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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매는 비즈니스로 일합니다-170화 (170/309)

남매는 비즈니스로 일합니다 (170)

스파이

“야! 아니, 오쁘,튼!”

“오쁘튼?”

“아무튼! 스페이스 익스프레스 타러 가자고 할 때도 같이 가 줬잖아!”

“내가 같이 가 달라고 했냐? 탈 거면 같이 가자고 했던 거지.”

“이은, 아니, 오빠 기어 인형 살 수 있게 도와주기까지 했잖아!”

“누가 먼저 나한테 말했는데. 그건 그거고, 이건 이거라고.”

“뭔…… 하!”

매일 쉬지 않고 싸우긴 한다만, 이번 은호와 은지의 싸움은 나름대로 이유가 있었다.

스페이스 익스프레스에서부터 은호는 은지를 통해 스파이에 대해 추측을 했고, 심지어 다음 미션의 B급 힌트까지 얻어 냈다.

게다가 제각각 지급된 B급 힌트는 다 다른 힌트들.

퍼즐 조각 같은 것인지라, 힌트를 다른 사람에게 공유하면 안 된다는 그런 규칙도 없다.

그래서였다.

“나한테도 오빠 힌트 보여 줘!”

은호가 B급 힌트를 얻는 데 자신의 공로(?)가 적지 않았기에 은지는 당당히 요구했다.

“싫어.”

“…….”

은호의 대답은 아니나 다를까.

단호했다.

‘그래, 힌트는 나도 있으니까.’

의외로 은지는 일찍이 포기하고 대신 노선을 바꿨다.

당장 힌트보다 더 중요한 문제가 있기 때문이었다.

은지는 마른침을 삼키며 주변을 돌아봤다.

촬영을 위해 손님들이 빠지는 시간을 기다리다 보니 시간은 이미 한밤중.

PD와 출연자와 스태프가 모여 있는 중앙을 제외한 주변은 조명 하나 켜진 것이 없어서 컴컴하기 그지없었다.

‘귀신 나올 것 같은…….’

휙휙.

은지는 생각을 치워 내기 위해 고개를 빠르게 저어 댔다.

귀신은 자기 이야기를 하면 주변에 온다던, 은호가 지나가며 흘린 이야기 때문이었다.

한밤중 미션은 PD가 미리 팀이 네 팀으로 나뉠 거라며 이야기를 해 둔 참이었다.

그 말은 곧, 한 명은 혼자 이 한밤중의 놀이공원에서 주어진 미션을 해내야 한다.

재수 없게 그 한 명에 내가 걸리는 일만큼은 피하고 싶었다.

“그, 그럼 같은 팀 해!”

은지의 마음을 훤히 들여다보고 있던 은호는 미소를 지었다.

다른 제3자가 보기엔 정말 무엇이든 들어줄 것 같은 그런 신사적인 미소였다.

하지만 정작 은지는 그 미소에 오히려 바짝 약이 올랐다.

‘이은호, 또 나 놀리려고 각 재고 있네…….’

은지의 예상은 정확했다.

“싫~어.”

“나 이용해서 그만큼 이득 봤으면 팀 정도는 해 줄 수 있잖아!”

“그건 그냥 니가 들킨 거잖아. 그리고 너 게임 못하니까 싫어.”

“…….”

은호가 웃으며 놀리는 말에 은지의 주먹이 울었다.

카메라만 아니었으면 이미 등짝에 손바닥 자국을 내고도 남았다.

“하하, 욕 못 하니까 아주 말이 턱턱 막히지?”

“아니거든?”

“아닌데 왜 말을 못 하지?”

“말하거든!”

“아닌데?”

“아니기는 이 시베리아 이십팔 색 색연필 같은 놈아. 이러니까 연탄이도 너 싫어하지!”

“…….”

“이은호, 이―.”

방송이다.

방송에 나갈 수 있는, 저 자식을 표현할 만한 말이……!

“양치하고 먹은 귤 같은 인간아!”

“……허.”

은지가 더듬거리다 버럭 소리치자, 은호는 황당한 헛웃음을 터뜨렸다.

당황스러울 정도로 정확하게 욕은 아닌데 왠지 욕 같은 말이다.

“재수 없어!”

“…….”

흥!

은지는 단호하게 은호한테서 등을 돌렸다.

“언니!”

은지는 이후 최수민과 조사랑이 있는 곳으로 향했다.

목적은 하나였다.

이 공포 콘텐츠에서 살아남기 위한 짝을 구하려고.

“아, 설마?”

“……으, 응. 아무래도 은지가 생각하는 그 설마가 맞는 거 같은데…….”

“둘이 팀이에요?!”

“응…….”

하지만 두 사람이 같이 있던 이유가 있었달까.

최수민과 조사랑은 이미 일찍이 팀을 꾸린 상황이었다.

은지는 메이크업 때문에 마른세수 대신 흘러내린 긴 앞머리를 쓸어 올렸다.

‘……조졌다.’

