그랬더니 막 갑자기 입 막고 의자에 묶였었어.”
인형에게 빛을 비추면 물총으로 공격을 한다라?
“빛이랑 납치된 인형이라…….”
잠깐, 그럼 납치된 인형을 종이에 쓰인 ‘인형의 집’에 가져다 놓으면 어떻게 되는 거지?
정답은 조금 전에 도착한 문자를 본 순간 깨달았다.
스파이의 기지가 무너진다.
그럼, 우리가 처음에 뽑은 종이들은 혹시, 다 스파이의 기지인가?
은호가 거기까지 이해했을 때였다.
“그러고 보니까, 오빠는 몇 번이었어?”
“뭐가?”
“그 도와달라는 종이 말고 다른 종이 하나 안 받았어?”
“아, 그거, 나 3번.”
“나는 1번이거든?”
“1번?”
“응. 아, 그래서 나를 먼저 탈락시킨 건가?”
은호는 미간을 구겨 가며 집중했다.
과연, 그게 순서일까?
“은지야.”
“왜.”
“그 번호, 순서가 아니라 점수 아닐까?”
“점수? 왜?”
“스파이가 다섯이면, 생각해 봐. 체인지 파트너는 투표식으로 우승자를 뽑잖아.”
“그렇지. 아, 설마!”
“너 나랑 같은 생각하는 것 같은데, 스파이는 표에 점수가 없는 거지. 그리고 나나 너한테 표를 얻는 사람이 우승인 거 아니야?”
은호와 은지의 숨 막히는 추리에 촬영 중이던 카메라맨은 저도 모르게 꼴깍 마른침을 삼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