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매는 비즈니스로 일합니다 (169)
기념품 가게를 나온 뒤, 블루 팀과 옐로 팀은 거의 같은 팀처럼 붙어 다녔다.
은지가 은호를 집요하게 쫓아다니는 탓에 어쩔 수가 없기도 했다.
은지는 은호가 뭔가를 하려고만 하면 여지없이 다가가 방해를 하곤 했다.
“아, 저리 가! 좀! 징그럽게 왜 자꾸 따라와!”
“오빠가 나 먼저 방해했잖아.”
“아니, 지금이라도 하면 되잖아!”
“당근, 이미 했지.”
“야! 그럼 됐잖아!”
“그건 그거고, 이건 이거.”
“와, 진짜 성질머리 더럽기는.”
“그러게, 누가 감히 이 이은지 님을 방해하래?”
“아오.”
은호는 은지에게서 도망치듯 달렸다.
그런 은호를 은지는 무서울 정도로 뒤쫓으며 놀이공원 곳곳을 쏘다녔다.
“은지야!”
“서운 언니!”
은호와 같은 옐로 팀인 서서운은 도중에 잠시 사라졌다가 은호를 쫓아다니는 은지를 찾아내며 그쪽으로 다가왔다.
한옥 빌리지 틈에 숨어 버린 은호를 뒤쫓던 은지는 가쁜 숨을 갈무리하며 서서운에게 손을 흔들었다.
“어디 다녀왔어요?”
“은호 잃어버려서, 은호 찾고 있었지.”
“아하.”
“은호는 어디 갔어?”
“여기서 갑자기 사라졌어요.”
은지가 쌀밥이 달린 주걱에 뺨을 맞고 있는 동상을 가만히 바라보며 말했다.
옆에는 거대한 박에서 튀어나온 도깨비들에게 두들겨 맞는 중인 동상이 있었다.
“옛날에 숨바꼭질하던 실력이 컸다고 어디 가진 않나 봐요.”
“어릴 때 숨바꼭질 많이 했었어?”
“네. 어릴 때 숨어야 할 일이 많았거든요.”
“사고 많이 치고 다녔었나 보네. 하하.”
“헤헤.”
은지는 설명을 아끼며 은호를 찾는 데 다시 집중했다.
그때였다.
“어, 이은호 저기 있다!”
한옥 빌리지 흥부와 놀부 코너에서 콩쥐 팥쥐 코너로 몰래 이동하던 그림자를 발견했다.
정확히는 은호를 따라다니던 카메라맨이 지친 나머지 뒤처지면서 걸려 버렸다.
* * *
오후 7시에 다다를 때쯤.
해가 지면서 주어졌던 ‘자유 시간’도 끝이 났다.
모든 멤버들이 처음에 흩어진 자리에 다시 모였다.
“다들 잘 놀고 오셨나요?”
“네!”
“네.”
은호와 은지가 가장 크게 대답했다.
특히 은호의 손에 쥐어진 연결된 ‘세 개’의 억울한 표정의 기어 인형과 은지 손에 쥐어진 락앤롤 손가락 장난감만 봐도 둘은 에러랜드를 누구보다 즐겁게 즐긴 것 같긴 했다.
그때 서서운이 장난스럽게 투덜거리며 말을 이었다.
“두 사람 쫓아다니느라 며칠 동안 할 달리기 오늘 다 한 것 같긴 해.”
“헤헤. 죄송해요.”
은지가 멋쩍게 웃으며 답했다.
그때, PD가 수상쩍은 미소를 지으며 말을 이었다.
“다음 미션으로 가기 전에!”
“전에?”
“뭐가 남았어?”
“여러분들이 받은 미션은 총 세 가지로 나뉩니다.”
“세 가지라고?”
“네. 세 가지. 팀원의 미션을 맞힌 분께는 다음 미션에 도움될 B급 힌트가 제공됩니다.”