카메라가 켜진 지금.

차마 이 말을 입 밖에 뱉을 수 없어서 한숨으로 대신했다.

그때였다.

촬영장의 조명을 등지고 은지에게 누군가 다가왔다.

은지는 누구인지 확인하기 위해 고개를 돌렸지만, 조명에 눈이 시린 데다 역광이라 단번에 누군지 알아볼 수가 없었다.

“은지야, 나랑 팀 할래?”

* * *

쉬는 시간 겸 촬영 준비가 끝난 뒤.

PD는 다시 한 번 멤버들을 모아 두고 두 번째 미션을 설명했다.

“팀을 결정하는 투표를 진행하기 전에, 여러분들께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뭔데요?”

“뭐야? 또 뭐가 있어요?”

최수민과 류석현이 놀란 눈을 하며 물었다.

“여러분들 사이에 스파이가 숨어 있습니다.”

“어?”

“스파이?”

“언제부터?”

“여러분이 버스에 내린 그 순간부터 있었습니다.”

최수민이 놀라며 묻자, PD는 여유롭게 웃으며 대답했다.

미리 알고 있던 은호를 제외한 말이 없던 다른 멤버들은 말만 없었지 하나같이 같은 반응이었다.

“그리고 현재 스파이는 첫 번째 미션을 성공하면서 ‘시크릿 아이템’ 하나를 얻었습니다.”

“시크릿 아이템이 뭔데요?”

은지의 질문을 뒤따라 큰 숨소리가 이어졌다.

은호의 한숨이었다.

“바보냐…….”

“왜, 왜.”

“시크릿 아이템이라잖아.”

“아니, 그러니까 그 시크릿 아이템이 뭔데.”

“비밀이라잖아!”

“아니, 그래서 뭐가 비밀이라는…… 아.”

은지는 이야기하던 도중에 맹한 얼굴이 됐다.

바보 같은 질문을 했다는 걸 깨달아 버린 은지는 차마 이야기를 끝까지 마무리 지을 수 없었다.

“으이그, 멍충아.”

은호가 낄낄거리며 놀리자, 은지는 진심으로 민망했는지 눈에 띄게 얼굴 절반이 붉어졌다.

* * *

“A팀, 조사랑, 최수민. B팀…….”

이어서 B팀은 류석현과 서서운.

C팀은 정배찬과 이은지.

마지막 D팀은 은호 혼자만 남게 됐다.

팀 결정은 촬영이 준비되는 동안 미리 정해 뒀던 덕분에 굉장히 빠르게 진행됐다.

“팀별로 상자에서 하나만 뽑아 주세요.”

한 스태프가 하얀 박스 하나를 내밀며 말했다.

멤버들은 우르르 몰려 나와서 다들 부탁대로 한 장씩 뽑아 들었다.

그때, 이어서 다른 스태프가 다가오더니 제각각 또 다른 쪽지 하나를 더 건넸다.

은호는 일단 하얀 박스에서 뽑은 종이를 펼쳐 확인했다.

근처에 우주선이 있고 로봇이 많아요.

자꾸 주변에서 이상한 소리가 들려요.

부탁이에요.

저를 구해 주세요!

‘우주선, 로봇.’

SF 분위기가 가득한 에러랜드의 ‘퓨쳐 시티’ 구역에는 우주선 모양의 회전하는 놀이 기구와 곳곳에 로봇을 테마로 운행 중인 아이들 맞춤형 놀이 기구들이 있다.

그럼 위치는 퓨쳐 시티라는 것 같은데, 이상한 소리는 뭐지?

위치는 정확하게 집어냈지만, ‘이상한 소리’라는 부분에서 감이 잘 오지 않았다.

혹시 힌트라도 있을까 싶어 다른 종이를 펼쳐 봤다.

3

‘……?’

다른 무언가라도 더 쓰여 있나 싶어서 종이를 뒤집어 보기도 했지만 정말 숫자 하나만 떡하니 쓰인 게 끝이었다.

「“B급 힌트는 ‘빛’입니다.”」

조금 전에 들었던 B급 힌트하고 무슨 연관이 있으려나.

은호가 고민하는 그동안, 스태프가 휴대폰 하나, 손전등 하나 그리고 들고 다니는 카메라를 하나씩 각 팀에게 배급했다.

“미션 중 모든 알람과 연락은 지금 드린 그 휴대폰으로 전달할 거예요.”

“네.”

혼자인 은호는 휴대폰은 주머니에, 카메라와 손전등을 각각 오른손과 왼손에 쌍검처럼 들었다.

챙기라는 준비물도 다 챙겼겠다.

‘빛, 빛이 뭘까.’

일단 가 보면 뭐든 알 수 있겠지.

은호는 PD가 했던 말을 떠올리며 일단 의뢰서 속 퓨쳐 시티 구역으로 향했다.

은호가 네 팀 중 가장 일찍 출발한 그때.

한편, 은지와 정배찬은 그제야 뒤늦게 준비물들을 챙기고 있었다.