조금 전까지 단단하게 ‘팀’으로 묶여 있던 서로에게 경계심 어린 시선이 오갔다.
“인원이 세 명인 블루 팀은요?”
은지가 손을 들며 묻자, PD는 마침 이야기 잘했다며 말을 이었다.
“블루 팀은 특별히 한 분의 미션만 맞히셔도 힌트는 제공됩니다.”
“이번 미션에서는 인원이 많았던 게 좋았네.”
“맞혀야 좋은 거죠, 오빠. 하나도 모르겠는데…….”
류석현이 부럽다는 듯 블루 팀인 정배찬에게 말하자 최수민이 투덜거리며 대답했다.
“그럼 지금부터 호명하는 분은 앞으로 나와서 본인의 팀원 미션이 어떤 것이었는지 말씀해 주세요.”
앞서 다른 사람들이 불리고, 은호도 차례에 맞춰 앞으로 나왔다.
“이은호 씨.”
“네.”
앞으로 나온 은호는 확신 어린 얼굴로 정답을 말했다.
“같은 팀 몰래 놀이 기구 타기 전에 스트레칭하기?”
은호가 여유롭게 물러나자, PD는 긴장감을 위해 느리게 입을 열었다.
“이은호 씨, 정답!”
“와!”
“뭐야, 어떻게 알았어?”
“아는 방법이 다 있었죠.”
서서운은 은호에게 들킬까.
중간에 따로 길을 잃은 척 빠져나가선 홀로 놀이 기구를 타기 전 스트레칭을 하고 탔었다.
그리고 미션을 끝마친 이후에서야 은호를 잃어버린 척 한옥 빌리지로 돌아갔다.
그랬기에 서서운은 당혹스러운 얼굴로 은호를 돌아봤다.
한편, 은호는 놀라는 서서운을 보며 생각했다.
‘반쯤은 도박이었는데.’
스파이였어도 나쁠 건 없었다.
이번 미션에서는 보상을 얻을 수 없지만, 마지막 미션에선 S급 힌트를 얻었을 테니까.
다행히 서서운 누님이 스파이가 아닌 덕분에 정답이었다.
이후 다른 멤버들이 불려 가는 동안.
은호는 조용히 다른 사람들에게 속닥거리며 물었다.
처음엔 류석현이었다.
“선배님은 정답 뭐라고 말씀하셨어요?”
“어? 나도 사랑이가 갑자기 놀이 기구 타러 가자고 하더니 거기서 뜬금없이 스트레칭을 해서, 그거 말했어.”
이어서 은호는 조사랑에게도 물었다.
“갑자기 오빠가 미친 듯이 츄러스부터 구슬 아이스크림 여러 개 사더니 나 몰래 먹길래. 뭐 사는 거 아닌가 싶어서 그거 말했어.”
은호가 먼저 정답을 이야기하며 경계심을 푼 덕분일까.
류석현도 조사랑도 솔직한 이야기를 풀어 나갔다.
은호는 이후의 투표를 의식한 듯, 서서운을 제외한 다른 팀원들에게 은근히 힌트를 넘기며 정보를 얻었다.
하지만 그랬음에도 불구하고, 한 끗 차이로 답을 틀린 듯 이번 미션의 보상인 B급 힌트는 류석현, 조사랑, 이은호, 이은지에게만 지급됐다.
* * *
다음 촬영이 준비되는 동안.
사람이 줄어들고 있던 에러랜드 한구석에 돗자리를 펴고 멤버들은 준비된 저녁 도시락을 먹었다.
“그러고 보니까.”
“음?”
은호가 막 입 안에 작은 김치전 조각을 넣은 그때.
최수민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물었다.
“은호는 대체 미션을 어디서 한 거야? 석현 오빠처럼 뭐 사 먹는 데다가 다 썼어?”
꿀꺽.
은호는 입 안에 있던 김치전을 삼킨 후 대답했다.
“음, 그건 아니고, 여기 인형에 뭔가 이상한 점 없어요?”
“인형에 이상한 거라니……. 어?”
은호가 끌어안고 다니던 기어 인형을 가만히 바라보던 최수민은 경악하며 소리쳤다.
“배찬아! 네가 사 준 인형 두 개 아니었어?”
“응? 두 개였지.”
“은호 세 개 들고 있는데?”
“뭐? 언제부터!”
뒤늦게 은호의 인형 소식을 들은 서서운이 버럭 소리치며 자리로 다가왔다.
“은지가 계속 쫓아다니고 있었잖아.”
“아, 하하. 이은지는 상대 팀이라 안 걸리잖아요. 덕분에 사왔죠.”
“뭐, 뭐? 둘이 싸우고 있던 거 아니었어?”
도망치며 싸우는 듯 보였지만, 사실상 은호와 은지는 스페이스 익스프레스에서부터 서로를 돕고 있었다.
기념품 가게를 나온 이후부터 말이다.
은지가 은호를 쫓는 척 서서운과 블루 팀 전부를 끌고 다른 곳으로 갔을 때.
은호는 몰래 다시 가게 안으로 들어가, 2만 원짜리 중간 사이즈 기어 인형을 하나 더 구매했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하나는 커다란 기어 인형 위쪽에, 하나는 아래쪽에 붙여 두었다.
「“샀어?”」
「“어. 작전 시작한다.”」
「“오케이.”」
「“아, 저리 가! 좀! 징그럽게 왜 자꾸 따라와!”」
「“오빠가 나 먼저 방해했잖아.”」
아슬하던 그 남매 싸움이 알고 보니 전부 메소드 연기였다는 말이었다.
이 이야기에 그 상황을 직접 겪었던 서서운, 정배찬, 최수민은 경악하며 놀랄 수밖에 없었다.
* * *
은지는 해가 진 이후로 하나둘씩 불빛이 꺼지고 있는 놀이 기구를 보며 마른침을 삼켰다.
‘아, 설마, 제발, 여기서 촬영한다는 그런 소리는 안 하시겠지.’
이번 체인지 파트너의 테마는 ‘공포’다.
본격적인 촬영 또한 어둠이 내려앉은 지금부터 시작이라는 말이었다.
놀이 공원에서 저녁 촬영이 있다는 말은 미리 들었다.
하지만, 하지만…….
‘아! PD님!!! 이렇게 조명 다 꺼진 놀이 공원이라고는 말 안 했잖아요!!!’
은지는 울고 싶었다.
눈물 섞인 도시락은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그 와중에 너무 맛있다.
* * *
외전: 잠자는 사자
은호와 은지의 예능 촬영을 결정한 후, 며칠 뒤.
박 대표는 이제 막 해가 뉘엿뉘엿 넘어가던 시간에 집에 들렀다.
아파트를 나온 박 대표는 멀끔하게 양복을 차려입은 모양새였다.
박 대표는 차에 올라, 오늘따라 풀어진 자세로 운전대를 붙잡았다.
‘남매 일은 됐고…….’
능력 좋은 직원들을 믿고, 처음으로 온전히 은호와 은지의 일을 그들에게 맡겼다.
한동안 나서는 일은 없을 줄 알았건만.
박 대표는 휴대폰을 켜, 빼곡한 일정표를 살폈다.
앞으로 만나는 한 명, 한 명.
앞으로 큰 폭풍과 같은 큰 변화의 바람을 불러올 만남이었다.
「검찰, 톡신의 오현, 대마초 흡연으로 기소」
「올드 카 매니아로 유명하던 톡신의 최태현, 알고 보니 대포 차?」
「대한민국 최고의 그룹, 톡신의 최태현과 오현, 나란히 대포 차 사기, 대마초 흡연? ‘이게 무슨 일?’」
박 대표를 움직인 건 누군가 쏘아 올린 루머성 기사가 그 시작이었다.