“은지야, 네가 카메라 들래?”

정배찬이 묻자, 은지는 머릿속에서 짧은 시뮬레이션을 돌렸다.

카메라를 들고 있는 게 덜 무서울까.

손전등을 들고 있는 게 덜 무서울까.

“……제가 손전등 들게요!”

차라리 불빛이라도 손에 쥐는 게 낫다는 생각에 내린 판단이었다.

옆집에 갑자기 도깨비들이 나타났어요.

자꾸 주변에서 불빛이 보여요.

부탁이에요.

저를 구해 주세요.

준비를 끝마치고 정배찬과 은지 역시 뒤늦게 상자에서 뽑은 종이를 확인했다.

하지만 내용을 읽은 그 순간.

은지의 머리 위로 무수한 물음표가 떠올랐다.

그건 정배찬 또한 마찬가지인 것 같았다.

두 사람은 은호처럼 힌트를 얻을 수 있을까 싶어 건네받았던 다른 종이도 펼쳐 확인해 봤다.

1

2

은지는 1번 쪽지를, 정배찬은 2번 쪽지를 가지고 있었다.

“이건 무슨 숫자일까요?”

“그러게.”

쪽지의 주인들은 의문만 더 배가 되어 버렸다.

* * *

벌써 컴컴한 어둠을 뚫고 퓨쳐 시티 구역까지 도착한 은호.

띠링.

경쾌하게 울리는 낯선 벨 소리에 주머니에 넣어 뒀던 휴대폰을 꺼냈다.

스태프가 전달해 준 대로 문자가 도착해 있었다.

[A, B, C, D 조금 전 모든 팀이 의뢰를 해결하기 위해 출발했습니다.]

다른 사람들은 이제야 출발한 모양이었다.

‘근데 스파이는 있다고만 하고, 딱히 뭔가 활동하고 있는 건 없는 건가?’

호랑이도 제 말 하면 온다더니 조금 뒤 문자가 한 통 더 도착했다.

“엥?”

은호는 새로 도착한 문자를 확인한 그 순간, 황당한 얼굴로 얼빠진 소리를 흘렸다.

시작했다고 문자가 온 지 10분이 조금 넘었을 무렵이건만…….

[C팀 이은지 탈락]

“얜 대체 뭘 했길래 벌써 탈락이야?”

은지가 탈락했다.

마른세수를 하려는데, 이어서 문자 한 통이 더 도착했다.

[위치: 에러랜드 호러 하우스.

제한 시간: 30분.

※구출에 실패한 해당 탈락자는 다음 미션에 참여할 수 없습니다.※

보상: 좋은 거 (진짜 좋음)]

보상 내용을 본 순간 은호는 ‘뭐 이딴 게 다 있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카메라가 정통으로 비추고 있는 탓에 차마 입 밖으로 뱉을 순 없었다.

‘C팀이니까.’

형님께서 알아서 하시겠지.

“나는 내 할 일이나 해야지.”

말은 그렇게 했지만, 신경을 쓰지 않으려고 할수록 더 많은 것들이 떠오르는 건 왜일까.

오늘 낮에 했던 히든 미션 촬영이 마음을 쿡쿡 찔러 댔다.

가발이 흔들리고 그냥 바닥에 떨어졌을 뿐인데 이은지는 뭐가 그리 무서웠는지, 당시 은지의 비명과 X욕은 세트장의 두꺼운 문을 뚫어 버릴 정도로 컸다.

「“어어어억, 끅, 흐어어엉, 끅, 허엉…….”」

눈물 콧물 다 뽑아 내며 뛰쳐나온 은지의 울음소리에 슬기 씨와 현우 형님까지 당황하며 달려왔었다.

은지는 정말 꼬맹이 시절처럼 엉엉 울고 있었다.

무섭다고.

하긴, 은지가 이런 거 많이 무서워 하긴 하는데…….

“…….”

이건 정배찬 선배가 가장 유력한 스파이 용의자 중 한 명이기 때문에 가는 거다.

우주선 놀이 기구로 향하던 은호는 그렇게 자신을 납득시키며 호러 하우스가 있는 방향으로 몸을 틀었다.

띠링.

그때였다.

얼마나 지나지도 않았는데, 또 문자가 도착했다.

슬슬 문자 메시지 알람만 들어도 불안한 기분이 커지는 것 같다.

은호는 긴장하며 문자를 확인했다.

[C팀 정배찬 탈락]

어? 어라?

생각했던 가장 유력한 용의자가 사라졌다.

“뭐야, 어떻게 되고 있는 거야?”

혼란스러운 머리와 다르게 다리는 목적지를 알고 있는 듯 한 방향으로만 달려 나갔다.

“아아아아아아악!!!”

에러랜드 전체에 퍼질 정도로 익숙한, 크고 우렁찬 비명이 울렸다.

“제발 욕만 하지 말아라, 이은지!”

은호의 달리기에 마음이 급해진 만큼 더 속도가 붙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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