좋은 일 하나에 나쁜 일이 여럿 터지는 건 운명이라고 받아들여야 하는 걸까.
박 대표의 인맥으로 이 헛된 소문의 진실을 알아내는 것은 그다지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소문의 진상이 그 톡신이 속한 TaKa 엔터테인먼트라는 것 말이다.
“……이 X같은 송남철이가 아둔함에 눈이 멀어 결국엔 일을 치는구나.”
자식 같은 은호와 은지에 비할 바는 못되지만, 오랜 시간을 함께해 온 톡신 박 대표에게는 마찬가지로 소중한 존재였다.
츠즈즈즉.
박 대표의 차량이 한 아파트 앞에 멈춰 섰다.
누군가를 기다리는지, 박 대표는 고개를 내밀어 아파트를 바라보다, 입에 담배 한 개비를 물었다.
담배는 끊은 지 몇 년이 흘렀다.
하지만 담배는 끊는 게 아니라 참는 거라 했던가.
속이 타는 일이 생기니 절로 생각이 나는 건 어쩔 수가 없었다.
박 대표는 끊었던 담배에 불을 붙이며, 필터까지 태워 버릴 심정으로 깊은 숨을 들이켰다.
“후…….”
이 연기가 섞인 한숨에 스트레스가 날아가길 바랐건만.
오히려 폐 안부터 혀끝까지 불쾌한 텁텁한 기분만 들어찼다.
콜록.
오래 끊긴 했었는지, 전엔 별로 의식되지 않던 담배 냄새도 이제는 지독하게만 느껴졌다.
박 대표는 아쉬움 없이 남은 담배를 곽 채로 찌그러뜨리며 차 안에 놓아 둔 쓰레기 봉지에 골인시켰다.
똑똑.
그때였다.
조수석 창문을 노크하는 누군가.
기다렸던 상대였는지, 박 대표는 반가운 얼굴로 창문을 열었다.
“아우, 담배 냄새!”
한편, 창문이 열리자 상대는 오히려 표정을 구기며 잔소리를 던졌다.
“하하. 미안. 얼른 타.”
조수석에 오른 건 바둑이가 탑승한 이동 가방을 든 김철수 PD였다.
단발머리가 아직 젖어 있는, 누가 봐도 이제 막 샤워를 마치고 나온 모습이었다.
“급하게 애들 맡길 때가 없어서, 미안하다.”
“됐어. 바둑이 가족들인데 괜히 이상한 호텔에 맡겨지는 것보단 내가 보는 게 나아요.”
“고맙다.”
“고맙기는, 그나저나 미안하면 나중에 냥이들 말고 애들 뮤비 하나나 더 맡겨 주시든가요.”
“하하, 알겠어.”
박 대표가 씁쓸하게 웃으며 대꾸하자, 철수는 장난은 그만두고 걱정을 담아 박 대표를 돌아봤다.
“어쩌려고요.”
“어쩌긴.”
“이번에 화랑이었나, 걔도 거기 출신이라면서.”
“화랑이도 NRY에 들어왔겠다, 이참에 없애 버리지 뭐. 하하.”
“이응이네 아버지 되시더니 성격도 같아지셨어? 힘들다는 거 알잖아요. 옛날에 비해서 거기가 보통 커진 것도 아니고.”
“커져 봐야, 대가리는 여전히 그 멍청한 송남철이지. 알잖아, 송남철 내 손바닥 안인 거.”
‘농담하지 말고.’라고 말을 하려고 했지만, 철수는 박 대표의 눈빛을 본 순간 말을 아껴야 했다.
“회사 존망이 걸릴 정도로 위험한 일만 벌이지 마요. 은호랑 은지, 애들 생각해서라도.”
“우리 NRY의 존망이 걸리진 않아. TaKa의 존망은, 하하. 송남철이 어떻게 나오는지에 따라 달라지겠지.”